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38
◈ 338. [STAGE 14] 궁지
내가 메이슨에게 알려 준 장소는 서문 밖, 무덤터의 공동묘비 뒤였다. 이곳에 호수왕국과 통하는 통로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일단 인적이 드물어 괜히 이놈들에게 시민들이 휩쓸릴 일이 없고, 특징적인 장소인 데다 내가 자주 들리는 곳이기도 하니까.
“흐음, 묘비 뒤에 통로를 숨겨 두었다라…….”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최면에 걸린 척 최대한 뻔뻔하게 버티며 말했더니. 메이슨은 그럭저럭 속아 넘어가는 눈치였다.
메이슨의 옆에 선 특무대 부관이 소곤소곤 귓속말했다.
“몽마 추출 최면제는 정신에 직접 간섭합니다. 상아탑 대마법사의 정신방벽도 무너뜨리는 물건인데 황자가 저항할 리가 없습니다.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뭔가 꺼림칙해…… 우선 나 혼자 그 통로에 정찰을 다녀오도록 하겠다.”
밖으로 나서며 메이슨은 나를 향해 턱짓했다.
“황자를 철저하게 감시해.”
메이슨이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재빠르게 눈을 돌려 방 안에 남은 특무대원들을 살폈다. 방 안에만 네 놈. 벽마다 한 놈씩 서 있다.
방 안에는 묶인 나와, 바닥에 쓰러진 채 제압당한 갓핸드, 그리고 번아웃이 있다.
나는 갓핸드와 시선을 마주쳤다. 끙끙 앓으며 아파하던 갓핸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슬쩍 입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바디백.’
과연.
현재 그림자부대의 구성은 세 명. 금속술사 갓핸드, 폭파궁수 번아웃, 그리고 염동술사 바디백이다.
갓핸드와 번아웃은 잡혀왔지만, 바디백은 이곳에 없다…… 즉, 잡히지 않았고 바깥에서 상황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찬스는 있다.’
후- 숨을 들이쉰 나는 우선 잠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메이슨이 이 집을 나가서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10분 정도 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좋아, 시작해 볼까.
“이봐, 이 포박만 좀 풀어 줄 순 없어?”
나를 감시하는 특무대원들을 둘러보며 내가 칭얼댔다.
“너무 꽉 조여서 황자님 팔이 아프다고. 요것만 없으면 마력 운용이 가능해져서 좀 더 편해질 것 같은데.”
사실상 갓핸드한테 한 말이었다. 이 포박만 좀 처리해 달라고.
특무대원들이 조금 당황하며 서로를 보았다.
“부대장님. 인질이 최면제에서 깨어나려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다시 눈을 가리도록 하지.”
메이슨의 부관…… 놈들의 부대장이 빵봉투를 집어 들고는 내게 다시 씌우러 다가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야, 지금 나한테 그거 씌우려고? 너 나중에 뒷감당할 자신 있어? 나 네 얼굴 기억했다? 응?”
“…….”
부대장은 식은땀을 흘렸지만, 주저하지 않고 다시 내게 성큼 다가왔다.
놈이 내 머리에 빵봉투를 씌우기 직전, 나는 버럭 소리쳤다.
“지금이다-!”
“?!”
그러자 바깥에서 뭔가가 휙-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쿠과과광!
한쪽 벽이 완전히 작살나며, 거대한 파편들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밖에서 바디백이 염동력으로 집어던진 건물 잔해들이었다. 폐허촌이라 저런 게 잔뜩 굴러다니는 모양이다.
무너져 내린 벽의 잔해가 그쪽에 서 있던 특무대원 하나를 깔아뭉갰다.
“끄아악!”
“뭐야?!”
“적습이다!”
특무대원들이 당황하며 그쪽 방향으로 시선이 쏠린 틈.
이 혼란 중에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선 번아웃은 자신의 입마개 재갈에 손을 올리더니, 단숨에 떼어 내고는-
“크아아아아!”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아니, 항상 입마개 하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냐고.
“으아아아!”
불길에 휩싸인 부대장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고, 방에 불이 붙었다.
제아무리 특무대 소속 요원들이라 해도, 밖에서 건물 잔해 폭격이 쏟아지고 안에서는 누가 입에서 불을 뿜어대면 혼란이 걸릴 수밖에.
동시에 갓핸드가 벌떡 일어서며, 자신의 팔을 칼날로 변형시켰다.
그의 양손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수…… 그리고 갓핸드는 금속술사다.
그의 손에는 처음부터 비상용 무기가 들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하!”
내게 달려온 갓핸드가 손의 칼을 사뿐하게 휘둘렀다.
촤악!
단숨에 내 포박이 잘려 나갔고, 포박에 걸려 있던 마력봉인 효과가 사라지자 내 몸에 마력이 돌아왔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구만.”
나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고맙다! 갓핸드.”
나는 뒤늦게 달려들려는 두 특무대원을 노려보았다.
“거기 너희 둘!”
놈들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면?
[지휘의 마안] 발동조건 충족이라는 거다!“제자리높이뛰기 10회 실시-!”
번쩍!
[명령 난이도 : 쉬움] [사용자의 지력 스탯과 대상의 마력 스탯을 대조합니다.] [성공률을 결정합니다. 내성굴림을 시작합니다…….]띠링!
>성공 : 2체
[강제 지휘를 집행합니다.]보기 좋게 성공!
두 요원은 즉시 그리고 열심히 제자리높이뛰기를 헛둘헛둘 시작했다.
그리고 열 번을 채우기도 전에 갓핸드와 바디백이 냅다 달려들어 두 놈의 턱을 후려쳐 날려 버렸다.
바닥에 질펀하게 쓰러진 두 놈의 몸을 발끝으로 툭툭 차며 내가 으르렁댔다.
“마지막 숫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라고 안 배웠어, 이 새끼들아? 응?”
꼬장을 부리던 나는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몸을 앞으로 숙였다. 윽!
“큭, 코피 나네…….”
하지만 이런 걸로 엄살 부릴 시간이 아니지. 나는 얼른 손등으로 대충 코피를 훑어 냈다.
그때 볼살이 통통한 엘프가 무너진 벽을 통해 바깥에서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밖에서 잔해 폭격을 날려준 바디백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악!”
“덕분에 살았다, 바디백!”
“전하! 조심하세요! 밖에 요원들이 더 많으…… 꺄악!”
후두두둑!
바디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너진 벽을 통해 화살이 쏟아졌다.
건물 밖에 있던 놈들이 인정사정없이 우리 쪽으로 석궁을 쏘아 갈기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나를 엄폐물 뒤로 이끈 갓핸드가 이를 갈았다.
“놈들의 숫자가 많습니다! 넷을 해치웠으니, 남은 건 열 명은 됩니다!”
닫힌 방문 쪽으로도 우르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완전히 포위됐다!
‘탈출할 수단은?’
갓핸드와 번아웃은 부상. 바디백은 방금 염동력 사용으로 쿨타임이 차려면 시간이 필요한 상태.
그리고 나는…… 가뜩이나 아픈데 무리하게 마력까지 썼더니 상태가 끔찍하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다. 의식이 증발할 듯 흐리다.
– 형 진짜 대단하다. 이거 어떻게 깬 거야?
떠올리기 싫은 이미지들이,
– 엄마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제멋대로 떠올라서, 머릿속을 메운다.
까득!
이를 악물고 나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정신줄 잡아, 고전덕후! 운동 좀 해두지 그랬냐, 김애쉬!
‘상황이 엉망이긴 하지만, 아직 괜찮아!’
그래도 인벤토리에 쓸 만한 아이템이 좀 있거든. 나는 숨을 헐떡이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
삐빅.
[현재 플레이어의 존재증명이 불확실합니다.] [시스템 사용이 불가합니다.]“……?”
아니, 이건 또 뭔. 씨발? 갑자기 왜 이래?
눈앞에 새빨간 메시지 창이 뜨더니, 저딴 메시지를 출력했다. 존재증명은 또 뭔데?
인벤토리도 시스템 기능인지, 아무리 휘저어도 내 손은 텅 빈 안주머니를 훑을 뿐 인벤토리를 열지는 못했다.
이런 망할! 이래서 카드 말고 현금도 들고 다니라는 거구나!
후두두둑!
“전하! 큭!”
무너진 벽을 통해 화살세례가 쏟아졌고, 나를 감싼 갓핸드의 등과 어깨에 화살이 하나씩 박혔다.
바디백이 필사적으로 염동력으로 반격하고, 번아웃은 입가에 화상을 입은 채로도 빼앗은 석궁으로 대응사격하는 등.
다들 애쓰고는 있지만 숫자와 화력의 차이는 명백하다.
장애물로 막아둔 방의 문 쪽에서 쿵쿵거리는 거센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저 문이 열리고, 적들이 안으로 몰아닥치면…….
그때였다.
“어?”
“넌 뭐…… 크악?!”
“적의 증원- 으아악!”
우지끈! 콰직!
방문 바깥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더니, 그쪽으로 진입하려던 특무대원들이 잠잠해졌다.
우리는 의아하게 그쪽을 보았다. 뭐야?
투쾅-!
다음 순간, 방문이 산산조각 부서지며 열리더니,
“주군!”
탱크처럼 무지막지한 기세로, 깡통 투구의 기사가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무사하십니까, 주군!”
“루카스!”
우리 넷은 구원군의 등장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루카스야! 구하러 왔구나!”
그러자 루카스가 머쓱하게 깡통의 뒤통수를 긁었다.
“아뇨, 저도 이제 한계입니다…….”
쪼개진 갑옷 틈으로 보이는 루카스의 가슴팍은 어설픈 붕대와 함께 피에 젖어 있다.
그리고 방금 생긴 듯한 부상도 몸 곳곳에 남았고. 손에 들린 목검은 반으로 뚝 부러진 상태.
“진입하면서 세 놈 정도 머리를 깨 주긴 했습니다만, 여기까지입니다.”
루카스는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말해 주었다.
“적들 모두 하나하나가 강자입니다. 더는 상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
“게다가 바깥 경비 병력이 모두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이슨도 이상을 눈치 채고 달려오는 중일 겁니다.”
나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루카스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건가…….
그때 루카스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들며 말했다.
“……하지만 주군. 제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놈들이 내 머리에 뒤집어씌우려던 봉투였다.
그 봉투를 손에 들고서, 루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저를 믿고,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착각일까?
깡통 투구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투구의 틈으로 보이는 루카스의 눈이, 빙긋 웃은 것처럼 보였다.
***
“이게 무슨 난리냐?”
잠시 뒤, 헐레벌떡 돌아온 메이슨이 부하들에게 으르렁댔다.
“무슨 일이 생겨도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라고 했잖아. 이렇게 소란 피우면 크로스로드의 병력이 몰려올지도 모른단 말이다!”
경계를 서던 특무대원이 보고했다.
“바깥에서 기사와 마법사가 하나씩 쳐들어와서, 황자를 탈출시키려 했습니다.”
“어떻게 됐나?”
“방을 경비하던 넷이 죽고, 바깥을 경비하던 셋이 크게 다쳤습니다. 부대장도 사망했습니다.”
가지런히 놓인 시체들 사이에서 까맣게 불탄 채 쓰러진 특무대 부대장이 보였다.
무력담당이라 죄다 근육뇌 뿐인 특무대 제1팀에서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친구였는데……. 혀를 차는 메이슨에게 요원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은신처는 보시다시피 한쪽 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합…….”
“그딴 거 말고, 등신 새끼야! 황자는 어쨌어!”
메이슨이 윽박지르자 요원이 방의 안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안에 있습니다.”
“뭐?”
“황자만 남기고 나머지 놈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저희도 황자가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놈들을 더 추격하지 않았고요…….”
이해가 안 가서 메이슨은 방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었다. 애쉬는 그대로였다.
의자에 포박당한 채, 몸을 늘어뜨리고, 봉투를 머리에 쓰고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요원이 말을 덧붙였다.
“최면이 덜 풀려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데리고 나가지 못한 게 아닐까요?”
“…….”
그런 애쉬를 바라보던 메이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깐.”
“예?”
“황자, 키가 좀 커진 것 같지 않아?”
메이슨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확인해 봤어?”
“예? 무엇을요?”
“확인해봤냐고, 얼굴.”
“황자 전하께 접근할 권한은 부대장 이상에게만 있습…….”
덜떨어진 소리를 뱉는 요원을 뒤로 하고, 이를 악문 메이슨은 애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홱!
애쉬가 머리에 쓴 봉투를 벗겨내자-
흐트러진 금발 사이로 빙긋 웃는 파란 눈이 보였다.
“안녕, 메이슨.”
애쉬가 아니었다.
루카스였다.
애쉬와 루카스는 서로 옷과 갑옷을 바꿔 입고, 봉투와 투구를 바꿔 쓴 뒤, 애쉬는 탈출하고 루카스는 대역으로 남긴 것이다.
“……하하.”
허탈하게 웃던 메이슨은 주먹을 위로 홱 치켜들고는,
뻐억-!
거칠게 휘둘러, 옆의 요원을 후려쳤다.
쿠당탕! 콰직!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나가떨어진 요원은 벽에 처박히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허접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다니…….”
안면이 함몰된 채 죽어버린 요원을 곁눈질한 메이슨이 하- 하고 한숨을 뱉었다.
“야수화 혈청의 부작용인가, 분노 제어를 못하겠네.”
희번덕이는 살의어린 시선을 루카스에게 향하며, 메이슨이 짐승 같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으니까 남은 거겠지, 도련님?”
루카스는 대답 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그런 기사의 얼굴 위로, 메이슨의 주먹이 굉음과 함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