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16
◈ 416. [STAGE 20] 유령함대
세계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세레나데뿐만 아니라 윤 왕녀,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 등의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으며 나는 아파오는 머리를 싸맸다.
라르크와 그의 군대는 끝장났다.
황제는 영계에 갇혔고, 현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황도는, 그리고 제국은, 완전히 페르난데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페르난데스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지만 이곳 괴수전선에는 코앞에 들이닥친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유령해적 군단이 바로 내일이면 검은 호수에서 솟구쳐오를 것이다.
그리고 전진기지 등의 방어선이 전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크로스로드로 진격해 올 터.
지난 며칠간 이곳의 사람들이 크로스로드 남쪽 성벽 앞에 열심히 준비해 둔 이 ‘설비’가 제대로 먹히기를 빌 수밖에 없다.
내심 확신도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만일을 대비한 플랜B까지 동시에 준비시켰다.
***
시간이 흘러, 괴수들이 쳐들어오기 전날 밤.
나는 오랜만에 인벤토리를 열고, 그동안 쓰지 않은 상자들을 꺼냈다.
황금색 SSR등급 보상 상자 1개, 보라색 SR등급 보상 상자 3개.
고블린 신왕을 물리치고 얻은 보상이다. 이걸 이제 열어 보네.
내가 없는 동안 영웅들이 파밍해 둔 저등급 상자들도 더 있었지만 킵해 두고, 오늘은 이 고등급 상자 4개만 열기로 했다.
먼저 황금색 상자를 손에 쥐었다.
“…….”
뭔가, 예감이 들었다.
이 안에 든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평소처럼 기도하거나 쓰알신을 찾지 않고, 담담하게 상자를 열었다.
번쩍-!
눈부신 빛이 폭사한 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역시 이거구만.”
눈에 익은 깃발 조각이었다.
[위대한 사령관의 깃발 조각] (4/5)– 캐릭터 ‘애쉬’의 전용장비 [위대한 사령관의 깃발(EX)]의 다섯 조각 중 하나.
– 다섯 조각을 모두 모으면 하나의 깃발로 완성됩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깃발 조각을 손에 들고 팔랑이며 나는 혀를 찼다.
“이제 하나 남았네.”
오히려 다른 게 나왔으면 아쉬울 뻔했다.
얼른 이거 조각 다 모아서 완성품 만들고 싶거든. 대체 얼마나 엄청난 깃발이길래 황금 상자 다섯 개를 처먹는지도 궁금하고.
깃발 조각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나는 나머지 SR등급 상자 셋도 차례로 개봉했다.
번쩍! 번쩍! 번쩍!
처음 상자에서는 평범한 SR등급 마력핵이 하나 굴러 나왔다. 완제품보단 못하지만 뭐,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마력핵 소모가 한동안 극심했으니 여기서 나와 주면 고맙지.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상자에서 나온 것은…….
“……!”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메이스.
그리고 직사각형의 크고 두터운 방패였다.
묵직한 두 장비를 살피며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건……!”
[여신이 축복한 메이스(SR)] [여신이 축복한 대방패(SR)]홀리 가디스!
“여신축복세트잖아!”
접두사로 ‘여신이 축복한-’이 붙는 장비로, 모든 장비군에 딱 하나씩 존재한다.
그러니까 여신이 축복한 장검도 있고, 여신이 축복한 석궁도 있고, 그런 식인데.
“으으으음……! 어떻게 이렇게 딱 알맞게 나와 주냐!”
여신이 손수 축성(祝聖)해 준 장비답게, 고스트나 언데드 계열 몬스터들에게 끝내주는 천적 장비다.
곧 유령해적 군단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게 아주아주 적절하게 좋은 템이라 할 수 있겠다.
오랜만의 상자깡이라 그런가? 이렇게 딱뎀딱코로 적절한 템이 나와 주다니.
‘……그래서, 좋은 장비 나온 건 좋은 일인데.’
나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이걸 누구를 줘야 한다? 누구에게 줘야 가장 잘 줬다고 소문이 날까…….
“……으음.”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역시, 이걸 줄 사람은…….
“그 녀석뿐이군.”
***
다음날.
남쪽, 검은 호수.
부글부글…….
새카만 호수의 표면이 거세게 들끓더니,
콰과과광!
곧 수면을 산산이 터뜨리며- 거대한 군함이 튀어나왔다.
군함은 끔찍한 몰골이었다.
온통 썩고 삭은 몸통에는 흉측한 심해 괴물들이 들러붙었고, 갈가리 찢어진 새카만 돛에는 기괴한 해골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배의 전후좌우와 대각선 여덟 방향에는 쇠사슬에 묶인 백골이 매달려 있었는데, 텅 빈 두개골 안에서 시퍼런 불길이 일렁였다.
좌우 현에는 빼곡하게 들어선 대포들. 그리고 적선을 쏘아 붙들기 위한 칼날 갈고리들.
끼야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
배의 주위를 둘러싼 시커먼 망령들이 연신 끔찍한 비명을 내뱉으며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쏴아아아……!
사방으로 검은 물보라를 뿜어내며 군함이 거체를 바로 세웠다.
《으음~!》
철퍽. 철퍽.
그 군함의 선수(船首)로, 제독 같은 차림새를 한 거구의 유령이 온몸에서 바닷물을 흘리며 걸어 나왔다.
걸을 때마다 물에 잠긴 장화에서 바닷물을 튀기며, 비린내가 진동하는 코트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며, 입가에는 술병을 꼬나문 유령 해적이었다.
등에는 거대한 대검과 대포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며 차여 있다.
《흐으읍!》
유령은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혀를 차며 다시 입에 럼주 병을 물었다.
《뭍 냄새는 언제 맡아도 엿같구만.》
악몽 군단장 서열 8위.
유령해적 군단의 군단장.
유령사략함대장- 베르나르트 포커였다.
쏴아아! 쏴아아아!
구시렁대는 그의 배 좌우로 새로운 배들이 속속 나타났다.
하나같이 끔찍하게 훼손되고 망가진 유령선이었다.
청록색의 으스스한 기운을 품은 배들은 모두 망령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배의 한쪽 면에는 거대한 갑각류나 문어 따위의 흉물스러운 괴물들이 들러붙어 살의로 눈을 희번덕였다.
저벅! 저벅! 저벅!
텅 비어 있던 갑판 위에는 어느새 유령들이 그득했다.
망자(亡者)들의 손에는 녹슨 칼이나 피스톨, 갈고리와 끈 따위가 들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배를 몰고 적선에 들이받은 뒤, 줄을 타고 건너가 백병전을 벌이려는 듯이…….
《…….》
그런 자신의 선원들을 둘러보며 베르나르트 포커는 재차 술병을 삼켰다.
본래라면 진작 범람의 때가 찾아오고,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 지상을 침범했어야 했겠으나.
그동안 호수왕국 심부에서 꽤 여러 난리가 났었다.
레이븐과 살로메, 악몽 군단장 둘이서 서로 싸우다 쓰러지질 않나, 레이븐 놈이 죽기 전 뿌린 역병에 괴수 군단 수십 개가 휩쓸려 끔찍한 타격을 입질 않나…….
어수선한 상황이 얼마 전에야 진정되었고, 범람의 때가 닥치자 왕중왕은 선심 쓰듯 베르나르트 포커에게 출병을 명령했다.
– 순풍이 불게 해 주마. 전속으로 전진하여 인세를 멸망시켜라.
《순풍 같은 소리, 시팔. 남은 놈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만만하니까 먼저 집어던지는 거면서.》
유령 함장의 푸르고 투명한 목울대 안으로 붉은 독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본래 무엇도 먹고 마실 수 없는 유령의 몸이었지만, 술에 대한 열망만큼은 죽은 몸으로도 삭힐 수 없었다.
그는 마력을 일으켜 술을 분해해 강제로 제 몸에 흡수했다. 엑토플라즘(Ectoplasm)으로 이뤄진 유령의 몸이 조금 붉어졌다.
베르나르트 포커는 다 마신 술병을 옆으로 홱 집어던졌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와 함께 포커는 끄억- 트림을 했다.
《짬처리는 언제나 뱃사람 몫이지, 조까튼 높으신 새끼들…….》
그러자 어느새 포커의 주위에 몰려든 그의 부하 유령들이 낄낄거리며 소리쳤다.
《그래서, 털러 안 갈 겁니까, 제독님?!》
《오랜만에 살아 있는 놈들 찔러 죽이고! 가진 걸 다 빼앗을 수 있는 기회인뎁쇼?!》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어린애도! 그 사이와 그 밖의 놈들도! 전부 죽이고!》
《금화! 보석! 비단! 담배! 후추! 커피! 전부 빼앗자고!》
《그리고 술도!》
《맥주! 포도주! 브랜디! 럼! 위스키! 우리 함장께서는 가리는 게 없으시지!》
즉석에서 가락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부하들을 둘러보다가 포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뒈지기 전이나 뒈지고 나서나, 참 한결같은 머저리들이었다.
머리에 불가사리가 붙어 있거나, 화살이 박혀 있거나, 두 눈이 없거나, 턱 아래가 없거나, 아예 머리가 없거나- 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홱 둘러본 뒤.
《……하지만.》
새 술병을 꺼내 병뚜껑을 따며 포커가 흥얼거렸다.
《그중 제일은 떠난 마누라가 담근 싸구려 밀주(密酒)라네~》
《끼얏호!》
《우리 제독님 목소리도 감미로우셔라!》
《반해 버릴 것 같슴다, 함장니이임!》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는 부하들에게 포커가 호령했다.
《출항이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쳐라! 바람을 맞아라-!》
뒤이어 그가 앞으로 손을 홱 뻗자,
《폭풍우의 시간이다!》
쿠릉, 쿠르르릉……!
하늘에 암운이 몰려들더니,
쏴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폭우를 아래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늘에 바다가 열렸다. 남쪽 망망대해 어딘가와 이곳의 하늘이 마법으로 연결된 것이다.
소금물이 폭포처럼 떨어졌다. 휩쓸린 바다 생선들이 비늘을 흩뿌리며 추락했다.
그 비를 맞으며 유령해적들은 춤을 췄다. 포커는 앞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가자! 인세를 모조리 약탈해 버리자-!》
쏟아지는 바닷물을 가르고 거대한 유령선들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총 열두 척.
폭풍 속에서 유령선 열두 척이 지상을 내달려 북상했다.
그 배에 탄 유령 해적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그 배에 매달린 망령과 해양 괴수들의 흉측한 울음소리와 함께.
***
순풍이 불게 해준다던 왕중왕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유령함대는 평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유령선 열두 척은 평소라면 사흘이 걸릴 거리를 하루하고도 반나절 만에 돌파해냈다.
《제독니이이이임! 보입니다아아아!》
닻 위에서 망원경을 들고 진로를 살피던 해적이 요란스럽게 외쳤다.
《인세의 성벽입니다아아앗!》
《……!》
베르나르트 포커는 침침한 눈을 치켜뜨고 앞을 보았다.
과연, 틀림없이 보였다. 철과 벽돌 따위로 지어둔 보잘것없는 성벽이.
《고작 저런 허약한 성벽 하나 못 넘고, 여기서 악몽 군단장이 넷이나 죽었단 말인가?》
포커의 입에 조소가 걸렸다.
이 성벽을 넘지 못하고 죽은 머저리 군단장들에 대한 조소였다.
거미도, 흡혈귀도, 늑대인간도, 고블린도.
한때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느니 어쩌니 허세만 부리더니, 고작 이 정도 성벽을 부수지 못하고 이곳에서 산화했다는 말인가?
《병신 천치들 같으니.》
진짜 노략(擄掠)이 뭔지 보여주겠다-
다짐하며 포커는 콧김을 킁 내뿜었다.
《늘 하던 대로다!》
부하들을 향해 포커가 사납게 호령했다.
《들이박는다-!》
와아아아아!
그의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명령에 유령해적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우리 함대의 일제 충각(衝角) 전술에 버틴 놈은 누구도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파도를 타고 적의 요새에 접근한 뒤,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유령선 째로 부딪친다.
이후 백병전에 돌입, 유령해적들과 해양괴수들을 적들의 뱃속에 풀어 넣는다.
성벽을 믿고 자만하던 인간들은 당혹하리라. 배가 지상을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배의 충돌로 성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자! 모두 죽이고, 모두 빼앗아라!》
《끼얏호~!》
《노래를 불러라!》
《보물을 빼앗아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바닷물의 폭우를 맞으며, 열두 척의 유령선이 좌우로 넓게 산개했다.
이제 성벽은 코앞이었다. 포커는 등에서 대포와 대검을 꺼내어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그리고 외쳤다.
《전원! 백병전 준…….》
……준비, 라고 말하려 했는데.
콰직!
쿠과과과광!
까드득, 콰과광!
끔찍한 소리가 울리며, 배가 크게 진동했다.
급제동이 걸린 유령선들이 하나 둘 자리에 멈춰 섰다. 유령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갑판 위를 요란하게 굴렀다.
당황한 포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외쳤다.
《무슨 일이냐?!》
《배, 배가…….》
배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가 겨우 다시 기어 올라온 해적 하나가 외쳤다.
《배가 멈췄슴다, 함장니이이이임!》
《뭐……?》
《모르겠슴다!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슴다! 그래서 멈춰 버렸슴다! 조…… X됐슴다아아아!》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 등…….》
포커가 욕지거리를 다 내뱉기도 전이었다.
“-장기자랑 끝났냐, 등신들아?”
포커가 하려던 욕지거리를 대신 내뱉어준 인간 측 사령관- 애쉬가 성벽 위에서 손을 휘저었다.
사악하게 히죽,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럼 우리 턴이네.”
애쉬의 손이 앞으로 홱 내뻗어졌고.
“전군! 발사아아아-!”
성벽 위에 놓인 대포들이 그 외침에 맞추어 일제히 불길을 내뿜었다.
퍼벙! 퍼버버벙-!
수십, 수백 발의 포탄이 일제히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광경이, 베르나르트 포커의 망막에 비쳤다.
해적 선장은 느릿하게 입에 술병을 물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진짜 엿됐네.》
콰과과과광!
직후, 제자리에 멈춰 버린 유령선들의 선체에 시뻘건 십자포화가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