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20
◈ 420. [STAGE 20] 플라잉 더치맨 (2)
쿠과과과광!
세이렌(Siren)의 조각상이 새겨진 뱃머리가 요새의 성벽을 단숨에 으깨며 밀고 들어왔다.
7번함이자 대장선, 베르나르트 포커의 기함- ‘플라잉 더치맨’이 마침내 인세의 성벽에 도달한 것이다.
《좋아써어어어!》
배 위의 해적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열두 척의 배 중에서 이곳에 도달한 배는 단 한 척 뿐이었으나, 해적들은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는 적을지라도 어쨌든 한 척이라도 배가 적들의 뱃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해적은 기본적으로 적의 것을 빼앗는 족속.
적의 배에 올라, 적의 물품과 사람, 무기를 빼앗고, 최종적으로는 적의 배까지 노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들이었다.
이제 성벽에 올랐으니, 성벽을 빼앗으면 그만.
또한, 무엇보다.
쿠오오오오-!
유령함대의 대장선, 이 플라잉 더치맨이 보유한 해양괴수는- 자그마치 그 크라켄(Kraken)이었다.
최초의 두족류(頭足類) 생명체인 이 괴수는 문어와 오징어를 반쯤 섞은 듯한 외양을 가졌으나, 크기는 그 수천 배는 되었다.
《크라켄을 풀어라!》
《놈들에게 심해의 맛을 보여 줘라!》
《끼얏호~! 가즈아아!》
해적들이 배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창고의 문을 열자, 어떻게 그 좁은 곳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는지 미스테리하게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의 촉수 괴물이 몸을 불리며 튀어나왔다.
콰직! 콰드드득!
배의 선체를 모조리 박살 낼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괴수가 튀어나왔다.
그 움직임에 휩쓸린 해적들 몇이 단숨에 찢겨 죽었지만, 다른 해적들은 개의치 않았다.
《백병전 준비-!》
《파티 시간이다!》
《인간 세상이여! 우리가 돌아왔도다-!》
나이프와 피스톨, 갈고리 따위를 손에 쥐고 해적들이 우르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크라켄이 먼저 성벽 위의 방어병력을 휘젓고 나면, 남은 잔당을 유령해적들이 몰살시킨다-
그런 익숙한 전술대로 싸우기 위해, 배에서 내려 무너진 성벽 위에 올라섰건만.
《……?》
《어?》
《뭐야?》
해적들의 입에서 어리둥절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성벽 위에는 인간 측 수비군이 하나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불과 조금 전까지 쏘아 대던 대포와 발리스타, 그리고 아티팩트 따위도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조화냐……?》
자신들이 유령이면서도, 절로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떨떨하게 주위를 살피던 유령 해적들은 곧이어 발견할 수 있었다.
《……?!》
자신들이 힘겹게 도달해 무너뜨린 이 성벽의 바로 뒤에.
더 높고 두텁게 서 있는, ‘진짜’ 성벽의 존재를.
***
나는 씩 웃었다.
그랬다.
그동안 해적들이 넘으려고 애를 쓰고, 힘겹게 머리를 들이박은 그 성벽은 바로…… 내가 [제국령선포]로 소환한 마력 성벽이었다.
이 궁극기는 본래 작은 원형 요새를 소환하는 기술이지만, 요새의 형태는 내 의지대로 변형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마력 요새의 성벽을 모조리 끌어 모아, 가능한 높게 쌓아 일렬로 놓았다.
크로스로드 본성의 성벽 앞에. 일종의 미끼 성벽으로.
그 위에 디펜스 타워의 마법 건설을 응용해서 남는 철판이나 벽돌 따위로 보강했고.
진짜 병사들과 대포, 아티팩트 따위도 모두 이 위에 놓고 싸웠다.
당연히 침략자들 입장에서는 이 성벽이 진짜라 믿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처음부터 네놈들이 충각 전술을 시도할 줄 알고 있었다.’
유령해적 군단은 곧 죽어도 뱃머리로 적을 찍고 시작하는, 충각-백병전 전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미친놈들 집단이다.
그렇기에, 놈들이 들이박아 무너져도 우리 쪽에서는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내 마력 성벽을 미끼로 세워 둔 것이다.
게다가 이 마력 성벽은 내 의지대로 변형 및 이동이 가능하다.
촤르르륵!
철컥, 철컥!
방어전이 벌어지는 초반에는 이 미끼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싸우게 하다가, 놈들의 유령선이 이 마력 성벽에 도달한 순간. 기어이 충각 전술을 시도하는 그때.
나는 내 의지로 성벽을 조작, 성벽 위의 병사들과 성벽 위의 장비들을 모조리 크로스로드의 ‘진짜’ 성벽 위로 옮겨낸 것이다.
진짜 성벽과 미끼 성벽이 바짝 붙어 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결과적으로 이 미끼 성벽 작전은 멋들어지게 맞아 들어가서- 유령해적 놈들은 온 힘을 다해 미끼를 물었고, 우리 쪽 병사와 장비들은 안전하게 진짜 성벽으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미끼를 물었으면.”
나는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 낚싯바늘에 꿰여서 뭍으로 올라와야지?”
따악!
내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르……!
마력 성벽이 일제히 붕괴했다.
나는 [제국령선포]를 해제했고, 크로스로드의 진짜 성벽 밖에 세워져 있던 미끼 성벽은 모래가 무너지듯 폭삭 사라졌다.
당연히.
《우아아아악-?!》
《꽉 잡아, 떨어진……?!》
그 미끼 성벽 위에 올라서 있던 해적과 크라켄 놈들도,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쿠궁, 쿠구구궁……!
콰과광-!
굴러떨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유령선이 흉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함께 우수수 쏟아진 해적놈들과 크라켄 또한 바닥에 충돌해 박살이 났다.
추락한 채 바닥을 구르는 놈들을 노려보며 나는 손을 치켜들었다.
“전군! 발사 준비!”
병사들은 진짜 성벽 위로 복귀하자마자 재빠르게 다시 대포며 아티팩트 등의 조준선을 정렬했다.
정렬이 끝난 병사들부터 차례로 발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 놈들에게 알려 줘라! 우리가 놈들에게 줄 것이라고는 단 하나!”
홱!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외쳤다.
“죽음뿐임을!”
펑! 퍼버버벙!
크로스로드가 자랑하는 십자포화(Crossfire)가 다시금 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콰광! 콰과과광……!
***
《보기 좋게 당했군.》
베르나르트 포커는 덤덤하게 내뱉었다.
옆으로 쓰러진 해적선을 엄폐물 삼아서, 살아남은 해적들은 바짝 몸을 낮추고 위에서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내고 있었다.
《따서 갚는 것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운이 다해 실패하는 법이지. 이번이 그때인가 보군.》
마지막 판돈을 걸고 던진 도박은 실패했다.
포커와 그의 해적단은 언제나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도 끝끝내 한탕에 성공해서 그 손해를 만회해왔는데, 최후에는 한탕에 실패했다.
온 사방에서 포탄이 터져 나가며 불길을 일으켰다. 포커는 피식 웃었다.
《그날이 생각나는군.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 우리를 해치우러 왔던 연합군 선단과 맞닥뜨렸던 그 날이…….》
《우리 포커 해적단 최후의 전투 말씀이십니까?》
《그날의 전투는 정말로 굉장했지요, 선장님!》
부하들이 동조하자, 포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굉장하긴 뭘 굉장해, 이 새끼들아. 온 사방에서 몰려든 연합군 새끼들에게 물어 뜯겨 끔찍하게 죽었구만. 완전히 상어떼에 둘러싸인 청새치 꼴이었다고.》
《아니…… 마지막 전투 정도는 쬐끔 기억미화해도 괜찮잖습니까?》
《멋있게 싸우다 죽었다고 치죠, 그냥!》
《졌지만 잘 싸웠다!》
멋있었을 리가.
포커 해적단 자체가 바다 속에 수장되어 죽은 유령들의 군단이었다.
폭풍우 치는 밤에 바다를 건너는 불우한 희생자를 찾아, 끝없이 바다를 헤매는 망령들이었다.
이 망령들을 퇴치하기 위해 연합군이 조직되었고, 포커 해적단은 피하지 않고 그들과 충돌했다.
결과는 완벽한 박살이었다.
마지막까지 더럽고 추하게 도망치다가, 추격자들의 포격에 너덜너덜해진 배가 그만 암초에 걸려 좌초했고…… 포커와 그의 해적단은 이번에야말로 심해 속에 수장되었다.
《그 연합군 놈들과 싸울 때도 지금과 비슷한 기분이었어.》
쓰러진 배의 창고에서 술병이 여럿 굴러 내려왔다.
포커는 술병의 마개를 딴 뒤, 살아남은 부하들에게 하나씩 던져 주었다.
《놈들은 우리의 전술을 꿰고 있었고, 보기 좋게 함정에 빨려 들어간 우리는 완벽하게 퇴치 당했지.》
《…….》
《우리 같은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승리를 쟁취해냈지. 대단하구나, 인간 놈들…… 하핫.》
포커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술병을 부딪쳤다. 짠- 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그래, 마지막에 승리하는 건 인간이어야지.》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 포커는 입가를 훔치며 쓰게 웃었다.
《우리 같은 괴물 놈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버리면, 더 털어먹을 것도 없는 끔찍한 세상이 되어 버리잖냐?》
《…….》
《세상은 인간의 것이어야지. 다만, 그 구석에서 조금만 털어먹으면서, 검소하게 부대끼려 했던 건데…….》
부하들은 선장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술병을 비웠다.
그들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이번 노름판은 패배임을.
손 쓸 것도 없는 완전한 패배임을.
그때였다.
쿠오오오오-!
괴수의 끔찍한 고함이 울려왔다. 모두가 놀라서 그쪽을 보았다.
크라켄.
이 고대의 해양괴수는 압도적인 맷집과 불가사의한 재생력을 바탕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쿵! 쿵! 쿠궁!
그리고 인세의 성벽을 향해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로스로드의 십자포화가 크라켄에게로 옮겨갔다.
쏟아지는 포탄세례에 걸레짝이 되면서도 크라켄은 꾸역꾸역 전진했고, 인간들의 시선이 모두 크라켄에게로 쏠렸다.
《……아직 이 노름판에 올릴 판돈이 남았나 보군.》
다 마신 술병을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은 포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원, 승선하라. ……한 번 더 간다.》
부하들이 놀란 눈으로 그런 선장을 보았다. 포커는 씩, 누렇게 썩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아직 폭풍우는 쏟아지고 있고, 내 배는 움직일 수 있다. 그러면 들이받아 봐야지 않겠냐?》
마찬가지로 썩은 이를 드러내 웃으며 부하들이 남은 술을 속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벌떡벌떡 일어섰다.
《숨이 붙은 해적은 총 몇 놈이냐?》
《여섯입니다, 선장님!》
《배를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숫자군.》
포커는 옆으로 쓰러진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유령선이 부오오오- 육중한 울음소리를 뱉으며 몸을 바로 일으켰다. 포커와 부하들은 날렵한 동작으로 배에 올랐다.
《가자! 최후의 충각이다-!》
펄럭!
이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가리 찢긴 돛이 폭풍우를 등에 업었다.
선체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어느 곳 하나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선수의 세이렌 조각상 또한 반으로 뚝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유령선은 움직였다.
크오오오오……!
앞에서 시선을 끌던 크라켄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그 틈에, 유령선은 순풍을 받아 가속, 다시 한 번 인세의 성벽을 향해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유령선이 다시 움직입니다!”
“쏴라! 모조리 퍼부어! 저지해라-!”
크라켄을 요격하던 대포와 발리스타, 아티팩트가 다시금 유령선을 향해 쏟아졌다.
그 모든 공격을 얻어맞고, 이번에야말로 선체가 조각조각 박살이 나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도, 해적선은 기어코 성벽을 향해 날아올랐다.
《똑똑히 기억해라, 인간들이여! 너희의 성벽에 칼을 꽂을 이 배의 이름은!》
흩날리는 썩은 판자 파편 속에서, 마지막까지 배의 키를 잡은 채 베르나르트 포커가 소리쳤다.
《플라잉 더치맨이다-!》
솟구쳐 오른 유령선의 뱃머리가, 이번에야말로 크로스로드의 진짜 성벽에 닿으려는 순간.
투투투투투-!
옆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울린다 싶더니,
콰앙-!
무언가가, 측면에서 플라잉 더치맨을 후려쳤다.
크로스로드의 성벽에 닿을 뻔했던 유령선의 뱃머리가, 그 충격으로 옆으로 훅 밀려났다.
《뭐…….》
사방으로 비산하는 해적선의 파편 속에서 베르나르트 포커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날아들어, 자신의 유령선을 밀어낸 것은 바로…….
“어허.”
크로스로드 측의 비공함. 제로니모였다.
그 비공함의 조종석 옆에 선 기사-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젓는 모습이 포커의 눈에 보였다.
“그렇겐 안 되지.”
투학-!
제로니모의 후면에 장착된 쓰러스터에서 무지막지한 화염이 솟구쳤고,
그대로 허공에서, 비공함은 압도적인 힘으로 유령선을 옆으로 밀쳐냈다.
《……하하.》
베르나르트 포커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하기야.
발악하듯 던진 도박수가 언제나 잘 먹혔으면, 애초에 이런 꼬락서니의 괴물이 되지도 않았겠지.
우드드득-
콰과광!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플라잉 더치맨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