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26
◈ 426. [Side Story] 페르난데스 (2)
마왕은 에이더를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우리 모두 만족할 만한 결말에 이르지 못했군.》
“…….”
《너도, 나도, 각자의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했어. 대체 언제쯤에야 성공할까…….》
에이더는 묵묵히 적수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마왕은 큭큭 웃었다.
《언제까지고 이 짓거리를 반복하려니 정말이지 지긋지긋하지만, 뭐. 나는 원래부터 지루한 일을 잘 견디는 편이라.》
마왕은 그림자로 이뤄진 손을 뻗어 에이더를 가리켰다.
《그런데 너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에이더?》
“…….”
《네 영혼은 진작 한계를 넘어섰고,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할 수 없어 플레이어 자리를 다른 이…… 저 애쉬라는 어린 아이에게 양도하면서까지 이 게임을 반복하고 있지만.》
마왕은 성벽 위에 쓰러져 죽은 애쉬를 내려다보고는 혀를 쯧 찼다.
《이 대리 플레이어 친구, 영 못미덥단 말이지.》
“애쉬님은 잘 해낼 겁니다.”
에이더는 힘주어 말했다.
“저보다 더. 잘 해낼 겁니다.”
《큭큭. 앞으로 두고 보자고.》
직후 마왕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외쳤다.
《다음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자 불길하게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듣고만 있다가, 불현듯 이변을 눈치채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발견했다.
어느새 새카맣게 변한 밤하늘에 별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무수한 눈동자를.
번쩍!
그 눈동자들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번쩍이더니,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 마왕의 몸을 감쌌다.
그 빛줄기는 마왕의 몸을 잘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입자로 분해되는 와중에도 마왕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럼, 다음 회차에서 보자고…… ‘용사’.》
번쩍!
또 다른 빛줄기가 에이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에이더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또 보죠. 마왕.”
마왕이 먼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서, 선지자 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에이더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페르난데스는 황망하게 따졌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소리에요? 애쉬의 말도 그렇고, 당신들의 말도 그렇고, 이해를 못 하겠어요!”
“…….”
“세계가 반복된다고? 회차? 게임? 이게 다 무슨 헛소리에요!”
“……당신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페르난데스.”
에이더는 낮게 한숨을 뱉었다.
“정확하게는, 알아 봤자 바뀌는 게 없습니다. 이 세계는 끝났고, 다음 회차의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 테니.”
“그게 무슨…….”
“모든 걸 포기하고 편안한 최후를 맞으세요.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충고입니다.”
입자로 변해 가며 에이더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실패해서 미안합니다.”
“잠시만요, 선지자님!”
“언젠가는, 꼭.”
“선지자님! 선…….”
페르난데스의 애타는 부름이 무색하게도, 에이더 또한 마왕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흔적도 남지 않은 마왕과 에이더의 빈 자리를 보며, 페르난데스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에는 무수한 눈동자들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눈동자 하나하나가, 모두 페르난데스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힘과 의지를 품은 신적 존재임을.
페르난데스는 가까스로 알아챌 수 있었다.
“대체…… 뭐야……?”
이 이계(異界)의 신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 시선의 끝을 쫓은 페르난데스는 이윽고 그 눈동자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 꺄아아아…….
– 아아아악……!
– 살려 줘…….
– 도망쳐야 해……!
눈동자들은 이 세계의 멸망을 보고 있었다.
물난리가 난 개미집을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처럼.
죽음으로 치달아가는 이 세계의 마지막을, 흥미롭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쾅!
콰드득……!
콰직!
성문을 넘어 안으로 파고든 괴수들이 학살을 시작했고, 황도 안에 웅크려 떨던 사람들의 비명이 메아리쳐 울렸다.
학살이 일어났다.
어느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안고 도망치다가.
어느 사람은 무기를 들고 괴수들을 막아 내다가.
대피하다가. 숨다가. 울다가. 지키다가. 달래다가. 숨죽이다가. 엎드려 빌다가. 싸우다가-
죽었다.
베이고, 찢기고, 뜯기고, 꿰뚫리고, 부서져서…….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도시의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괴수에 의해 처참하게 죽었다.
페르난데스가 지키려 애썼던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 제발, 살려…… 주세요…….
페르난데스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비명과 괴성은 여전히 그의 뇌리에 직격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그리고 이 지옥의 현장을, 하늘의 눈들은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웃기지 마.”
까득.
페르난데스는 이를 갈았다.
“반복이니, 회차니, 게임이니. 그런 헛소리 하지 말라고.”
사람이 울고, 사람이 고통 받고, 사람이 죽는데.
체스 판을 갈아치우고, 새로 말을 놓고, 다음 판을 시작하듯이- 그렇게 손쉽게 말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페르난데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계의 멸망을 관조하는 눈동자들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엿들은 대로.
세계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도 눈 뜨고 당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 또한, 최후의 발버둥을 쳐볼 수 있으리라.
페르난데스는 즉석에서 새로운 마법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반복된다’는 전제를 참으로 가정하고. 그에 맞추어 술식을 짜올렸다.
다음 회차의 자신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
‘아주 짧은 메시지라도 좋다.’
기억 한 조각, 아니면 이미지 한 장면, 그게 안 된다면 문장 한 줄- 아니. 단 하나의 단어라도 좋다.
이 세계의 진실에 대한 힌트를 전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다음 회차’의 자신에게 그 무엇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언젠가 세계가 멸망하는 이 순간을, 모두의 죽음을, 그리고 반복되는 세계의 진상을-
명석한 자신은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멸망하는 세계의 성벽 위에서, 자신의 시민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수호자는 그렇게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완성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사용하는 대신, 고작 글자 하나를 다음 회차의 자신에게 전할 수 있는 마법을…… 만들어 냈다.
페르난데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 마법을 발동했다.
그리고-
***
현재.
“…….”
침대 위에서 페르난데스는 눈을 떴다.
수백, 수천 번은 반복해서 꾼…… 지긋지긋한, 제국이 멸망하는 악몽을 꿨다.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데도. 눈앞에 그려질 듯 생생한 꿈이었다.
“후.”
한숨을 내뱉은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악몽 탓인지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다.
그는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켜고,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글자가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페르난데스의 마른 몸에는 빽빽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찼다.
“문신 같은 취미는 없는데 말이지…….”
이것은 예전 회차의 자신이 보내온 기록이다.
정확하게는, 아주 예전 회차의 자신들이 보내온 기록의 총체(總體).
세계는 무수하게 반복되었고, ‘최후의 메시지’로 모인 단어들은 문장이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다.
그의 몸에 빽빽하게 새겨진 글자들은 이 세계의 진실이며, 동시에 그가 싸워 온 기록이기도 했다.
“…….”
페르난데스는 과거의 자신이 보내온 기록을 찬찬히 살폈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반복되고 있다.
무슨 수를 쓰든, 남쪽에서부터 몰려온 괴수들에 의해 세계는 멸망한다.
이 멸망을 막기 위해서 자신은 지금까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모든 기록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누적되는 실패 횟수만큼 그의 몸에는 새로운 문장이 새겨졌다.
그리고, 이번 회차.
더 이상 몸에 메시지를 새길 공간이 없어져, 목 아래 모든 몸에 빈틈없이 글자가 새겨진 지금.
페르난데스는 불현듯 깨달았다.
마왕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패배는 당연하다. 멸망은 확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항복해야지.”
멸망을 받아들이고.
마왕에게 항복하기로.
그는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황제가 되어야 한다.
이 세계의 운명을, 그리고 제국 신민들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
만민의 생살여탈권을 손에 거머쥔 자리, 황위에 올라야만 한다.
“…….”
진심으로, 페르난데스는 가족을 사랑했다.
아버지를, 형을, 동생을, 사랑했다.
하지만 인류라는 종을 존속시키기 위한 대의(大義)는 그보다 중한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희생시키기로 했다.
“이해해 주십시오, 형님.”
샤워를 끝내고,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페르난데스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모두 다…… 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
그는 빈 허공에 말한 것이 아니었다.
널따란 방의 한쪽 구석에는 이동식 감옥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라르크가 투옥되어 있었다.
두 팔이 잘리고.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몸속의 마력로가 모조리 파괴된 상태였지만.
대외적으로는 처형당했다고 널리 소문을 퍼뜨렸지만.
틀림없이 생존해 있었다.
“……페르난데스.”
라르크는 먹먹한 눈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의 메마른 입술이 열리고, 말라붙은 목소리가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대체…… 뭘 어쩔 셈이냐?”
페르난데스는 그런 형에게 싱긋 웃어 보인 뒤, 천천히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반복되는 멸망을 끊고,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생존할 겁니다.”
“…….”
“어떤 형태로든, 말입니다.”
페르난데스가 방 밖으로 나오자, 황궁의 복도가 펼쳐졌다.
그가 쉬었던 곳은 다름 아닌 황제의 침소였다.
잠옷 차림으로 휘적휘적 걸은 페르난데스는 알현실로 향했다.
알현실의 잠긴 문 앞에 서서, 그는 목에 걸린 열쇠 목걸이로 알현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널따란 알현실 안에는 얼어붙은 가시나무- 에버블랙과 함께, 얼어붙은 황금빛 옥좌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본래의 주인은 자취를 감추고 텅 비어 버린 그 의자에.
저벅. 저벅.
다가선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제 몸을 앉혔다.
옥좌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번져 나왔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옥좌에 등을 완전히 붙인 뒤, 페르난데스는 두 눈을 꾹 감았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는 영계에 갇혔고, 형은 사로잡았다. 이제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을 막을 이는 이곳 황도에 없다.
그리고 황제가 되면.
인류의 지도자가 되면.
인류를, 제국을, 피할 수 없는 멸망으로부터 대피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지막 계획- ‘최후의 방주’를 통해서.
“…….”
페르난데스는 문득 피곤한 두 눈을 손으로 쓸었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은 멀었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껏 걸어오는 동안 흘린 피보다 몇 갑절은 많은 피를 요구하는, 진정한 수라도였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기꺼이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심플한 이지선다다.
패배하고 세계가 괴수에게 멸망하도록 내버려두느냐, 승리하고 세계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느냐.
페르난데스는 선택했다.
굴종하더라도.
비참하더라도.
설혹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리라고.
“……그래서, 애쉬.”
먼 남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페르난데스는 속삭였다.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경우는 네게도 ‘처음’일 텐데.”
그의 가느다란 입술에 긴 미소가 걸렸다.
“나를 어떻게 막아 볼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