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25
◈ 425. [Side Story] 페르난데스
■■■■회차 전.
에버블랙 제국의 수도 뉴 테라.
최종방위선.
***
세계가 불타고 있다.
“……아.”
황도 뉴 테라의 성벽 위에 서서, 페르난데스는 망연자실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 세상이- 시야가 닿는 모든 지평선이, 죽음과 불길이었다.
끔찍한 괴수의 물결이 남쪽에서부터 끝없이 밀어닥쳤다. 남부전선을 관통한 괴수 군단은 그대로 북상,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인류는 저항하려 애썼다. 제국 황제의 지휘 아래 하나로 뭉쳐,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나 패배했다.
요새들은 함락 당했고, 도시에서는 학살이 일어났다. 산과 강은 피로 물들고, 괴물은 인간의 시체를 먹어치웠다.
끝없이 숫자를 불린 그린스킨이 인류의 도시를 짓밟았다.
들과 골짜기에서는 늑대인간이 사람들을 사냥했다.
바다로 탈출한 이들은 유령해적을 만나 배 째로 망망대해에 좌초되었다.
몽마에게 매혹당한 이들은 산 채로 매달려 정기를 빨렸다.
높게 쌓인 시체밭 위에 검은 거미 여왕은 새 알을 낳았다.
혈족은 양껏 인간의 피를 마시고 인간의 고기를 탐했으며,
도래한 생지옥 위에, 역병은 끝없이 퍼져 나갔다.
휘황하고 불길한 마법의 불빛이 끝없이 일렁이는 하늘 아래로,
최강의 기사와 마법사가 모인 인류의 결사대는 악마종 군단을 맞아 패퇴했고,
후퇴하는 결사대를, 날아든 흑룡들이 검은 불길로 태워 버렸다.
“아아…….”
세상의 멸망을 지켜보며, 페르난데스는 허탈한 신음만 흘렸다.
예견된 제국의 멸망은 총 넷.
그중 용혈전선도, 암부전선도, 이신전선도 승리했건만. 마지막 괴수전선만은 이겨 낼 수 없었다.
최후에 검은 호수 아래에서 범람한 괴수들은 너무도 강하고 많아서, 도저히 사람이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인류 최후의 도시, 이곳 뉴 테라 뿐.
그러나 뉴 테라의 성벽에 펼쳐진 최후의 방어선은, 사방에서 몰아닥친 괴수의 파도에 너무도 손쉽게 짓이겨졌다.
“싸워라! 마지막까지, 항전하라! 이곳에 우리가 있었음을 알려라-!”
황제는 싸우고 있었다.
황도의 남문 앞에서, 한 줌도 남지 않은 친위대를 이끌고. 최후까지 저항하며 검을 휘둘렀다.
인간의 한계를 진작 벗어난 초월자답게, 세계를 다스린 마지막 왕자(王者)답게, 그는 꺾이지 않고 지치지 않고 싸움을 이어 갔다.
그러나- 패배는 명백했다.
무수하게 몰아닥친 괴수들은 친위대원들을 하나하나 갉아먹고 끝내 절명시켰다. 어느 순간, 황제의 주위에는 산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후우, 후우…….”
척-
인간과 괴수의 피로 범벅이 된 황제의 앞에, 괴수 셋이 내려섰다.
소매가 넓은 도포를 입고, 작은 구슬 장식이 치렁치렁 붙은 대관용 관모를 쓰고, 얼굴은 그 관모에 붙은 큼직한 부적으로 가린 마법사.
마술대제, 백야.
크림색 머리칼 사이로 돋아난 사슴처럼 화려한 뿔.
붉은 피부 위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가면무도회에서나 쓸 법한 눈 위를 가리는 가면을 착용한 여인.
악마 수호병단장, 크롬웰.
정갈한 흑백 슈트 차림에, 긴 흑색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빛나는 황금색 용안(龍眼)을 치켜뜬 존재.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용.
흑룡, 나이트 브링어.
세 괴수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황제를 노려보며 각자의 힘을 끌어올렸다.
“…….”
지칠 줄 모르고 휘둘러지던 황제의 검이, 문득 아래로 떨어졌다.
황제는 죽은 자신의 부하들, 완파된 도시의 성벽,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제국의 깃발을 차례로 보았다.
“그런가.”
그리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보군.”
타앗-!
세 괴수 군단장이 동시에 황제를 향해 쏘아졌다.
마술대제가 쏘아 낸 무수한 마법의 광탄(光彈)이 황제의 전신에 내리꽂혔다.
검으로 그것을 일일이 걷어내는 황제의 정면으로 악마군단장이 뛰어들었다.
붉은 피부의 여인은 팔다리의 근육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등에 펼쳐진 피막의 날개를 이용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악마의 주먹과 발, 그리고 채찍처럼 휘감겨오는 꼬리가 황제의 검을 거세게 두들겼다.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각각 합공해 오는 두 괴수에게 황제는 계속해서 밀려났고, 결국 빈틈을 노출했다.
그리고 흑룡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따악!
흑룡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쏟아져- 황제가 미처 검으로 방어해내지 못한 부분으로 파고들었다.
푸확……!
“…….”
황제는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구멍이 뚫린 가슴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다.
무형의 힘은 가슴 가운데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으나, 등으로 꿰뚫고 나오며 황제의 살점을 산산조각으로 찢어 놓았다. 마치 포탄처럼.
가슴과 등으로 핏물을 쏟아 내던 황제는 천천히 무너졌다. 일평생 굴복을 모르던 인간의 무릎이 끝내 바닥에 닿았다.
코와 입으로 피를 울컥울컥 토해 내던 황제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쿵……. 쿵……. 쿵…….
지평선 저 너머 남쪽으로.
거대한 이형의 괴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술대제도, 악마군단장도, 흑룡도, 새로이 등장한 그 괴수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어 보였다.
-그것은, 끝이 불에 탄 모닝 베일(Mourning Veil)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었다.
몸에 걸친 드레스 또한 치마자락과 소매 끝이 불에 타 있었고, 머리에 쓴 높은 왕관 또한 그슬려 거뭇했다.
심지어는, 땅에 끌릴 듯 기다란 그녀의 백발마저도. 끝이 검게 타 있었다.
손에는 새카만 어둠으로 이뤄진 장검이 한 자루.
다가오는 최강최악의 괴수를 마주보며, 황제는 피가 고인 입으로 상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
남부전선을 단신으로 궤멸시킨, 걸어 다니는 악몽.
호수왕국의 모든 저주가 응집된 최악의 괴수가 마침내 인류 최후의 땅에 강림했다.
황제의 앞에 당도한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무심하게 황제를 응시하더니, 검이 들린 손을 휙 치켜들어-
뎅겅…….
황제의 목을 단숨에 베어 냈다.
목을 잃은 황제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인류 최후의 지도자는 그렇게 죽었다.
“아바마마……!”
성벽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페르난데스는 피눈물을 쏟았다.
“아아, 아아아아……!”
무력했다.
너무도 무력했다.
제국의 수호자이면서.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마법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황제를 참살한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뉴 테라의 남쪽 성문을 겨누더니, 홱 틀어쥐었다.
콰드드득!
그러자 성문이 새카만 마력에 의해 단숨에 어그러지며 뜯겨 나갔다.
“커헉!”
성벽에 방어 마법을 펼치고 있던 페르난데스는 그 거대한 힘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가볍게 손을 옆으로 털자, 뜯겨나간 성문이 옆으로 볼품없게 바닥을 굴렀다.
인류 최후의 방어선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다.
“……내 차례인가.”
그리고 성문 안에서,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채 기다리던 라르크는 자신의 장검을 지팡이 삼아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그런 라르크를 향해 페르난데스가 성벽 위에서 고함을 질렀다.
“형님! 안 됩니다, 형님! 물러나세요! 저 괴물은 막을 수 없습니다!”
“페르난데스…… 미안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것은 이 형이 못났던 탓이다.”
페르난데스가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라르크는 성벽 위를 향해 흐릿하게 미소해 보일 뿐이었다.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그리고 라르크는 노호성을 지르며 괴수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퍼엉-!
다음 순간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손짓 한 번에 산산조각 났다. 사방으로 핏방울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형님! 아아아아아! 형님!”
페르난데스는 피눈물을 쏟으며 절규했다.
그런 그의 귓가에,
“……이제 우리만 남은 모양이네.”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제국의 수호자 중 막내인 3황자가 초췌한 표정으로 성벽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애쉬…….”
“…….”
애쉬는 먼지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괴수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애쉬, 잘 들어.”
페르난데스는 입가의 피를 닦아 내고 마력을 끌어모았다.
“내가 마지막 힘으로 너를 숨겨 주마. 너라도 살아남아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세계는 멸망했어, 형. 숨거나 도망칠 곳은 없어.”
“하지만 너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낳아준 어머니는 다를지라도. 그들은 형제였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사투 속에서 수호자들은 진정한 동료가 되었고, 마침내 가족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기에 페르난데스는 동생을 위해 마지막 힘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미안해, 형. 하지만 다음 회차에서는.”
철컥!
애쉬는 어느새 권총 형태의 마총을 꺼내어, 스스로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있었다.
“다음 ‘게임’에서는 꼭…… 내가 이 세계를 구해낼게.”
“뭐?”
“이 세계는 무한히 반복되고 있어. 그리고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아.”
그렇게 말하며 애쉬는 괴수들에게 집어삼켜지는 뉴 테라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아직 플레이어로서 몇 번 밖에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괴수가 세계를 멸망시키는 이 결말만큼은, 바꿀 수가 없어.”
“이상한 소리 그만 하고, 총 내려놔! 위험하잖아!”
페르난데스는 다급하게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들은 체도 않고 애쉬는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바꿔 볼게. 세계가 무한히 반복된다면, 우리에게도 그만큼의 기회가 있는 거니까.”
철컥.
권총의 안전장치가 풀리고, 방아쇠를 쥔 애쉬의 손에 힘이 실렸다.
“그, 그러지 마, 애쉬.”
덜덜 떨면서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마저 고여 있었다.
“나를 이곳에 혼자 두지 마.”
“…….”
“제발, 애쉬! 너마저 죽으면, 그러면 안 돼. 우리 형제는, 수호자는, 함께 싸워야지……!”
“그거 알아, 형?”
애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형은 잘난 척이 몸에 배인, 재수 없고 밥맛인 기생오라비였지만…… 함께 싸우는 동안, 나름대로 즐거웠어.”
“애쉬! 안-”
“그럼, 또 보자. 형.”
페르난데스가 애쉬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동시에, 애쉬는 두 눈을 가만히 내리감았다.
“다음에는 꼭 지켜 줄게.”
타앙-!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권총으로 자살한 애쉬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페르난데스는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비틀비틀 걷다가 자리에 무릎을 꿇은 뒤, 입을 틀어막았다.
결국.
그 모든 싸움은. 그 모든 투쟁은. 그 모든 희생은. 무용(無用)했다.
수호자들은 쓰러졌고, 세계는 멸망한다.
이것은 그런 결말이었다.
그때-
“이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발 늦었군요.”
놀란 페르난데스가 그쪽을 보자,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회색 머리의 남자가 하늘을 날아와 성벽 위에 내려섰다.
제국의 선지자- 에이더였다.
그는 애쉬의 시체를 살피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플레이어 애쉬 님께서 패배를 인정하고 자결하셨네요…… 이번 회차의 승부가 난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우리도.》
사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리더니, 텅 빈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몰려들었고- 이윽고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모든 괴수들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사악(邪惡)의 군주.
마왕은 히죽, 제 검은 얼굴에 하얀 균열을 만들며 웃어 보였다.
《다음 회차의 게임으로 넘어가 볼까?》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
페르난데스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