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29
◈ 429. [자유탐사] 마탑 공략
“…….”
“…….”
나와 베르단디는 말없이 개울의 앞에 앉아 있었다.
성배탐사대의 거처……라고 해야 할까. 은신처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곳의 바로 옆이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얼마나 가만히 보고 있었을까. 베르단디가 어색하게 목소리를 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전부터 알고 있었어. 여기서 지내고 있다는 거.”
휘하 파티원들이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는 다 파악하고 있다.
여차하면 전투에 호출해야 하는데, 어디서 지내는지도 몰라서야 안 되지.
“어떻게 알고 왔느냐보다…… 왜 왔는지가 더 궁금하겠지?”
나는 베르단디에게 옅게 웃어 보였다. 베르단디는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오늘 베르단디를 따로 조용히 찾아온 이유.
그것은…… 이번에 찾게 될 ‘성배’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베르단디.”
“네.”
“성배는 분명 실존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물건과는 조금 다를 거야.”
베르단디가 성배를 찾는 이유.
그것은 성배에 담긴 막대한 재생의 마력을 이용해, 이미 죽은 세계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세계수를 다시 일으켜서…… 세계수가 품은 고대의 마법을 발동시켜, 엘프 왕국을 재건하는 것.
이것이 베르단디가 100년이 넘도록 이 호수왕국 아래에서 성배를 찾아 헤맨 이유이자 목적.
하지만…… 성배는 베르단디가 생각하는 그런 물건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게임에서 이미 성배를 확보해 본 적 있는 나는 성배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베르단디의 목적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
베르단디는 잠시 침묵하더니,
“애쉬님. 저쪽에 흙밭 보이세요?”
개울 옆의 밭을 가리켰다. 나는 그쪽을 보았다.
“저희는 여기에 계속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어요. 하지만, 싹이 나지 않았죠.”
“…….”
“햇빛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의 토양이 던전의 것이라 오염되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어쨌든 씨앗은 죽고, 싹을 틔우지 못했어요.”
베르단디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이제 이곳에서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심었어요.”
“…….”
“아주 실낱같더라도, 해바라기가 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 그 희망을 위해서 우리는 계속, 이 헛된 일을 해 왔어요.”
곱게 갈린 흙밭에서는 여전히 어떤 새싹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알아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고, 또 나중에 가슴 아픈 일은 없다는 걸.”
“…….”
“이곳에서 해바라기가 피는 일은 없을 테고, 또…… 그 성배를 이용해서 제 고향땅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죠.”
자신의 지난 100년을 부정하면서도 베르단디는 담담했다.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저희는 보고 싶을 뿐이에요.”
눈물점이 연달아 찍힌 그녀의 눈이 앞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희가 백년간 찾아 헤맨 것의 정체를. 저희의 헛된 수고가 빚어낸…… 어떤 결말을.”
“…….”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다가 내가 넌지시 물었다.
“그 뒤에는?”
“……뭐 어쩌겠어요?”
베르단디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그동안 최선을 다했잖아요. 털고 일어나서, 다른 방법을 다시 찾으러 가야겠죠.”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실재하는지도 모르는 성배를 찾아.
그렇게 매몰(埋沒)된 일백년.
마침내 찾아낸 성배가, 사실은 자신이 찾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베르단디는 진작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요정왕국을 구할 또 다른 방법을 찾아, 그녀는 새로운 싸움을 이어 가겠지.
“강하구나, 베르단디.”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사실 그녀가 조금 존경스러웠다.
나 또한, 병실에 누워 있는 그 아이에게…… 한 마디의 응원을 전하기 위해 이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응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면.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하면. 얼마나 좌절스러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단디는 다음 방법을 찾아 계속해서 싸워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요정왕가의 일원으로서 그녀가 짊어진 책무 때문일지, 아니면 장생종인 엘프 특유의 기질인지, 혹은 그녀 개인의 강인한 의지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 또한 그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원을 이룬다고 해서, 혹은 실패한다고 해서, 삶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삶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싸워 가야 하니까.
베르단디가 내게 배시시 웃었다.
“성배를 찾는 걸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애쉬님. 애쉬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서로 돕는 거지. 너도 나한테 힘 많이 보태줬잖아?”
나는 베르단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배를 찾는 것도, 그 뒤의 싸움도…… 계속 도와줄게.”
“…….”
“우리는 동료잖아. 그렇지?”
베르단디는 이제 능숙하게 마주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힘차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눈물점이 셋이나 찍힌 눈으로, 요정왕녀는 환하게 미소했다.
“……네! 우리는, 동료니까요!”
***
다음날.
호수왕국 던전에 진입한 나는 앞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뾰족하게 치솟아 오른 첨탑은 청회색이었다.
탑을 둘러싼 마법의 불빛은 기괴하게 뒤틀린 채 소용돌이 치고 있다. 어째 고흐의 그림에서 보던 듯한 분위기다.
8구역 던전. 마탑.
나는 이곳의 앞에 집결한 파티원들을 쭉 둘러보았다.
에반젤린의 기사 파티. 데미안의 저격수 파티. 쥬니어의 마법사 파티.
성배탐사대. 형벌부대. 용혈기사단.
여기에 나와 루카스까지. 총 32명이나 되는 대인원이다.
나머지 다른 영웅들은 크로스로드에 두고 왔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크로스로드 방위 병력 또한 필요하므로.
“어제 설명한 대로다!”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파티원들을 둘러본 뒤, 나는 외쳤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시련을 통과하면, 전투 없이 안전하게 클리어가 가능할 거다.”
다들 네~! 하고 일제히 대답했다. 어째 소풍 나온 아이들 인솔하는 교사라도 된 느낌이군.
앞장서서 마탑의 정문으로 들어서며 나는 말했다.
“자, 가자!”
유리로 된 커다란 문을 열고 마탑의 로비에 진입하자, 오랜만에 보는 던전 정보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제8구역 : 마탑]– 클리어 진척도 : 노멀룸 0/10 보스룸 0/1
– 획득 보물상자 : 0/11
마탑의 로비는 정원(正圓) 형태였다. 완전히 둥근 이 로비에는 총 열 개의 문이 차례로 늘어서 있었다.
각 문 위에는 마법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붉은색 빛이 들어와 있었다.
“뭔가, 여기…….”
“던전 같지가 않네요. 정말…….”
영웅들이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던전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지구에서의 고층 빌딩 입구 같다고 해야 하려나.
로비 중앙으로 영웅들을 데려온 뒤, 나는 첫번째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열 개의 문은 모두 각자의 던전룸으로 연결된다. 모든 던전룸마다 지정된 시련이 다르며…… 각자의 시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도 다르다.”
뒤이어 나는 영웅들을 손끝으로 쭉 훑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번 다른 멤버를 선별해 각 던전룸에 진입할 것이다. 나머지 여러분은 여기서 편히 쉬며 대기하도록.”
직후 나는 영웅들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지목했다.
“데미안!”
“앗, 넵! 황자님!”
“이리온.”
나의 개사기 저격수가 후다닥 앞으로 걸어 나왔다. 녀석에게 어깨동무를 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마. 자, 가자! 데미안!”
“네? 아, 넵!”
우리 둘이서 첫 번째 던전룸으로 향하자, 당황한 에반젤린이 급히 물었다.
“아니…… 둘만 가는 거예요?!”
“엉.”
첫번째 시련은 데미안만 있으면 클리어 가능한 곳이거든.
필요인력을 제외하고 나머지 최대한 많은 인원을 쉬게 해 줄 생각이었는데, 막상 둘만 들어가려니 다른 영웅들이 반대했다.
“그래도 호위는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저도 가겠습니다.”
“나도나도! 궁금하니까 갈래!”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다급하게 따라붙었고,
“저, 저도 전하의 메인파티원이라구요!”
쥬니어도 엉거주춤 뒤따랐다. 소외된 기분이라도 들었나.
“애쉬님. 저도 가도 될까요?”
“뭐야. 너희 다 가는 게냐? 그럼 과인도 가겠노라.”
“이리 된 거 그냥 파티장급은 다 갑시다!”
베르단디에 더스크 브링어, 쿠일란까지 우르르 쫓아왔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따라와. 어차피 첫 번째 시련은 데미안 혼자 클리어하겠지만……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도는 다들 파악해두면 좋겠지.”
해서 각 파티리더들과 함께 모두 첫 번째 던전룸 안으로 진입했다.
어둑한 긴 통로를 오래 걸었다.
나는 긴장이 없었는데, 나머지 영웅들은 괜히 주위를 경계하며 무기를 다잡은 상태였다.
아니 얘들아, 시련 실패 안 하면 전투 없다니까.
얼마간 그렇게 통로를 걷고 나자, 갑자기 조명이 환히 밝혀진 방이 우리 앞에 들이닥쳤다.
환한 방의 양쪽 벽에는 각각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마법사들이 탑을 짓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두 그림은 거의 똑같았다.
“같은 벽화가 두 개……?”
“으음?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어리둥절해하는 영웅들 사이에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
“네, 황자님.”
“어때. 이 두 벽화, 정말로 같아?”
그러자 데미안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비슷한 그림이지만…… 이 둘, 달라요.”
그렇다.
이곳 마탑의 첫 번째 시련은 바로…….
[마탑 – Room 1]– (Wave 1) 제시된 두 그림 중 다른 부분을 찾으시오.
다른그림찾기다!
방의 중앙에는 페인트볼과 슬링샷(Slingshot)이 마련되어 있었다. 흔히들 새총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데미안에게 지시했다.
“왼쪽 벽이 원본, 오른쪽 벽이 비교본이야. 다른 부분을 이 페인트볼로 마킹해 봐.”
고개를 끄덕인 데미안은 슬링샷에 페인트볼을 걸더니, 오른쪽 벽에 페인트볼을 정확하게 쏘아 냈다.
퍽! 퍽! 퍽!
데미안이 쏘아 낸 페인트볼이 그림에 적중할 때마다 영웅들이 신음을 흘렸다.
“아니…… 머리에 꽂힌 나뭇잎 장식이 다르다고? 저걸 어떻게 찾아내?”
“눈동자 방향이 다른 걸 어떻게 알아!”
“옷 색깔이 흰색하고 베이지색이면 구별을 누가 해!”
다들 말도 안 되는 난이도라며 성토했지만, 이쪽에는 데미안이 있다.
데미안이 총 열 개의 페인트볼을 맞추고 나자, 벽화가 쿠르르…… 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구궁!
벽화가 그려진 벽이 아래로 쑥 가라앉더니…… 그 뒤에 새로운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탑 – Room 1]– (Wave 2) 제시된 두 그림 중 다른 부분을 찾으시오.
에반젤린이 식은땀을 흘렸다.
“……끝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쉽게 끝나면 8구역 던전이겠냐고.”
벽화는 더욱 복잡해지고 화려해져 있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가……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이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다…….
완성된 탑 안에서 실험을 하는 마법사들이 그려져 있었다. 웬 나뭇가지들을 마법으로 접목(接木)하는 모습이었다.
데미안은 이번에도 태연하게 슬링샷을 날렸다. 퍽! 퍽! 퍽!
쿠구궁!
그러자 이번에도 벽이 내려앉더니 그 뒤의 새로운 벽화가 드러났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세밀한 데다가, 크기까지 커진 벽화였다.
“…….”
뭔가…… 게임 때보다 난이도가 더 악랄해진 거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그림이 복잡해지고 또 커진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이쪽에는 천리안 보유자가 있으니까.
데미안은 눈도 깜짝 않고 계속해서 슬링샷을 날렸다.
그렇게 차례로 총 다섯 번의 다른그림찾기 웨이브를 해결하고 나자-
[마탑 – Room 1]– CLEAR!
클리어 선언이 출력.
쿠르르르르!
철컹, 덜그럭!
이번에는 정면의 벽이 갈라지더니, 뿌연 안개와 함께…… 커다란 보물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물상자 앞에 서서 나는 히죽 웃었다.
“요런 식으로 해 나가면 됩니다. 오케이?”
나는 태연하게 웃었는데, 영웅들은 어째 안색이 창백했다.
영웅들은 보물상자가 아니라 그 뒤를 보고 있었다. 뭐가 있나 싶어서 나도 돌아보았다.
“아…….”
상자의 바로 뒤에는, 온갖 공격 마법이 장전된 마탑 포대 수십 문과……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자세의 방위골렘 수십 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 데미안이 틀렸으면, 이것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데미안이 틀릴 리가 없잖아?”
“…….”
다들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하지만 데미안이 이런 퍼즐을 틀릴 확률은 0이라는 말이다.
“자, 고생했다. 데미안.”
나는 씩 웃으며 상자를 열어젖혔다.
“이 템은 네가 먹어라.”
번쩍!
열린 상자에서 황금색 빛이 폭사했다.
이윽고 그 황금빛은 하나로 줄어들더니…… 날카로운 형태의 소총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