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53
◈ 553. [Evil Side] 난공불락 (2)
서른두번째 공격전으로부터 며칠 전.
쿵!
소악마 임프 군단장 로우는 책상을 후려치며 선언했다.
《이번에는 정공법으로 가겠슴다!》
《정공법?》
크롬웰의 부관이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깜빡였다.
부관은 지금 크롬웰의 명령으로, 로우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온 참이었다.
《정공법은 그동안 많이 사용됐을 텐데요.》
《이번에는 가장 돌파력이 좋은 군단으로, 돌파에 도움이 되는 축복 권능을 사용해서, 정직하게 정면으로 뚫어보는 검다!》
《가장 돌파력이 좋은 군단?》
《그렇슴다! 바로…….》
로우는 바로 앞을 가리켰다.
《뿔소 군단임다!》
으적. 으적.
로우의 요청으로 불려온 거대한 미노타우루스 변종이 바닥에 평화롭게 드러누운 채, 바닥에 돋아난 풀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뿔소 군단의 군단장…… 이었지만 평화롭고 맑게 반짝이는 저 눈을 보자니 도저히 괴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외양간에서 멍 때리는 소 같았다…….
뿔소 괴수는 다른 미노타우루스 계열의 괴수들과 다르게 이족보행도 않고 네 발로 걸어다니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괴수가 아니라 그냥 덩치 큰 버팔로 같은 괴수였다.
음머어어~
두 악마의 시선이 쏟아지자 미노타우루스 변종이 부드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조금 귀엽기까지 했다.
크롬웰의 부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온순한 친구들을 공성에 쓴다고요?》
《그렇슴다!》
《제대로 되겠어요? 차라리 다 썰어서 잘 구워서 다른 군단 회식이나 시켜주는 게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말에 흠칫 놀란 미노타우루스 변종이 음머어어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황급하게 도망치려 했다.
더 놀란 로우가 달려나가 미노타우루스 변종의 재갈을 움켜쥐고 못 도망치게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미노타우루스 변종은 거침없이 고개를 흔들어 로우를 날려버린 다음, 기어코 달려 도망쳤다.
《크아악!》
나가떨어진 로우가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고,
음메- 음메-
미노타우루스 변종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 도망쳤다.
쿵! 쿠구궁!
도망치는 경로에 있는 막사며 기둥, 건물, 높은 탑까지 모조리 들이받아 무너뜨리며…….
무너지는 건물들을 보며 크롬웰의 부관이 작게 감탄했다.
《힘은 세네요.》
《끄응…… 직선으로 달리는 경로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하는, 돌파력에 있어서는 모든 괴수 군단 중 최강이라 할 만한 군단임다.》
로우가 아픈 허리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성벽에 들이받게 한다면, 틀림없이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검다.》
《하지만…… 겁이 많아 보이는데.》
《단일 개체일 때는 그렇슴다. 하지만 떼로 뭉쳐서 함께 달리게 만든다면. 앞에 뭐가 있든 짓밟아버림다.》
저 멀리서 미노타우루스 변종이 또 다른 건물을 무너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로우는 한숨을 뱉었다.
《문제는 겁이 많다는 게 아님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군단장조차도 자신의 군단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임다.》
달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내달린다.
명령도, 제지도, 듣질 않는다. 그저 죽을 때까지 돌진할 뿐.
《이런 군단으로 인세를 멸망시키는 건 불가능함다. 다만…….》
《과연.》
이해한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공격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거군요.》
로우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출진한 괴수 군단장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인세를 끝장내려 했을 뿐. 괴수들에게 후발주자를 위해 무언가 포석을 쌓는다는 희생정신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마왕 또한,
인세 공략전을 ‘오펜스 게임’이라 부르며, 마치 체스라도 두는 듯한 감각으로.
아무렇게나 내던지듯이 부하들의 목숨을 소모했을 뿐. 인세의 수호자를 테스트하듯 어울려 놀듯이 즐겼을 뿐.
마치, ‘결국은 내가 이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듯, 인세 공략에 건성이었다.
하지만 로우는 다르다.
그에게는 앞으로 몇 번의 공격전을 총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렇기에 이어질 여러 번의 공격전을 하나로 묶어 전술을 짤 수 있었다.
공성의 기본.
성벽을 부순다.
로우는 이번 공격전 동안 저 요새를 완전히 넘어설 생각이 없었다. 다만, 확실하게 성벽에 타격을 주고자 했다.
《빈틈을 만들어내야 함다. 무슨 수를 써서든 쥐고 흔들어야 함다. 그래야…….》
자신에게 맡겨진 왕홀을 들고 로우는 읊조렸다.
《공략으로의 길이 보일 테니까.》
《…….》
그런 로우를 빤히 보던 부관이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오펜스 게임의 천재가 되었다?》
《예?》
《아뇨. 농담 한 번 던져봤어요. 아무튼, 크롬웰 님께는 그렇게 보고드릴게요.》
손에 들린 서류에 무어라 슥슥 쓴 부관이 로우에게 눈짓했다.
《크롬웰 님께서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진 않고, 아무튼 조금 있어요. 잘 해봐요, 로우.》
로우는 씩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맡겨만 주시지 말임다!》
***
그리하여 시작된 서른두번째 공격전.
로우가 선택한 다크 이벤트는 ‘성벽 약화’. 성벽의 내구도를 절반으로 떨어뜨리는 공성 최적화 다크 이벤트였다.
이제 이렇게 약해진 요새에 뿔소 군단이 들이받기만 하면, 성벽에는 거대한 구멍이 뻥 뚫릴 것이다.
우르르르…….
본진을 빠져나와 호수왕국 정문으로 향하는 엄청난 숫자의 소떼를 살피며 로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물경 5천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소떼.
이 정도 숫자가 성벽에 돌진한다면, 제아무리 그 요새라 할지라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응?》
번쩍-!
정문 쪽 하늘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싶더니,
콰과과과광!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빛줄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옹기종기 모여 출진을 준비하던 소떼가 단숨에 도륙당했다.
웬 머리가 하얗게 샌 여자가 거대한 빛기둥…… 아니, 빛이 서린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이 스칠 때마다 괴수들은 죽어나갔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며 로우가 비명을 질렀다.
《저건 또 뭠까?!》
《아아…… 모르나요. ‘이름 잃은 자’라는 것이다.》
출진은커녕, 구경도 처음 와보는 로우로서는 당연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부관은 무심하게 설명했다.
《이 지옥의 감시자를 자처하는 무서운 여자에요. 인세를 향해 출진하려는 우리 군단은 언제나 저 여자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단 말임까?!》
《요즘은 저 여자가 좀 약해져서 그나마 출진이라도 하는 거예요. 지난 수백 년 동안은 아예 통과조차 못 했는데.》
음메-!
음머어어어!
뿔소 괴수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 도망쳤다.
학살의 시간이 지나고, 괴수들의 시체로 산이 쌓인 뒤.
이름 잃은 자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낡은 철검을 지팡이 삼아 정문 입구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히이…… 히이이…….》
이 광경을 보며 벌벌 떠는 로우의 옆에서 부관은 냉정하게 서류를 쓰고 있었다.
부관은 이름 잃은 자를 피해서 출진을 완료한 괴수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래도 3분의 1은 빠져나갔네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
《이제 돌아가서 전투 결과나 기다리죠. 괜히 이름 잃은 자에게 걸려서 몸 두 쪽 나기 전에.》
그 말에 로우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비록 첫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천오백이 넘는 숫자의 뿔소 괴수들이 인세를 향해 내달릴 것이다.
로우는 힘차게 외쳤다.
《자, 이걸 어떻게 막을 검까, 인세의 수호자!》
너무 크게 외치는 바람에 이름 잃은 자가 응? 하며 이쪽을 보았다. 부관은 얼른 로우의 입을 막고 홱 들쳐든 뒤 달려 도망쳤다.
***
이번에 출진한 것은 뿔소 군단.
문자 그대로 돌진하는 소떼다. 막아서는 방어군은 짓밟혀 죽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성벽 또한 무너진다.
로우는 자신이 생각한 전술이지만 제법 나쁘지 않은 구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인세의 수호자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뿔소 군단을 전멸시켰다.
심지어 전멸시킨 것뿐만 아니라, 성벽에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인세의 수호자가 사용한 전술은 다음과 같다.
검은 호수의 입구에 [전장의 포효] 등으로 광역 도발이 가능한 탱커 유닛들을 배치한 뒤.
뿔소 군단이 나오자마자 도발을 감행.
가뜩이나 이름 잃은 자를 피하느라 잔뜩 흥분해 있던 뿔소 군단장은 그대로 도발당해 탱커 유닛을 향해 돌진했다. 당연하게도, 후속 뿔소들은 선두의 군단장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탱커 유닛들은 모두 대기하던 비공함에 탑승했고, 비공함은 저고도로 날며 계속해서 소떼를 유인했다.
탱커들 또한 지속적으로 도발을 사용해 소떼를 유도했다.
펄럭!
함께 비공함에 탄 인간 측 지휘관은 어째서인지 붉은 깃발을 마구 흔들어댔다고 한다.
“투우다! 투우!”
라는 영문 모를 소리까지 지르면서.
이 깃발에는 어떤 강제 도발 효과도 없었지만, 뿔소 군단장은 제대로 도발당했다.
눈이 멀어버린 뿔소 군단장은 무작정 비공함을 따라 달렸고, 이런 무리를 이룬 동물이 으레 그렇듯 후열은 어떤 의심도 없이 선두를 따라 일렬로 내달릴 뿐이었다.
두두두두두!
황무지를 짓밟고, 숲을 부수고, 눈앞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며 질주한 끝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인근의 골짜기로 유도된 뿔소 군단은 멈추지 못했다.
뿔소 군단장은 낭떠러지의 존재를 눈치채고 다급하게 멈추려 했지만, 뒤에서부터 달려온 부하들의 돌진력을 막을 수단은 군단장에게도 없었다.
소떼를 유도하던 비공함은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지만, 뿔소는 날 수 없었다.
결국,
음머어어어!
쿵! 쿵! 쿵! 콰직! 꾸드득……!
일천오백이 넘는 소떼가 깊은 골짜기 아래로 처박혔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온몸이 으깨져 죽었다.
그렇게 서른두번째 공격전은 변변한 전투다운 전투도 못 해 보고, 목표였던 성벽은 구경도 못해보고, 뿔소 군단이 모조리 추락사하면서 끝나버리고 말았다.
보고서를 모두 읽은 로우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이럴 수가…….》
스스로는 나쁘지 않은 전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기로 치면 ‘장군!’을 선언하며 적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인간 지휘관은……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손을 털어 칼을 부러뜨리며, ‘응, 멍군.’이라고 반격한 것만 같았다.
허망한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우를 물끄러미 보던 부관이 작게 속삭였다.
《오펜스 게임의 병신이 되었…….》
《그만 찌르십쇼! 그만 놀리란 말임다!》
부들부들 떨던 로우는 이윽고 긴 한숨을 폭 뱉었다.
《……이제 알겠슴다. 조건부로 위력이 걸출한 괴수 군단을 내보내면, 인세의 수호자는 그 조건을 오히려 역이용해버림다.》
《호오.》
《조건을 타지 않는, 평균적인 위력이 높은 군단을 내보내야겠슴다.》
로우는 직감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강수(強手)를 둘 때였다.
《……다음 공격전에서는, 서열 13위 군단.》
처음부터 눈여겨 보고 있던 최강급 군단-
《타락기사단(Fallen Knights)을 보내겠슴다.》
그러자 부관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당 되겠어요?》
《…….》
《알다시피 그 군단은 너무 포악해서, 그쪽 말 안 들을 거 같은데.》
《어, 어떻게든 이 왕홀의 권한으로…….》
로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안 되겠슴까?》
***
《…….》
《…….》
로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 뒤에 선 부관도 평소의 태평한 안색은 없고 살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타락기사단의 본진. 무너져가는 예배당.
예배당 안쪽에 놓인 각탁(角卓)에는 총 13인의 기사들이 앉아 있었다.
아니, 기사였던 것들이.
온갖 촉수며 피안개, 점액질 따위에 휩싸인 괴수의 몰골로 전락(轉落)한, 한때 명망 높은 기사였던 괴수들이.
그중 가장 상석.
거대한 대검을 앞에 꽂아두고, 해골로 이뤄진 옥좌에 앉은 타락왕- 팬드래건이 얼굴을 덮은 투구 틈으로 내뱉었다.
《그러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될 듯한, 사악하고 끔찍한 목소리였다.
《이제야 우리 차례라는 말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