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52
◈ 552. [Evil Side] 난공불락
호수왕국.
가장 깊은 어둠이 도사린 10구역. 그중에서도 최심부,
어둠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악의의 중심지.
마왕이 기거하는 장소-
왕성(王城).
그러나 언제나 고요하게 끓어오르던 이곳 만마전(万魔殿)은 지금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공을 받고 있었기에.
쿵! 쿠구궁……!
빽빽하게 왕성을 포위한 세력이 쉼 없이 맹공을 퍼부었다. 왕성을 둘러싼 배리어는 버티고 있었지만 거세게 진동했다.
《큭!》
왕성의 수호를 도맡은 서열 2위 악몽군단장, 악마 수호병단장 크롬웰은 배리어를 보수하며 치를 떨었다.
《저 미친 도롱뇽이 기어코……!》
왕성에 공격을 퍼붓는 이들은 다름아닌 흑룡 군단.
서열 1위 악몽 군단장이자, 흑룡의 왕 되는 자- 진흑룡(眞黑龍) 나이트 브링어가 직접 이끄는 군대였다.
촘촘한 검은 비늘을 온몸에 두른 흑룡 일족은 날개를 펼치고 왕성 주위를 선회하며, 마구 흑염(黑炎)을 쏟아 부었다.
《…….》
산발한 흑발을 휘날리며, 황금빛 용안을 번뜩이며, 나이트 브링어는 멀찍이 선 채로 맹공을 퍼붓는 자신의 일족을 지휘하는 중이었다.
그런 나이트 브링어를 노려보며 왕성 안쪽에서 크롬웰이 이를 갈았다.
《진짜로 반역을 일으키다니, 제대로 미친 광룡 새끼 같으니……!》
반란을 하니 마니 입만 놀리던 다른 악몽 군단장들과는 실행력 자체가 달랐다.
나이트 브링어는 정말로 마왕에게 반기를 들었고, 실제로 쳐들어온 참이었다.
그리고 막강한 흑룡 군단의 전력 앞에서 다른 군단들은 연신 패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결국 몰리고 몰려 이곳 왕성까지 수비선을 물려야 했고, 졸지에 왕성을 끼고 수성전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왕중왕께서 부재중만 아니셨어도……!》
크롬웰은 흘깃 왕성 안쪽을 살폈다.
왕중왕- 마왕은 또 다시 칩거 중이었다.
인세를 침공할 괴수 선별부터, 왕중왕이 내려주는 권능 축복(다크 이벤트) 지정 같은 일까지 모조리 크롬웰에게 떠넘겨 놓고 다시 악몽 아래로 침잠해 사라졌다. ‘그 사람’인지 뭔지를 찾기 위해서.
때문에 마술대제 백야가 쓰러지고 나서. 이어진 다섯 번의 인세 침공 모두 크롬웰이 직접 선별한 군단이 출격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반역을 선포한 흑룡 군단이 왕성으로 쳐들어왔고, 마왕의 직속 호위부대인 악마수호병단은 최전선에서 흑룡들과 싸워야 했다.
크롬웰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그녀의 최우선 목적은 인세 멸망이 아니라 마왕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었기에, 인세 침공보다는 흑룡과의 결전이 더 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세 침공을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크롬웰은 결정을 내렸다.
또 다른 부하에게 하청을 주기로.
《각하!》
악마 수호병 하나가 달려와서 크롬웰을 향해 경례하며 외쳤다.
《호출하신 군단장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잠시 뒤, 왕성 알현실 내부로 조그마한 악마 하나가 총총걸음으로 들어왔다.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키는 악마는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몸은 붉었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았다.
등에는 한 쌍의 작은 날개. 엉덩이 아래로 길게 뻗은 악마종 특유의 꼬리까지.
임프(Imp).
악마종 중에서 가장 작고, 하찮고, 또한 잔혹한 군단. 그 임프 군단을 이끄는 임프 군주 ‘로우’였다.
《부, 부, 부르셨슴까, 각하!》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임프 군단장 로우가 크롬웰에게 경례했다.
크롬웰은 현재 호수왕국에 도사린 모든 악마종 군단을 총지휘하는 최강의 악마.
악마종의 힘은 곧 그 뿔의 크기로 드러나는데, 크고 아름다운 사슴뿔 모양의 뿔을 보유한 크롬웰은 절대적인 강자였다.
같은 악마종으로서 그 휘하에 복속된 임프이니만큼, 로우가 크롬웰에게 존경과 공포의 감정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로우.》
그리고 크롬웰은 냅다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왕중왕께서 돌아오시는 때까지, 인세 침공에 대한 전권(全權)을 네게 맡기마.》
《예……?》
멍하니 듣고 있던 로우는 이윽고 기겁하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예?!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심까? 인세 침공이라니? 게다가 전권이라셨슴까?!》
《알다시피, 지금의 나는 흑룡 군단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크롬웰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폭 뱉었다.
《하지만 인세 침공은 왕중왕의 염원이자 명령…… 실행하지 않을 수 없지. 해서 나 대신 총괄지휘를 맡을 이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 이유야 알겠슴다…… 그런데 왜 하필 저를…….》
《그야, 그나마 네가 우리 악마종 중에서 머리가 좋으니까.》
칭찬은 감사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로우는 어떻게든 거절하려 했지만 크롬웰은 더 이상 듣지 않고 로우에게 다가오더니 뭔가를 건넸다.
왕홀(王笏).
호수왕국의 왕이 사용하던,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크롬웰은 그것을 냅다 로우에게 쥐어줘 버렸다.
그걸 들고 멍하니 입을 벌리는 로우의 앞에서 크롬웰은 뒤로 홱 돌아섰다.
《관련 자료는 정리해 두었다. 나가면서 받으면 된다. 그럼, 나는 흑룡과의 전투가 바빠서 이만.》
《아니, 잠시만요! 잠시만요, 크롬웰 님! 기다려 주시지 말임다! 크롬웰 니이임!》
크롬웰이 매정하게 손을 휘젓자, 좌우에서 다가온 수문장 악마들이 로우를 양쪽에서 번쩍 들어올려 밖으로 들고 나갔다.
《…….》
알현실 입구에 서서 로우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야 원래 이 바닥이 상명하복(上命下服)이 기본 룰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무거운 책무를 이렇게 손쉽게 던지듯 넘겨도 되는 것인가…….
끼익. 끼익.
그때 안경을 쓴 크롬웰의 부관이 무심하게 무언가를 끌고 왔다.
뭔가 보자 서류가 잔뜩 담긴 수레였다.
쿵!
서류 수레를 로우의 앞에 아무렇게나 놓고, 부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무신경하게 내뱉었다.
《지난 서른 번의 인세 침공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
《잘 참고해보십시오.》
그러고는 뒤로 홱 돌아선다.
로우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
《네?》
돌아보는 부관에게 로우는 거의 매달리듯 애걸했다.
《참고라고 하셔도 말임다, 정확히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르겠슴다…… 저 같은 소악마가 한 번 껴본 적도 없는 인세 침공에 대해 대체 뭘 알겠슴까? 조언이라도 좀 해주시지 말임다. 정확히 뭘 참고해야 하는지…….》
《아아,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신 모양이네요.》
부관은 심드렁하게 서류 수레를 향해 손짓했다.
《참고 하라고요. 꾹~ 참고.》
《……아.》
참고(參考)가 아니라, 그 참고……?
《그럼 이만. 저도 흑룡 상대하러 가야 해서.》
그리고 부관은 도도한 걸음으로 걸어서 사라졌다.
멀어지는 부관과 무거운 서류 수레를 번갈아 살피던 로우는 이윽고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는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진짜 서럽슴다, 이놈의 마생(魔生)…….》
그래도 어쩌랴?
짬처리든 나발이든 까라면 까야지.
로우는 콧물을 훌쩍이며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수레를 끌고, 엉금엉금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쿵! 쿠구구궁!
로우의 등 뒤로는 여전히 흑룡의 폭격이 쏟아지고 있었고, 왕성은 휘청이며 버텨내고 있었다.
***
로우에 대한 크롬웰의 평가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
악마종 중에서 가장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소악마 임프. 그들의 군단장인 로우는 머리 쓰는 면에 있어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로우는 지난 서른 번의 공격전에 대해 기록된 정보를 달달 외울 만큼 읽었다.
그동안 자신은 출진할 일이 없다고 믿고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상황을 하나도 몰랐지만, 빡빡하게 공부하자 금세 현황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
로우는 고민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전장을 직접 지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출진할 군단을 선별하고, 또 다크 이벤트라 불리는 마왕의 권능을 대신 결정할 뿐.
대충 하고 넘어가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우는 잘 알고 있었다.
‘대충 해도 된다고 진짜 대충 했다간, 나중에 쪼인트 까이는 건 저란 말임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신의 수하들에게는 너그러운 크롬웰이라면. 갑자기 업무를 떠맡은 로우의 입장을 이해해줄 것이다.
대충 선별하고 대차게 말아먹는다 해도 기껏해야 혼 좀 나고 말겠지.
하지만, 로우는 기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악마종 중에서 최약체. 언제나 무시받고 경멸당하는 소악마 임프.
언젠가부터 출세욕도 야망도 잃고 악마종의 보조만을 전담하게 된 한심한 종족.
이런 자신들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로우는 고심했다.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어떤 군단을 보내야 인간들의 의표를 찌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다크 이벤트를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인세를 불태울 것인가?
그리하여 서른한번째 공격전이 열리기 며칠 전.
로우는 허수아비 군단의 본거지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허수아비 군단은 현재 폐허가 된 ‘농장’을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때 역병주 레이븐의 본거지였던 이곳은 지금 역병으로 초토화되어 더없이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이었다.
《히이이이…… 무섭슴다…….》
흉흉한 분위기에 로우가 덜덜 떨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눈앞에 짚봉투를 뒤집어쓴 얼굴이 홱 들이밀어졌다.
《아앙? 뭐야, 이 코딱지만 한 놈은?》
허수아비 군단장, 가장 오래된 허수아비였다.
《우아아아아앗!》
기겁해서 벌벌 떠는 로우를 향해 허수아비 군단장이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냈다.
《당장 꺼져, 이 생쥐 새끼야! 우리 허수아비들은 입이 고급이라서 너 같은 놈은 수확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주위의 허수아비들이 일제히 배를 잡고 기긱 기긱 기괴하게 웃어댔다.
로우는 무섭고 수치스럽고 화가 났지만, 이윽고 이를 악물고 빽 소리쳤다.
《저, 저는 왕중왕의 권한대행임다!》
《뭐?》
《허수아비 군단! 왕중왕의 이름으로, 출진을 명함다!》
로우가 내민 왕홀이 진짜임을 알아본 허수아비 군단장은 짚봉투를 긁적였다.
《아앙? 이게 뭔 헛소리래? 이번 출진 차례는 다 정해졌잖아? 나 아닌데?》
《…….》
《그리고 전에 왕중왕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고. 지금 인세 측 사령관은 정신방어가 더럽게 딴딴해서, 내 공포는 애초에 먹히지도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출진할 일 없다 하셨는데.》
《그래서, ‘기습’임다.》
로우는 낑낑거리며 자신의 몸보다 더 기다란 왕홀을 휘휘 돌려 보였다.
《왕중왕께서 빌려주신 권능 중에 사용할 수 있는 ‘기습’ 옵션이 있슴다. 이 권능을 사용하면, 정해진 악몽 군단의 순서를 바꾸고, 문제의 적장을 피해서 침공을 시작할 수 있슴다.》
《호오?》
《그리고 적장을 피할 수 있다면, 허수아비 군단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슴다.》
정신지배 및 정신계 상태이상을 사용하는 군단은 그동안 대부분 인세 침공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인세의 수호자가 그쪽에 있어서 면역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뒤통수를 친다.
인간들은 자신의 지휘관만 믿고 정신방어에 더 이상의 투자를 해두지 않았기에, 적장만 피할 수 있다면 정신지배 및 정신계 상태이상은 더없이 치명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허수아비 군단은 희생자를 파밍해 왕귀를 노리는 군단이다. 첫 전투가 힘들지만 이후로는 스노우볼이 구르듯 점점 강해진다.
이 ‘기습’ 다크 이벤트에 이 이상 어울리는 군단은 없다……!
《호오…….》
로우의 설명을 들으며 허수아비 군단장의 입가에 걸린 흉악한 미소가 짙어졌다.
《보기보다 제법이잖나, 땅꼬마 악마.》
말이 거슬렸지만 로우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려드릴 게 있슴다. 인간은 서로를 아끼지만 특히 이 지휘관은 부하를 끔찍이 아낌다.》
서른 번의 전투 데이터.
그 안에서, 인간 지휘관- 애쉬의 행동방식은 한 번 본 적도 없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사람을 아낀다.
지나치게.
《인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빈틈을 쥐고 흔들 수 있을 검다.》
기긱, 기기긱, 기기기긱!
허수아비 군단장은 흡족하다는 듯이 기괴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좋아, 좋아! 기꺼이 출진하도록 하지, 땅꼬마 대행! 그리고!》
허수아비 군단장은 긴 손가락을 뻗어 로우를 가리켰다.
《만약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게 된다면, 꼭 네놈도 높은 곳 한 자리 앉혀주도록 하지!》
***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허수아비 군단은 전진기지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결국 돌아온 적 본대에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에휴…….》
크롬웰의 부관이 새로 배달해준 전투보고자료를 읽으며 로우는 한숨을 폭 뱉었다.
《져버렸슴다, 우우…….》
그러자 자료를 가져온 크롬웰의 부관이 안경을 슥 끌어올리며 속삭였다.
《참고 하세요.》
《안 그래도 그러고 있단 말임닷!》
로우는 자신의 작은 머리를 작은 양손으로 꽉 붙들고 고민했다.
온갖 천하의 이름 높은 괴수들이 모두 도전했다가 스러진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대체 어떻게 해야 무너뜨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