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82
◈ 582. [STAGE 35] 활로
[엑스카니발]의 이명(異名)은 식인검이다.하지만 실제로는 뭐든지 안 가리고 잘 처먹는 칼이다. 예전 사용자 타락왕이 식인에 미친 아귀라서 저런 이름이 붙은 것뿐.
‘어쨌든 마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사용자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오염시키려 노력하는, 아주 악질 에고 소드(Ego Sword)다.
원래부터 이랬는지, 아니면 주인을 잘못 만나 이 꼴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칼은 원리적으로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 있다. 화살부터 시작해서 마법은 물론이고, 게임에서는 성벽까지 먹어서 없애는 미친 무기였다.
그렇다면 저 마법 배리어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발상으로 일단 꺼내들긴 했는데, 내가 이걸 들고 저 파리들에게 돌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칼 한 자루 믿고 들어가서 무쌍을 찍기에는 내 검술 실력이 너무도 저열하다…….
그렇다고 이딴 마검을 소중한 부하들에게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내 선택은.
“바디백! 이것 좀 던져봐.”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내 호출에 우물쭈물거리며 다가온 바디백의 통통한 뺨이 덜덜 떨렸다.
“어, 이 검 말씀이세요……?”
“그래. 네 염동력으로 저 파리들한테. 홱 들어서 슝 투척. 가능하지?”
“가능……하죠. 네. 가능은 한데…….”
바디백은 영 안 내키는지 살짝 공포마저 서린 눈으로 엑스카니발을 바라보았다.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혼자 몸을 떨어대는, 시커먼 오오라가 휘감긴 핏빛 칼날의 장검…… 내가 봐도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기왕 검을 뽑았으면 파리라도 베어봐야 할 거 아니야!
“으으…….”
바디백은 조심스럽게 염동력으로 엑스카니발을 들어올리더니,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쐐애애액!
성의 없는 동작과는 다르게 엑스카니발은 맹렬한 속도로 파리들을 향해 날아갔다.
변종 개체 파리들은 태연하게 배리어를 끌어올리고 방어하려 했지만,
촤아아악!
던져진 엑스카니발의 칼끝이 닿자마자, 마법 배리어는 칼의 안쪽으로 빨려들듯이 소멸해버렸고.
가드 없이 텅 빈 변종 파리의 품 안으로 날아든 엑스카니발은 그대로 푹! 하고 파리의 품에 꽂히더니…….
콰직! 콰득! 콰지지직!
그대로 파리를 구기듯이 먹어치워 버렸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가듯, 엑스카니발에 찔린 파리는 온몸이 박살나고 또 압축되며 칼의 안쪽 어딘가로 사라졌다.
“……우욱.”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직후 내 머릿속으로 음침한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없어어어-’
입 닥쳐, 이 식인검 자식아. 너는 그동안 지은 죄만큼 파리를 먹는 벌을 받게 해주마.
아무튼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 나는 바디백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바디백은 눈치 빠르게 염동력으로 다시 마검을 회수해온 뒤 재차 투척했다.
콰직! 콰드득! 콰직-!
연이은 투검(投劍)에 변종 파리들이 금세 죽어나갔다.
일단 엑스카니발에 적중당하면 모조리 검 안으로 삼켜졌다. 이 마검 녀석은 맛없다고 투정하면서도 배가 고팠는지 계속 먹어치웠다.
“……이번 전투는 유독 끔찍한 광경을 많이 보네요.”
지켜보던 쥬니어가 창백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답했다.
“앞으로 더 보게 될 거야.”
비단 이번 방어전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은 모든 전투가 잔혹하고 끔찍할 것이다.
세계의 명운을 건 이 ‘게임’은 이제 착실히 종반으로 향하고 있다.
근래 들어 유독 사람을 납치하고, 잡아먹고, 힘을 빼앗는 괴수들을 연이어 만나고 있는데.
적들이 이런 부분을 내 약점이라 판단했다면, 내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괴수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어쩔 수 없지.’
각오하고, 이를 악물고, 싸워나갈 수밖에.
콰드드드득!
엑스카니발 투척에 열 마리가 좀 넘는 변종 개체 파리가 잡아먹힌 다음이었다.
전황이 급속도로 불리해진 탓일까? 파리들이 일제히 물러나더니 우르르 천장을 통해 빠져나갔다.
“뭐야, 도망치는 건가……?”
사실 적잖이 고전 중이었기에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 성벽은 반쯤 허물어졌고, 포획괴수는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죽은 개체도 꽤 나왔고.
영웅들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지쳤다. 휴식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모두 안도의 숨을 들이쉬며 살짝 긴장을 푸는 그때였다.
《애쉬.》
갑작스럽게 날아든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널따란 파리 뱃속을 무겁게 울렸다.
당황한 모두가 무기를 치켜들며 주위를 경계했다. 나 또한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는데, 목소리가 느릿하게 이어졌다.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떤가.》
직후,
띠링!
[적대 군단장 ‘바알제붑’이 ‘사령관 회담’을 신청하였습니다.]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간혹 적 군단장과 서로 불가침을 선언한 채 대화를 나눌 때 쓰던 그 사령관 회담이었다. 파리대왕 쪽에서 나에게 걸어온 것이다.
“…….”
나는 이 메시지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백야가 성공한 것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핫.”
어쩌랴, 이미 호랑이 배 속이다.
직접 가서 확인하고 와야겠지.
“모두, 퇴각 준비를 해라.”
나는 부하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다녀오마.”
***
혹시 위험한 게 아닌지 걱정하는 부하들을 진정시킨 뒤, 사령관 회담을 승낙했다.
회담 자체는 그간 자주 해왔던 그 불가침 상태의 대화다.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야를 투입한 결과가 걱정될 뿐이지…….’
아무튼 사령관 회담을 승낙하자마자 내 의식은 처음 보는 웬 새하얀 공간으로 전이되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곳이 바로 파리들의 집합의식 내부.
인간인 내가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 원리는 알 수 없지만…… 파리대왕이 초대해줘서 들어올 수 있었던 걸까?
《왔군.》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을 홱 돌아보았다.
“……!”
그곳에는 산이 있었다.
까마득한 높이로 쌓인 시체의 산이었다. 시체는 대부분 파리였는데, 모두 머리가 없고 몸만 남은 시체였다.
그 그로테스크한 시체의 산 앞에, 등이 굽은 듯 구부정한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늙은 파리가 한 마리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애쉬.》
파리가 낄낄거리는 듯한 묘하게 기분 나쁜 음성으로 속삭였다.
《내가 잡아먹은 임프 하나가 너를 아주 고평가하더군. 인세의 수호자이며, 무패의 지휘관이라고. 너를 쓰러뜨릴 방법을 강구하다가 끝내는 내 종족의 무의식 속에서 내 존재를 발굴해내기까지 했지.》
“…….”
《그래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늙은 파리의 겹눈이 섬뜩한 붉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뭐랄까, 내가 보기에 너는…… 다른 나약한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군.》
“…….”
《곧 썩고, 구더기 먹이가 될, 한낱 고깃덩이로밖에 안 보여.》
멀찍이 떨어진 곳에 멈춰선 내가 턱짓했다.
“네가 파리대왕인가?”
《‘나’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라고 할 수도 있지. 나는 내 종족의 집합의식을 대표하는 자니까. 아무튼, 그래. 이쪽이 바알제붑. 너희 언어로는 파리대왕이다.》
파리대왕이 나를 지그시 보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나서 반갑다, 파리. 그나저나 혹시 내 친구 못 봤어? 백야라는 이름의 마법사인데.”
《백야……? 아아, 내 동족의 몸으로 침입한 그 리치 마법사 말인가.》
파리대왕이 조소를 흘렸다.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이미 소화되어, 나와 하나가 되었지.》
“……!”
《나를 잡아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오산이지. 나는 단순히 이곳에 모인 파리의 총합이 아니니까.》
킥킥킥킥……. 파리대왕의 낮게 깔린 웃음이 흘렀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단순히 총합이 아니라면?”
《그동안 존재해온 파리라고 하는 종족의 영혼과 육체, 그 영육(靈肉) 전부……. 다시 말해서, 이미 죽은 파리들의 영혼까지도. 전부 ‘우리’를 이루는 요소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말 그대로다.》
파리대왕은 털이 돋은 흉한 다리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파리라고 하는 종족의 수호신으로 봉해진 존재. 내 종족의 명운을 내 의지대로 뒤틀 수 있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녀석도 종족의 대표로 신격을 얻은 존재라는 말인가?
《그리고 나는 내 종족에게 부여된 윤회의 고리를 내 손으로 부쉈다.》
“뭐?”
《이 세상 모든 것을 죽이고 파리로 재탄생시키려는 우리의 대의(大義)를 위해서다. 윤회를 멈춰야만, 한 번 파리가 된 자가 내세에 환생해도 계속 파리일 테니까. 이 과정을 반복하면, 끝내는 삼천세계 모두가 파리로 가득 찰 테니까.》
잘 이해가 가는 개소리는 아니었지만, 대충 정리해보자면.
죽은 동족의 영혼을 강제로 붙잡아서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이 자식은?
“미친 새끼냐, 너?”
《킥킥킥킥…….》
내 욕설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파리대왕은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내 동족 중에서도 이에 찬동하지 않는 자들이 있긴 했었지.》
파리대왕은 자신의 뒤에 쌓인 시체의 산을 가리켰다.
《하지만 반발은 찰나일 뿐, 집단을 거스르는 의지는 소화되기 마련.》
나는 까마득하게 쌓인 집합의식 속 시체의 산을 올려다보았다.
“……말이 좋아 소화지, 결국 네가 먹어치웠다는 소리 아냐?”
《그렇게 받아들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말로 이게, 전부…… 파리대왕이 제 손으로 잡아먹은 동족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스러진 이들의 육신과 영혼을 박제하여, 이 몸을 이루는 벽돌로 사용했다.》
“……그러니까, 네놈의 이 거대한 몸을 이루는 파리들은…… 모두 네 손으로 죽인 네 동족이라는 뜻이냐.”
《인간의 이해로는 그런 뜻이 되겠군.》
‘집단’의 이름으로.
자신의 뜻에 반하는 자들은 죽이고 영혼마저 빼앗은 뒤 몸을 이루는 구조물로 사용하고.
자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만 살려서 먹이고 부화시켜 부하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제야 파리대왕의 이 정신 나간 크기가 납득되었다.
그간 세상에 태어나고 죽은 모든 파리의 영체까지 끌어서 구조물로 사용하고 있다면, 이만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겠지.
“……뭔가 남다른 괴수인가 싶었는데.”
그리고 그 구조를 이해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내 속을 스쳤다.
나는 조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파리대왕이 지껄이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는 내 이해의 영역에 있었다.
“결국 네놈도 다른 괴수 군주와 다를 바 없는, 흔하게 미친 괴물일 뿐이었군.”
한없이 불가해(不可解)하게 느껴졌던 이 괴수가, 갑자기 이해의 영역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파리대왕을 노려보며 씹어 뱉었다.
“결국 네놈은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국민을 수탈하고 영혼 끝까지 이용해 먹은, 그런 파렴치한 군주에 불과하다.”
《…….》
“그야말로 제 국민을 파리목숨쯤으로 보는, 그런 왕.”
세상 어디에나 있는.
그런 쓰레기 같은 왕.
내가 힐난하자 파리대왕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스쳤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네가 파악한 나는 일말의 편린에 불과하다. 내가 깨달은 진리, 그리고 내가 실행하려는 대의는…….》
“네놈의 대의 따위 궁금하지 않아.”
말을 끊은 나는 검지를 들어 파리대왕을 가리켰다.
“네놈은 종족의 총의(總意)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동족의 의지를 말살한 채 네놈의 사욕을 추구할 뿐인, 흔해 빠진 독재자다.”
《아니! 내가 이 세계에 퍼뜨리고자 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우주만유(宇宙萬有)의 법칙은-》
“개소리 집어치우고 아가리 닥쳐. 내가 보기에 너는…….”
나는 파리대왕이 내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자신은 다르고 특별하다고 믿는 여타 병신 머저리 암군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마주 노려보는 파리대왕을 향해 나는 한 자 한 자 씹어서 쏘아 뱉었다.
“곧 박멸될, 금세 잊히고 사라질, 한여름 똥파리 말이다. 버러지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