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24
◈ 624. [Side Story] 마지막 축제 (14)
이렇게 해서. 마지막 결승에 이르러서 좀 난폭한 경기가 치러지긴 했지만.
적당히 판타지 월드의 낭만으로, 그리고 주최자인 내 의지로 좋게좋게 넘어가기로 했고…….
아무튼 승부가 났다.
“우승 파티는 바로! ‘황자님과 아이들’~!”
시상식.
참가한 모든 파티가 차례로 올라와 상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에이더가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몰려든 사람들의 환호와 야유와 박수와 휘파람 등등을 맞으며 우리는 단상에 올랐다.
“……그나저나 전하, 언제부터 우리 파티 이름이 저랬어요?”
“그냥 메인 파티 아니었나요, 황자님?”
“그, 파티명은 적당히 써서 낸 거야. 너무 의미 부여 하지 마.”
“역시 주군이십니다! 대단한 작명 실력이십니다! 아주 좋은 파티명입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이 아저씨는 충신인지 간신인지…… 아니 선배님, 파티명이 이게 뭐예요! 하다못해 황자님과 변경백계승자와 아이들, 이렇게 하던가!”
무어라 떠들어대며 쪼아대는 아이들과 함께 단상에 오르자, 우승 트로피를 든 세레나데가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전하.”
“이번에도 잘 준비해줘서 고마워. 세레나데.”
“후후. 뭘요. 소녀의 기쁨인걸요.”
축제 내내 일하느라 피곤한 안색의 세레나데였지만, 준비한 이벤트가 잘 치러진 덕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믿고 있었거든요. 전하께서 우승하시리라고! 소녀도 열심히 응원했어요. 최강! 황자! 승리! 한다! 이렇게!”
“아, 그래서 기분 좋은 거였어……?”
“그럼요. 다른 경기는 바빠서 못 봐도 전하의 경기만은 전부 직접 관람했답니다. 후후, 전하의 대활약에 괜히 저까지 으쓱…… 경기에서 싸우시는 모습은 전부 기록시켜 두었어요.”
조잘조잘 나를 덕질하는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세레나데는 이윽고 이곳이 시상대 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앗.”
쏟아지는 빼곡한 시선에 얼굴을 빨갛게 붉힌 세레나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배배 꼬더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비켜주었다.
나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뻘쭘하게 단상을 내려왔다.
우우우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야유의 결이 좀 바뀐 것 같은데…… 크, 크흠. 여기서는 뻔뻔하게 버티자…….
그리고 마지막 특별상으로, 대회 준비 공로상이 생산 조합에게 주어졌다.
대표로 나선 페이크 드래곤 파일럿, 릴리가 작은 트로피를 받은 뒤 그것을 품의 시드에게 주었다.
그러자 시드가 꼬물거리며 통통한 두 손으로 트로피를 꼭 쥐었다.
“아우?”
그리고 바로 입으로 넣으려고 해서 릴리가 ‘지지야 지지!’ 하며 말렸다.
이 모습에 객석에서 비명과 환호가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어째 우승팀인 우리보다 더 반응이 격한 것 같은데?
시드의 침 튀기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시상식 종료. 영웅들은 저마다 품에 상품과 트로피를 껴안고서 제각각 흩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무투대회는 이렇게 끝났다. 에고고.
***
가을 축제도 막바지.
이제 남은 행사는 그놈의 댄스 페스티벌, 그리고 폐막을 알리는 불꽃놀이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삼삼오오 광장에 몰려들어 앉았다.
잔뜩 술에 취한 이들이 ‘오늘은 내가 산다!’며 내일이면 후회할 말을 쏟아내고, 누가 샀는지 모를 술과 안주가 손에 손을 타고 옆으로 전해졌다.
나는 광장 한구석에 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내 술잔을 삼켰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각자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내 휘하의 영웅들이, 병사들이, 시민들이, 그리고 또 새로 온 손님들이…… 서로 뒤섞이고 주정과 노래를 부르며 한데 어울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들과 무서운 언니들이 함께 어깨동무하고, 아웃사이더즈의 다섯 대표와 다섯 세력이 한데 뒤섞여 건배했다.
서부 사람들과 동부 사람들이 악수하고, 북부 사람들과 남부 사람들이 전통주를 교환했다.
글로리 나이츠에게 찾아온 생산조합 사람들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사고에 대한 사과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헤카테에게 이번에는 어린 용병들이 찾아와 허리를 숙였다. 구해주신 은혜도 모르고 도망쳐 죄송했다며 사죄했다.
기사와 궁수와 사제와 마법사와 인부와 시민들이 한데 엉켰다. 사람들은 술을 나누고 감사를 나누고 사과를 나누고 관계를 이었다.
“…….”
술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고 있다.
지난 전투에서 이들이 입은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못했음을.
어쩌면, 어떤 상처는 결코 아물지 못할 것임을.
세상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우리가 영원히 살지 못할 것도. 이 웃음과 열기가 식고 나면, 또 다른 눈물과 아픔이 찾아올 것도.
…….
하지만,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다.
그 눈물과 아픔이 지나고 나면, 혹독한 삶의 매일이 지나고 나면.
언제고 다시 기쁜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웃는 방법을 잊지 않는다면. 기필코 사람들은 웃을 순간을 찾아낼 것이다.
오늘은 이 세상의 마지막 축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으로 즐거운 날은 아닐 테니까.
“……흉한 꼴을 보였구나.”
내 옆에서, 조그마한 무릎을 끌어안은 채…… 묵묵히 앉아 있던 더스크 브링어가 문득 입을 열었다.
“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 앞서서, 내 멋대로…… 폭주해버렸구나.”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공.”
나는 더스크 브링어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제멋대로, 대공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 싫어서…… 반드시 대공을 이기려고 했어요.”
나도, 더스크 브링어도.
작전지휘권이 걸린 이번 무투대회에서 우승하려 했다. 그래야만 서로를 이번 흑룡토벌전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만큼 이번 전투는 어렵고, 또.
나의 목숨도, 더스크 브링어의 목숨도, 위태로울 테니까.
나는 전선의 지휘관으로서. 더스크 브링어는 흑룡의 숙적으로서. 반드시 죽음에 직면해야 할 테니까.
“알아요, 대공. 걱정하시는 게 뭔지. 제 어떤 점을 걱정하시는지. 흑룡이 얼마나 강대한 적인지.”
“…….”
“하지만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하잖아요.”
우리는 모두 비장의 수다.
애초에 우리가 이번 흑룡전의 필수 카드다. 누구 하나를 제한다는 게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같이 가요, 저 호수 아래의 어둠이 어디서 끝나든지…….”
이기든, 지든.
죽든, 살든.
“마지막까지, 같이 가요.”
“…….”
나는 그녀에게 내 술잔을 내밀었다.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올리고, 더스크 브링어는 먹먹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쉬. 참으로, 너는…… 선대 공작님을 닮았다.”
“그분도 꽤 잘생기셨나 보죠?”
“하하하!”
아, 웃었다.
내내 슬픈 기색이더니, 더스크 브링어는 드디어 웃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아름다운 여성분이셨다.”
천천히 웃음을 멈춘 더스크 브링어는 자신의 술잔을 집더니 내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그분께서도 축제를 좋아하셨지.”
“그분과 같이 축제에 가신 적이 있나요?”
“있었지. 딱 한 번.”
더스크 브링어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더니, 그날을 추억했다.
“그날 선대 대공께서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천천히 술잔을 입가에 머금고서 더스크 브링어가 속삭였다.
“사랑하라.”
“…….”
“사랑하라, 아이들아. 사랑하라…….”
맑은 술이 찰랑이는 술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더스크 브링어가 내게 턱짓했다.
“그러니 가 보거라, 애쉬.”
“예?”
“저기, 네 연인이 기다리지 않느냐.”
놀라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광장 중앙에서 우물쭈물하며 이쪽 눈치를 살피는 세레나데가 보였다.
어쩐지 사촌 누이에게 이성 소꿉친구를 들킨 듯한 기분이 되어, 당황한 나는 손발을 휘저었다.
“아니, 연인이랄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희 관계는, 그러니까 그게……!”
“하이고, 제국 제일의 바람둥이가 왜 이리 숙맥 흉내를 내느냐?”
그야 몇 번이나 말하지만 바람둥이는 김애쉬고! 나는…… 아니…… 내가 김애쉬긴 한데 그게 그러니까!
“네게는 아주 많은 재주가 있지만, 이런 뜻밖의 구석에서 주변 사람들 복장 터지게 하는 재주도 출중하단 말이지.”
더스크 브링어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얼른 가거라. 그리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거라.”
“…….”
“축제의 밤은 짧다. 그러니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여한 없이 보내거라.”
정말로, 악동 사촌 누이 같은 짓궂은 표정을 짓고서.
“과인은 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즐기겠노라. 자, 얼른!”
더스크 브링어는 나를 일으키더니, 광장 쪽으로 홱 밀어버렸다. 우와앗!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길을 열어주며, 손으로 나를 마구 밀어냈다. 속절없이 밀려난 내가 정신을 차리자 광장의 중앙이었다.
세레나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타오르는 모닥불 불빛 사이에서, 그녀의 연푸른 머리칼이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손을 뻗으면 사라져버릴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세레나데가 천천히 은빛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아세요, 전하?”
“응? 뭐?”
“매력적인 사람, 위험한 직업을 가진 사람, 나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대요.”
세레나데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전하께서는 세 가지 모두 해당하시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 그, 미안해……?”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했다.
의미심장하게 눈을 흘긴 세레나데는 이윽고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약조하신 대로, 허락해주세요. 오늘 밤.”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내게 내밀었다.
“오늘 밤만은 제 것이 되어 주세요.”
일순 주위가 적막에 휩싸였다가,
오오오오오-!
갑자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양 뺨을 손으로 감싸쥐고 꺄꺄 소리를 내고 있다.
그제야 주위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세레나데가 새빨개진 얼굴로 내게 바락 변명했다.
“이, 이상한 생각 안 했어요!”
“아니, 내가 뭐라고 했어……?”
“안 했어요, 안 했다고요! 그, 그냥 밤새도록! 당신을 끌어안고!”
세레나데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춤추고 싶다고요!”
“…….”
솔직히 말해서, 약간 악취미적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은 여유로울 때보다 필사적일 때가 훨씬 귀엽다.
꽉 눈을 감은 세레나데의 떨리는 손끝을 나는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움찔 몸을 떠는 세레나데에게 한 걸음 가까이 붙으며, 나는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기꺼이, 나의 파트너.”
우와아악 소름! 개느끼하네! 혀에 버터를 처발랐나?! 이건 좀 김애쉬 같았다!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광장 무대 위에서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시작 신호는 없었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아챘다.
가을 축제의 마지막 순서.
댄스 페스티벌이다.
음악과, 환호성과, 탄식과, 노랫소리가 한데 뒤섞이는 가운데. 나와 세레나데는 바짝 붙어 섰다. 그녀의 은빛 시선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활짝 웃었고, 세레나데도 그만 웃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춤추기 시작했다.
체면 따위 갖다 버리고,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
“…….”
더스크 브링어는 술잔을 홀짝이며, 제멋대로 춤사위에 빠진 중앙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다들 정말이지 젊기도 하지. 체통도 없이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춰대다니.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술에 취한 이들이 저만의 박자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기고 있다.
‘총사령관이 저러고 있으니 말이지…….’
애쉬가 가장 중앙에서 솔선수범 마구 망가져 주고 있으니, 누구도 꺼릴 것 없이 이 무대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리라.
더스크 브링어는 땀에 젖은 애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펑! 퍼벙-!
캄캄하게 물든 하늘에 불꽃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가을 축제를 마무리하는 불꽃놀이였다. 도시 곳곳에서 쏘아진 색색의 불꽃들이 어두운 하늘을 눈부시게 밝혔다.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불꽃들은 모두 형태가 달랐으나,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은 같았다.
더스크 브링어가 멍하니 그것을 올려다보는데,
– 사랑하렴, 더스크.
문득.
아주 오래 전, 선대 브링어 공작이었던- 데이 브링어가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목소리가 떠올랐다.
–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렴.
“…….”
더스크 브링어는 호박색 두 눈을 꾹 감았다.
“대공!”
갑자기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보자, 어느새 달려온 애쉬가 보였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이 모두 서 있었다.
다들 땀에 흠뻑 젖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일순 더스크 브링어는 아찔했다.
이들의 젊음이. 이들의 싱그러움이.
저 하늘에서 피었다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눈부심도, 그리고 덧없음도…….
정말이지 불꽃 같아서.
“언제까지 구경만 하실 겁니까!”
심술궂게 웃은 애쉬가 더스크 브링어의 손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하늘에서 별들도 춤을 추는데, 대공께서 이렇게 축 처져 계시면 곤란하지요!”
“아니, 나는……. 내가 끼면 그런 주책이 어디에 있겠느냐?”
“춤 잘 추시는 거 제가 모를 줄 압니까? 2년 전 축제 때 추신 캉캉댄스 아주 잘 기억한다고요?”
“너, 너는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정말…….”
머뭇거리는 더스크 브링어의 좌우로 누군가가 와서 섰다.
돌아보자 자신의 기사들, 그리고 글로리 나이츠였다. 다들 어색하지만, 그러나 분명히 웃고 있었다.
서로의 사이에 놓여 있던 수십 겹의 벽이…… 지금 이 순간 잠시 사라진 채였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좋다!”
어쩔 도리가 없어 웃어젖힌 더스크 브링어가 당차게 외쳤다.
“춤추자!”
***
색색으로 퍼져나가는 폭죽의 비 아래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해결하지 못한 고민도, 속절없이 다가오는 두려운 미래도 잊고서…….
마지막 축제의 마지막 밤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