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23
◈ 623. [Side Story] 마지막 축제 (13)
용혈폭주.
게임에서도 존재하던, 더스크 브링어의 부정 특성이다.
하지만 존재만 할 뿐. 아군 편입 시에는 쓴 적도 없었고, 적으로 나올 때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냥 부정 특성으로 달고 있으니까 이런 뒷설정이 있구나, 하고 파악만 해둔 정도지.
발동조건부터 난해한데, 그녀가 자신의 직속 기사 4인에게 나누어준 용혈을 회수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일을 하면 용기사 4인은 예전의 힘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지금 더스크 브링어는 편법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직속 용기사 4인은 경기장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더스크 브링어와 붉은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 마력 통로를 통해 용혈을 되돌린 모양이다.
이러면 용기사들이 영구적으로 힘을 잃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만, 당장 전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같다.
“…….”
무릎을 꿇고, 연결된 마력 통로를 통해 용혈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4기사는 그들의 주인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선두에 선 노기사- 앤디미온의 얼굴에 슬픈 회한이 스쳤다.
그렇게 해서까지 발동할 만큼, 이 폭주에 가치가 있는가?
콰과과과광!
“우와아아아악!”
가치는 모르겠지만, 파괴력은 진짜 무지막지하다!
용혈폭주 상태에 들어간 더스크 브링어의 모든 공격은 용종의 그것으로 바뀌어 광역으로 퍼부어졌다.
단순한 평타 한 방에 일대가 초토화되고,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야말로 ‘보스 몬스터’의 규격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럭저럭 위력적이지만!’
단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문제점은 바로, 수명을 깎는다는 것……!’
반인반룡에 수백 년은 사는 용혈계승자에게 수명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설정상 디메리트 중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용혈폭주에 돌입한 동안, 용혈 보유자는 수명이 깎여나간다.
“하아아아아……!”
지금 더스크 브링어는 무투대회 결승을 이기고 흑룡토벌전 작전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다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까지도 큰 문제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게임에서 이 용혈폭주를 사용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흐아아아아아앗-!”
이성이 날아가 버린다……!
피아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그녀의 존재도 사람보다는 용- 좀 더 잔인하게 분류하자면, 괴수에 가까워진다.
게임에서는 컨트롤을 벗어나서 아군에게도 공격을 하는 식으로 구현되었고.
그리고 이곳, 현실에서는……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황금빛을 쏟아내며, 더스크 브링어가 입을 쩍 벌렸다.
특유의 뾰족한 이 사이로 무지막지한 마력이 응집했다. 이, 이건!
“진짭니까, 대공?!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
“그럼…… 얼른…… 항복하든가아……!”
후욱- 하고 더스크 브링어가 숨결을 그러모았다.
우리는 기겁하면서도, 또 그동안 대 용종 전술을 훈련해둔 그대로…… 일제히 몸을 굴려 회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투학-!
콰과과과광!
더스크 브링어가 쏘아낸 드래곤 브레스가 작렬.
경기장을 모조리 초토화하고, 객석이 설치되지 않은 남쪽 평야를 반으로 가르며 일대를 갈라버렸다. 우와아아아아!
“브레스! 구석으로 피해욧-!”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앞세운 에반젤린은 브레스 끄트머리에 맞고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갸아아아아악!”
“에반젤리이이이인!”
피하라니까 왜 막아 그걸!
다행히도 끄트머리에 빗겨 맞은 데다, 초월적인 방어력과 [대미지 세이브] 덕에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지만.
저 멀리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걸 보니 당장 경기에 복귀하는 건 무리다!
투학-!
브레스 방사에 뒤이어, 우리 쪽으로 맹진해온 더스크 브링어가 사뿐하게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그녀의 등허리 아래에 돋아난 붉은 꼬리에 막대한 마력이 휘감기더니- 그대로 바닥을 쓸며 우리 쪽으로 쇄도했다.
장판기다!
“줄넘기 기억하지?! 동시에 피하자! 하나, 둘…….”
‘셋’ 세려고 했는데 꼬리치기가 ‘둘’ 타이밍에 왔다. 우와아아앗!
타이밍을 놓친 나, 마찬가지로 육체 수련은 약한 쥬니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못 피하겠어!
“흐읍!”
그때 숨을 몰아쉰 루카스가 한 팔에 하나씩 나와 쥬니어의 뒷덜미를 잡아챘고, 위로 홱 끌어당기며 점프했다.
바로 다리 아래를 휩쓸며 더스크 브링어의 꼬리치기가 바닥을 갈아버렸다. 드래곤 맙소사 개무서워!
“하지만, 이제 좀 패턴이 보인다!”
내 말에 메인 파티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드래곤도 결국 용종.
블랙드래곤과 패턴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그동안 훈련해온 용종 패턴 대항 전술을 응용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이어지는 브레스와 꼬리치기 연계도 우리가 버텨내자, 더스크 브링어가 좁은 미간을 홱 찌푸렸다.
“오오냐, 적당히 다치게 하고 끝내주려 했건만, 계속해서 그렇게 버텨낼 거라면……!”
그리고 노을빛 마력의 대검을 움켜쥐고 우리에게 쇄도했다.
“더 거칠게 하는 수밖에-!”
그러자 루카스가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서더니, 품에서 손잡이만 남은 검자루를 꺼내들었다. [하사받은 검]이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왔더니, 이런 일이……!”
무엇도 없던 검자루에서 빛의 칼날이 솟구쳐 올랐고, 루카스는 그 검으로 더스크 브링어의 대검과 맞부딪쳤다.
츠카앙-!
맑은 검명(劍鳴)과 함께, 어처구니없을 만큼 간단하게 루카스의 빛의 칼날이 산산조각 났다.
“큭?!”
이를 악문 루카스는 몸을 틀어 이어진 대검 연격을 피해냈다.
정면 승부는 출력에서 상대가 안 됨을 깨달은 루카스는 다시금 솟구친 빛의 칼날로 대검의 옆면을 걷어내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대공!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나는 맨정신이다. 기사여……!”
“이곳은 무투대회입니다! 생사결이 아니고, 우리는 동료란 말입니다!”
“무투대회이지만 동시에 전술평가이기도 하잖느냐!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가 거칠게 포효했다.
“흑룡이 목검과 물대포 따위로 너희를 반겨줄 리 없잖느냐-!”
훌쩍 뛰어오른 더스크 브링어가 대검을 아래로 내려찍었다.
루카스는 [전신강림]까지 사용해 온몸을 금색 오오라로 뒤덮은 뒤, [의지의 일격]을 휘감은 검격으로 그것을 맞상대하려 했지만…….
“-이건 무리입니다!”
검이 닿기 직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자 땅을 박차고 몸을 굴려 자리를 이탈했다.
쿠과과광!
터져 오른 경기장 바닥이 허공으로 흙과 모래를 토해냈다. 그 흙먼지 속에서 더스크 브링어가 금빛 눈동자를 무섭게 희번덕였다.
“요리조리 잘 도망치는구나, 그러고도 기사인가……!”
“기사란 전투 방식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증명하는 자리인 법.”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루카스가 태연하게 답했다.
“대공께서도 그러실 것 아닙니까?”
“과인에게 삶의 방식을 운운하는가, 건방진……!”
땅을 박찬 더스크 브링어가 단숨에 루카스에게 짓쳐 들었다. 루카스는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대검을 피해내며 시간을 끌었다.
드래곤은 강력하다.
하지만, 거대하다.
공격 하나하나가 막강하지만, 움직임이 크고 무거우며 빈틈 또한 많다.
그렇기에- 사전에 패턴을 파악하고, 미리 회피한다.
이것이 용종을 상대하는 기본 전술이다.
‘잘 하고 있다, 루카스!’
나는 속으로 루카스를 치하했다. 루카스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와 쥬니어, 데미안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키이이잉!
그리고 쥬니어가 마법을 완성해냈다.
괴수전선이 보유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마법은 무엇인가?
그야 당연히 쥬니어의 궁극기, [원소 해체]다!
“흐읍-!”
지팡이 [로드 오브 크림슨]에 붙은 초고속영창 기능으로 3분 만에 궁극기 캐스팅을 끝낸 쥬니어가 [원소 해체]를 사용했다.
쩌엉-!
허공에 헤일로가 떠오르며, 타깃의 마력을 난도질…….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그때, 갑자기 우리의 앞으로 노기사가 달려들었다.
더스크 브링어의 휘하 용기사 중 필두기사, 앤디미온 경이었다.
단정하게 백발을 빗어넘긴 이 잘생긴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이 날렵한 동작으로 쥬니어의 지팡이를 몸으로 막았다.
[원소 해체]는 앤디미온 경이 대신 받아냈고, 더스크 브링어는 여전히 건재했다.“하지만, 이럴 줄 알고…….”
쥬니어는 씩 웃으며 계속해서 지팡이를 겨누었다.
“저도 비장의 수를 준비해뒀다고요-!”
그것은 바로…… ‘다중 영창’.
마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대신, 동시에 여러 개의 마법을 캐스팅 가능하다.
평소라면 끔찍한 연비 때문에 사용할 일이 없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까!
그리고 쥬니어는 자신의 SSR등급 마법사 로브, [지나간 미래]를 이용해 미래로부터 마력을 가불받아서 사용할 수 있다.
말이 길었는데, 아무튼! [원소 해체]라는 이 사기 궁극기를 동시에 잔뜩 영창해두었고-
쩡! 쩡! 쩌어엉-!
연속 발사가 가능해졌다는 것!
연속해서 [원소 해체]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남은 용기사들이 연이어 달려들어 대신 맞는 구도가 반복되었다.
용기사들은 처음부터 쥬니어의 마법을 염려한 듯 대기하고 있다가 몸으로 받아냈다.
“으어, 세상이 빙빙 돈다…….”
연속 4발을 쏟아낸 쥬니어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동시에 원소 해체에 맞은 용기사 4인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쪽을 보며 더스크 브링어가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비장의 수가 바닥났구나. 이제 어쩔 셈이냐, 애쉬?”
하지만 나도 웃었다.
“어떨까요, 대공…… 비장의 수가 끝나가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 같은데?”
“……!”
더스크 브링어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흰자위에 드리웠던 어둠이 흩어지고 있었다.
‘용혈폭주’가 멈춰간다는 신호였다.
네 명의 용기사 모두 [원소 해체]를 맞았다. 자연히 더스크 브링어와 연결된 마력로가 끊겼고, 용혈 공급도 중단되었다.
폭주에 사용할 만큼의 충분한 용혈이 모이지 않자, 더스크 브링어의 용혈폭주도 점차 사그라드는 모양새였다.
“그 전에 너희를 모두 쓰러뜨리면 그만 아니냐-!”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른 더스크 브링어가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저지하려던 루카스는 더스크 브링어가 기습처럼 날린 꼬리치기에 맞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고, 열심히 달려서 돌아온 에반젤린도 대검을 방패로 막아냈지만 한 번 더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찾아냈어요, 황자님!”
데미안이 소리쳤다.
“역린! 페이크 드래곤의 목 아래쪽이에요!”
“좋아! 갈겨, 데미안!”
데미안은 계속해서 이 게임의 승부 포인트- 페이크 드래곤의 역린을 찾고 있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데미안은 이미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고,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더스크 브링어는 그런 데미안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쩌억!
휘둘러진 마력 대검이 데미안의 활을 동강 내 버렸다.
“우왓?!”
얼른 항복 표시로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데미안의 앞에 서서 더스크 브링어가 사나운 입김을 내뿜었다.
“정말이지, 비장의 수가 왜 이리 많은 게냐, 애쉬에게는……!”
“하하. 대공께서도 황자님의 비장의 수이신 걸요. 황자님께서는 대공을 굳게 믿고 계신다고요.”
이어진 데미안의 말에 더스크 브링어가 움찔했다.
“이렇게 움직이시리라고, 굳게.”
“……!”
더스크 브링어가 무시무시한 눈을 내 쪽으로 홱 돌렸다. 이크!
촤르르륵!
나는 마력 성벽을 바닥에 일으켜 서핑보드 타듯이 경기장을 가르며- 이미 페이크 드래곤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더스크 브링어가 우선적으로 데미안의 저격을 막으리라 판단하고, 데미안을 미끼로 사용한 뒤. 나는 역린을 찾아낸 그 순간부터 페이크 드래곤을 향해 내달린 것이다.
“애쉬-!”
투학!
땅을 박찬 더스크 브링어가 날갯짓하며 나를 쫓았다.
하지만, 더스크 브링어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거리는 이미 벌어져 있다.
“체크메이트!”
나는 깃대를 들어올려 그 끝으로 역린을 겨누었다.
그때 내 뒤로 쇄도해오며, 대검을 들어올린 더스크 브링어가 소리쳤다.
“비켜라, 애쉬! 흑룡토벌전을 지휘하는 건 나다!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한다! 이것은 나의 숙명이다!”
“…….”
“비키지 않으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벨 테다!”
슬쩍 뒤를 돌아본 나는,
“아니에요, 대공은 못 베어요.”
방긋 웃었다.
“이 사랑스러운 조카의 몸에, 대공께서 손끝이라도 대실 리가 없잖아요?”
“……!”
얼굴이 일그러진 더스크 브링어가 소리쳤다.
“네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네 팔다리쯤은 얼마든지 날려버릴 수 있다! 당장 거기서 비켜-!”
“저는 대공을 믿어요. 그러니까, 안 비킬 거예요.”
“애쉬이이!”
내게 도달한 더스크 브링어는 망설임 없이 마력의 대검을 내려찍었다.
콰드드드득!
페이크 드래곤의 목을 가르고, 내 머리 바로 위까지 도달한 대검은…….
쿵……!
멈췄다.
내 머리카락 끝에조차 닿지 못하고, 더스크 브링어가 억지로 멈춰 세웠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더스크 브링어의 몸에서는 이미 용혈 폭주의 흔적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뿔도, 날개도, 꼬리도, 아지랑이처럼 변해 사라지고. 흰자위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파스스스…….
이윽고는 손에 들린 마력 대검마저도, 극심한 마력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곱게 땋았던 긴 흑발이 잔뜩 흐트러진 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더스크 브링어는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치사하구나, 정말.”
나도 알아요.
나는 그녀에게 눈웃음을 친 뒤, 페이크 드래곤의 역린을 향해 힘껏 깃대를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