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37
◈ 637. [자유탐사] 흑룡의 날개
며칠 뒤.
일선에 나설 영웅들의 훈련 및 드래곤 슬레이어 장비 제작이 끝나자마자 나는 영웅들을 이끌고 출진했다.
“흑룡의 날개 윙드후안의 레어에는 ‘가디언(Guardian)’이라 불리는 호위 병력이 있다.”
드래곤 레어의 필수 요소 중 하나.
호위병력, 가디언.
겨울철 곰마냥 툭하면 긴 잠에 빠지는 드래곤들을 지키는 부하 놈들이다.
레어 건설 때부터 집사처럼 고용되기도 하고, 부모 드래곤에게 물려받기도 하고, 바깥세상으로 모험을 떠나 데려오기도 하는 등, 드래곤들이 여러 수단으로 데려와 자신을 지키게 하는…….
자신의 뒤를 믿고 맡기는 충직한 병력이자, 수발을 드는 시종이자, 적과 싸울 때면 머릿수를 채워주는 잡졸들. 이것이 드래곤 가디언이다.
하지만 이곳 호수 아래 던전에서, 흑룡 군단은 각자의 레어는 틀었으되 가디언은 새로 들이지 않았다.
주변의 괴수 놈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
언제든 서로의 뒤통수를 때릴 준비만 하는 이 악당들을 뭘 믿고 같은 편으로 삼겠는가. 심지어 괴수들 대부분이 세계를 멸망시킬 뻔했던 강자들인데.
하지만 윙드후안만은 달랐다. 놈은 제 입맛에 맞는 여러 괴수 군단을 포섭해 가디언으로 부리고 있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요? 어떻게 다른 괴수 군단들을 부하로, 그것도 여러 군단을 둘 수 있죠?”
에반젤린이 물었고 나는 씩 웃었다.
“맞춰봐. 어떻게였을까?”
“음…… 급료를 잘 줬나?”
“이 호수 아래에서 급료가 무슨 소용이겠냐.”
“야망이 있다든가, 아니면 매력이 넘친다든가?”
“음, 야망도 매력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고.”
“뭔가 개쩌는 대의가 있어서 개쩌는 깃발을 휘둘렀나?!”
“그런 것도 아니야…….”
나는 그냥 정답을 말했다.
“정답은 정신지배야.”
“아.”
“윙드후안은 흑룡 군단 구성원 중에서 정신지배에 능한 드래곤이야. 마음에 드는 괴수 군단에게 정신지배를 걸어서 자신의 가디언으로 사용하고 있지.”
용으로서의 모든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지배 및 교란에 특화된 드래곤. 그것이 윙드후안이다.
그래서 첫 상대로 골랐다. 그나마 이쪽 능력으로 카운터가 되기 때문.
‘물론 특능 쪽을 카운터칠 수 있다는 거지, 본체 레이드는 다른 문제지만…….’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부하들을 돌아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춤 상대법은 지난 며칠간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야.”
다들 막바지 훈련을 빡빡하게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한계까지 장비와 무장을 주렁주렁 추가한 상태였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요?”
특히 쿠일란은 내가 바득바득 우겨서, 결국 털가죽 위에 새 갑옷과 건틀렛 등을 입은 상태였다. 갑옷 입은 늑대인간 같은 모양새라고 해야 하려나.
나는 대답 대신 엄지만 슥 치켜 보였다. 아니 장비 능력치가 복사가 된다니까? 예로부터 장비칸 불법개조는 스피드러너들의 필수 소양이었다. 우리도 알뜰살뜰 써먹어 보자꾸나.
절그럭, 절그럭-
나와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는 다섯 명의 기사들- 글로리 나이츠 또한 완전 무장 상태였다.
황제가 내게 양도한 이 기사들은 괜히 황제친위대가 아니었던 건지, 이곳 던전에서 내 안위를 지키는 경호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항상 갑옷을 입지 않던 헤카테도 이번에는 전신을 감싸는 푸른 갑옷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상태였다. 루카스가 자신의 갑옷 [수월]을 넘겨줬다는 모양이다.
“역시 잘 어울리는군요.”
그쪽을 살핀 루카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서 제게 만들어주신 갑옷답습니다. 다른 기사가 입어도 멋지군요.”
“네가 네 갑옷을 양보하다니, 웬일이냐.”
은근히 이 녀석 제 장비에 대한 애착이 장난 아니었는데. 웬일로 선뜻 양보했대.
“그야 주군께서 제게 더 좋은 갑옷…… 이 흑린이를 주셨으니까요.”
“……흑린이?”
“수월이도 창고에서 놀고만 있는 것보다는 전장에 나서는 걸 더 좋아할 테고.”
“……수월이? 지금 혹시 네 갑옷을 사람처럼 부르고 있는 거냐?”
하여간에 기사놈들이란…… 얘네 좀 다 이상해…….
“뭣보다 헤카테라면 주군과도 연이 있으니. 주군께서 만들어주신 갑옷을 입을 자격은 충분하지요.”
아무튼 이러저러해서 헤카테도 갑옷을 입게 되었다. 그동안 맨몸으로 다니는 거 보자니 영 불안했는데 잘됐지 뭐.
오랜만에 입는 갑옷이 불편한 듯 살짝 뒤뚱거리던 헤카테는 루카스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계속 찍어볼까, 말까.”
“응? 그건 무슨 소리냐?”
“있어, 그런 게.”
헤카테와 루카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반젤린이 호오~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빈 허공에 손으로 도끼를 내려찍는 시늉을 했다.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너는 또 왜 그래.”
“아뇨 뭐, 앞으로 저도 좀 적극적으로 찍어대 볼까 싶어서…….”
“……?”
영문을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는 쥬니어와 데미안을 돌아보았다.
“찍는 게 뭐야? 무슨 은어 같은 거야?”
“그, 글쎄요? 아하하…….”
쥬니어는 딴청을 피웠고, 데미안은 선하게 웃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찍히면 아플 테니까 저한테 오세요. 치유마법 걸어드릴게요.”
“고맙다, 데미안…… 요즘 젊은 세대 용어는 어렵구나.”
뭐 이런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전진하고 있는데, 우리의 앞쪽…… 일행의 최선두에서 걸어가던 더스크 브링어가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분위기를 푸는 것도 좋지만, 슬슬 경계하거라. 놈의 영역이다.”
“……!”
이윽고 보이기 시작했다.
널따란 울타리에 감싸인 크고 화려한 건물. 마치 고대의 신전처럼 보이는 이곳은…….
9구역 던전, ‘미술관’.
윙드후안이 레어를 튼 장소다.
“이게 무슨 미술관이야, 규모만 봐서는 궁궐 같구만…….”
내 중얼거림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실제로, 궁궐이었으니까. 왕실의 별궁 중 하나였는데,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여러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용도를 바꾼 곳이거든.”
모두 그쪽을 보자, 미술관 울타리에 기대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무명이 보였다.
“무명!”
“기다리고 있었다, 애쉬. 함께 가지.”
무명은 흑룡 군단 토벌에 이르러, 매 전투마다 꼬박꼬박 합류해주고 있었다.
이곳 호수 아래 어둠 속에서 이 왕녀님만큼 든든한 우군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함박웃음을 머금었고, 무명은 ‘너무 좋아하지 마라’ 같은 소리를 하며 내 옆에 섰다.
끼이익-
정원 울타리의 낡고 커다란 철문이 좌우로 열렸다.
우리는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린 채, 바짝 주위를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로부터 미술관에 이르는 넓은 길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그리고,
“……!”
그 길의 중앙. 대문과 미술관의 정확한 중간지점에.
서늘한 기운을 흩뿌리는 두 괴수가 서 있었다.
하나는 머리가 없는, 낡은 갑옷을 입은 기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잔뜩 등을 굽히고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쉼 없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는 여인이었다.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Dullahan).
그리고 우는 요정, 밴시(Banshee).
개별 군단으로도 충분히 막강한 이 두 괴수 군단이 바로 윙드후안의 부하. 윙드후안을 경호하는 가디언이었다.
‘거 가디언 선정 한 번 악취미적이네…….’
둘 다 존나 무섭게 생겼잖아, 시팔! 공포영화 특선이냐고!
적의 등장에 내 영웅들은 일제히 전투를 준비했는데, 괴수들의 대응은 뜻밖에 정반대였다.
《어서 오십시오, 인세의 수호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듀라한 군단장이 말했다.
머리도 없는데 어떻게 말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자 한쪽 팔에 투구가 들려 있었다. 잘린 머리가 저기 담겨 있나 보다.
《흑흑흑흑, 흑흑…….》
밴시 군단장도 무어라 말…… 아니, 무어라 흐느꼈다. 그냥 울고 있는 건가? 리듬이 좀 바뀐 걸 보니 말을 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내가 ‘저거 알아듣는 사람?’ 이라는 뜻을 담아 뒤를 돌아보자, 내 영웅들이 일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들 못 알아듣나 보다.
《주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어, 응…….”
아무튼 놈들은 우리를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루카스가 매우 격렬한 도리도리 고개 젓기를 해 보였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듀라한을 뒤따라 걸었다.
“나는 세계수호전선의 수장으로서, 세계제일의 파티피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튼 오는 초대는 거절하지 않는다.”
“누가 우리 선배님 부은 간 좀 치료해줘…….”
에반젤린이 탄식했고, 바로 데미안이 내 배 쪽에 ‘나아라 나아라’를 사용했다. 얘, 그런다고 내 지방간이 낫겠니? 요즘 부쩍 늘어난 알코올 흡수를 줄여야지.
농담과 헛소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어쨌든 아무 대책 없이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부하들은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
조용히 앞장서 우리를 안내하는 듀라한 군단장과 밴시 군단장.
두 괴수를 나는 자세히 관찰했다. 게임에서 만나본 그대로, 전형적인 해당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약간 특이한 점이 보였다.
‘깃털…….’
온몸에 깃털 장식이 잔뜩 꽂혀 있다. 새카맣고 윤기가 흐르는 깃털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흑흑흑, 흐윽흑흑흑…….》
“그나저나, 얘는 뭐라는 거야?”
《흐윽, 끄으윽, 흑흑흑흑흑.》
밴시가 거의 랩을 쏟아내듯이 흐느꼈고, 슬슬 불편해진 나는 듀라한에게 물었다. 음소거 버튼 없냐?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단순한 경고일 뿐이니.》
“경고?”
의아해진 내가 되묻자, 듀라한은 짧게 답했다.
《저희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
얼마 걷지 않아 미술관 본관에 도착했다.
고대의 신전처럼 지어진 거대한 궁궐이었는데, 우리가 본관 앞에 서자 안에서부터 거대한 석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리고 마침내, 석문이 활짝 열리고 나자…….
《어서 오도록, 인세의 수호자.》
미술관의 널따란 로비에서, 이곳의 주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긴 흑발을 말총머리로 묶고, 깃털 장식으로 뒤덮인 코트를 입은 남성이었다.
그가 황금빛 눈을 휘며 웃었다. 나는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윙드후안…….”
《이거 제대로 내 이름을 불러줘서 고맙군. 맏형은 내 이름을 기억도 못하고,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에 관심도 없거든.》
쓰게 웃은 그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널따란 로비에 구두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한 판 붙기 전에,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게 어떤가?》
“어떤 이야기? 피차 서로 싸워 죽이는 것 말고는 달리 공통된 관심사도 없을 텐데.”
《하하. 지성을 보유한 존재끼리 그렇게 반목만 해서야 쓰겠나.》
“그래도 지성을 보유한 존재라고 인정은 해주는군?”
오만하게 ‘인간 따위~’ 같은 상투적인 레퍼토리를 뱉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니었다.
그러자 윙드후안은 피식 웃었다.
《들어보아라. 세계의 존망을 걸고 싸운 끝에 한 번 죽고 나서, 까마득한 세월이 지나 되살아나 보니…… 용종은 모두 멸망했고, 애완동물로 여겼던 존재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다.》
나는 굳이 놈의 관점에서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대충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서 인류가 멸망한 지구. 냉동 캡슐에 들어가 있던 내가 일어나 보자,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나라를 건설하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
용들에게는 뭐 이런 느낌일까……?
《너희가 미천하고 저열한 존재라는 생각은 그대로다.》
“앗,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너희는 나름의 문명을 이룩했고, 무엇보다 내 동생들을 셋이나 쓰러뜨렸지.》
윙드후안은 로비에 전시된 미술품들을 쭉 훑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지만, 그 미소에 담긴 감정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목도한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아이들의 흙장난을 보고 대견해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 흑룡 군단의 손에 멸망할 것이고,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우리의 흑염 아래 불탈 테지만.》
“…….”
《그 전에…… 특히 인세의 수호자, 너에게 묻고 싶다.》
돌아선 윙드후안은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며, 그제야 본론을 물었다.
《왜 나를 먼저 공격하기로 했지? 내 형님이나 동생이 아니라, 어째서 나를 우선 공격하기로 한 것이냐?》
“…….”
《순수하게, 궁금하다. 나를 먼저 공격하기로 판단한 데에 어떤 근거가 있지?》
결국 그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왜 남은 셋 중에 자신에게 먼저 선빵을 갈겼느냐?
놈이 진지하게 묻기에, 나도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정답은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나는 숨기지 않고 조소를 머금었다.
“네가 제일 만만해서야, 이 X밥 새끼야.”
《…….》
제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정중하게 나왔는데, 설마 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던질 줄은 몰랐는지. 윙드후안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정중하게 나와주니까 나도 솔직하게 대답해주는 거다.
“셋 중에 네가 제일 약하고, 허접하고, 병신 같아서. 그래서 제일 먼저 줘패주기로 한 거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우리 바빠! 네 형동생하고 아빠까지 다 죽이려면 시간도 부족하고 힘들어!
얼른 뒈지고 템 재료나 뱉어,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