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36
◈ 636. [Side Story] 드래곤 슬레이어 (4)
그래서, 쿠일란에게 찾아가서 왜 장비 지급을 거절했는가 따졌는데.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 털 안 보이우, 대장?”
“응? 잘 보이는데.”
북쪽의 퍼리성애자들이 환장하는 도내 최상급 폭신폭신털이잖아. 잘 보여.
그 폭신한 자신의 가죽을 손끝으로 집어 보이며 쿠일란이 설명했다.
“이게 대장이 내게 준 갑옷이자 망토란 말이우.”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만월광의 학살자].
늑대왕 루나레드를 물리치고 만든 그 장비가 지금 저주를 발현해, 쿠일란의 등에 눌어붙은 상태라는 모양이다. 덧붙여 기존에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까지 모조리 함께 동화되어 버렸고.
그러니까, 지금 늑대인간 상태인 쿠일란의 털과 가죽은 기존 장비 성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시스템창을 켜봤더니 말대로였다. 맨몸처럼 보여도 멀쩡하게 장비 스탯 적용 잘 되고 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강변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장비 또 착용하면, 어?! 장비 위에 장비 또 입는 버그성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거 아니야?!”
“버……그? 벌레 말이우? 그게 무슨 소리요?”
아우 또 게임 용어 튀어나왔네, 아무튼 간에! 장비칸에 두 겹 겹쳐 입을 수 있으면 당연히 해야지 뭘 빼고 있어!
하지만 쿠일란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요는,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내 몸은 이미 충분한 방호력과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는 거요. 지금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부족한 상황이잖수? 장비가 없는 친구들에게 주는 게 더 낫지 않겠수?”
“으음, 과연…….”
이 말도 일리는 있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이제 막 생산 중이고, 수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니어도 남는 장비는 많지.”
다른 장비들은 창고에 그득그득 쌓여 있단 말이다.
“그중 적당한 거 내가 집어 줄 테니까, 몸 위에 걸쳐, 알겠지?”
“알겠수다, 쩝…….”
고개를 끄덕인 쿠일란의 내리깐 두 눈에 황금색 빛이 스쳤다.
“그게 괴수를 죽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 하겠수.”
“…….”
그런 쿠일란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쿠일란. 종족신의 선택을 받으니까…… 어떤 기분이야?”
종족신의 선택을 받은 4인방.
이들은 모두 스탯이 대폭 증가했다. 아직은 자신들의 새로운 능력을 완전히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지만, 온전히 사용하게 되면 기존보다 몇 배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지금 위험천만하게 흔들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내가 묻자 쿠일란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답해주었다.
“모든 게 증폭되는 기분이우. 능력뿐만 아니라 감정도. 기쁨도, 증오도, 슬픔도…….”
“감정도…….”
“그래서, 소중한 동료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저 괴수들이 증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수. 내가 이 정도인데, 가족을 잃은 다른 두 분은 더 심할 거요.”
말을 삼킨 쿠일란은 이윽고 늑대의 얼굴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도 최대한 맨정신으로 버텨보겠수다. 윤을 위해서라도.”
“헤에~ 윤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남녀 사이에 연애 감정만 있는 건 아니잖수?”
내가 짓궂게 묻자 쿠일란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대단한 전사고, 내 소중한 동료요. 게다가 나를 좋아하기까지 했지. 이런 사람에게 어찌 애틋한 감정을 품지 않을 수 있겠수?”
“…….”
“윤이 눈을 떴을 때, 세상이 평화롭고 안전하길 바라니까…… 그러니까 싸우겠수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서 웃었다.
괴수 앞에서 도망칠 생각만 하던 그 산적왕이, 어느새 이렇게 듬직한 수인왕이 되어버리다니.
***
쿠일란을 격려한 뒤 병영 밖으로 나오자, 인어왕 킹 포세이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킹 포세이돈.”
“애쉬 황자.”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킹 포세이돈 또한 드래곤 슬레이어 장비를 아직 지급받지 못한 상황이지만. 우선 순위가 아니기에 닦달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안 생겼지만, 이 아저씨 나처럼 후방 지원 역할이거든.’
근육빵빵 몸매만 봐서는 전위 영웅 같지만, 사실 킹 포세이돈은 후방 지원에 더 특화되어 있다. 급하게 드래곤 슬레이어 장비가 필요하지는 않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따로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잠시 말을 고르던 킹 포세이돈이 내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대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소.”
인어왕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의아하게 눈을 치떴다.
***
여관 에티의 벌꿀.
“헤카테.”
헤카테의 방 앞에 찾아온 루카스는 헤카테가 문을 열자, 대뜸 갑옷을 건넸다.
“이건 내가 그동안 입던 갑옷 [수월]인데…… 여성용으로 조정했다.”
“…….”
헤카테는 떨떠름하게 그 갑옷을 받아 들었다.
푸른색 갑옷이 맑은 광택을 발했다. 그동안 루카스가 사용해왔지만, 정성껏 길들이고 관리해왔기에 상태는 매우 좋았다.
“나는 이 새 갑옷 [흑린]을 얻었기에, 그 갑옷은 이제 주인이 없는 상태다. 네가 입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며 루카스는 새로 입고 온 갑옷을 자랑하듯 포즈를 취해 보였다. 칠흑빛 갑옷이 번쩍번쩍 윤광을 발했다.
‘아이 미친, 거기서 왜 니 갑옷을 자랑해!’
헤카테의 앞방.
문틈으로 빼꼼 눈을 내밀고 이 광경을 보던 쥬니어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선물 주러 왔으면 그냥 주기만 할 것이지, 왜 거기서 자기 새 갑옷을 자랑하고 있는 건가, 저 눈새 기사님은!
헤카테는 풋- 하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도 갑옷 있어, 루카스.”
“입질 않잖나.”
“내가 갑옷을 입지 않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야.”
헤카테는 옷소매 사이로 보이는 붕대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봐서 알잖아. 나는 어떤 부상을 당하든 내 ‘저주’로 재생하면 그만이야. 그러니까, 굳이…….”
“그래도 입어라.”
루카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걱정되니까.”
“…….”
눈을 동그랗게 뜨는 헤카테에게 루카스가 부연했다.
“주군께서 걱정하셨다. 네가 드래곤 슬레이어 장비 지급을 거절하고 있어서.”
“……아하. 전하께서.”
어쩐지 헤카테는 김이 샌 표정이 되었지만, 루카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드래곤 슬레이어 갑옷은 네 말대로 수량이 부족하다. 그러니 그 갑옷이라도 입어라. 아주 우수한 성능의 갑옷이다. 물론 내 새 갑옷보다는 못하지만.”
번쩍번쩍.
루카스는 재차 포즈를 취해 보이더니(이 시점에서 쥬니어는 뒷목을 잡았다)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마. 곧 주군께서 소집하실 테니 그때 보자.”
“응, 잘 가…….”
루카스는 성큼성큼 걸어갔고, 헤카테는 힘 빠진 손길로 손을 흔들었다.
“헤카테.”
그때 문득 뒤를 흘깃 돌아본 루카스가 엷게 웃었다.
“그 갑옷, 네게 잘 어울릴 거다.”
“…….”
“입은 모습, 기대하마. 그럼.”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간 루카스의 찬란한 금발이 이윽고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
헤카테의 시선이 멍하니 그 궤적을 따라가는 때였다.
우당탕탕!
앞방의 문이 열리더니, 문에 기대어 있었던 쥬니어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굴러 나왔다.
“…….”
“…….”
헤카테와 쥬니어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아, 아니! 엿들으려던 건 아니고!”
얼굴이 빨개진 쥬니어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무어라 변명하려 했지만, 헤카테는 대신 배시시 웃었다.
“알고 있었어요. 보고 계시는 거.”
“앗…….”
“저 검사에요. 글로리 나이츠 단장이고. 그 정도 기척은 읽을 수 있다고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킨 쥬니어가 크흠! 헛기침했다.
“그, 그래도…… 루카스 경, 마지막에는 좀 좋은 멘트 치고 가셨네요. 크흠. 조금 다시 봤다.”
“……그런가요?”
헤카테는 자신의 손에 들린 푸른 갑옷을 지그시 훑었다.
“오히려 잔인하지 않아요?”
“네?”
“이쪽의 마음은 받아줄 생각이 없으면서. 저렇게 별생각 없이 사람 마음 흔드는 말 던지고 가 버리고…… 잔인해.”
힘없이 갑옷을 바닥에 놓으며 헤카테가 읊조렸다.
“친구 이상은 될 생각도 없으면서.”
그러자 망설이던 쥬니어가 조심스레 물었다.
“……우정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아요?”
“네?”
“연심이든, 우정이든, 호감 가는 상대와 계속 이어져 있는 자체가…… 다른 무언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가. 괜찮지 않아요?”
헤카테가 쥬니어를 빤히 보았다. 쥬니어는 눈을 굴리며 횡설수설했다.
“그,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대화를 시도해보는,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왜,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도끼로 막 고백을 열 번이든 백 번이든 찍다 보면 휙 넘어올지.”
“…….”
“어, 어쨌든 썸 탈 상대라도 있는 게 어디에요? 저는 영 인기가 없어서…….”
목소리가 쪼그라드는 쥬니어 앞에서 헤카테가 하하하- 상쾌하게 웃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미소에 이번에는 쥬니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음을 그친 헤카테가 눈웃음을 쳤다.
“쥬니어 님은 도끼 찍어 본 적 있으세요?”
“어, 없어요…… 연애는 젬병이라서…….”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에게 조언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쪽이야말로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해 본 적조차 없는, 모태쏠로 아닌가…….
“그…… 죄송해요. 너무 멋대로 말했죠…… 무시하세요. 아으, 부끄러워.”
“쥬니어 님은 좋은 분이에요.”
헤카테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할 말을 잃은 쥬니어에게 헤카테가 파이팅! 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러니까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찍어버리세요. 알겠죠?”
“…….”
“틀림없이 좋은 인연이 오실 테니까요.”
감사했다고 인사해 보인 헤카테는 선물 받은 갑옷을 정리하겠다며, 갑옷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주 인사하고 멋쩍게 방문을 닫으며 쥬니어는 한숨을 토했다.
정말로 자신에게 오기는 할까. 기회든, 인연이든…….
어쩌면 이미 몇 번이고 눈앞을 스쳐갔지만, 루카스보다 더한 눈새인 자신이 모르고 흘려버린 건 아닐까.
“……뭐, 안 오면 어때. 놓쳤으면 또 어떻고.”
쥬니어는 자신의 방에 가득 들어찬 온갖 마법서와 역사서들을 살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할 일은 연애 말고도 많다고.”
……아니, 모쏠의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할 일 많다.
괜히 속으로 그렇게 내뱉으며 쥬니어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빈 공책을 펴고 깃펜에 잉크를 묻혔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든, 그러지 않든.
쥬니어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그녀 자신이 겪은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해서…… 기록하는 일이었다.
***
그날 저녁. 영주 저택 응접실.
나는 영웅들을 소집했다.
“우리가 사냥할 흑룡 군단의 남은 멤버는 셋.”
나는 칠판을 두들기며 설명했다.
나이트 브링어를 제외하고 남은 악룡의 수는 셋.
흑룡의 날개, 윙드후안.
흑룡의 눈, 아이피안.
흑룡의 순린, 스케이리안.
“이 셋은 힘이 비슷하다.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강해.”
그래서 고심했다.
이 셋을 어떤 순서로 잡을 것인가?
“이중 우선적으로 해치울 상대는 바로…….”
탁!
나는 지팡이 끝을 ‘날개’에 짚었다.
“윙드후안이다.”
꿀꺽…….
영웅들이 일제히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지팡이를 내리며 영웅들을 둘러보았다.
“자세한 전술을 짜기에 앞서, 이번 전투에 나설 이들을 호명하겠다.”
이번 레이드부터는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내가 몇 번이고 경고해두었기에 영웅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긴장한 낯빛으로 나를 보는 이들을 살피며, 나는 첫 멤버의 이름을 불렀다.
“우선…… 바이올렛!”
와아아아아!
영웅들이 모두 박수와 환호를 치며 영광스러운 첫 호명자 쪽을 보았다.
“…….”
바이올렛은 혼자 응접실 바깥, 열린 창밖에 있었다.
안뜰에서 포획괴수 파레키안의 등 위에 엎드려 누운 채,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초탈한 얼굴로 그녀는 힘없이 손을 휘저었다.
“예예, 데려가십쇼. 어느 지옥이든 아주 영주님 마음대로…….”
바이올렛은 릴리와 마르헤리타를 잇는, 투덜거리지만 해야 할 일 다 하는 영웅 계보였다. 힘내자, 우리.
그녀 쪽을 보며 피식 웃다가…… 천천히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작된다.
흑룡 군단과의 본격적인 전쟁- 악룡 레이드 3연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