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4
◈ 064. [STAGE 3] 길
3년 전.
집을 나선 에반젤린이 수도로 떠나던 날.
딸을 쫓아온 변경백은 에반젤린에게 자신의 기병창과 방패를 건넸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보였다.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외형에, 일대에서는 찾기 힘들 만큼 뛰어난 내구도의 무구였다.
그리고 에반젤린이 어린 시절부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댄 무구이기도 했다.
‘가져가거라.’
무뚝뚝하게 변경백이 내뱉었다.
‘도움이 될 거다.’
챙그랑-!
하지만 에반젤린은 아버지가 건넨 창과 방패를 바닥에 내던졌다.
‘필요 없어요.’
‘…….’
‘이딴 거, 안 물려받을 테니까.’
아버지를 흘겨보고 매몰차게 돌아선 에반젤린이 마차에 몸을 실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창과 방패를 보던 변경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반젤린.’
에반젤린은 아버지가 화가 나서 호통이라도 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북쪽은 춥다. 특히 황도는 겨울이 혹독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기 걸리지 말고 따뜻하게 지내거라.’
‘…….’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돌아오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에반젤린은 대답하지 않고 마차 문을 닫았다.
곧 마차는 출발했고, 마차의 시트에 몸을 파묻은 에반젤린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길의 끝으로 딸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
“…….”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낡은 기병창과 방패를 집어든 채, 에반젤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창과 방패는 혹독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어머니를 잃고 순식간에 늙어 버린 아버지처럼.
어린 시절에는 이 창과 방패가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괴물이 쳐들어올 때마다 묵묵히 무구를 챙겨서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등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나.
어쩌다가.
구오오오-!
뒤에서 쫓아온 골렘이 흉포한 괴성을 내뿜었다. 애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에반젤린! 어서!”
“……!”
에반젤린은 헐레벌떡 왼팔에 방패를 끼우고 오른손에 기병창을 쥐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보험 있다면서요, 선배님!”
“그래, 있지.”
“그럼 얼른 꺼내요! 저 한계에요. 그리 오래는 못 버틸 거예요!”
“이미 꺼냈어.”
애쉬 황자는 특유의 비열하면서도 자신만만하고, 그러면서도 잘생기기는 더럽게 잘 생긴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 있잖아.”
애쉬의 검지가 에반젤린의 이마를 톡톡 쳤다.
“네가 바로, 내 마지막 보험이다.”
에반젤린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예?”
“자자! 얼른 일어나. 보험 양! 아버지의 무구를 차고,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싸워!”
무어라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골렘이 이제 정말 코앞이었다.
에반젤린은 방패와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오랜 주인을 찾은 것처럼 무구는 두 손에 딱 들어맞았다.
그때, 어째서인지.
‘창은 이렇게 잡고, 방패는 이렇게 드는 거다.’
문득 아버지와의 옛 일이 뇌리를 스쳤다.
아주 어렸던 시절. 처음 창과 방패를 배우던 그 순간이.
이를 악물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에반젤린은 달려드는 골렘을 향해 기병창을 내찔렀다.
투콰악-!
그동안의 전투로 골렘들도 온전치 못했다.
너덜너덜해져 있던 흉부 장갑이 낡은 기병창의 공격에 단숨에 찢겨 나갔다.
훤히 드러난 마력핵을 에반젤린은 방패로 후려쳤다. 골렘이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러지며 단숨에 쓰러졌다.
그 뒤로 네 놈이 더 달려들었다.
에반젤린의 초록색 두 눈이 섬광을 머금고 번뜩였다.
착각일까? 일순 놈들의 움직임이 느려 보였다.
훤히 드러난 적의 빈틈이 보였다. 어떻게 스텝을 밟아야 할지, 어떻게 템포를 맞춰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펑! 쾅! 콰직! 콰광!
마치 눈앞에 ‘길’이 펼쳐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콰득! 우드득! 퍽! 쾅-!
막고, 찌르고, 막고, 찌르고, 막고 찌르고, 막고, 찌르고.
단숨에 네 번 막고 네 번 찔렀다. 완벽하게 제련된 움직임이 번개처럼 방어와 공격을 욱여넣었다.
에반젤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 네 기의 골렘은 조각조각 박살 나서 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어?”
도리어 당황한 에반젤린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격하게 움직인 반동이 뒤늦게 찾아왔다.
전신에 이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에반젤린은 방금의 감각을 떠올렸다.
뭐였지, 그건?
짝짝짝짝-
그때 박수소리가 들렸다.
뜨악하게 옆을 보자, 애쉬가 능글맞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훌륭한데, 보험 양? 제엔장 믿고 있었다고!”
“선배님. 방금 그건…… 도대체?”
에반젤린은 자신의 두 손을 떨떠름하게 내려다보았다.
“뭔가 ‘길’이 보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뭐죠?”
“뭐, 그야 지금 네 무구가 바로 네 전용장비니까. 업글 안 해도 특성은 적용되거든. 그 효과야.”
“……?”
전용장비? 업글? 특성? 효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에반젤린은 눈만 끔뻑였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 이상한 감각의 정체를 애쉬 황자는 알고 있다는 것.
“크흠! 그보다,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어.”
얼버무린 애쉬는 저쪽 하늘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지막 한 놈이다.”
“……!”
허공에는 예의 마석 골렘이 떠올라 있었다.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은 상태인데도 놈은 여전히 싸울 태세였다.
하나만 남은 손끝에 붉은 마력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죠? 너무 높아서 우리 공격은 안 닿을 거 같은데요.”
마석 골렘은 공중 10m 정도의 높이에 떠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원거리 무기가 없다. 애쉬의 마총은 탄환을 다 써 버렸고.
그나마 에반젤린이 투창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빗나가거나 피해 버리면 그 뒤는 빈손이 되어 버린다.
“방법이야 있지.”
애쉬는 씩 웃어 보였다. 이 상황에서도 잘도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웃는다고, 에반젤린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황자님께는 비책 보따리가 항상 한아름 있거든.”
애쉬는 서쪽 하늘을 보았다. 이제 해가 거의 다 떨어졌다. 곧 밤이 될 것이다.
“에반젤린. 오늘의 마지막 오더다.”
“말씀하세요.”
“놈을 향해서 곧장 달려가. 그러면 내가 놈을 떨어뜨려 주마.”
에반젤린은 어떻게 놈을 떨어뜨린다는 건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애쉬가 명령을 내리면 따른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가겠습니다.”
“마지막이다. 젖 먹던 힘까지 아자아자!”
“그 응원구호, 너무 구시대적인데요…….”
타앗!
에반젤린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핑! 피비빙!
마석 골렘에게서 이제 지긋지긋한 붉은 빛줄기가 쏟아졌다. 팔이 한 짝 뿐이라 그런가, 마법 공격은 훨씬 약해져 있었다.
쾅-! 콰과광!
“크윽……!”
문제가 있다면 에반젤린도 지칠 대로 지쳤다는 것 정도.
그래도 달린다. 경련하는 다리로 땅을 박차며, 그저 앞으로. 괴물이 도사리는 허공을 향해.
‘아.’
그때였다. 아까와 비슷한 감각이 들었다.
적의 공격을 피해 내면서 달리기에 최적의 ‘길’이 눈에 그려졌다.
‘뭐지, 이 감각은?’
방패를 위로 단단히 받치고 에반젤린은 그 길을 따라 내달렸다.
삽시간에 에반젤린이 쇄도해 오자 마석 골렘은 발악하듯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잘 했어, 에반젤린.”
그리고 마석 골렘의 신경이 완전히 에반젤린에게 쏠린 틈.
그 틈에 반대편으로 돌아서 마석 골렘을 향해 내달린 애쉬가 무언가를 품에서 꺼내들었다.
“이걸로…… 체크메이트다!”
그것은 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횃불이었다.
애쉬는 마석 골렘을 향해 그것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휙-!
이미 완전히 해가 저문 상황이었다. 까맣게 물든 하늘 아래로 푸른 횃불은 빛을 뿜으며 기운차게 솟아올랐고,
핑그르르…….
……이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마석 골렘을 맞추기는커녕, 발치에도 닿지 못하고. 푸른 조명으로 골렘을 한 번 비추고 끝이었다.
툭.
횃불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힘없이 울렸다.
“…….”
“…….”
적막이 흘렀다. 애쉬와 에반젤린은 물론이고, 마석 골렘까지 뻘쭘하게 굳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던 에반젤린이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뭐-”
그 순간.
번쩍!
멀리서 빛이 번뜩였다. 크로스로드의 성벽 쪽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쐐애액-
투학……!
느닷없이, 마석 골렘의 흉부가 터져 나갔다.
“뭐?!”
에반젤린은 똑똑히 보았다.
저 까마득히 먼 크로스로드에서 날아든 마탄이, 정확하게 마석 골렘의 가슴팍을 꿰뚫는 것을.
‘설마, 크로스로드에서 쏜 탄환?!’
애쉬 황자의 신호에 맞춰서, 이 먼 거리를 저격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경악하는 에반젤린의 귀에 애쉬의 고함이 들려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자, 한 번뿐인 찬스다! 에반젤린!”
기습에 완벽히 당한 마석 골렘이 추락하고 있었다. 애쉬가 손을 뻗으며 외쳤다.
“끝장내-!”
타앗!
에반젤린은 어느새 저 남자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추락하는 마석 골렘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려서, 발을 내딛어 허공으로 뛰어오른 다음,
“흐아아앗-!”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푸칵-!
크로스 가문의 낡은 기병창은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며 허공을 꿰뚫었고- 마지막 골렘의 마력핵을 관통했다.
그것으로 이 길고 끔찍한 전투도 끝이었다.
후두둑! 챙그랑……!
허공에서 박살이 난 골렘의 파편이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창을 들이민 몸 째로 골렘을 꿰뚫고 반대편에 착지한 에반젤린은 이윽고 앞으로 털푸덕 쓰러졌다.
“아……흐.”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과장 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겨우 몸을 뒤집어 바로 눕자, 핑글핑글 도는 시야에 애쉬 황자가 나타났다.
애쉬는 지친 미소를 지으며 에반젤린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고생했다. 에이스 후배님. 설마 진짜 해낼 줄 몰랐네.”
“……정말로 이제 끝인가요?”
“적어도 여기서는, 그렇지.”
정말로 단 둘이서 대형 몬스터 50기를 해치운 것이다.
물론 애쉬 황자가 꺼낸 비책이 상궤 밖의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전과인 것은 틀림없었다.
“선배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누구한테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일이긴 하지.”
애쉬는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단 둘 만의 전쟁으로 내버려 두자고.”
에반젤린의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저 이제 기절해도 돼요?”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버틸 수 있냐?”
“그게 명령이라면야…… 버티겠죠…….”
반쯤 감긴 눈을 치뜨려 애쓰며 에반젤린이 웅얼거렸다.
애쉬는 손을 뻗어 그런 에반젤린의 두 눈 위를 덮어 주었다.
“자도 돼, 꼬맹이. 마음 놓고.”
“…….”
“자장, 자장.”
맥이 풀린 에반젤린은 두 눈을 감았다.
곧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