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68
◈ 668. [STAGE 40] 복수자들 (2)
왕들의 회의는 끝자락에 도달했다.
그 총의(總意)는 병력을 동원해 직접 흑룡을 치는 것으로 모이고 있었다.
“전군을 이끌고 출병합시다!”
“놈이 계속 저렇게 쏴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어차피 결전을 치러야 한다면, 우리 쪽 전력이 온존되어 있는 지금이 적기요!”
반대하는 이는 황제였다.
“애쉬가 내게 미리 말해두었소. 자신이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되거든, 절대 나가서 싸우지 말고, 크로스로드에서 단단히 방비를 굳히라고.”
왕들이 반발했다.
“그럼 저 브레스를 계속 두들겨 맞으라는 말이오, 트라하?”
“……그쪽은 대책을 수립하고 있소.”
“수립하고 있다니! 당장 조금 뒤에 저 브레스가 또 이곳 요새로 날아오면,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 쪽 병영에 직격한다면, 그땐 반격을 시도도 하지 못할 거요!”
트라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쉬가 남겨둔 전언이 있긴 했으나, 왕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흑룡이 이곳 크로스로드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저 자리에서 몸을 고정하고 계속 대포처럼 브레스를 쏘아대기만 해도 요새도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애쉬가 남겨둔, 브레스를 막을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직 그 ‘방법’이 활성화가 되질 않았다. 애쉬가 사라지자 그 ‘방법’이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이었다.
‘브레스만 막아낼 수 있다면, 놈의 접근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 수 있을 텐데.’
트라하는 새삼 탄식했다. 이곳 괴수전선은 기형적일 정도로 자신의 막내 아들에게 의존하는 구조였다.
‘아들아. 이곳에서 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 스스로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다니. 적진의 끝으로 킹을 내던지다니.
‘사령관이라면 자신의 무게를 알고, 병사의 희생을 감사히 여기며,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 또한 덕목이거늘.’
그동안도 무모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 말고는, 활로가 없었기 때문에?
‘만약 애쉬가 판단하기에, 활로가 그것뿐이었다면.’
그렇다면 흑룡에 대한 이 반격은…… 의미가 있을까?
“트라하? 어찌하겠소?”
왕들이 부르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상념을 거둔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우리가 준비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합시다.”
플랜 A였던 원정대 토벌이 좌절되었으니.
플랜 B- 인간의 군대를 동원해, 흑룡의 목을 친다.
괴수와 전면전을 벌인다.
왕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트라하는 말을 이었다.
“우리 에버블랙에서는 중장기사단과 경장기병대, 그리고 뉴 테라에서 데려온 비공함대를 출진시키겠소.”
현재 크로스로드에는 에버블랙 군대의 주력(主力)이라 할 수 있는 1군단, 2군단, 3군단에서 차출해온 정예 병력이 주둔 중이었다. 크게 중장기사단, 경장기병대, 그리고 일반 보병으로 나뉘어 있었다.
트라하는 이들 중 일반 보병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출진시키겠다 선언했다.
게다가, 비공함대가 출격한다.
뉴 테라에 남아 있던 비공함대 전체가 현재 크로스로드에 와 있었다. 그 수는 도합 열여섯 척이나 되었다.
대표기함 알카트라즈는 퇴역 판정을 받고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나머지만 해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지난 파리대왕전 이후 개발한 각종 아티팩트 또한 설치해둔 상태였다.
“에버블랙의 주력군이 이렇게 나서준다면……!”
“충분히 할 만하겠군! 이건 승산이 있어!”
“좋소. 그럼 검은 호수로부터 하루 거리에서 흑룡을 맞이합시다. 비공함대는 먼저 출발하고, 이쪽 병력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 해당 지점으로…….”
왕들 또한 대부분 전란을 거치며 단련된 이들이었고, 병사들 또한 이 플랜B를 대비해 그동안 충실히 훈련을 진행해둔 상태였다.
지리멸렬하던 회의와는 달리 한번 결론이 나자 빠르게 명령이 오갔다. 출진 준비를 전달받은 병사들이 갑옷과 무기를 챙기는 소리가 회의장까지 들려왔다.
왕들은 자신들의 군대에 지시를 내리기 위해 하나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라하가 옆으로 손짓했다.
재빨리 다가오는 부관에게 트라하가 명령했다.
“중장기사단과 경장기병대를 준비시키고, 그리고…… 맥밀란 경을 불러오도록.”
***
“……후.”
에버블랙 제국 비공연대 사령관, 맥밀란은 어두운 얼굴로 파이프 담배를 빨았다.
지난 파리대왕전 당시 함대를 모두 잃고 알카트라즈마저 퇴역시켰기에, 당연히 경질되리라 생각했는데……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파리대왕과 맞서 싸운 경험은 함대 사령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맥밀란은 여전히 비공연대 사령관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느낌이 안 좋군.”
황제에게 출진 명령을 받고 비공함 격납고로 향하며 맥밀란은 연신 연기를 뿜어냈다.
파리대왕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맥밀란은 직감했다. 이 전투는 매우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 괴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것보다야, 이쪽의 전력으로 괴수의 목을 노려보는 게 낫다는 판단 또한 일리가 있었다.
웅크리고 힘을 모으는 것도 전력차가 적당히 나는 상대에게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다. 흑룡은 상궤의 까마득한 바깥에 있는 괴수였다.
먹히든 먹히지 않든, 이쪽이 전력을 다해 찌를 수 있는 찬스가…… 지금뿐이다.
“야간비행은 영 취향이 아닌데…….”
구시렁거리며 맥밀란은 걸음을 옮겼다.
비공함 격납고로 향하는 길 중간에 신전이 있었다. 원정대의 영웅들에게 병문안도 갈 겸, 또 이번 전투에서 쓸 수 있는 조언도 얻을 겸, 맥밀란은 이곳에 방문했다.
신전은 매캐한 탄내와 역한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흑염 브레스에 휩쓸려 화상을 입은 병사들이 쉰 목소리로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부상자들이 끝도 없이 침상에 누워 실려가고, 또 그만큼이 흰 천에 덮여 나와 신전 밖에 쌓이듯 눕혀졌다.
“…….”
꽉 다물린 맥밀란의 어금니에 힘이 까득, 들어갔다.
신전 안쪽 회랑에는 루카스가 앉아 있었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맥밀란이 손을 흔들었다.
“루카스 경! 아니, 지금은 루카스 사령관 대리인가. 몸은 좀 괜찮…….”
말하다 말고 맥밀란은 퍼뜩 입을 다물었다.
신전 입구에서, 불길하게 일렁이는 흑색 검을 품에 끌어안은 채 휴식 중인 루카스의 모습이…… 일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늑대- 혹은 그보다 더 사악한 무언가.
평소 애쉬 황자의 뒤에서 순하게 웃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접근하는 누구든지 찔러 죽일 것 같은 살벌한 기세를 흩뿌리는 기사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 루카스 경뿐만이 아니야.’
그제야 신전 안쪽을 둘러본 맥밀란은 눈치챘다.
치료받고 휴식 중인 영웅들 모두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다들 피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며, 자신들의 몸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깨어진 유리 조각들 같았다.
본래는 하나로 투명하고 아름다웠던.
하지만 지금은 부서지고 흩어져서, 다가가면 베일 것만 같은.
“……맥밀란 경.”
맥밀란의 방문을 한 박자 늦게 눈치챈 루카스가 목례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아, 사령관 대리. 그러니까…….”
“사령관 대리가 아닙니다.”
루카스가 즉시 반박했고, 맥밀란은 눈을 깜빡였다.
“예?”
“그 직함은 조금 전에 반납했습니다…… 절대로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셔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습니다만, 왕들께서 듣지 않으시기에. 반납하고 왔습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그런 거창한 이름을 달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을 가야 해서.”
바닥을 보는 루카스의 두 눈이 서늘한 빛을 뿜었다.
“……해서, 맥밀란 경. 무슨 일로 방문하셨는지.”
맥밀란은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루카스가 먼저 들은 대로, 크로스로드에 주둔 중인 병력 대부분이 일시에 흑룡을 치기로 했으며, 비공함대 또한 이번 작전에 동원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비공함대를 지휘하게 되었는데 혹시 줄 조언이 없냐는 것.
그러자 루카스는 묵묵히 흑룡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사전에 애쉬로부터 흑룡의 공격 수단과 육체적 능력에 대한 자료는 전선 전체에 모두 전파되어 있었지만, 실전에서 영웅들이 얻은 정보는 더 값진 것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흉악한 것이었다.
받아든 정보를 살피며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맥밀란에게, 루카스가 덤덤하게 덧붙였다.
“현재 부상이 심해 이번 전투에 도움 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치렀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맥밀란 경. 진심으로 승전을 기원합니다만, 그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진 루카스의 말에 맥밀란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망쳐야 할 때를 잘 판단하십시오.”
“…….”
“병력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아야, 저희가 복수를 위해 나설 때…… 방패가 되어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루카스는 눈을 감고 기둥에 머리를 기댔고, 맥밀란은 우물쭈물하다가 뒤로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느낌이 안 좋군.”
신전 바깥.
잠시 품에 넣어두었던 파이프를 다시 입에 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맥밀란은 탄식했다.
“느낌이 안 좋아…….”
줄곧 캄캄해서 지금 시간이 낮인지 밤인지, 하늘에 떠 있는 저 흐릿한 구체가 태양인지 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려는지도, 도저히…….
***
크로스로드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출진한 병력은 검은 호수에서 하루 거리, 크로스로드에서 이틀 거리인 지점에서 집결했다.
크로스로드에는 괴수전선 직속 병력과 제국군 소속의 일반 보병, 그리고 가을 축제 이후 보충된 의용군과 이종족 군대가 남았다. 이종족 대표들이 모두 출진을 반대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결전지에 집결한 군대의 수는 3만에 달했다.
처음에 왕들이 병사를 데리고 올 때, 숫자만 불린다면 더 늘릴 수도 있었으나 애쉬의 지시로 각국에서 정예들만 추리고 모았다. 그러고도 3만이었다. 게다가 대 괴수전을 상정하고 몇 달 동안 함께 훈련하기까지 했다.
인류의 최정예 연합군 3만.
게다가, 하늘 위에는-
기이이이잉!
비공함대.
세계 최강의 병기이자 에버블랙 제국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비공함대가 그 위용을 떨치며 좌우로 산개. 저 멀리서 하늘을 점거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대로만 합시다.”
검은 호수에서 크로스로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응시하며, 신기루 부족의 족장이 말했다. 그러자 주위의 각 부대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군의 총지휘는 신기루의 족장이 맡았다. 유랑민족인 이들은 오랫동안 고블린과 전쟁을 치러왔으며, 괴수들과 싸워 온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에버블랙 제국 중장기사단과 비공함대의 지휘는 각자 중장기사단장과 비공연대 사령관이 맡기로 했다.
지휘체계는 모두 진작 짜여 있었다. 문제는 작전.
‘매복. 포위. 기습. 섬멸.’
현재 연합군은 계곡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좌우의 숲에 숨어 있었다. 애초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이쪽 숲속에 숨겨진 채 설치되어 있었다.
계곡의 좌측에는 왕국 연합군. 우측에는 제국 중장기사단과 경장기병대.
이들은 숨을 죽이고 매복해 있다가, 흑룡이 비공함대를 발견하고 시선이 쏠린 틈에 일시에 좌우에서 포위하여 기습할 것이다.
기척이 들킬까 봐 멀찍이 떨어진 숲 중턱에 매복했고, 광역 은신을 돕는 아티팩트까지 동원했다. 괴수는 꿈에도 모를 터.
그리고 이들이 흑룡에게 들러붙어 시간을 끄는 동안, 비공함대와 각국의 왕하 마법사 부대가 놈을 마무리한다.
“모두, 죽음을 결의하고 싸우면…… 반드시 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요.”
신기루의 족장이 결연하게 말했다.
“인간의 의지를 보여줍시다.”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현재 이곳의 병력 중 상당수는 파리대왕전을 치르고도 전선에 남은 베테랑이었다. 이들의 의지는 강인했고, 세계를 지켜내는 결사대라는 자부심 또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쿵……. 쿵……. 쿵…….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저 계곡의 끝에서 나이트 브링어가 나타났다.
어둠 그 자체가 일렁이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놈은 용이라기보다는 밤이라는 바다를 유영하는 아주 커다란 고래처럼 보였다.
괴수의 거체가 미끄러지듯 지면을 밟으며 빠르게 가까워졌고, 그만큼 시야에 가득 차며 거대해졌다.
꿀꺽…….
인간들이 일제히 마른침을 삼켰다.
뿜어져 나오는 악룡의 압도적 사기(邪氣)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거리며 나왔다. 떨리는 숨을 토해낸 신기루의 족장은 두 눈을 꾹 감고 조용히 기도를 읊었다.
“위대한 태양과 모래의 신이시여, 오늘 저희의 갑옷을 지켜주시옵고, 저희의 칼에 광명과 영광을 깃들게 해주시옵소서…….”
그 순간.
쩌억…….
신기루 족장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벌어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뒤이어 축축한 열기가 그의 터번 쓴 머리 위로 쏟아졌다.
“……?”
의아해하며 신기루 족장이 고개를 들어 위를 살피자,
그곳에는 금색 눈을 번뜩이는, 흑룡의 떠다니는 머리 하나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잔혹하게 웃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주려 했는데…….》
걸음을 걷다 멈춰선 괴수의 본체로부터, 흑룡의 가운데 머리가 타이르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앞에서 태양을 찾으면 안 되지.》
“……신이시여.”
신기루 족장이 이를 악물고 자신의 곡검을 뽑아드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
그의 위에 떠 있던 흑룡의 머리가 지면을 향해 불꽃을 토해냈다.
연합군 지휘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조리 불길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