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95
◈ 695. [STAGE 40] 나이트 클로징 (3)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너진 성벽 쪽에서 무사히 마탄 저격이 성공하는 모습을, 그리고 마탄이 헤집은 어둠의 장막 속으로 두 척의 비공함이 진입하는 모습을 모두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쪽이 문제가 아닐 텐데.”
그때 크라운이 혀를 차며 내뱉었다.
“지금 진짜 문제는 이쪽이라고.”
“……!”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욱하게 펼쳐진 안개 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 엉겨 붙은 두 신화시대 괴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콰득, 콰득…….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입과 날카로운 이빨은 나이트 브링어의 목을 꽉 깨물고 파고든 상태였다.
그리고,
“윽……!”
그 거대한 뱀의 몸통은 중앙에서 끊어져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허리 정도일까. 찢어져 동강 난 몸통의 단면에는 거대한 뼈가 부러진 채 비죽 나와 있었고, 근육과 살점이 줄줄이 찢겨 늘어진 모습이었다. 단면에서 피와 내장이 끊임없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그런 상태로도 요르문간드는 나이트 브링어의 목을 깨문 채, 남은 몸으로 나이트 브링어를 감고 꽉 죄어 압살시키려 했지만.
《전생에는 그 적룡이 네 마지막 여행을 막았다지?》
나이트 브링어는 그런 요르문간드의 위아래 턱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천천히 목에서 떼어내더니…… 공중에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막아주마.》
나이트 브링어의 두 손에 번뜩이는 어둠이 맺혔고, 그대로-
콰득, 콰드드득……!
요르문간드의 아가리를 위아래로 한껏 잡아당겨, 양분하듯 뜯어내기 시작했다.
뱀의 긴 입가가 쩍쩍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몇 초 버티지도 못하고 그대로 위아래로 쪼개질 것이 거의 분명해 보였다.
“그렇겐 안 되지……!”
어렵게 모셔 온 원군이다. 이대로 허망하게 쓰러지게 둘쏘냐!나는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촤르르륵!
그러자 내가 입고 있던 사슬 코트 형태의 갑옷- [높은 탑의 주인]이 분해되듯 벗겨지더니 내 오른손 위의 허공에서 새로운 형태로 뭉쳐졌다.
더스크 브링어가 즐겨 사용하던, 대검의 형태로!
그리고 나는 더스크 브링어가 그러했듯이, 내 몸속에서 한껏 적룡의 마력을 일으켜…… 대검에 주홍빛 기운을 가득 담은 뒤, 있는 힘껏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투학-!
미사일처럼 쏘아진 사슬대검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날아갔고, 다음 순간 나이트 브링어의 팔뚝에 박히며 사방으로 피보라를 일으켰다.
나이트 브링어는 그런 상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직후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팔뚝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앗-!
사슬대검이 산산이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그 사슬 조각 하나하나마다…….
척! 척! 척!
나의 잿빛 그림자들이 소환되어, 사슬 조각을 하나씩 움켜쥐며 나이트 브링어의 팔뚝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나이트 브링어가 기함했다.
《이것은……?!》
나는 입가를 치켜올렸다.
잔영의 군대.
내가 소환한 나의 분신. 진짜 애쉬가 싸워 온 공략의 기억들.
이 그림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 무기에는 각각 [높은 탑의 주인]을 이루는 사슬 조각이 하나씩 깃들었고, 그리고 이 사슬 조각에는 조금 전 내가 불어넣은 적룡의 마력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내가 소환한 잔영의 군대는, 모두가 적룡의 기운이 깃든 1회용 수류탄을 장비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적룡과 흑룡은 서로 상극.
푹! 푸칵! 푸확-!
그림자들이 무기를 내려찍자 사슬 조각에서 적룡의 마력이 폭발하며 흑룡의 팔뚝에 대미지를 입혔다.
펑! 퍼버버벙!
오래 버티지 못하고 흑룡의 한쪽 팔이 터져나가며 요르문간드를 놓쳤다.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그 팔에 꽂혀 있던 사슬대검도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상륙했던 내 분신들도 모조리 터져나갔다.
촤르르륵!
잠시 뒤 사방으로 날아갔던 사슬 조각들이 몰려들며 내 몸 위에 코트의 형태로 다시 입혀졌다.
《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스케이리안과 바이올렛, 크라운은 물론이고, 심지어 눈이 없어 이쪽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파레키안까지도 기겁했다.
스케이리안이 큰 눈을 굴려 제 몸 위의 나를 올려다 보았다.
《이런 응용법은 어떻게 생각해낸 거래?》
“…….”
찐애쉬놈 기억에서 가져왔다는 말 대신 조용히 있기로 했다. 내가 백그라운드 설정이 좀 복잡한지라…….
“됐고, 요르문간드가 무사한지 살펴야 해. 가자, 크라운!”
“이제 명령 내리는 게 자연스럽군…….”
나는 스케이리안의 등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고, 투덜거리면서도 크라운은 내 뒤를 따랐다.
《…….》
나이트 브링어가 놓치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요르문간드는 두 눈을 감고 혀를 길게 뻗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와 크라운은 이 뱀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봐 요르문간드, 죽었어?”
내가 뱀의 뺨을 때리며 묻자 크라운이 코웃음 쳤다.
“그렇게 쉽게 죽으면 세계의 뱀이 아니지.”
직후 요르문간드의 뜯겨나간 몸 단면을 살핀 크라운은 조용히 턱을 쓸어내렸다.
“……아니, 곧 죽겠는데?”
“너무 그렇게 쉽게 말 뒤집지 말아 줄래…….”
“부상이 너무 심해. 제아무리 세계의 뱀이라 해도, 이건.”
나는 잔영의 군대를 추가로 소환했다.
마법사와 사제 등의 그림자 애쉬들이 줄지어 소환되었다. 이 분신들에게 급한 대로 요르문간드의 응급처치를 맡긴 뒤, 나는 뒤돌아섰다. 느긋하게 치료할 시간이 없었다.
쿵……. 쿵……. 쿵…….
가까워지는 어둠 속에서 분노한 황금안이 번들거렸다.
나이트 브링어가 성큼 나를 향해 다가왔다. 불과 조금 전 터져나갔던 팔은 이미 상처 하나 없이 재생이 완료된 상태다.
“친애하는 파티 여러분.”
찌르고 베어도 꿈쩍 않는 밤을 노려보며, 나는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우리 쪽 특임대가 제 임무를 다할 때까지,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애쉬.》
스케이리안이 파레키안과 바이올렛을 바닥에 내려두더니, 나를 향해 조심스레 속삭였다.
《오는 길에 우리가 말했던 ‘비장의 한 발’…… 잘 사용해주길 바랄게.》
스케이리안이 깊게 고개를 끄덕였고, 뒤이어 파레키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렛도 눈치를 살피더니 다급하게 고개를 파닥거렸다.
피식 웃은 나도 한 번 고개를 끄덕여준 뒤 다시 정면을 보았다. 이제 나이트 브링어는 코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발악을 지켜보는 것도 지겹다, 애쉬……. 이번에야말로 끝내도록 하지.》
나는 허리춤에서 예식용 장검을 뽑아 들고 깃대로 변환시켰다.
“그래? 나는 매번 새로운데. 너와 싸우는 모든 순간이 신나고 다채로워. 세 번 정도가 아니라 한 칠백사십삼 번 정도 더 싸워도 좋은걸? 우리 같이 이 밤을 불태워볼까?”
코웃음 친 나이트 브링어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네 꼬락서니는 네 손에 들린 그 텅 빈 깃대와 하등 다를 바 없다.》
“…….”
《깃발은 이미 불탔고, 지켜야 할 성벽은 무너졌지. 깃발 잃은 기수이며, 성벽 잃은 성주여…… 대체 무엇을 위해 더 싸울 텐가?》
“안 보이나? 깃발은 여기에 있는데.”
힘들게 조각을 모아 만들었던 [위대한 사령관의 깃발]은 이미 불타고 사라져 버렸지만.
그 공략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 삶의 궤적이…… 내 영혼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내가 바로 깃발이다.”
《……!》
“지난했던 그 모든 산산조각의 과정이, 바로 내 삶의 증명이다.”
탁-!
텅 빈 깃대를 바닥에 꽂고.
“깃발이 없어도 유지가 남아 있다면 기수는 가장 앞에 서서 행군할 수 있고, 성벽이 없어도 사람이 남아 있다면 성주는 가장 앞에 서서 싸울 수 있다.”
나는 웃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번쩍-!
텅 빈 깃대로부터 솟구쳐오른 회색 마력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동시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높은 탑의 주인] 또한 산산이 흩어졌다.
내 뒤에 다시금 잔영의 군대가 소환되었고, 사슬 조각들이 날아들어 내 분신들에 하나씩 깃들었다.
척! 척! 척!
무수한 분신들이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고,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나이트 브링어를 노려보았다.
내 머리에 씌워진 [높은 탑의 주인]의 투구, 이 모든 사슬 조각들의 컨트롤 제어부가 하얗게 빛나며 헤일로를 회전시켰다.
내 의식이 모든 분신들의 내부에 파고들며 이전보다 더욱 완벽하게 분신들의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초월자로서 격이 오르며, 내가 보유한 모든 능력 또한 몇 단계씩 강화된 상태였다.
지금 상태의 나이트 브링어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나.
시간을 끄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고 뻔한 소리만 줄줄이 늘어놓는군.》
나이트 브링어는 짧게 혀를 차더니.
《좋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감상해주마.》
악룡은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그 몸을 한껏 부풀리고서, 자신이 보유한 모든 공격수단을 장전했다.
《너의 그 고루한 영웅놀이의 끝을. 이번에야말로 모든 희망이 파괴된 뒤에 네가 흘릴…… 눈물의 맛을.》
고오오오오오……!
밤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멸절기 ‘벼려낸 밤’을 숨 쉬듯 가볍게 장전하며 나이트 브링어가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플레이어. 내가 하늘에 뿌려둔 어둠을 파괴하러 별동대를 파견했지?》
“……!”
《그것이 너의 마지막 희망이렷다.》
불길처럼 일렁이는 황금안 아래로 악룡의 기다란 입가가 뒤틀렸다.
《너의 얕은 수작을 알고 있음에도, 왜 내가 굳이 막지 않았는지 모르겠느냐?》
그리고 다음 순간,
펑, 콰광……!
먼 남쪽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무언가의 폭발음이 울렸고, 검게 물든 하늘에서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듯한 섬광이 번뜩였다.
비공함의 폭발이 틀림없었다.
《내가 하늘에 뿌린 저것은 단숨한 어둠의 장막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창세로부터 멸망을 목전에 둔 이 순간까지, 그 어떤 필멸자도 건너지 못한…… 절망의 늪이다.》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참으로 하찮은, 손에 쥐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모래알 같은 희망이로고.》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나이트 브링어가 즐겁다는 듯 속삭였다.
《좋다. 바스러뜨려 주마.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네가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할 때까지……!》
다음 순간, 악룡이 쏟아낸 밤의 파도가 내 분신의 군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
라 만차는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뱃머리에 부착된 [굳건한 미신]을 믿고, 우악스럽게 충각(衝角)을 반복하며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겼다.
어둠의 장막은 겹겹이 쳐져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무명이 쏘아낸 빛, 그리고 뒤이어 꽂힌 데미안의 저격이 층마다 구멍을 내어놓았다. 그 빛의 궤적을 따라 날아오르며 라 만차는 전진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장막 너머의 장막 속으로 파고들수록 시계(視界)가 어두워졌다. 어느 순간 라 만차는 방향을 잃었다. 함께 오던 알카트라즈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무슨…….”
조종간을 잡고 있던 켈리베이가 신음했다.
나침반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구 회전했고, 스캐너며 갖은 마법 아티팩트들은 어느새 작동을 멈췄다.
별자리처럼 앞길을 밝혀주던 무명의 빛과 데미안의 마탄 또한 더 이상 그 궤적이 보이질 않았다.
완전한 암흑.
모두가 당황했다. 켈리베이는 이를 악물고 종족신의 기운을 일으키며 주위를 살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도 보이질 않았다.
“망할,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
새파란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루카스 또한 필사적으로 방향을 찾는 그때였다.
쐐애애애액!
온 사방에서 촉수가 쏟아졌다.
새카만 어둠이 질척한 사기(邪氣)를 내뿜으며 전후좌우상하 모든 방위에서 덮쳐왔다.
켈리베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조종간을 움직여 그 공격으로부터 비공함을 회피시켰지만, 공격은 끊임없이 쏟아졌고 피할 수 있는 경로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대로는-”
켈리베이는 말을 맺지 못했다.
정면에서 날아든 거대한 손아귀 같은 것이 그대로 라 만차의 함교를 향해 내리꽂혔다. 회피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투학-!
어둠을 꿰뚫고 날아온 알카트라즈가 그 손아귀를 대신 맞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둠의 손아귀는 뼈대만 남은 제국의 기함을 낚아채더니, 가볍게 우그러뜨렸고-
펑! 콰과과과광!
알카트라즈는 눈부신 폭발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