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16
◈ 716. [STAGE 41] 망령왕 (3)
얼음의 정령왕이 망령왕의 다리를 얼리자 놈은 움직이지 못했고, 그런 망령왕의 몸 위로 우리 측 마법 폭격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크오오오……!
망령왕은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이 모습을 보며 제니스가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흑흑, 최고다 우리 아들…….”
한니발이 한 건 해낸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군.
그런 제니스를 한심하다는 듯 보던 사제장 로제타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안 나서도 될 것 같군요. 전하.”
“그럴 것 같네.”
나는 팔짱을 끼고, 저쪽에서 허물어지는 망령왕의 모습을 살폈다.
나머지 장비들도 테스트를 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망령왕이 무너지고 있기도 했거니와 엄밀히 말해서 테스트할 여건도 아니었다.
제니스와 로제타에게 지급한 맹세 시리즈는 잡몹 난전에 특화되어 있고, 포획괴수들에게 지급한 장비도 망령왕 같은 초거대괴수에게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요르문간드의 경우에는 제법 쓸만하겠지만…….
‘주변이 남아나질 않겠지.’
요르문간드에게 준 장비 [옛 신의 허물]은 3턴간 전성기의 모습으로 변신시키는 장비.
다시 말해 이 쪼꼬미 요르문간드를 예전의 그 커다란 모습으로 10분간 되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망령왕과 좋은 크기 승부가 되겠지만, 그 정도 규모 싸움을 붙이기에는 우리가 좀 가깝기도 하고, 요르문간드의 육체 돌격은 결국 물리 대미지다 보니 물리 면역인 망령왕을 쓰러뜨리기엔 무리가 있다.
해서 나머지 장비 테스트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대로 마법 포격으로 끝장내기로 했는데…….
《크오오오오오-!》
가만히 마법을 두들겨 맞고만 있던 망령왕의 기세가 문득 변했다.
쩌적, 쩌저적!
놈의 몸을 이루는 전신 갑옷에 갑자기 새파란 실금이 사방으로 번져갔다. 나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저건 우리가 입힌 손상이 아니야!’
놈의 갑옷 내부로부터 팽창한 기운이, 갑옷 전체를 당장 터뜨릴 듯 부풀린 모양새였다.
갑옷 전체가 쩍쩍 소리를 내며 내부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드러난 틈새를 통해 푸르고 창백한 기운이 바깥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기함한 나는 손을 위로 들며 소리쳤다.
“포격 중지-! 전원 방어 태세로 전환하라-!”
대포를 쏘던 병사들이 다급하게 대포를 내팽개치고 뒤로 물러났고, 마법사들 또한 공격 마법을 멈추고 방어 마법으로 전환했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방패 대신 임시 방패를 들고 전방으로 뛰쳐나간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선배님, 그럼 저게……!”
“그래. 놈의 최후 패턴…….”
뜻밖의 상황 전개에 나는 치를 떨었다.
“갑옷 내부의 본체……응축되어 있던 망령들을 일제히 사출하는 최후의 일격이다!”
스테이지1의 망령기사와 마찬가지로, 망령왕 또한 갑옷을 모두 파괴하면 갑옷 안의 유령이 쏟아져 나온다.
망령기사가 쏟아내는 망령의 경우에는 단순한 정신계 상태이상을 걸고 끝이었지만, 망령왕이 쏟아내는 망령들은 정신계 상태이상에 더해 피격자의 영혼에 직접 대미지를 준다.
‘설마 그걸 스스로 사용하다니!’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갑옷을 파괴하며 남은 여력을 모조리 망령 사출 쪽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이 미친 괴수 새끼 예나 지금이나 꼬장 부리는 데에 도가 텄다니까!
그때 에반젤린의 옆에서 함께 방어를 준비하던 루카스가 묘하게 으스대는 것이 들렸다.
“주군과 첫 방어전부터 함께해온 ‘원년 멤버’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패턴이지.”
“아 진짜! 유세 부리지 말고요, 아저씨!”
에반젤린이 투덜거렸다.
평소처럼 투닥거리며 긴장을 푸는 둘이었지만, 어째 둘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하고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에반젤린이 루카스를 몇 대 가볍게 치든가 했을 텐데. 그게 아니면 루카스가 먼저 에반젤린에게 장난을 더 걸었을 텐데.
지금은 굳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서로 눈도 안 마주친다.
‘으음…….’
괜찮으려나, 저 둘.
……아, 아니, 지금 이런 풋풋한 감성 걱정할 때가 아니야. 저런 문제는 자기들 알아서 해결하라 하고.
퍼어엉-!
무시무시한 파열음과 함께 망령왕의 전신 갑옷이 조각났다. 내부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폭죽처럼 쏟아지는 갑옷 파편 사이로…… 푸르고 창백한 망령 무리가 귀청이 떨어질 듯한 귀곡성을 울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뿜어져 나왔다.
그야말로 망령의 폭풍이라 할 만한 모습이다.
“히이이익!”
“으아아아-!”
절로 기가 질리는 광경이었다. 숙련병들은 더한 꼴도 많이 봐왔으니 침착하게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버텼지만, 의용군들은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장비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엎드리는 이들이 속출했다.
‘[불굴의 지휘관] 적용 중인데도 이 모양인가.’
과연 망령왕. 게다가 일종의 자살공격이라 그런지 그 기세가 한층 더 강맹한 느낌이다.
‘정신계 상태이상이야 내가 무효화하면 그만이고, 망령의 영혼 공격에 대한 방어 체계도 미리 준비해오긴 했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망령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버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예상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내 새 장비 테스트를 해볼까?’
앞으로 한 걸음 나선 나는 후, 숨을 들이켰다.
오른손 약지에 차인 나의 새 장비, [옥새 반지]를 흘깃 내려다본 뒤,
“나는 세계수호전선의 사령관으로서.”
천천히 시동어를 뱉었다.
“이 전선의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어떤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던 반지에 무상징(無象徵)의 흑색이 가득 찼다. 세계수호전선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The buck stops here.
되뇐 뒤, 앞을 노려보며-
나는 반지를 낀 손으로 주먹을 쥔 뒤, 눈앞의 허공을 내려찍었다.
번쩍!
그러자 마치 허공에 인감이 새겨지듯 옥새가 빈 공간에 찍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촤르르르륵-!
허공에 찍힌 상징의 주위로, 곳곳에서 투명하고 흰 기운이 휘몰아치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흰 기운은 크로스로드에서 날아들어 모이고 있었으며, 이곳 전장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서 또한 한 줄기씩 솟구쳐올라 응집되고 있었다.
벌벌 떨던 의용군들은 자신의 몸에서부터 한 줄기 흰 기운이 솟구쳐 내 앞으로 날아들자 다들 어리둥절했다.
이것이 [옥새 반지]의 기능.
[옥새 반지(EX)]– 자신이 대표하는 조직 구성원의 의지를 모아 힘으로 발현할 수 있다.
내 휘하의 사람들, 그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 나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인류의 종족신이지만, 신격은 얻었으되 그 권능을 발휘하는 데에는 사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흑룡과의 결전 때에는 전 인류가 간절하게 ‘아침’을 소망했기에 햇볕을 부려 나이트 브링어를 끝장낼 수 있긴 했지만.
보통은 전 인류의 의지라는 것이 하나로 잘 모이질 않기에,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다름을 지향해서 발전해온 종이 바로 인류이기에.
‘종족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의외로 별 힘이 없다.
이 [옥새 반지]는 그런 점에서 나를 보조하는 장비라 할 수 있다.
내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좁혀서, 그 사람들의 명백한 의지를 하나로 구체화해서 내 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허공에 새겨진 세계수호전선의 상징을 바라보며 나는 읊조렸다.
“나는 세계수호전선을 대표하여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저 악몽의 무리가…… 우리 세상을 침범하지 못하기를!”
촤르르르륵!
그러자 허공에 모여 있던 희고 투명한 기운들이 재빠르게 변형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닷가에 방파제로 쌓아두는 테트라포드(Tetrapod)처럼 변한 흰 기운들이 내 마력 성벽 앞에 줄줄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위로- 망령의 해일이 들이닥쳤다.
콰아아아!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의 풍경처럼.
쏟아부어진 망령의 파도는 인류의 의지로 이뤄진 방파제를 뚫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캬아아아아……!
거품처럼 흩어지는 망령의 무리 앞에서 나는 후, 숨을 들이쉬었다.
지금 우리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저것이,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괴수와 악몽의 의지라면,
나는 이 세계 사람들의 의지를 대표한다.
이 세계에서, 단 하루라도 더 살아가고 싶다는…… 그러한 생의 의지를!
“여기서부터는 사람의 세상이다.”
나는 일갈했다.
“썩 꺼져라, 괴물-!”
망령왕이 쏟아낸 원혼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파제 위로 몸을 부딪쳤다. 내 성벽은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하지만 끝내 버텨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폭풍의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를 향해 덮쳐오던 망령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었고, 맑게 갠 하늘에서 눈부신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
스테이지1 당시의 일들이 문득 눈앞을 스쳤다.
잠시 알 수 없는 감회에 젖은 채, 적들이 사라진 전장을 살피다가.
햇볕을 등진 채 돌아서서 나는 나의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는 외쳤다.
“지난 3년간, 우리는 갖은 전설 속 괴수들을 모두 막아냈다.”
무덤으로 이뤄진 이 전선 위에서.
우리는 아직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 우리가 이 폭풍을 막아낼 마지막 시간이다.”
어느새 그 길었던 3년의 여정도 막바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계절.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이 전쟁은 끝난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한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어차피 끝날 것이라면, 나는 승리하고 싶다!”
“……!”
“마지막까지 최선의 피땀을 흘린 끝에 승리를 쟁취하고 싶다. 이 전쟁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손에 넣고 싶다.”
나는 소리쳐 물었다.
“여러분은 어떤가!”
쿵!
영웅과 숙련병들이 일제히 무기를 바닥에 내려찍어 대답했다.
나는 의용군을 보며 한 번 더 물었다.
“여러분은 어떤가!”
다급하게 일어나 의관을 고친 의용군들 또한 동시에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쿵!
조금은 엉성했으나, 충분한 대답이었다.
“자, 나의 사람들아!”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한쪽 팔을 위로 치켜세웠다.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싸워주겠나?”
쿵-!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살아주겠나?”
쿵-!
이제 완전히 일치단결하여 바닥에 무기를 내려찍는 나의 병사들을 둘러본 뒤, 나는 활짝 웃었다.
“좋다, 가자! 마지막 전장으로!”
최후의 대 괴수전 10연전.
그 첫 시작은 완전한 승리였다.
“함께, 마지막까지……!”
***
[STAGE 41 – CLEAR!] [STAGE MVP – 쥬피터 쥬니어(SSR)] [레벨업 캐릭터]– 한니발(N) 외 10인
[사망 및 부상 캐릭터]– 없음
– 망령왕 마력핵(SSR) : 1개
– 망령기사 마력핵(SR) : 100개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SR등급 보상 상자 : 10개
>> Get Ready For The Next STAGE
>> [Next STAGE : 호수왕국 (2)]
***
“…….”
같은 시간.
크로스로드 성벽 위.
쪼그려 앉은 헤카테는 멍한 얼굴로 남쪽 저편을 보고 있었다.
그때 삐걱거리는 목발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헤카테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불편한 걸음걸이로 가까워져 오는 흑마법사, 체인이 보였다.
“…….”
헤카테는 다시 앞을 보았다. 체인은 휘청거리며 다가와서 헤카테의 뒤에 섰다.
이제 더 이상 전장에 설 수 없는 두 사람은 조용히 그곳에 나란히 있었다.
한참의 침묵 뒤, 헤카테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지금쯤 검은 호수 앞에서는 동료들이 한창 격전을 치르고 있겠죠.”
“…….”
“이제 아무런 도움도 안 될 제가, 전장에 나서지 못하는 제가, 이곳 전선에 남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체인이 물었다.
“떠난다면 갈 곳은 있나?”
“……아니요.”
짧은 고민 끝에 헤카테가 답했다.
“없어요.”
“그럼 어디로 가려고 했나?”
“…….”
입술을 잘근 깨문 헤카테가 눈짓했다.
“그런 체인 씨는. 갈 곳이 있으신가요?”
“갈 곳은 있지.”
체인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곳에서 나를 받아줄지, 그걸 모르겠는 거지…….”
“…….”
남쪽 검은 호수 앞에서 승전의 환호가 울려 퍼지는 동안.
더 싸울 수 없는 몸으로 전선에 남은 두 퇴역자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답 없는 침묵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