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63
◈ 763. [Side Story] 마지막 퍼즐
스테이지 46까지 남은 유예는 그리 길지 않다.
고생해서 앞선 스테이지들을 몰아서 해치웠음에도, 몇 주 정도의 시간을 번 것이 전부다. 사실 고생했기 때문에 이만큼 시간을 번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보수 중이던 장비들의 수리를 끝내고, 새로 얻은 마력핵들로 또 새로운 장비를 만들고.
병사들의 전체적인 장비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각종 수성 아티팩트를 확충하고. 병사들의 훈련을 진행하고.
죽은 이들을 위한 장례를 치르고, 산 자들을 위한 예산을 집행하고…….
정신없이, 또 착실하게, 다음 스테이지를 방비하면서.
또 동시에, 진엔딩을 위한 대전략도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휴식기 동안 북쪽으로 급파했던 라 만차가 다시 크로스로드로 되돌아왔다.
라 만차의 하단에는 거대한 검은 쐐기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바로 저것 때문에 전선 유일의 함선을 급파한 것이다.
라 만차는 검은 쐐기를 조심스럽게 동쪽 벌판에 내려놓고 함선도 그 옆에 착륙했다. 나는 얼른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바마마!”
착륙을 끝낸 라 만차의 해치가 열리고, 황제와 근위기사, 마법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황제는 잃은 다리에 의족을 차고, 잃은 눈에는 안대를 찼는데, 잃은 팔은 그냥 소매가 펄럭이도록 내버려 둔 상태였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내가 예를 갖추자, 그새 의족에 적응한 것인지 태평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온 황제가 구시렁거렸다.
“아비의 몸이 이 꼬락서니인데도 일을 시키다니, 무서운 아들내미 같으니라고.”
“오직 아바마마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에잉…… 되었다. 아무튼, 네 녀석이 시킨 대로 가져왔다.”
황제는 검은 쐐기를 향해 흘긋 눈짓했다.
“에버블랙 본체다.”
저 검은 쐐기의 정체는 바로 인류의 수호수, 에버블랙이 응축된 것.
뉴 테라에 남아 있던 에버블랙 자체를 이곳 크로스로드로 이식(移植)하기 위해 옮겨온 것이다.
“뉴 테라에서 성벽도 옮겨오고, 수호수도 옮겨오고, 다음에는 아주 궁궐도 옮겨오지 그러느냐?”
“하하……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물론 괴수를 막아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궁궐이고 뭐고 모조리 가져오겠지만. 지금은 이 에버블랙으로 충분하다.
황도에서 함께 내려온 마법사들이 검은 쐐기를 동쪽 평원에 박아넣고, 마법진을 그려놓고, 무언가 술식을 전개하자…… 오래되지 않아 쐐기는 거대한 가시나무로 형태를 변화하며 땅 아래로 파고들었다.
“알고 있겠지만 에버블랙의 뿌리는 영계에 닿아 있다. 이곳 현세의 위치는 사실 큰 의미가 없지. 영계의 본체는 위치가 변하지 않으니.”
황제가 나를 지그시 보았다.
“그럼에도 굳이 옮겨심기를 해달라 요청한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렷다, 아들아?”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세를 불려 거대하게 퍼져나가는 가시나무의 줄기를 쓰다듬으며, 나는 작게 덧붙였다.
“제가 생각한 진정한 결말로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
터를 옮긴 에버블랙이 금세 기능을 회복했고, 나는 오랜만에 영계에 접속했다.
“여기까지 나를 대동한다고?”
황제는 황당하다는 눈치였지만 내 동행 요청에 응해주었다.
“제국을 지키는 데에 필요하다는데 내 어찌 거절하겠느냐. 앞장서 분골쇄신해야지. 이미 분골도 쇄신도 실컷 한 것 같지만.”
그러고는 보란 듯이 텅 빈 한쪽 소매를 펄럭여 보인다.
이 아저씨…… 근엄한 표정으로 저러니까 개그인지 뒤끝인지 속내를 잘 모르겠어…….
“가시죠, 아바마마.”
“오냐.”
내가 에버블랙의 본체를 옮겨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영계로 진입하는 좌표의 확정 때문이었다.
에버블랙의 잔가지를 합성해서 영계에 접속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그 방법은 진입시에 좌표가 제멋대로 튀었다. 다시 말해서 영계 어디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에버블랙 본체를 통해 접속하면, 그대로 영계에 뿌리내린 에버블랙을 따라 진입할 수 있다.
내 목적지- 에버블랙의 뿌리 아래로 가는 방법으로는 이쪽이 최적화가 제일 잘 되어 있다는 뜻.
풍덩……!
탁류처럼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를 헤치고, 영체 상태가 된 황제와 나는 함께 잠수하듯 영계 아래로 유영했다.
영계에서 황제는 두 눈 두 팔 두 다리 모두가 온전한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어떤가 살폈더니,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모습은 없었지만, 대신 가슴 속에 붉은 불과 검은 불이 한 덩이씩 자리 잡은 채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는 은색 왕관 같은 헤일로가 둥둥 떠 있다.
“…….”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파워업하고 따라온 스킨이라고 생각하자…….
형형색색 빛의 커튼이 펼쳐진 오로라가 가득한 하늘을 날아서, 한참 허공을 유영해서 영계 아래로 파고들었다.
에버블랙의 줄기와 뿌리는 영계의 하늘 끝에서부터 땅 아래까지 뻗어 있었고, 나와 황제는 이 뿌리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리하여, 한참의 시간 끝에 뿌리 끝에 도달했다.
쏴아아아…….
영계의 풍경은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무색(無色)의 투명한 바닷물이 밀려오는 새하얀 해변의 모습.
“이곳에 꽤 오래 유폐되어 있었지.”
황제는 자신이 평생 싸운 이신전선의 현장에 돌아오자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늘 전장이라 생각했던 이곳이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다니, 놀랍군.”
“…….”
나는 바다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네 명의 거인이 석상처럼 가만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종족의 수호신, 이신(異神).
현재는 우리 세계수호전선에 힘을 빌려주고 있는, 이종족들의 대표 신격이다.
예전에는 황제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이들이었으나, 지금은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가만히 볼 뿐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왜 온 것이냐?”
주위를 휙 둘러본 황제가 내게 물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이 텅 빈 공간에 어떤 볼일이 있기에?”
“이쪽입니다.”
나는 에버블랙의 가시줄기가 길게 뻗은 아래로 앞장섰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 여전히 그녀는 있었다.
그물처럼 엮인 검은 가시나무 가지의 끝.
그 끝에 그녀는 온몸이 묶여 매달린 채였다.
가시에 찔린 몸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흘러내린 피는 아래로 떨어지며 그녀의 몸에 불길을 일으켰다.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동시에 산 채로 불타며.
그렇게 가시나무에 열기를 공급하는 산 장작으로 기능하는…….
그녀, 여신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예를 차려 보였다.
“여신님.”
“후후. 내 기준으로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나. 애쉬.”
여신은 고개를 돌려 내 뒤를 따라온 황제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 트라하도.”
나는 황제를 돌아보았다. 황제 또한 여신에게 예를 표하리라 생각했기에.
“…….”
하지만 황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가시나무 줄기와 뿌리가 끝을 드리운 이 공간을 차갑게 둘러보았다.
나는 조금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바마마? 여신님께 인사하지 않으십니까?”
“……조금 전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
나는 다시 뒤를 홱 돌아보았다.
불타는 여인은 틀림없이 그곳에 존재한다. 조금 더 서글퍼진 미소를 머금은 채.
“여신님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아바마마?”
“여신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냐, 애쉬.”
“저곳의 허공에 묶인 채 불타는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내 눈에는 불도, 여인도, 보이지 않는다.”
황제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직 텅 비고 차가운 허무만이 보일 뿐이야.”
***
황제가 공간을 빠져나가고.
여신의 앞에 홀로 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째서 아바마마께서는 당신을 볼 수 없는 거죠?”
“후후. 애쉬. 그 반대란다.”
불타는 여인은 쓰게 웃었다.
“세상 모두가 나를 관측할 수 없어. 나는 ‘없는 존재’니까. 그런 조건으로 유폐됐으니까. 그러니 그 누구도 나를 찾거나 만질 수 없지. 네가 특별한 거야.”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예전에 말했잖니. 더스티아가 나의 후손이라고. 그리고 더스티아의 피를 이은 너 또한 그렇다고.”
나는 나의 어머니 더스티아, 그리고 그녀로부터 내게 이어진 일인전승 혈족계승의 저주를 떠올려냈다.
“회귀의 저주…… 그럼, 그것이 설마.”
“그래. 나로부터 시작되었단다. 내가 먼 과거에 소원을 이루는 대가로 받은 저주가…… 대대손손 이어지게 된 거야.”
여신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저주 때문에 나의 후손 모두가 힘겨운 운명을 맞았지. 그 점은 정말 미안하구나.”
“…….”
“하지만 그 모든 운명의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끝에 네가 태어났고, 이렇게 모두에게 잊힌 나를 만나러 와주었으니……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기쁘구나.”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
“에이더와는 소통하시던 것 같은데…… 그 녀석과는 어떻게 대화를 나누신 거죠?”
“그 아이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이어질 수 있었지.”
에이더도 여신과 같은 선택을 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여신은 에이더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에이더의 이야기는 에이더에게 들으려무나. 그 아이의 결심을 내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
“대신 다른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해줄게. 이제는 너도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으니까.”
여신은 자애롭게 미소했다.
“오늘은 어떤 고민이 있어 나를 찾아왔니, 나의 먼 후손아?”
작게 숨을 들이켠 나는 여신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여신님?”
지난번에는 듣지 못했던, 그녀가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유폐된 이유.
– 인류에게 불을 전한 대가로. 그리고 그 불을 지속시키는 대가로. 영원토록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는 벌을 받기로 했거든.
이 세계가 지금 이런 모습이 된 이유.
그것에는 여신이 강하게 관여되어 있다.
나는 여신이라는 존재가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신은 고개를 옆으로 슬쩍 젖혔다.
“나야 상관없지만,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일 텐데? 너는 무척 바쁘지 않니?”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여신의 앞에 편하게 앉았다.
“손주가 할머니 이야기 듣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불길 속에서 여신이 눈을 휘며 웃었다.
“요 녀석, 깜찍하기는…….”
그리고 여신은 천천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까마득히 머나먼 과거,
마법의 불을 훔쳐 사람의 세상으로 가져온 어느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에버블랙의 뿌리 아래를 벗어났다.
황제는 해변에 서서 이신들과 무어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번에는 서로 죽어라 싸우던 이들이 저렇게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
“용무는 끝났느냐, 애쉬?”
“예.”
“좋아, 그럼 슬슬 귀환하자꾸나.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니.”
이신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황제가 앞장서 가시나무 줄기를 따라 허공으로 솟구쳤다.
숨 막히는 마력의 난기류가 우리 앞을 채찍처럼 후려치며 진로를 뒤흔들었지만, 에버블랙이 길을 인도했고 우리는 등대의 지시를 따라 무사히 현실을 향해 부상했다.
그렇게 현실로 되돌아가던 와중.
“……애쉬.”
“예.”
“그곳에 정말 여신이 있었느냐?”
“그렇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황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더스티아도 관련된 일이냐?”
“…….”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 그렇구나…….”
잠시 망설이며 말을 삼키던 황제가 긴 숨을 토해냈다.
“애쉬. 나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
“하지만 괜찮은 아비는 되고 싶구나.”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충분히 좋은 아버지십니다.”
“…….”
황제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형형한 두 눈으로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늙었고, 한쪽 눈 위는 안대로 뒤덮였다. 강인한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이 사라지며 빈 소매와 의족으로 변했다.
쏴아아아……!
영계를 벗어나 현실로 되돌아온 것이다.
에버블랙 옆에 돌아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즉시 부복하며 황제를 맞았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만세! 제국의 지존을 배알하옵니다!”
“무사 귀환을 경하드립니다, 폐하!”
황제는 가볍게 턱짓하며 그 경례를 받았다.
“그래. 우리가 며칠이나 저 안에 있었지?”
“일주일이옵니다, 폐하!”
황제를 부축해 걷던 나는 흠칫 놀랐다. 그새 일주일이나 시간이 지났다고?
다른 기사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루카스가 내게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다음 괴수 군단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주군.”
“그간 내가 지시해두었던 건?”
“모두 착실히 준비해두었습니다.”
루카스가 슬쩍 웃으며 눈짓했다.
“다녀오신 일에 성과는 있으십니까?”
“그래.”
나는 일주일 사이 더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거대해진 에버블랙을 돌아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퍼즐, 확실하게 손에 넣었어.”
그리고, 또한 확정했다.
내가 걸어갈 공략의 길을.
내가 전 인류로부터 세계 최악의 폭군이라고 원망받게 될, 하지만 단 하나뿐인…… 진엔딩으로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