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90
◈ 090. [STAGE 4] 협공 (3)
자욱한 폭연이 걷혔다.
쏟아지는 비에 불길은 금세 사그라졌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열기를 피해 낸 나는 조심스럽게 팔을 내렸다.
이글이글 불타는 금속 덩어리가 보였다. 그림자 부대의 궁수 3인방이 활을 겨눈 채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보스 몬스터는?”
“죽은 거 같은데……?”
꿈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금속 덩어리가 몸을 떨었다. 자리의 모두는 기겁하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크르르르…….
놈은…… 가고일 치프틴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화염 마법에 직통으로 맞아 몸이 절반쯤 녹아내렸는데도 괴물은 움직이고 있었다.
놈은 아직도 불이 붙어 이글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크라……아아아!
그리고 다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놈의 타깃은 명확했다.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한 상대.
릴리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대로 어그로가 튄 것이다.
크라아아아-!
쿵! 쿵! 쿵!
가고일 치프틴이 괴성을 뿜으며 돌진을 재개했다.
“위험해요, 황자님!”
데미안이 나를 붙잡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덕분에 가까스로 놈의 진로에서 피할 수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멈추질 않아!”
활을 쏴내던 궁수들도 비명을 지르며 그 경로에서 몸을 피해냈다.
하지만, 릴리는.
다리를 쓰지 못해서, 피할 수도 없다.
마력이 남아 있다면 [불꽃 피부]로 어떻게든 피할 테지만, 지금 릴리에게 그만큼의 마력이 남아 있을까?
릴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 들어오는 괴물을 마주보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듯.
그때였다.
타앗!
갓핸드가 괴물과 릴리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괴물이 하나 남은 팔로 휘두른 녹아내린 철퇴를, 자신의 두 손으로 받아 냈다.
우지직.
끔찍한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울렸다.
“크아아아악……!”
갓핸드의 두 손과 팔이 으깨졌다. 주위로 갓핸드의 핏물이 낭자하게 뿌려졌다.
하지만 갓핸드는 그 상황에서도 기어코 금속술사답게 스킬을 사용했다.
으깨진 두 손과 맞닿은 가고일 치프틴의 몸통을 붙잡고,
쩌저적-!
열어젖혔다.
괴물의 외피를.
강철로 이뤄진 괴물의 뱃속에는 붉은 영핵이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릴리를 돌아본 갓핸드가 작게 물었다.
“한 발 더 쏠 수 있죠, 선임 마법사?”
“큭……!”
대답 대신, 릴리는 이를 악물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투학-!
노출된 영핵에 날카로운 불길이 작렬했다.
삽시간에 불타오른 영핵에 금이 쩌적쩌적 가더니, 이윽고 산산이 부서졌다. 챙그랑-!
크르……륵…….
그리고 그제야 보스 몬스터는 움직임을 멈췄다.
쿵! 쿠구궁!
놈의 녹아내린 거구가 옆으로 길게 쓰러졌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나였다.
“데미안! 갓핸드에게 응급처치를 해!”
“네, 넵!”
내 지시에 데미안이 허둥지둥 달려갔다. 다른 그림자 부대원들도 갓핸드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크으윽…….”
살점이 으깨지고 뼈가 튀어나왔다. 처참하게 박살 난 갓핸드의 두 팔을 데미안이 급히 지혈했다.
“……왜.”
딱딱하게 굳은 채 그 광경을 보던 릴리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왜 나를 구한 거죠, 엘프?”
“최적의 판단을 한 것뿐입니다.”
갓핸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 가고일 놈들에게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화력은, 이곳에서 당신만이 가지고 있으니까.”
“…….”
“단지 그것뿐입니다.”
이를 악문 릴리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고개를 숙이고 삼켰다.
“주군!”
“선배님!”
그때 성벽 저쪽에서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달려왔다.
내 앞에 와서 선 두 기사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이런 실수를…….”
“면목 없습니다. 주군. 저희의 목을 쳐 주십시오.”
아니, 내가 그러겠냐고. 하여간 기사 캐릭터들은 뭐만 하면 목숨으로 갚으려고 한다니까.
“됐으니 고개 들어. 이 보스 몬스터는 해치웠다. 다소의 피해가 있긴 했지만…….”
죽은 가고일 치프틴의 머리를 툭툭 차던 나는 성벽 저쪽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머지 괴물 놈들은 어떻게 됐지?”
내 지휘의 마안에 당한 보스 몬스터랑, 가고일 군단 6진은 어떻게 됐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공멸하는 게 베스트인데.
폭우 때문에 시야가 없어서 제때 확인을 못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쪽을 보기 위해 집중했다.
쿵……. 쿵……. 쿵…….
그리고.
빗줄기 사이로 괴물들의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가고일 괴물 수십 마리였다.
격전을 치른 듯 움푹 파이고 박살 난 놈들의 손에는 가고일 치프틴의 무기와 갑옷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내전의 결과가 저것이었다.
내가 지휘의 마안으로 배신시킨 가고일 치프틴은 제 부하들의 손에 찢긴 모양이다.
“그럼 저놈들만 해치우면 된다는 거군.”
말하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극심하게 소모된 상태다.
계속해서 전위에서 괴물들의 공격을 받아 낸 루카스와 에반젤린은 물론이고, 데미안은 마탄을 다 썼고, 릴리는 마력을 바닥까지 쥐어짰다.
그림자 부대도 마찬가지.
리더인 갓핸드는 두 팔이 박살 났고, 바디백도 마력고갈로 힘들어하고 있다.
궁수 3인방은 자잘한 부상에다가, 무기 공급 역할인 갓핸드의 전투력 상실로 화살까지 바닥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남은 괴물들을 무사히 해치울 수 있을까?
“조준!”
바로 그 순간.
“발포하라-!”
좌우 성벽 쪽에서 우렁찬 고함이 들리더니,
펑! 퍼버버벙!
후두두둑……!
성벽 양익에서 쏘아진 포탄과 발리스타가 성벽 중앙으로 쏟아졌다.
콰과과광!
우리 쪽만 쳐다보며 걸어오던 가고일들이 일제히 십자포화에 휩쓸렸다.
본래라면 먹히지 않을 공격이지만,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가고일 놈들도 부상을 입은 상태다 보니.
포격과 사격에 하나씩 픽픽 쓰러져 갔다.
일제사격의 폭풍이 지나고 나자, 멀쩡히 서 있는 괴물은 그곳에 없었다.
죽거나 사지가 찢어진 채 기어 다닐 뿐.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벌리고 이 모습을 보는데, 포대 쪽에서 노병 하나가 껄껄 웃는 게 보였다.
“남쪽에서 더 날아오는 괴물들도 없는데, 더 이상 화망을 유지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포병 지휘를 맡긴 황혼병단의 대장이었다.
“그렇다고 중앙에서 싸우시는 모습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우습고요. 대포 회전시키고 조준 새로 해서 남은 놈들 그냥 쓸어버렸습죠.”
“…….”
“음. 혹시 저희가 괜한 짓을 한 겁니까, 영주님?”
나는 거세게 고개를 저은 뒤 말없이 엄지를 홱 치켜 보였다.
“아니, 겁나 잘했다.”
와아아아-!
쉼 없이 대포를 쏘아 내느라, 빗속인데도 화약과 먼지로 범벅이 된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툭, 투두둑…….
하늘에서 천천히 빗줄기가 약해졌다. 멀리 남쪽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더 이상 접근하는 가고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남쪽 하늘을 응시하던 루카스가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빙그레 웃었다.
“승리입니다. 주군.”
“…….”
나는 개어 오는 말간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우리가 딱 싸울 때에만 비가 쏟아진 건가.
“거 참 소나기 한 번 제멋대로네…….”
돌아서자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시선이 보였다. 모두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
숨을 들이쉰 다음, 나는 앞으로 손을 뻗고 외쳤다.
“부상자를 신전으로 이송해라! 장비와 성벽의 손괴를 보고하고, 오늘의 전투 일지를 소상히 기록하라!”
승리 직후에 하기에는 꼰대 같은 말들이긴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지.
“오늘 전투에서 여러분이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반드시 되새기고 다음 전투의 양식으로 삼아라. 그래야 여러분이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번 방어전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떠올렸다. 개선할 수 있는 점들을 복기했다.
겪은 위기를 뼈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공략은 점점 더 완전해진다.
그래야, 사람이 죽지 않는다.
“매일 여러분이 더 나은 병사가 되는 만큼, 매일 이곳은 더 강력한 전선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이 더 강력한 전선이 되는 만큼, 나도 유능한 지휘관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병사들을, 그리고 내 파티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와 함께 사선(死線)을 넘어 준 메인 파티 멤버들과, 새로 합류하자마자 죽을 고생을 한 서브 파티 멤버들을.
“여러분이 나를 완성시키고 있다. 정말로, 고맙다.”
진심을 담아 말한 뒤, 크게 소리쳤다.
“에잇, 딱딱한 소리는 됐고! 고기와 술을 준비해! 오늘은 내가 사마!”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뭐, 언제는 내가 안 산 적이 있기는 했나 싶지만.
승전의 기쁨에 젖은 채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틈에서, 갓핸드가 들것에 실린 채 신전으로 급히 이송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바라보는 릴리의 모습도.
“…….”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남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나기가 그치자 저 멀리 무지개가 뜨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방어전이 끝났다.
***
[STAGE 4 – CLEAR!] [STAGE MVP – 릴리(R)] [레벨업 캐릭터]> 메인 파티
– 애쉬(EX) Lv.24 (↑2)
– 루카스(SSR) Lv.37 (↑1)
– 에반젤린(SSR) Lv.39 (↑1)
– 릴리(R) Lv.26 (↑3)
– 데미안(N) Lv.32 (↑2)
> 서브 파티1
– 갓핸드(SR) Lv.36 (↑1)
– 바디백(R) Lv.30 (↑1)
– 올드걸(R) Lv.29 (↑1)
– 스컬(N) Lv.26 (↑1)
– 번아웃(SR) Lv.24 (↑2)
[사망 및 부상 캐릭터]– 애쉬(EX) : 경상
– 릴리(R) : 경상
– 갓핸드(SR) : 중상
– 올드걸(R) : 경상
– 스컬(N) : 경상
– 번아웃(SR) : 경상
[획득 아이템]– 가고일 군단 마석 : 341개
– 가고일 치프틴 마력핵(SSR) : 2개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R등급 보상 상자 : 5개
– SR등급 보상 상자 :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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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GE 5 : 용서받지 못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