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3)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173화
45장 인과의 탑(13)
서리 여왕.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과거, 북부 대륙 전체를 다스리던 절대자로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정령에, 필멸자라기보다는 불멸에 가까운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런 서리 여왕은 ‘굴레’와 운명을 벗어나 반신의 위에 오를 때 하나의 허물을 남겼다.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악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채운 허물.
그리고 그 허물이 바로,
‘저 녀석이란 말이지.’
지금 시온의 눈앞에 있는 마지막 시련의 보스인 ‘악에 물든 서리 여왕의 잔재’였다.
잔재라고 불리긴 했지만, 서리 여왕이 반신에 오르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권능 대부분이 담겨 있었기에 당연히 그 강함이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과 고룡들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원래라면 이런 던전의 보스로는 절대로 나올 리가 없는 존재.
‘그래도 다행히 살아 있긴 하네.’
그런 잔재를 상대로 지금까지 버틴 용사와 그 일행을 슬쩍 바라보며 시온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끼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사라진 냉기의 파동과 공동 전체를 뒤덮은 불꽃으로 인해 녹아내리는 호수를 잠시 바라보던 서리 잔재가 기괴한 울부짖음을 토해내었다.
그와 함께 조금 전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잔재의 가슴 앞에 응집된 냉기의 파동이 송곳 형태로 변하며 시온을 향해 쏘아졌다.
그 크기는 전방위로 쏘아내던 파동에 비해 무척 작았지만, 지닌 힘은 똑같았다.
아니, 응집되었기에 더욱 강해졌다고 하는 게 맞았다.
새롭게 나타난 시온에게서 커다란 위협을 느낀 서리 여왕의 일격.
“조심……!”
그런 송곳이 음속조차 아득히 돌파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시온을 바라보며 은발의 여인이 경고의 말을 뱉어내려 하는 순간이었다.
후욱!
가볍게 앞으로 내밀어지는 시온의 손안으로 주변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빨려 들어오며 응집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냉기의 송곳과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공동 전체를 뿌옇게 메우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증기.
그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불안하게 요동칠 때, 투화하학!
격돌지점에서부터 폭발하듯 터져 나온 새빨간 불꽃이 주변에 존재하는 수증기를 살라 먹으며 서리 여왕의 잔재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그러한 불꽃을 모조리 그러모은 주먹을 잔재를 향해 뻗어내는 시온.
그에 잔재가 조금 전 은발 여인의 일격을 막아내었을 때처럼 자신의 앞에 수십 겹에 달하는 얼음벽을 생성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뚫어내지 못한 통곡의 벽.
하지만,
콰드드득!
시온은 아니었다.
종잇장을 찢어내듯 순식간에 모든 얼음벽을 박살 낸 시온의 주먹이 그대로 잔재의 몸에 적중한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잔재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런 잔재의 신형이 공동의 벽에 처박힌 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투콰아아앙!
뒤늦게 터져 나오는 굉음과 함께 시온이 있던 곳부터 시작된 한 줄기의 붉은 선이 잔재가 있는 곳까지 그어졌다.
쩌적!
공동 전체로 번져나가는 이차적인 여파와 그로부터 전해진 무지막지한 충격에 금이 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는 잔재의 몸.
그런 잔재가 미처 몸을 추스르기도 전,
후욱!
그어진 붉은 선을 따라 바로 앞까지 미끄러지듯 이동한 시온이 이미 최대치로 당겨진 주먹을 다시 한번 내질렀다.
그에 맞춰 내질러지는 시온의 주먹으로 빨려 들어오는 주변의 불꽃.
콰지지지직!
다시 한번 잔재가 다급하게 방어벽을 펼쳐 내었지만, 이번에도 곧바로 그러한 권능의 방어벽을 깨부순 시온의 주먹이 단숨에 잔재의 왼쪽 어깨를 박살 낸다.
끼아아악!
부서진 어깨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서리 여왕의 잔재가 주변에 수백 개에 달하는 얼음 창을 생성시켜 반격했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족히 작은 성 하나 정도는 지울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창들이 모조리 시온의 전신에 꽂히려는 찰나였다.
화르르륵!
시온의 전신을 감싼 채 은은하게 타오르던 무스펠하임의 불꽃이 새카맣게 물드는가 싶더니 공간을 타고 번져나가며 다가오는 창들을 모조리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무스펠하임이 지닌 고유 권능인 염천(炎天)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온의 흑성하가 깃든 것.
원래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무스펠하임을 사용할 자격을 얻은 것을 넘어서 신기 자체를 지배해 버린 시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끼이?
잔재라고 해도 감정이 남아 있던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의문 어린 목소리를 흘려내는 여왕의 잔재.
그런 잔재의 품으로 몸을 낮추며 파고든 시온이 몸을 일으키는 탄력을 이용해 위쪽으로 주먹을 뻗어내었다.
투웅!
그 일격으로 인해 앞을 막고 있던 잔재의 두 팔이 양쪽으로 튕겨 나가며 가슴 쪽이 활짝 드러난다.
염왕추(炎王錐).
동시에 노출된 심장을 향해 쏘아지는 시온의 반대쪽 주먹.
투콰아아아앙!
수십 개의 화염 마법이 한 점에서 꽂힌다면 이러할까.
지금까지보다 한 단계 더 거대한 폭발과 함께 다시 한번 튕겨 나간 잔재의 신형이 사정없이 공동의 벽에 처박힌다.
하지만 그런 잔재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온은 속으로 혀를 한 번 찼다.
‘이번에 심장을 부수려 했더니.’
역시 반신에 이른 초월자의 허물이라는 것인지 아주 찰나의 시간을 얼려 치명타를 피한 잔재였다.
‘빠르게 끝내야 하는데.’
무스펠하임의 불꽃을 더욱 강하게 피워 올리며 생각하는 시온.
사실 ‘일곱 하늘’, 그중에서도 상위권과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지닌 지금의 시온이 혼자서 저 ‘악에 물든 서리 여왕의 잔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우위를 점하며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무스펠하임의 존재 때문이었다.
열천갑주라고도 불리는 이 로키의 신기는 모든 종류의 냉기에 관해 절대적인 상성 우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일종의 고유 권능.
덕분에 냉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고 막대한 전력 차가 나도 이와 같은 전투를 펼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 불꽃.’
지금 무스펠하임에서 흘러나와 공동안을 뒤덮고 있는 불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염세(炎世)’라고 불리는 무스펠하임의 또 다른 권능으로서 흑성하의 ‘암역’과 같이 불꽃이 타오르는 공간 자체를 사용자의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즉 ‘하늘’에 다다라야지만 완벽한 사용이 가능한 공간 잠식을 단지 무스펠하임을 착용한 것만으로도 발동할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신기에 어울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온이 전투를 빠르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존재했다.
‘무스펠하임의 염세는 계속해서 발동할 수 없어.’
이 엄청난 효과만큼이나 소모되는 힘 또한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거기다가 지금은 서리 여왕의 잔재가 생전 처음 상대해 보는 힘에 당황하여 제대로 힘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만약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기라도 한다면 충분히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시온과 잔재가 가진 힘의 차이는 커다랬다.
‘그렇다면…….’
투화하학!
생각을 마치고 다시 잔재를 향해 쏘아지는 시온의 뒤편으로 모여든 검붉은 불꽃이 날개와도 같은 형상을 이루고.
끼아아악!
순식간에 확대되는 시온의 모습에 당혹 어린 울부짖음을 토해낸 잔재가 두 손을 휘저어 공동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냉기의 안개를 만들어낸다.
그런 안개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불의 왕’과 함께 숨 막히는 접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공동의 구석으로 빠져 몸을 추스르던 레인이 그 접전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를 흘려내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기록으로밖에 볼 수 없는 신화 속 전투가 이러할까.
그리고 그것은 옆에서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은발의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
여인 자신과 ‘일곱 하늘’인 투르잔,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일정 이상의 수준을 지닌 수백 명이 덤벼도 상대하지 못한 서리 여왕의 잔재였다.
‘그런데 그런 잔재를 혼자서 상대한다고?’
그걸로도 모자라,
콰과과과광!
계속해서 우위를 점하며 몰아붙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올라오는,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광경.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저 새롭게 나타난 ‘불의 왕’이라는 존재가 인간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짐작 가는 인물이 한 명 존재했으니까.
‘지온 하네스.’
3층의 시련에서 살해 전단 머더리스를 전멸시킨 자이자, 자신을 대신하여 ‘비밀 시련’의 조건을 충족시킨 수수께끼의 인물.
영원의 탑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탑을 만든 초월자들을 제외한다면 오직 시련에 참여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저 ‘불의 왕’도 참가자일 확률이 높았고 그 말은 즉 마지막 시련에 진입하기 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인 ‘지온 하네스’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저 갑옷.’
저 ‘불의 왕’이 걸친 갑옷은 여인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1대 용사의 갑옷과 너무나도 비슷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 정체도 의도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에 여인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전투를 바라볼 때였다.
“어……?”
그런 여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갑작스럽게 울려 퍼졌다.
* * *
투콰가가가각!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이 갈라지며 터져 나온 수많은 얼음 조각이 모조리 빙결의 권능을 머금은 채 위쪽으로 치솟는다.
그에 반대로 공동의 위에서부터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불꽃의 하늘.
————-!
그 두 개의 전혀 다른 힘이 부딪치며 터져 나오는 폭발 속에서 시온과 서리 여왕의 잔재는 계속해서 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투쾅! 투쾅! 투콰과과광!
별다른 상처조차 없는 시온에 비해 여기저기 금이 가고 부서져 나간 잔재의 모습, 그것은 이 전투의 승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재의 입가에는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웃음이 맺혀 있었다.
여전히 자신 쪽이 불리한 것은 맞았지만,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게 느껴졌으니까.
콰가가가각!
점점 공방에서 생겨나는 여유와 다시 살아나는 냉기.
그에 비해 적이 뿜어내는 불길은 눈에 띄게 그 힘이 줄어들고 있었다.
끼아아아!
그 사실을 완벽하게 인지한 잔재가 소름 끼치는 울음을 터뜨리며 움직임을 전환했다.
거의 방어 위주였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공격을 취하는 잔재.
그런 잔재의 움직임이 통하는 것처럼,
쩌저저저저정!
쏟아지는 공격들을 막아내는 시온의 신형이 점차 뒤쪽으로 밀려나며 승기 또한 잔재 쪽으로 빠르게 넘어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부풀며 무스펠하임의 불꽃을 집어삼키는 냉기와 더불어 급속도로 시온의 기세가 움츠러들었다.
그와 함께 시온의 몸에 하나둘씩 상처들.
그걸 바라보는 잔재의 눈에 열망이 어렸다.
조금만 더.
정말로 조금만 더 몰아붙인다면 저 숨통을 끊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생각과 함께 잔재의 감각이 오직 시온만을 향해 극도로 집중된다.
그리고 그 순간,
터엉!
그동안 계속해서 밀려나면서도 급소나 치명상은 아슬아슬하게 허용하지 않던 시온의 신형이 몰아치는 냉기에 휩쓸려 일순간 흔들렸다.
잔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키아아아악!
환희 섞인 울음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잔재의 오른손으로 모여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격을 가진 빙결의 권능.
그러한 권능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검이 한 치의 지체도 없이 드러난 시온의 틈을 향해 쏘아진다.
그때까지도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는 시온.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잔재의 눈에 어린 열망이 희열로 뒤바뀌고.
마침내 여왕이 만들어낸 권능의 검이 그런 시온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이었다.
콰드드드득!
귓가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그것은 빙결의 검에 시온의 심장이 박살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잔재의 양옆을 꿰뚫고 튀어나오는 두 자루의 무기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잔재의 입에서 멍청한 울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눈앞에 있는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무기들 또한 시온의 것이 아니었다.
곧이어 고개를 돌린 잔재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기의 주인들.
“주위도 신경을 좀 쓰지 그랬어.”
바로 은발의 여인과 투르잔이었다.
조금 전 시온의 지시를 받은 그들이 잔재의 신경이 온통 시온에게 쏠려 있는 틈을 타 은밀하게 근처까지 접근한 것.
“굳이 내가 너를 혼자 상대할 필요는 없잖아?”
그 말과 함께 잔재를 향해 씩 웃어준 시온이 주먹을 한껏 당겼다.
그런 시온의 주먹에서 불길하게 타오르던 검붉은 불꽃이 폭발적으로 불어나며 거대한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는 순간, ……!
마침내 잔재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시온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전부 이 순간을 노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리고,
콰드드드득!
마침내 그런 여왕의 심장을 쏘아진 왕의 주먹이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