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32)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232화
59장 수인해로(1)
정령들로부터 흘러나온 녹색의 빛.
정확히 그러한 빛이 모여드는 장소는 시온이 아닌 시온의 앞이었다.
곧이어 모여든 빛이 하나의 형상을 이뤄가는 동시에 엘브리움 전역에 자욱한 신성이 깔리기 시작한다.
“이, 이건……!”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스피레나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이한 현상에 놀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 강림!”
비록 완벽한 강림이 아닌 정령들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그 모습만을 비추는 형식이었지만, 이것조차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무척이나 희귀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스피레나가 제단에서 황급히 내려와 빛이 모여드는 장소를 향해 뛰어가는 순간, 화아아악!
마침내 빛이 완벽한 여인의 형태를 이루었다.
육신이 있는 게 아닌 빛으로만 이루어졌기에 흐릿하기 그지없었지만, 시온은 그 형태가 아케니디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 입가에 걸린 싱그러운 미소와 느껴지는 이 신성은 다른 어떤 존재도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아아, 아케니디아시여!”
그곳에 있던 모든 요정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케니디아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한다.
그런 요정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신을 직접 영접했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감격이 어려 있었다.
더불어 아직 아케니디아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미약한 안도 또한 깃들어 있었다.
그때,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온을 바라보고 있던 여신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마치 시온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기라도 하듯.
요정들은 그녀의 신도이자,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고 그렇기에 세계수와 요정림을 구원한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시온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
지켜보고 있던 요정들에게는 전혀 달랐다.
“아케니디아께서…… 고개를 숙이셨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경악을 넘어 멍한 빛을 띠는 요정들의 눈빛.
아무리 감사 인사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신이 직접 필멸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요정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아케니디아가 시온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기, 다, 릴, 게, 요.
여신의 입 모양이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에 시온이 대답하기 전 아케니디아를 이루고 있던 빛이 흩어지며 자연스럽게 여신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케니디아가 자취를 감추었음에도 여전히 침묵으로 물들어 있는 광장.
“…….”
그런 침묵은 꽤 오랜 시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렇게 이변과 경악이 함께했던 축제의 첫 번째 날이 종료된 후.
“이렇게 곧바로 가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시온은 리우시나, 그리고 셀피아와 함께 엘브리움의 외곽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의 볼 일은 전부 끝났고 다음 일정 또한 촉박했기에 곧바로 요정림을 떠나게 된 것.
그런 시온의 앞에는 디에나를 비롯한 몇몇 잎사귀들만이 선 채 조용히 배웅하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대접해 드린 것도 없는데…… 축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머물다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 말이 진심이라는 듯 시온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할레그리온의 눈동자에는 짙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처음 시온이 요정림을 방문할 때와는 명백히 달라진 모습.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정림을 멸망에서 구원해 주었을뿐더러 자신들의 신에게마저 감사 인사를 받은 자가 바로 시온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말에 시온이 대답하기도 전,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지금까지 시온이 자신의 뜻을 굽히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
할레그리온의 옆에 서 있던 디에나가 그렇게 말하며 시온을 복잡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황위나 요정림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시온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분명 영겁제의 반지를 가리켜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다고 했었지.’
모호한 발언이자 광오한 발언이었다.
그 자신이 영겁제 본인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거기에 더해 아케니디아께서는 고개까지 숙이고.’
그것은 정말이지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역사를 통틀어 신격의 인사를 받았던 인간은 대체 몇이나 되었을까.
그렇기에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디에나는 결국 그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시온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을 전부 지켜 봐왔고 그렇기에 시온이 영겁제 본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한 번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낸 디에나가 시온을 향해 물었다.
“아니.”
“그럼 어디로 가나요?”
“수인해.”
시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대답.
그에 디에나의 눈동자가 황당으로 물들었다.
“수인해? 거긴 현재…….”
“알고 있어.”
그런 디에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연 시온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내가 가는 것은 비밀로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기는 시온.
“나중에 황성에서 보지.”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시온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디에나를 비롯한 요정들은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배웅했다.
* * *
수인해의 이름 없는 섬.
“몇 번째지? 우리가 전투에 참여한 게.”
그곳에서 눈앞으로 펼쳐진 황량한 전쟁터를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레인이 옆에 있는 티르안을 향해 물었다.
“여섯 번째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 다 전세를 뒤집고 반군 쪽의 승기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지요.”
“하지만 전체적인 전세는 아직도 반군 쪽이 불리하지.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런 티르안의 말에 이어서 입을 연 투르잔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용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클레어,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무리 전장의 승기를 뒤집어봤자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래, 그 말이 맞아.”
그에 클레어는 곧바로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 또한 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쯤 되면 반군의 수뇌부에서 먼저 접촉해 올 줄 알았더니만…… 생각보다 너무 조심스러워.’
물론 연락이 닿기는 했지만, 이걸로는 한참 부족했다.
‘이러다간 정말로 시기를 놓칠 수도 있겠어.’
클레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곧이어 일어날 하나의 사건과 회귀 전 보았던 수인해의 최후를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할 미래.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그때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만 같았다.
‘지시에 어긋나긴 하지만, 지금부터는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음?’
그때였다.
푸륵!
입에 편지 하나를 문 까마귀 한 마리가 그녀의 앞에 내려앉았다.
받으라는 듯 편지를 내미는 까마귀.
“달의 눈?”
과거 보았던 정보 길드 ‘달의 눈’의 문양이 봉투 상단에 찍혀 있는 것을 본 클레어가 곧바로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곧이어,
“시온 황자가 직접……?”
편지에 적힌 내용을 읽던 그녀의 입에서 묘한 음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수인해(獸人海).
이곳은 이름 그대로 수인들이 사는 바다로서 하나의 육지가 아닌 수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곳보다도 폐쇄적이며 색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사용하는 힘 또한 무공과 주술이 주를 이루며 마법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더불어 교통수단 또한 말이나 마력차, 열차 등등이 아닌 대부분 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우욱! 토, 토할 거 같아요…….”
시온은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는 여객선의 갑판에 선 채 옆에서 뱃멀미하는 셀피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배를 타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나?’
그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시온의 외형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묘하게 달라진 이목구비.
이렇게 시온이 정체를 숨긴 이유는 바로 수인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 때문이었다.
‘현재의 수인왕과 그를 반대하는 반대 세력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
시온이 수인해로 온 건 바로 그 거대한 전쟁에 끼어들기 위해서였고 만약 원래의 신분으로 개입하게 된다면 전쟁의 불씨가 번져나가 내전이 아닌 제국 전체가 휘말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최대한 전력을 유지한 채 내전을 마무리 지어야 해.’
이제 곧 대전쟁을 앞둔 시온으로서는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었고 그게 바로 이렇게 정체를 숨기게 된 이유였다.
더불어 리우시나를 비롯하여 신분이 드러날 만한 그 어떠한 인물과도 동행하지 않았기에 현재 시온의 곁에는 지금 열심히 속을 게워내고 있는 셀피아뿐이었다.
‘어차피 이번 일에는 리우시나가 함께할 수 없기도 하고.’
지금쯤 ‘종말’로 다가서기 위한 마지막 벽을 부수고 있을 그녀를 잠시 떠올리던 시온은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정리했다.
‘용사 쪽과 만나는 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일단 반군 쪽과 접촉하는 게 먼저겠지.’
시온이 굳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수인왕 쪽이 아닌 반군 쪽을 도우려는 이유는 존재했다.
원래대로라면 수인왕의 자리에는 반군 쪽 우두머리이자 정통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왕세자가 앉아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지금의 수인왕인 월벽천은 그런 왕세자의 숙부로서 전대의 수인왕을 죽임과 동시에 조카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로 인해 둘의 입장이 뒤바뀌게 된 것.
사실 시온으로서는 둘 중 누가 앉아도 상관없긴 하지만, 문제는 월벽천과 그 세력이 마역과 결탁을 했다는 데 있었다.
‘그 때문에 연대기에서는 대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수인해 쪽이 아예 마역으로 붙어버렸지.’
그것이 바로 이번에 시온이 바꿔야 할 미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반군 쪽의 대장인 왕세자부터 만나야 해.’
사실 그에 관해서는 시온 또한 아는 게 없었다.
암살 위협 때문인지 반군 쪽에서도 왕세자의 위치와 정체를 철저하게 숨겼으니까.
같은 편조차 아는 자가 극히 드물 만큼.
더불어 이번에는 연대기의 내용에 따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용사와 접촉하기 전에 이미 왕세자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기에 연대기에도 그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건 존재했다.
‘이 시기였나? 왕세자가 죽은 게.’
왕세자가 죽음을 맞이했던 장소.
그 장소가 바로 연대기에 적혀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시온은 여객선을 타고 그곳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속도가 느리군. 이러다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겠어.’
마치 유람선과 같이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여객선의 속도에 시온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허허, 제국에서 왔나 보구먼.”
옆쪽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린 시온의 눈에 허리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체형에 너구리 귀와 꼬리를 지닌 노인 한 명이 들어왔다.
“더불어 배를 타는 것도 처음인 듯하고.”
그 말과 함께 넉살 좋은 웃음을 짓는 노인.
그런 노인을 바라보는 시온의 눈이 자그마한 이채를 발했다.
‘이자는…….’
유랑권 장말동.
연대기에서 용사의 조력자 중 한 명으로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친근한 인상, 그리고 이름과는 달리 무려 열두 바다 중 하나에 속한 강자였다.
그 별호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며 정체를 숨긴 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다.
아무래도 이 여객선에서 유일하게 수인이 아닌 시온 자신과 셀피아가 그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둘이서 여행이라도 온 건가? 하긴 수인해에 있는 관광지들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명소들이지. 다만…… 그리 좋지 않은 시기를 골랐어. 현재 수인해가 내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인 것처럼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시온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여는 노인.
그런 장말동의 물음에 시온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것 때문에 온 것이었으니까.
“허허, 겁이 없는 친구들이구먼. 그래도 모든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 잘 피해서 움직이면 괜찮을 수도 있을걸세. 만약 그에 관해 알고 싶다면 나한테 물어봐도 좋고.”
“그, 그것보다…… 뱃멀미를 안 하는 방법은 없나요…… 우욱!”
그에 셀피아가 초췌한 얼굴로 물었지만, 장말동은 고개를 저었다.
“없네. 그저 견디는 수밖에.”
그 대답에 마치 민트를 권하는 요정들 사이에 둘러싸일 때처럼 우울한 표정을 짓는 셀피아.
그녀를 바라보던 장말동이 과거를 회상하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뱃멀미가 무척이나 심했다네. 처음 탔을 때는 아예 서 있지도 못했지. 그런데…….”
하지만 그런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
“이런!!”
“방향을 틀어!”
“이미 늦었어! 오, 온다!!”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배 앞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해 돌아가는 고개.
곧이어 여객선의 앞쪽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무언가를 본 시온의 입가가 슬쩍 휘어졌다.
‘타이밍 좋네.’
아무래도 느린 속도를 보완할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