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64)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264화
68장 마신전 공략(1)
그것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니, 시온의 손가락과 혈인룡의 숨결이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퍼져나가는 파동.
그러한 파동이 닿은 세계의 시간이 실제로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정지한 세계 속의 법칙이 부서져 내리는 동시에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법칙 부정.
흑성하가 8성에 도달해야지만, 펼쳐낼 수 있는 최고의 부정 권능 중 하나.
그러한 권능이 아직 7성밖에 되지 않은 시온의 손에서부터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펼쳐지지 못했을뿐더러 허점 또한 수없이 많았지만, 쩌저저저저저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인룡의 숨결은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마치 노이즈가 잔뜩 낀 영상처럼.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 채로 흔들리며 소멸하는 숨결.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숨결을 타고 그대로 거슬러 올라간 부정의 손길이 혈인룡의 육체와 그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까지 동시에 소멸시키기 시작한다.
“아…….”
그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다시 한번 정적으로 물드는 전장.
저벅, 저벅.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갈락티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시온의 걸음 소리가 그러한 전장 전체에 울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어떻게…….”
사정없이 요동치는 흑마법사의 입에서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말.
분명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갈락티오는 도저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공이나 권능도 아니었다.
그것들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그 무언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이질적인 무언가가 방금 황제가 펼쳐낸 일격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너는…… 너는 무엇이냐.”
그런 일격을 펼쳐낸 황제가 도저히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 것 같았기에 갈락티오의 입에서 떨리는 물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서걱!
그 물음에 대답해 줄 시온이 아니었다.
무심한 눈으로 곧바로 갈락티오의 목을 베어내는 시온.
마를 받아들였기에 원래라면 목을 베어도 죽지 않을 갈락티오였지만, 동시에 침투한 시온의 흑성하가 그의 몸 전체를 박살 내어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있었다.
털썩.
그렇게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흑마법사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한 후,
“폐하께서 적장을 처리하셨다! 전군, 남아 있는 적군을 섬멸하라!”
와아아아아!
이어지는 전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괴수 군단과 제7 군단에 의해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쓸려나가는 흑마 전단.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온의 눈동자에는 미약한 불만족이 어려 있었다.
‘전혀 좁혀지지 않는군.’
조금 전 무리해서 불완전한 법칙 부정을 사용한 것.
그리고 최근에 일부러 더욱 많은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까지.
전부 흑성하 8성까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미약한 도움만이 될 뿐 실질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저번에 구멍 너머로 보았던 마왕의 무력은 지금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어.’
그렇기에 8성에 오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폐하.”
어느새 그런 시온의 곁으로 다가온 영겁의 그림자 중 한 명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침습의 평원과 그 주변 지역을 완벽하게 점령했다는 보고입니다.”
“잘 됐군.”
그에 시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전부터 평원의 전투는 이쪽으로 승기가 기울어져 있었던 데다가 용사 일행까지 합류한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추가적인 보고가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굳어진 얼굴로 말을 망설이는 그림자.
“뭐지?”
“……수인해가 패퇴했습니다.”
그 말에 시온의 눈이 가라앉았다.
* * *
마역 서부 외곽 지역.
“조만간 내륙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곳으로 침투한 요정림과 거인 대군락 연합군을 지휘하는 디에나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꺄하하하하하!”
거의 정리되어 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마음껏 날뛰고 있는 붉은 눈의 마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쪽으로 침투하는 연합군이 다른 곳에 비해 강자의 비율이 적다는 시온의 판단에 의해 이쪽으로 보내진 리우시나였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더 이상해진 것 같은데.’
그 생각과 함께 디에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렇다고 리우시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저 마녀에 의해 이곳을 수월하게 점령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흠, 바로 내륙으로 진입할 겁니까? 아니면 보고를 올린 후에 이곳에서 황제 폐하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디에나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하는 요정림의 첫 번째 가지, 할레그리온.
“일단 대군락의 대족장과 먼저 이야기해 보도록…….”
그에 디에나가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전하, 황제 폐하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통신 마법사 한 명이 다급하게 뛰어오며 디에나를 향해 외쳤다.
“무엇이죠?”
“소집령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최고 회의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소집령?”
그 말을 들은 디에나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 * *
침습의 평원에 존재하는 제국군 임시 주둔지 중 가장 거대한 막사.
수뇌부의 회의실 용도로 쓰이는 막사 안에는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외경 삼세와 오대 가문의 수장, 최고위 기사단의 단장과 같이 실질적으로 이번 전쟁을 이끌어가는 자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총회의였지만,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군요.”
바로 수인해의 패배 때문이었다.
“이쪽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시작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시기와 전략, 그리고 사기까지. 심지어 마역은 초반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죠.”
용사 일행 중 한 명인 티르안의 도움을 받아 이곳까지 공간 이동해 온 디에나는 패배 소식을 듣고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수인해의 인물들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패배를 할 수가 있는 거죠? 심지어 자신 있다며 지원 병력조차 거부하지 않았었나요?”
“진정하시지요, 디에나 전하. 듣기로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오즈리마 가문의 가주인 그로우드가 그런 디에나를 말렸지만, 정작 그의 눈에도 미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이 어려 있었다.
“불가항력? 단 한 명을 보고 불가항력이라고 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마왕이나 대공급이 등장하지 않는 한 이번 작전은 무조건 성공해야 했어요. 최적의 조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다른 곳 또한 위험해지겠지요. 어쩌면 앞으로의 전략을 전부 수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 이 정도라면 삼세의 자격을 의심…….”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 있던 월하운 대신 옆에 있던 화강진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수천? 아니, 수만? ‘그’와 대적했던 그 짧은 시간 만에 목숨을 잃은 수인들의 숫자입니다. 전투가 더 지속되었다면 그 피해는 훨씬 더 커졌겠지요.
만약 그자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더는 전투를 치를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로서는 후퇴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었단 말입니다! 아마 우리가 아닌 요정림이나 거인 대군락이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을 수도 있겠지요.”
“뭐? 지금 뭐라고…….”
화강진의 말에 회의 막사 안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저벅.
그런 막사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귓가로 낮은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급속도로 가라앉는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시장통을 방불케 했던 광경이 거짓말이라도 된 것처럼.
저벅, 저벅.
천천히 고요해진 막사를 가로질러 상석에 앉는 사내.
그렇게 들어오자마자 한순간에 모든 것을 휘어잡은 사내, 시온의 입에서,
“회의를 시작하지.”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에 조용히 일어난 티에리가 지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먼저 마역의 동쪽으로 진입했던 수인해의 군세가 패퇴한 것부터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원인은 바로…….”
“대행자 이그마하 리바이어. 맞나?”
“……그렇습니다.”
시온은 자신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월하운을 바라보았다.
‘의외로군.’
시온이 그렇게 생각한 건 수인해가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행자, 아니 정확히는 세계의 대행자라 불리는 이그마하 리바이어.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불멸성을 지니고 있었을뿐더러 지금은 반신의 격마저 획득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나섰다면 수인해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째서 그 녀석이 나섰냐는 것이지.’
그 별칭처럼 이그마하는 세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자였다.
즉, 세계 균형의 수호자라는 말.
그렇기에 사적인 감정이나 이유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연대기에서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멸망으로 정해진 세상의 운명을 시온 자신이 뒤틀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가 움직였을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뭐,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앞을 가로막는 건 전부 박살 내면 그만이었다.
“폐하, 수인해 쪽에 힘을 보태실 생각입니까?”
“그럴 필요 없어.”
아스칼론의 가주인 검왕 루트비히의 물음에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수인해 쪽 전력은 뒤로 물리도록 해. 당장 무리하게 뚫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다른 두 곳은 이미 내륙으로 진입했으니 그쪽에 집중할 거야.”
처음 머릿속으로 그린 전략 중 일부가 틀어졌지만, 전쟁에서는 항상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시온에게 이런 일은 무척이나 익숙했다.
“그럼 대행자 쪽도 무시하는 겁니까?”
“아니, 가만히 놔둘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쪽으로 전력을 보낼 수는 없어.”
어디 있을지도 모를 대행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렇다면…….”
“저번처럼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수밖에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여기는 마역이에요. 그런 방법이 있을…… 이미 생각해 두었군요.”
그 말에 반박하려던 디에나가 슬쩍 올라간 시온의 입꼬리를 보며 말을 멈추었다.
그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시온이 손가락으로 지도에 네 개의 점을 찍었다.
“여기 있는 영겁의 그림자, 그리고 달의 눈이 알아 온 정보에 따르면 마역에는 네 개의 ‘마신전’이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마역 전체에 마기를 퍼뜨리고 유지하는 핵심 중의 핵심 지역이지. 우리는 이중 세 곳을 동시에 친다.”
심연에 존재하는 마왕의 신전을 제외한 나머지 마신전들은 마역의 내륙 곳곳에 퍼져 있었고 시온은 그 모두를 한 번에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저들도 막으러 올 수밖에 없을 테고 그중에는 대행자 또한 십중팔구 존재하겠지.”
“하지만 가장 안쪽에 있는 하나를 제외한다고 해도 나머지 세 군데 또한 제국군이 단시간 내에 도달하기에는 너무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시온이 찍은 점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벨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제국군 전부가 갈 필요는 없어. 마신전에 침투하는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제국 내 최상위 무력을 지닌 자들뿐이야. 나머지 제국군은 우리가 침투를 시작하는 동시에 내륙의 경계에서 전투를 일으킨다.”
“본대로 시선을 끌고 별동대로 타격한다. 일종의 양동 작전이로군요.”
“맞아.”
철혈가 가주의 대답에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은 이 전쟁을 길게 끌 생각도 저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처음부터 적들의 핵심을 찌를 생각이었다.
‘물론 그만한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시온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 지금까지 리우시나와 용사 일행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거둬들이고 성장시켜 왔으니까.
“흠…… 확실히 성공만 한다면 완벽하게 전세를 잡고 마역의 최심층부까지 단숨에 밀고 들어갈 수 있겠군요.”
그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던 대마법사, 아하마드 오즈리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그때 옆에서 계속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그로우드가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아무리 최심층부인 심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침투하려는 세 개의 신전은 전부 내륙의 깊은 곳에 존재합니다. 거기까지 별동대를, 그것도 동시에 보내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만. 한두 명이 아니기에 아하마드 님이나 티르안 님의 공간 이동으로도 불가능해 보이고요.”
“맞아, 네 말대로 무척 어렵겠지.”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시온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런 시온의 휘어진 눈동자는 회의 막사가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