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선물
즐거운 눈싸움이 끝이 났다.
물론 끝이 남에 따라 승부도 정해졌다.
‘무승부.’
모두 지쳐서 다같이 합의한 승부의 결과였다.
평소에 무승부라 하면 김이 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허나 지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이기기 위해서 한 눈싸움이 아니었으니까.’
명목상의 승부일 뿐 즐기기 위해 시작한 눈싸움이었다.
처음부터 신나게 놀다가 무승부로 끝낼 생각이었고.
그래서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아이들도 그래 보이고.’
눈싸움을 마친 연두와 시은이는 붙어서 꽁냥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걸 보니 역시 모두가 훈훈하게 무승부로 끝내길 잘했다.
현재 우리는 근처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세연이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이렇게 신나게 눈싸움한 건 처음이에요. 어렸을 때도 이렇게 논 적은 없는데.”
“그쵸. 저도 몰랐어요. 스물다섯살 먹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눈싸움을 할 거라고는.”
“…”
왜인지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신세연이 뭔가 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요?”
“얘기 들으니까 실감돼서요. 제가 스물일곱이나 됐다는 게.”
“아..”
왜 울상을 짓나 했더니.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스물일곱이나 된 게 아니죠.”
“.. 그럼요?”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 거죠. 젊은 나이잖아요.”
내 말에 그녀는 난데없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주원씨는 나이 되게 많은 줄 알겠어요.”
“하하.. 너무 어른처럼 말했나? 아, 어른이 맞긴 하지.”
내 자문자답이 웃긴지 계속해서 웃음짓는 그녀.
그러다 또 살짝 풀이 죽은 듯 말한다.
“이제 일주일정도 지나면 한 살 더 먹네요.”
“그러네요.”
진짜 그러네. 딱히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럼 스물여섯이 되겠군.
그러고 보니 연두는 여섯살이 되는 거구나.
뭐, 한 살 더 먹는다고 크게 바뀔 거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 새로운 것들이 찾아올 수도 있고.
‘분명한 건.’
그 모든 게 연두와 함께일 거라는 거겠지.
미소를 머금은 나를 향해 신세연이 말했다.
“웃는 거 보니까 주원씨는 안 싫은가 봐요? 한 살 더 먹는 거.”
“네, 저는 괜찮아요.”
사실 작년까지도 나이를 먹는 것에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또 한 살 먹는구나 했다.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어차피 또 무료한 일상이 반복될 테고 나는 그런 365일을 살아가야 할 테니.
딱히 의미를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스물다섯이 되었다.
‘그런데.’
스물다섯의 삶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연두가 오고 나서 내 일상 자체가 변화했으니까.
더는 무료하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
따라서 올해의 끝은 작년까지의 한 해가 끝날 때의 느낌과 달랐다.
‘기대감.’
작년까지만 해도 전혀 존재하지 않던 감정이었다.
그 감정이 생겨나다 못해 가득 찬 기분.
나 이주원의 스물여섯은 어떤 모습일지가 무척 기대됐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내년은 어떨지.
“이틀 뒤면 크리스마스잖아요.”
신세연의 말에 생각이 끊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죠.”
“어떻게 보낼 생각이세요?”
영화관에 갔을 때 서지혜에게도 들은 질문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연두랑 같이 보내려고요.”
모처럼 오랜만에 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런 만큼 최고의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
정자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한참 뒤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들어갈까요?”
워낙 신나게 눈싸움을 한 터라 더 노는 건 무리였다.
눈싸움을 한 시간도 적지 않았고.
무리해서 놀았다가는 감기에 걸릴 우려가 있었다.
신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마음 같아서는 집에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지금은 힘들겠네요.”
여기서 내가 말하는 ‘차’는 신세연이 선물한 세 종류의 티였다.
레몬청과 오렌지청, 그리고 자몽청.
양이 많아서 아직 세 개 모두 남아있었다.
‘초대해서 대접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모녀의 옷 상태였다.
격하게 논 탓에 둘 다 옷이 전부 눈으로 젖어 버렸으니까.
이 상태로 초대하면 오히려 신세연이 불편할 터였다.
그녀는 말뜻을 이해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대신 다음에 초대해 주세요!”
아쉬움을 잔뜩 머금은 연두와 시은이의 표정.
허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파악한 거 같았다.
나는 신세연을 향해 말했다.
“물론이죠.”
“그럼 일어나 볼까요? 읏차.”
신세연이 정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도 조심스레 정자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아쉽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데구르르.
그런데 자그맣게 무언가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덩이가 굴러오는 소리는 아닐 테고.
자연스레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응?’
역시 눈덩이가 구르는 소리는 아니었다.
멀찌감치에서 유모차 하나가 오고 있었으니까.
물론 유모차를 끄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거지만.’
저번에 첫눈 오는 날 연두와 나갔을 때 본 얼굴이었다.
나와 연두를 알고 있던 아이의 엄마 이가흔.
그렇다면 유모차 탄 아이가 누굴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은이.’
이가흔도 우리를 본 건지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그러니까요! 초록님을 이렇게 뵐 줄이야…”
“하하..”
한편 초록님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의 신세연.
나는 바로 이가흔을 소개해줬다.
“저번에 연두랑 산책 나갔을 때 알게 된 이웃분이에요.”
그제야 신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반갑습니다. 저는 신세연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이가흔이에요. 시은이 엄마시죠!”
신세연은 눈이 동그래져서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연두튜브에서 많이 봤거든요, 시은이.”
“아!”
확실히 몇 차례 연두튜브에 등장한 시은이였다.
이렇게 시은이까지 알 정도면 정말 연두튜브 애청자이긴 한가 보네.
이가흔은 난데없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예쁘시다.. 애기도 키우시는데 피부가 왜 이렇게 좋으세요..?”
초면에 받은 칭찬에 신세연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가흔씨도 예쁘신데..”
“흑.. 아니에요. 저는 임신하고 살쪄가지고……”
저번에도 느끼긴 했지만 상당히 털털한 성격이었다.
이렇게 초면인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이어서 그녀는 연두랑 시은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는 뒤늦게 질문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나은이 눈 구경 좀 시켜주려고 걷다 보니까.. 초록님은 여기 동 사시는 거예요?”
“네, 맞아요.”
“그렇구나.. 아, 참!”
이가흔은 유모차 앞으로 이동해 커버를 들췄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나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연두의 표정이 가득 부풀었다.
“나은아..!”
“뺘! 뺘!”
내내 조용하다가 연두를 보자마자 소리를 내는 나은이.
오늘도 따뜻한 복장으로 중무장을 한 상태다.
하얗고 뽀송뽀송한 귀마개까지 끼고.
연두는 신나서 시은이에게 말했다.
“나은이야, 시으나..!”
“나은이?”
“으응. 눈 오는 날 연두랑 만나써..”
“그렇구나. 진짜 귀엽다..”
시은이도 연두를 따라 나은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뽀짝한 둘이 나란히 서서 아기를 귀여워하는 모습.
그 그림이 귀여워 자연스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잘 지내써, 나은아..?”
“뿌우!”
“응! 언니는 잘 지내써!”
옹알이와 함께하는 기적의 소통이었다.
한편 아기에게 시선이 고정된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예쁘다.. 몇 살이에요?”
“두 살이에요.”
애엄마라고 해도 아기가 귀여운 건 마찬가지인 모양.
나는 웃으며 카메라로 눈앞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던 와중 나를 본 이가흔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 혹시 연두튜브에 올라가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놀란 나는 촬영을 멈추고 대답했다.
“아뇨. 워낙 귀여워서 찍은 건데.. 오해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실제로 업로드할 목적으로 찍은 게 아니었다.
나는 모든 영상을 연두튜브에 올리려 찍는 게 아니니까.
허나 그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
‘나는 유투브 크리에이터니까.’
더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네?”
“저는 오히려 좋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채널에 나은이가 나오면. 주위에 보여줄 수도 있고요. 우리 나은이 연두튜브 탔다고, 흐흐.”
이가흔의 말에 나와 신세연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쾌활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물론 안 올리셔도 돼요! 저는 그냥 응원하는 한 팬이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이후에도 꽤 긴 시간 우리는 나은이와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다.
눈싸움 뒤에 찾아온 뜻밖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와 연두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갔다.
눈 때문에 차가워진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후아…”
“크크, 따뜻해?”
“네에..”
한참 몸을 녹이다가 욕조에서 나왔다.
그리고 따뜻한 곰돌이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우습지만 잠옷도 커플룩이었다.
‘나는 하늘색, 연두는 분홍색.’
그렇게 커플룩을 입고 나와 연두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은 안 춥지, 연두야?”
“네, 따뜨태요..”
“감기 걸리면 안 돼.”
“아빠도! 감기 걸리면 안 대요..!”
“하하, 그래.”
나는 소파에 앉은 채로 원스타에 업로드할 사진을 골랐다.
올라프 옆에 서서 찍은 연두의 사진을 포함한 몇 장의 사진.
그중에는 연두와 시은이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건 볼 수록 웃기네.’
넘기다 보니 내가 나온 사진도 등장했다.
신세연이 찍어준 사진이었다.
다시 봐도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못 찍을 수 있는지.
툭.
어쨌든 원스타그램은 성공적으로 업로드했다.
슬슬 연두튜브에 올릴 영상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특집 영상을 계획하고 있긴 하지만.’
그전에 올릴 영상도 하나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업로드 텀이 너무 길어져 무수한 지건이 쏟아질 테니.
확정은 아니지만 오늘 찍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업로드할 예정이었다.
스윽.
나는 연두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오늘 재밌었어?”
“으응! 진짜 재미써써요..!”
“다행이다. 근데……”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말했다.
“아까 시은이랑 아빠랑 하이파이브하고 그럴 때 있잖아.”
그때 본 뾰로통한 연두의 표정.
그 표정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능청스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연두 아빠한테 삐졌지.”
연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안 삐저써요..!”
“정말?”
“네에.”
“조금도? 이만큼도 안 삐졌어?”
이번에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연두를 향해 나는 결정타를 날렸다.
“사실대로 얘기 안 하면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는데……”
산타할아버지 효과는 엄청났다.
어렸을 적 공포의 대상인 망태할아버지만큼이나.
결국 연두는 자그맣게 말했다.
“조금..”
“응?”
“진짜 조금 삐저써요.. 이만큼…”
안 그래도 조그마한 손으로 콩알만한 모양을 만드는 연두.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미안해, 연두야. 서운하게 만들어서.”
“아니에요! 연두 서운하지 안아써요..!”
“삐진 거랑 서운한 건 다른 거야?”
“네! 그리고 연두는 삐지지도 안아써요. 엄청 조금 삐진 거니까……”
삐진 거랑 엄청 조금 삐진 게 또 다른 모양이다.
뭐, 연두가 그렇다면 그런 거로 하자.
“어쨌든 엄청 조금 삐지게 해서 미안해. 대신 크리스마스에는 둘이서 최고로 즐겁게 보내자. 집도 예쁘게 꾸미고. 어때?”
연두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아빠랑 연두랑요..?”
“응. 아빠랑 연두랑.”
“.. 조아요. 진짜……”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는 오직 연두와 나 단둘이 보낼 예정이었다.
이미 어떻게 보낼지 구상해 둔 상태고.
그때 연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빠..”
“응, 연두야.”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착한 아이들한테 선물 조요..?”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흔히들 ‘너 그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준다?’라고 하니까.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
“시으니! 그리고 선생님도 그래써요!
“그랬구나.”
이런 걸 보면 역시 시은이도 아직 다섯 살 아이였다.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걸 보면.
내 대답에 연두의 말이 이어졌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대요.”
“응? 누가?”
“시으니랑 미누요. 그리고 유라도요!”
여기서 말하는 크리스마스는 작년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거겠지.
‘.. 잠깐. 작년 크리스마스?’
순간적으로 뭔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연두가 어떤 말을 하는 건지 감이 왔으니까.
자연스레 표정도 굳기 시작했다.
조금 속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연두.
“근데 연두는 업써요..”
“.. 뭐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적..”
“…”
어떻게 말해줘야 하지.
뭐라 말하고는 싶은데 섣불리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 연두는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그리고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두는 착하지 안았나 바요..”
심장을 콕 찌르는 한 마디였다.
순간적으로 차가운 한 마디가 나갔다.
“.. 아니야.”
흠칫.
목소리 때문인지 연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바보같다. 순간적인 감정을 드러내 연두를 겁먹게 하다니.
나는 미소를 띠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연두가 착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주지 않은 게 아니야.”
아리송한 표정으로 연두는 물었다.
“.. 그럼요?”
“너무 착해서.”
“네..?”
되묻는 말에도 나는 말을 이어갔다.
“.. 너무 예쁜 아이라서. 한 번에 주기에는 선물이 모자라서.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거야.”
나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최고의 선물을 주시려고.”
“최고의 선물…?”
“그래. 최고의 선물.”
정정한다. 산타할아버지는 존재한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내가 연두만의 산타가 될 생각이니까.
최고의 선물과 함께 연두를 찾아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