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간이 콘서트
찰칵. 찰칵. 찰칵.
쉴 새 없이 촬영 버튼을 누른다.
연시레의 케미가 한껏 드러나는 단체컷부터 단독컷까지.
‘여기서 시작하길 잘했어.’
첫 촬영지로 공연장을 택한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단비음악대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최적일뿐더러, 처음 모델을 하는 레나도 그리 어색해하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구독자 이벤트를 준비할 때 연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적은 많으니 말이다.
야외촬영으로 시작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거다.
포즈도 취해야 하고 시선처리 등 신경쓸 요소가 많은 만큼 다소 어색함이 있을 수 있었다.
첫 촬영인 레나로서는.
‘여긴 아냐.’
미리 얘기했듯 여기서는 특정한 콘셉트를 정해줄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한 요구는 단 하나.
콘서트 때처럼 단비음악대의 무대를 마음껏 뽐내 주라는 이야기였다.
그에 따라 귀에 들어오는 바이올린 선율.
따란. 딴.
시키지도 않은 우아한 포즈를 취한 레나가 앵글 안에 들어온다.
소품도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연주하고 있는 악기인 바이올린이 그 어느 것보다 더 뛰어난 소품이었으니까.
단비음악대의 레나.
그 자체가 지금 하는 촬영의 콘셉트였다.
찰칵.
몇 차례의 단독컷을 촬영하고 나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레나야. 여기 한 번 봐 볼래?”
연주에 집중하던 레나가 내 말에 고개를 돌린다.
방금과는 달리 요리조리 흔들리는 눈동자.
역시 이렇게 카메라와 정면으로 눈을 맞추고 하는 촬영은 아직 쑥스러운가 보다.
‘뭐, 괜찮아.’
어색해하는 건 당연했다.
시은이도 첫 촬영 때 그랬고,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가 뭔지도 잘 몰랐을 때니 말 다 했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둘 다 훌륭하다 못해 완벽한 모델로 거듭난 상태였다.
처음인 걸 고려하면 레나도 첫 발을 잘 뗀 셈이었다.
‘좋은 사진도 많이 건졌으니.’
이럴 때 사진가로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척!
축구선수 박주용이 생각나게 하는 따봉.
그와 함께 격려의 말을 건넸다.
“잘했어, 레나야. 너무 예쁜데?”
효과는 상당했다.
수줍어하던 레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으니까.
이어지는 촬영.
시은이와 연두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스탠딩 마이크, 피아노.
단비음악대 멤버로서 각각 가장 잘 어울리는 소품 앞에 있는 두 아이.
포즈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사진가인 내 역량이었다.
찰칵. 찰칵.
한동안 공연장 내부에 셔터 소리가 울려퍼졌다.
***
“우아…”
“대박! 진짜 화보같다..”
아이들과 주연이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촬영한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넘기다 보니 등장한 레나의 단독컷.
“…”
레나의 표정에 수줍음이 떠오른다.
이런 걸 가만히 지나칠 주연이가 아니었다.
“레나야.. 너…”
“.. 네?
“너 너무 우아한 거 아니야? 백조같아..”
역시 친화력 갑인 주연이다.
오늘 처음 보는 레나인데도 꼭 전에 알던 사이처럼 살갑게 대한다.
나도 이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태생적인 성격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엄마지, 아빠지.’
두 분 중 누굴까. 나한테 이런 성격을 물려준 게.
굳이 한 분을 꼽자면 아빠같긴 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같이 보낸 시간도 길고.’
그만큼 자연스레 내게 스며든 아빠의 성향도 많겠지.
뭐, 그와 별개로 아무리 잘 봐줘도 우리 아빠는 인싸는 아니다.
엄마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니 인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굳이 따지면 연두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잠깐.’
그럼 연두도 인싸라는 건가.
생각할 것도 없다. 당연히 인싸지.
얼음공주 시은이랑 하루 만에 친해지고 전학생(?)인 레나와도 단번에 친해진 걸 보면.
인싸 중에서도 인싸가 틀림없다.
‘다행이다.’
그 부분만큼은 아빠를 닮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나야 뭐, 괜찮았다.
이미 내가 거북이라는 건 인정한지 오래거든.
‘엉금엉금 나아가면 돼.’
천천히 가도 목적지에만 다다르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최고였어, 레나야.”
“감사합니다..”
“에이, 뭘. 내가 고맙지.”
연두와 시은이도 레나의 양옆에 꼭 붙어서는 꽁냥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즐거운 촬영이었다.
***
의상을 바꿔가며 계속 촬영을 진행했다.
주연이가 조력자로서 큰 도움이 됐다.
연두와 시은이는 물론이고 레나도 점점 촬영에 적응하는 게 눈에 보였고.
찰칵.
“후우..”
드디어 끝난 공연장에서의 촬영.
다시 우르르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확인했다.
역시나 흠잡을 데 없는 사진이었다.
‘이제 야외촬영인데..’
나가기 전에 잠깐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알다시피 이 곳은 공연장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늘 촬영을 위해 사전에 대여한 장소이고.
‘촬영 목적으로 빌린 장소긴 하지만.’
어떤 용도로 활용하든 상관은 없었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게 있지.
공연장 본연의 목적을 잠깐이나마 활용해보고 싶었다.
“얘들아.”
꼭 붙어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셋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혹시.. 보여줄 수 있을까?”
“머를요..?”
“축가.”
뜻밖의 얘기였는지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부푼다.
옆에서 주연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빠. 갑자기 축가는 왜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주연이한테는 얘기 안 했구나.
나는 바로 설명해줬다.
“집들이 때 기억해? 전시회에도 오셨고. 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
“네, 기억해요.”
“선생님이 곧 결혼을 하시거든. 근데 단비음악대에 축가를 부탁하셔서.”
“아, 정말요? 우와.. 결혼…”
“왜? 의외야?”
“아뇨. 그냥 뭔가 신기해서요.”
얘기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 게 있었다.
“주연아.”
“네.”
“그 선생님 봤을 때 있잖아. 혹시 나이가 어느 정도로 보였어?”
내 시선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학창시절 때부터 선생님을 본 데다가 심어져 있는 인식이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궁금했다.
제삼자가 볼 때의 선생님의 모습이.
“음..”
주연이는 얼마간 고민하더니 입을 뗐다.
“삼십대 후반이요. 한 서른여덟, 서른아홉?”
“.. 진짜?”
“네. 왜요? 설마 너무 높게 불렀나요?”
아니, 완전히 그 반대다.
노안이라 항상 오해를 받았던 선생님이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듣게 되다니.
그야말로 인간승리 그 자체 아닌가.
추운 겨울을 버티다 보면 언젠가 봄이 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럼 말이야. 혹시 그분도 기억해?”
“어떤 분이요?”
“전시회에 선생님이랑 같이 왔던 여성분.”
“아, 기억해요!”
대답한 주연이가 흠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잠깐만요. 설마..”
눈치가 빠르네.
이러면 모르는 척 물어볼 수도 없겠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
“헐.. 대박.”
놀라는 걸 보니 반전은 반전인 모양이다.
“그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 네 살이셔.”
실제 두 분의 나이차이는 여섯살 차이였다.
서른 네살과 마흔살.
요새 띠동갑 부부도 많은 걸 고려하면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 차이였다.
신부 쪽이 아깝다는 건 물론 부정할 수 없지만.
주연이가 입을 뗐다.
“근데..”
“근데 뭐?”
“생각하니까 의외로 잘 어울려요.”
“하하, 그래?”
“네. 뭔가 귀족 영애랑 정처없이 떠도는 무사가 사랑에 빠진 느낌이라 해야 하나..”
“푸흣.”
“왜, 왜요!”
“아니. 의외로 그런 느낌 좋아하는구나 해서.”
“.. 예전에 조금 봤어요.”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비유 자체는 찰떡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놀랐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당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생각했으니까.
직업도 같은 데다가 담당 과목마저 둘 다 미술이고.
“아무튼 그렇게 됐어.”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흐으.. 완전 좋겠다. 축가를 연시레가 불러준다니..”
주연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축가로 어떤 거 불러요?”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축가인 만큼 결혼과 전혀 관계없는 노래를 부를 수는 노릇이니까.
그런 와중 듣게 된 노래.
“메리 미.”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혼하는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였다.
가요이긴 하지만 괜찮았다.
가사가 워낙 예뻐서 아이들이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고.
“와, 정말요?”
“왜?”
“제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메리 미.”
“아, 그래?”
“네.”
주연이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언니도 들어보고 싶다.. 단비음악대가 부르는 메리 미.”
“연습 마니 못 했는데..”
“에이, 괜찮아, 괜찮아.”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연습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까.”
싫다면 억지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아직 아이들이 제대로 모여서 연습한 적은 없다는 걸.
그런 상태에서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여주길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단지.’
느낌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자리를 잡고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네.”
놀랍게도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시은이였다.
“.. 정말?”
끄덕. 끄덕.
이어지는 시은이의 말은 또 한 번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가사 다 외웠어요.”
보기 드문 자신감 넘치는 시은이의 모습이었다.
***
시은이의 자신감에 힘입어 연두와 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잊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들어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슥. 슥. 슥.
서로 눈을 맞추고선 세 아이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나.. 두울.. 셋..!”
따단. 딴.
뚠. 뚜둔. 뚠.
“비 내리는 날엔~ ♪”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엄청난 불협화음이다.
각자 개인연습은 열심히 한 티가 나는데 타이밍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이게 맞지.’
제대로 된 연습 한 번 없이 하는 거 치고는 합격점이다.
그래도 귀엽네. 불협화음에도 꿋꿋이 멈추지 않고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어쩌면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연주에 너무 몰두해서.
“흐흣.”
주연이도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무대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끝내 1절을 마친 연시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연주를 멈춘다.
와다다.
왜일까. 연주를 마치자마자 연두와 시은이는 레나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선 머리를 맞댄 세 아이.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장면이었다.
‘뭐지?’
나와 주연이는 박수를 치는 것도 잊고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 가운데 목소리를 낸 건 연두였다.
“시으나, 레나야..”
상당히 심각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표정도 마찬가지.
시은이와 레나도 마찬가지로 무겁게 말을 받는다.
“응..”
연두는 또다시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있자나..”
“으응.”
“진짜진짜 연습 열씨미 해야 대.”
“푸흣.”
오늘 여러번 터지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했더니 연주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이었다니.
심지어 시은이와 레나도 세상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우리 진짜 못 한다.. 우와…”
심지어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다. 안 좋은 쪽으로.
하기야 아이들이 모를 리가 없지.
콘서트 경험까지 있는 아이들인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리가.
‘대단하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이제 여섯살인 아이들이 문제점을 바로 깨닫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는 게.
이런 걸 보면 팀은 진짜 팀이구나.
“아빠..!”
한참 얘기를 주고받은 후에야 연두는 내게 달려와 안겼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잘했어, 연두야.”
도리. 도리.
연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연두 진짜 못 해써요..”
“처음이니까 당연한 거야. 연습하면 엄청 잘해질 거야.”
“네에.”
***
미완성이긴 했지만 느낌은 확실히 파악했다.
결혼식장에서 단비음악대가 부르는 축가가 어떤 느낌일지.
주연이가 나를 향해 물었다.
“이제 야외촬영하러 가는 거죠, 오빠?”
“아니.”
“… 엥?”
단호한 내 대답에 주연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 아니에요?”
“아직 못 본 무대가 있으니까.”
“못 본 무대요? 설마 단비음악대 축가가 두 곡이에요?”
“아니.”
“…”
주연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묻는다.
“그거 유행어 아니죠? 아니.”
“아니야.”
“…”
이번에는 의도한 게 아니다.
진짜 아니라서 달리 대체할 말이 없었다.
조금 울컥한 건지 주연이가 보이지 않는 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럼 뭔데요! 아직 못 본 무대.”
“주연이 네 무대.”
“그러니까 그 무대가.. 네?”
얼떨떨한 표정의 주연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이 안 오는 표정이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단비음악대가 불러줬잖아, 축가. 그러니까 주연이 너도 답가로 한 곡 불러줘야지.”
거절을 못 하게 하려면 방법이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얘들아? 듣고 싶지 않아? 주연이언니가 부르는 노래.”
“.. 듣고 시퍼요!”
“우아!!”
연시레의 열띤 호응.
이 상황에는 음치 중의 음치인 나도 절대 못 뺀다.
이어지는 주연이의 목소리.
“으.. 진짜 짓궂어…”
말과는 달리 주연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대답은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2년이라고 했잖아요. 팬으로서의 감, 완전 부정확하네.”
“하하, 그러게.”
나는 장난스레 말을 덧붙였다.
“뭐, 그래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잖아.”
“치..”
이렇게 시작됐다.
나와 연시레를 관객으로 하는 싱어송라이터 하주연의 간이 콘서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