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팬
“..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부탁에 놀란 나는 되물었다.
서지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
“학습지 그림 그리는 걸 부탁드려도 될까요..?”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그녀가 아차 하고 말을 이었다.
“물론 그냥 부탁드리는 건 아니에요! 수익 분배는 철저히 할 거니까요! 애초에 출간할 기회가 온 것도 오빠 덕이고……”
서지혜는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렸다.
허나 그녀는 핀트를 잘못짚었다.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 당황한 게 아니니까.
내가 놀란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예상 못 했으니까.’
최근에 미술을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단순히 취미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여전히 내 그림을 좋아해 준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고.
하지만 취미 너머로 발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기에 놀라움이 더 컸다.
한편, 서지혜는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 이렇게 해서 오빠한테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지혜 씨.”
“.. 역시 안 될까요?”
그녀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내가 보인 당황한 반응 때문인 건가?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조건에 관해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조건은 별로 관심 없어요.”
“으응..? 그럼요?”
“왜 저예요?”
“.. 네? 그게 무슨……”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프로도 아니고, 아이북 출판사를 통해서 뛰어난 그림작가를 소개받을 수도 있을 텐데. 수익 분배 면에서도 그게 더 좋을 테고요.”
나로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그야, 그녀가 굳이 나와 협업을 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수익 배분을 내게 가능한 한 유리한 조건으로 맞춰준다는 말까지 하면서.
잠시 후, 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좋거든요.”
“네?”
“저는 오빠 그림이 좋아요. 그게 전부예요.”
너무 단순한 대답이라 말문이 막혔다.
서지혜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학습지 제작자가 저잖아요. 제가 마음에 드는 그림이어야 학습지도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래서 오빠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결국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였다.
그녀가 본 내 그림이라고는 연두 일러스트가 전부일 텐데.
그거 하나를 보고 내 그림 실력을 믿는 건가.
이상하게 쓱 올라가는 입꼬리. 한마디가 툭 튀어 나갔다.
“아직 어리네요, 지혜 씨.”
그리고 뱉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꼰대 중의 꼰대나 할 거 같은 발언 아니었나?
전혀 그런 의도로 한 발언은 아니었는데.
그야말로 쉣 오브 쉣이었다.
“미안해요. 방금 말은 실수예요.”
“아, 크크.”
젠장. 역시 웃는다.
그녀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실수 맞아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 같은데……”
“아뇨. 순수하다고 하려는 의도였는데, 말이 헛나갔어요.”
“뭐, 괜찮아요. 제가 동안이긴 하죠.”
“하하..”
“그래도 너무 어리게는 보지 마세요. 저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서지혜는 말을 덧붙였다.
“.. 혹시 저도 방금 말실수한 건가요?”
“저보다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휴우우..”
우리는 그렇게 장난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녀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그래서.. 지혜 씨 부탁 말인데요.”
“.. 네.”
“받아들일게요.”
“헐! 진짜요?”
“네. 조건은 그냥 업계 평균으로 하고요.”
“최대한 맞춰드리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처음부터 조건에 욕심을 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일차적으로 내게는 그럴 만한 커리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맞춰준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건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연두튜브를 생각할 때도 그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학습지를 소개하게 된다면, 그걸로 과한 수익을 창출하는 건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닐 테니.
아니, 타인을 시선을 떠나서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도 무보수로 참여할까도 생각했다. 허나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을 거 같아 선택지에서 배제했다.
결국 평균적인 조건으로 정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부탁을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 아니었다.
재미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혜 씨의 학습지를 처음 봤을 때.’
훌륭한 학습지라 생각했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학습지 디자인과 동물 그림이었다.
사실 그런 부분에서 높은 퀄리티를 바라는 게 모순이었다.
지혜 씨는 교대에 다니고, 학습지를 함께 만든 동아리원들 역시 전부 교대생이니까.
인력이 없어서 자기들끼리 그렸다고 들었는데.
애초에 고퀄리티의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나는 할 수 있어.’
최근 들어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꽤나 올라온 상태였다.
내 능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학습지의 퀄리티를 한층 높이고 싶었다.
그건 내게 상당한 보람이 될 테니까.
‘연두도 더 좋은 학습지로 공부할 수 있게 될 거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건 연두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구독자들에게 더 좋은 학습지를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연두튜브를 위한 일이기도 했고.
“그럼 잘해 봐요, 지혜 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작화가님!”
“.. 그러지 마세요.”
“크크, 죄송해요. 아, 근데 오빠.”
“네.”
“연두튜브 다음 영상은 언제 올라와요?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올렸는데요?”
“.. 헐, 진짜요? 왜 알람이 안 떴지?”
보러 가겠다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통화가 끝나자 머릿속에 학습지가 그려졌다.
정확히는 내 그림으로 완성된 학습지가.
‘기대되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학습지 그림을 그린다는 건.
허나 내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었으니까.
***
“거기 쥐방울.”
연두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바로 외할머니 민홍임이었다.
‘나야 연두 입양문제로 최근에도 만났지만.’
연두가 외할머니를 만나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연두는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내 뒤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 모습을 보니 왜인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시골에서 떠날 때는 할머니와 헤어진다고 아쉬워하기까지 하더니.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할머니는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대답 안 해?”
“하, 할 꺼에요..!”
연두는 내 뒤에 꼭 숨어서 말을 이었다.
“근데 연두는 지방울 아니에여..”
“허? 웃기고 있네. 영락없는 쥐방울이구만.”
“연두는 안 우껴요!”
“이게 어딜 할미한테 소리를 질러!”
“하, 할모니 미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한 둘의 관계였다.
외할머니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이런 걸 딸이라고……”
그 말에 연두는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다.
“잘모태써요.. 안 구럴게요.”
아무래도 전에 시골에서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연두를 입양해야 같이 살 수 있다는 말.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 나온 실언이었는데, 연두에게 영향을 준 거 같다.
‘물론 입양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입양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나이도 미달이었고, 경제적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지.
그래서 부탁한 대상이 외할머니 민홍임이었다.
오늘 연두와 함께 할머니를 만난 이유도 입양 문제 때문이었고.
‘방금 모든 입양 절차가 끝났으니까.’
입양을 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었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착실히 절차를 밟아준 덕에 지연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방금, 가정법원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즉, 연두는 법적으로 외할머니의 딸이 된 셈이다.
‘그런 탓에 족보는 엄청 꼬였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입양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수밖에.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걱정 마, 연두야. 이제부터 쭉 아빠랑 같이 살 거니까.”
“하, 할모니가 연두 안 데리고 가요..?”
“응. 안 데리고 가.”
슬쩍 눈치를 보며 대답하니, 할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어휴, 잘 논다, 잘 놀아.”
“할머니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뭐?”
“쉬운 일 아니었다는 거 알거든요. 연두 입양하는 문제. 할머니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만약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머릿속에 장례식에서 만난 친척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이 지금 연두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물론.’
지금도 확실히 해야 할 문제는 있었다.
오늘 식사하면서 할머니에게 그에 관해 말할 생각이었다.
“어서 가시죠, 할머니. 비싼 식사 대접하기로 했으니까.”
“참 빨리도 데려간다. 속물적인 놈.”
“…”
한결같은 분이라 좋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말없이 연두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
인터넷 서치를 통해 찾은 서초구의 한 고급 레스토랑.
이런 곳에 식사하러 오는 건 처음인지라, 들어갈 때부터 조금 긴장이 됐다.
그야, 내가 가 본 비싼 식당이라 해 봐야 아웃백 정도니까.
레스토랑 입구 간판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라원 셰프 이호연. 최고의 한 끼 고정출연!’
‘최고의 한 끼’는 요즘 유행하는 지상파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국내 스타 셰프들이 모여 셀럽들의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해 식사를 제공하는.
동네에서 감자탕 사 먹는 것도 쩔쩔매는 나였다. 당연히 이런 레스토랑을 오는 건 처음이었다.
습관처럼 비싼 거, 비싼 곳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께 식사를 대접하러 온 거지.
“안 들어가고 뭐 해?”
“아, 네. 들어가야죠.”
끼익.
할머니의 재촉에 내가 문을 열었다. 사실 식사할 돈이 아까운 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처음 오는 장소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뿐.
들어가자마자 젊은 여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라원입니다.”
“.. 네, 안녕하세요.”
왜인지 직원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인사일 뿐, 별다를 것도 없는데 말이다.
“안녕하세요!”
뒤이어 연두도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와 달리 조금의 어색함도 없어 보였다.
하긴, 연두는 고급레스토랑이 뭔지도 잘 모를 테니.
“네, 안녕하세.. 어머!”
그런데 직원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대단한 걸 보기라도 한 듯 놀란 모습이었으니까.
이후에 직원은 입을 가리며 나랑 연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했다.
“.. 아, 그.. 예약하고 오셨나요?”
“아뇨.”
설마 예약하고 와야 했던 건가?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휴우. 다행히 식사를 못하고 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앞장서는 직원을 따라갔다.
런치타임이 아니라 그런지 의외로 빈 테이블이 많았다.
직원을 따라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던 연두가 입을 열었다.
“우아.. 아빠! 엄청 반짝반짝해여..!”
“응? 뭐가?”
“저어기!”
연두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빛나는 각양각색의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셰프의 커리어를 나타내려 전시해 둔 트로피로 보였다.
뭐라 대답하려는데, 할머니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잘못 키웠네, 잘못 키웠어.”
“네? 갑자기요?”
“조그마한 게 벌써부터 반짝이는 거 좋아하고. 쯧쯧.”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차는 할머니. 순간 당황한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이해 못 한 연두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하, 할머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것도 소리를 지르네? 할미는 장난도 못 쳐?”
“언제부터 할머니가 저한테 장난을 치셨다고..”
“시끄러! 이놈의 버릇없는 조대새끼.”
이런 분위기의 레스토랑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친 단어였다.
이 막장 대화의 끝은 연두가 장식했다.
“아빠한테 구러지 마세요..!”
“프흡.”
난데없이 들리는 웃음소리. 우리가 아닌 직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꾹 참으려다가 못 참고 터진 웃음 같은데.
그녀는 괜히 켁켁거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여기 앉아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직원은 메뉴판을 놓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하긴, 그녀가 웃음이 터진 것도 이해는 갔다.
제삼자가 듣기에는 상당히 웃길 수 있는 대화였으니 말이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지금부터는 분위기에 어울리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점잖게 메뉴판을 폈다.
익숙지 않은 숫자들이 보였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크흠.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세요, 할머니?”
그때 누군가가 우리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얼굴을 보니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 셰프잖아.’
TV 프로그램에서 본 얼굴 그대로였다.
레스토랑의 셰프 이호연이 아까의 직원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왜 우리한테 오는 거지? 설마 우리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내쫓으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뚜벅.
그가 내 앞에 멈춰서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셰프 이호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실례가 안 된다면 메뉴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싶은데요.”
“아!”
그런 거였나.
원래 이런 고급레스토랑은 셰프가 직접 메뉴를 설명해 주는 건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했지만.
당황해서인지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결국 내가 한 건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툭.
메뉴판에서 손을 떼고 셰프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셰프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 뭐지?’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몇 번째 당황하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나는 시선을 들어 셰프를 바라봤다.
왜인지 나를 바라보는 셰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눈이 마주친 후에야 셰프가 입을 열었다.
입에서 나온 말이 난생처음 듣는 메뉴였다는 게 문제지만.
“.. 정말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