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39)
화. 폭풍 피드백
두 편집자가 떠난 뒤.
바로 뒤따라 나가지 않고 풀잎컴퍼니에 남아있었다.
편집자들과 만남이 끝나면, 잠깐 대표인 윤수아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으니까.
그사이에 방금 있었던 만남을 되돌아봤다.
‘김준태, 주아랑.’
둘 다 다른 의미로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우선 김준태.
평범한 듯 보이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과하게 결여되어 있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그 모습이 괜히 마음이 쓰였다.
‘과거의 나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과거의 나.
돌이켜보면 정말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밀어 넣고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그런 내 모습이 조금은 겹쳐 보였다.
내가 그랬듯이 이유가 있을 거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지는 않으니까.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연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변화의 의지가 생겼으니까.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뭐든 간에 연두튜브 편집자가 그 계기가 됐으면 했다.
마냥 동정하는 건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야.’
그건 확실히 느껴졌다.
다음은 주아랑.
김준태와 달리 그녀는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무미건조한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유일하게 파악한 건 편집실력뿐이다.
‘연두부는 맞을까.’
잘 모르겠다.
원래는 연두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거가 뭐냐고?
바로 내가 합격을 결정한 납량특집 영상이었다.
평소 연두튜브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적재적소에 상황에 알맞은 연출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적어도 연두튜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뭘까.
‘뭐, 성격이겠지.’
딱히 흠을 잡을 요소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편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의견도 개진했고.
실력은 이미 입증됐으니 편집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었다.
“연두야.”
“네, 아빠.”
“오늘 편집자 언니 오빠 보니까 어땠어?”
바로 연두의 생각이었다.
우습긴 하지만 나는 나 이상으로 연두의 안목을 신용할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연두의 직관은 늘 잘 맞아떨어졌다.
바로 떠오르는 게 외삼촌이었다.
‘김윤호.’
다른 친척들과 그를 똑같이 치부했을 때도 연두는 달랐다.
내가 보지 못한 면을 봤다.
혹시나 이번에도 그런 부분이 있을까.
“준태 편집자님은……”
호칭이 재미있었다.
생긋 웃으며 연두는 얘기했다.
“진짜진짜 착하고 따뜻해여.”
“착하고 따뜻하다고?”
“네에. 그래서 웃는 걸 보면 연두도 웃고 싶어져요..”
우선 김준태에 관해서는 나와 생각이 일치했다.
관건은 주아랑이었다.
“그럼 아랑 편집자님은?”
연두가 쓴 호칭을 빌려서 물었다.
이번에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역시 어려운 걸까.
이윽고 연두의 입이 떨어졌다.
“아랑 편집자님은……”
“응.”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어여..”
맞아.
생각해보니 연두와 주아랑이 처음 만난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손 씻는 걸 도와줬다고 했지.
“무서웠다고?”
“네.”
그럴 만도 하다.
딱딱한 말투도 그렇고 첫인상이 따뜻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무서운 사람 아니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걱정해줬어여! 여덟 살이 혼자 화장실에 오면 위험하다고.. 그리고……”
수도꼭지에 손이 닿지 않아서 연두를 뒤에서 들어줬다는 것.
아까 들은 이야기였다.
수줍은 얼굴로 연두는 덧붙였다.
“무거웠을 텐데……”
잠깐만.
그게 그녀를 무섭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라면 아니었다.
연두는 무겁지 않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연두가 그렇게 봤다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도 같았다.
어떤 사람일지는 감이 안 오지만,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기대가 됐다.
두 사람과 함께 만들어 갈 연두튜브의 미래가.
***
집에 돌아가기 전에 윤수아와 만남을 가졌다.
“편집자분들과 이야기는 잘 나누셨나요?”
“네, 장소 제공 감사합니다.”
“뭘요.”
원래 편집자를 연결해주는 건 대체로 MCN의 몫이었다.
풀잎컴퍼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권유했을 때는 내가 직접 편집을 하겠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번에도 그녀와의 상의를 통해 MCN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편집자를 모집했고.
따라서 그녀는 권유했다.
‘편집자를 구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드리지는 못했으니, 편집자 관련 복지는 저희 쪽에서 책임지고 진행하겠습니다.’
장소 제공도 그중 하나였다.
두 편집자가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까 두 편집자에게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래서 말인데, 두 분이 원하신다면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드리려 하는데요.’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대답한 건 주아랑이었다.
일말의 고민도 없다는 듯이, 그녀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감사하지만 저는 업무를 위한 별도의 장소는 필요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편집은 노트북만 있다면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종이와 펜만 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그렇다면 자택에서 일을 하는 쪽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그럼 준태씨는……’
당연히 김준태에게도 권유했다.
그게 신경이 쓰이는 점이었다.
바로 떠오른 표정을 생각해 볼 때, 분명히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던 거 같거든.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준태씨도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걸 선호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죠?’
세상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마치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하고 스스로도 헷갈려하는 표정.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 예.’였다.
‘.. 아니겠지.’
단순히 착각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다른 사람의 답을 대신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정도의 관계가 형성된 거 같지도 않았고.
“별도의 장소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구요.”
윤수아에게도 둘의 의사를 전했다.
“정말요?”
의외라는 듯이 그녀는 말했다.
“아쉽네요. 이미 최적의 업무환경 구상을 끝내 둔 상태인데……”
윤수아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그런 거다.
몇 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하나 허투루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내가 그녀를 신용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유하나.’
심지어 그녀가 소개해 준 경리 유하나도 100% 이상을 해 주고 있었다.
아쉽게 됐네.
나는 작게 웃으며 얘기했다.
“나중에 한 번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네. 언제든 얘기해주세요. 또 일하다 보면 필요성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고래 이야기가 나왔다.
서동한.
지금 철원 백골부대에 있는 동한이였다.
윤수아는 쿡쿡 웃으며 얘기했다.
“훈련소 때는 정말 연두 덕분에 버텼다고 하던데요?”
“하하, 그런가요?”
“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인편을 써 줬다고. 저도 많이 쓰긴 했는데 매일은 못 썼거든요.”
그녀는 미소를 띠며 연두를 향해 얘기했다.
“고마워, 연두야.”
“헤헤..”
배시시 웃는 연두.
하긴 그렇지.
나라도 군대에서 연두의 편지를 받는다면 그만한 힐링이 없을 거 같긴 하다.
마지막으로 윤수아는 말했다.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도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네?”
“저희 풀잎컴퍼니를 선택해주신 거요.”
그녀는 얘기했다.
“그래서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그마한 회사였던 풀잎컴퍼니가, 이제는 손에 꼽는 MCN이 되어 있었으니까.
연두튜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작은 채널이었지만 이제는 수천만 구독자에 달하는 대형채널이 됐다.
나는 빙긋 웃으면서 얘기했다.
“같이 성장한 거죠.”
앞으로도 풀잎컴퍼니와의 인연은 쭉 이어질 거 같았다.
***
“준태씨, 우리 잠깐 보죠.”
“.. 예?”
그 말과 함께 주아랑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의미인가?
잠깐 보자고 했으니 적어도 작별 인사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준태는 반쯤 달리듯 주아랑의 뒤를 따라붙었다.
한 걸음 정도의 보폭을 두고 함께 걷기 시작한 둘.
“저기……”
조금 지난 뒤에야 준태가 입을 뗐다.
“지금 어디 가는 건가요?”
“카페요.”
“.. 카페요?”
생각지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준태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카페를 간다. 왜 가지? 가서 뭘 하려고? 방금 할 얘기는 전부 끝낸 거 아니었나? 그렇다면……
‘.. 이런 미친놈.’
평소 험한 말은 거의 쓰지 않는 준태였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속으로 뱉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이지만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 버렸다.
스물넷의 젊은 남녀.
카페에 가자고 하는 건 데이트 신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럴 리가 있냐.’
준태는 모태솔로였다.
태어나서 해 본 사랑이라고는 학창 시절에 해본 짝사랑뿐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군대에 갔다.
전역한 뒤에는 여자를 만날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
설사 환경이 갖춰졌다고 해도 연애를 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의 영역이긴 했지만.
‘나 같은 놈한테 데이트 신청을 할 여자가 있겠냐고.’
심지어 상대는 무진장 예뻤다.
왜 TV에 나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 편집을 하고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이나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걸 스스로 반성하며 준태는 재차 입을 뗐다.
“카페는 왜 가나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
“…”
맞는 얘기였다.
지금은 몰라도 카페에 도착하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주아랑은 말했다.
“이 뒤에 일정 없잖아요. 그렇죠?”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약속이 있다며 시간은 잠깐만 낼 수 있을 거 같다고 바쁜 척을 하고 싶었다.
엄청나게!
하지만 없었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봐도, 머리를 쥐어짜내 봐도 약속 따위는 없었다.
오늘만 없었던 게 아니다.
어제도 없었고, 그저께도 없었고, 아마 며칠 전에도 없었다.
“.. 없습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다행인 건가.
침울해진 채로 준태는 발을 옮겼다.
그러다 보니 잠시 잊고 있던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저기……”
또 뭐냐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주아랑.
정말 그런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김준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한껏 소심해진 채로 말했다.
“.. 아까 말인데요.”
“아까 뭐죠?”
편집에 관해서라면 웬만해서는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건 말해야 했다.
아무리 소심하고 자기주장이 없는 편이라지만,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까 초록님이 그러셨잖아요. 일할 장소를 제공해주겠다고.”
“네, 그러셨죠.”
“근데 왜 사양하신 거예요?”
어쩌다 보니 따지듯이 말이 나갔다.
아니, 따져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다소 공격적이었다는 걸 깨닫고 준태는 당황해서 말을 바꿨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아랑씨는 사양해도 조금도 불만이 없는데……”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 저는 아니거든요!”
간단한 이치였다.
퀴퀴한 방구석보다는 쾌적한 작업실이 좋았다.
‘그래서 말인데, 두 분이 원하신다면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드리려 하는데요.’
초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업실에 가서 일을 한다면, 조금은 사회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 거 같았으니까.
그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제가 듣기로는 준태씨도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걸 선호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죠?’
자유로운 환경은 개뿔.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이윽고 들려왔다.
태연하기 그지없는 주아랑의 목소리가.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잠깐만.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또 하나의 경우의 수가 떠올랐으니까.
‘설마.. 다시 또 그 말인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아까 자신에게 해줬던 좋은 말들은 연두와 초록님이 앞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둘뿐이었다.
다시 그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
‘역시 포기해주세요. 영상을 보니 확신이 들었거든요. 함께 일하기는 어렵겠다고.’
그런 거라면 작업실을 거절한 것도 납득이 갔다.
어차피 그만두게 만들 거라면 작업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눈앞이 하얘졌다.
다시 그 제안을 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절하면 그만인 문제였지만, 준태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어느새 도착한 카페.
끼익.
주아랑이 문을 잡아줬다.
“들어와요.”
포기를 종용하기 전의 마지막 배려인가.
지금 준태는 거의 햇빛에 익어 말라가는 스폰지밥의 표정이었다.
주아랑은 구석의 테이블로 향했다.
“민트초코 라떼 두 개 주세요.”
충격이었다. 설마 두 개를 다 먹으려는 건 아닐 테고.
준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민트초코였다.
잠시 후에 음료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주아랑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준태씨.”
“.. 네.”
“아까는 초록님이랑 연두.. 씨 앞이라 얘기 못한 건데, 지금부터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좋겠네요.”
준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그렇구나.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체념한 준태는 입을 뗐다.
“.. 그 정도인가요?”
“네?”
“발목을 붙잡는 것도 힘든 수준인가요?”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주아랑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트북 가져왔죠?”
“노트북이요?”
“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들려오는 말.
“꺼내 보세요, 노트북.”
준태가 노트북을 꺼냈다.
“영상 틀어보세요.”
“영상이요?”
“준태씨가 편집한 납량특집 영상.”
영문도 모르는 채로 준태는 주아랑이 시키는 대로 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십 초가량이 흘렀을까.
“준태씨.”
“네.”
“집중하세요. 여기가 첫 번째 포인트니까.”
그게 시작이었다.
준태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