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5
너의 초식이 보여 145화
검노와 도황
시간은 계속 흘렀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고, 한 시진, 두 시진이 지났다.
아무래도 도황은 오늘 못 올지도 모르겠는걸. 걱정이 되어 검노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화를 낼 줄 알았던 검노가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가르며 날아오는 이는 도황 백수련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봤던 모습과 똑같았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당당했다. 심지어 검노 앞에서도 당당히 소리쳤다.
“검노.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크으. 인사는 집어치워라.”
검노는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도황은 달랐다.
“먼저 검노께서 화가 난 이유는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그는 나를 위해서, 당신에게 못 쓸 거짓말을 했으니까요.”
그 은조도백 허종원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도황도 모든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얘기했다.
“개인적으로 사과드려요. 하지만 당시에 당신이 먼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으니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시끄럽다. 도를 들어라. 당장 죽여줄 테니까.”
“그래요. 나 역시 무림인. 칼과 검으로 이해관계를 풀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천포지전 때문에 여러 손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승부는 내일 겨루면 어떨까요?”
“잡소리는 다 끝났나? 유언은 잘 들었다.”
검노는 자신의 기를 끌어올렸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도황도 한숨을 쉬며 도를 뽑았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도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더 이상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기도가 변했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고, 나와 마조일 교관은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검노가 나이가 많고, 연배가 높았다. 절대고수에도 먼저 올라섰다. 하지만 도황 백수련은 열두존자 중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수십 년 전에는 검노가 확실히 유리했지만, 지금은 누가 이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절정고수도 아니고, 절대고수의 진검승부였다. 감히 끼어들 수도 없고,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저들을 말릴 권한도 없고, 저들을 말릴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검노는 전 무림맹주에 대한 분노가 너무나도 컸다.
쩌어어엉.
검노와 검과 도황의 도가 가볍게 부딪쳤다.
그런데 마치 번개가 치듯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기파에 우리 집이 흔들거렸고, 내공을 사용해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였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쩌정. 콰콰쾅.
번개 같은 섬광이 연속으로 터지더니,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급히 둘러보니, 그들은 어느새 구름 위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야산에서 싸웠다.
그들의 움직임은 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어딜 도망치든, 저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었다.
흔히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이 절대고수들의 비무를 보고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그건 정말 허황된 말이었다.
일단 그들의 무공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나 같은 절정고수의 눈에도 노랗고, 하얀 선만 보였다. 저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빨랐다.
그리고 한곳에서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싸웠고, 그 범위가 너무나 넓었다.
특히 이런 평지에서는 그들의 행방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저 태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날뛰는 바람과 심상찮은 기류만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만 들렸다.
콰콰콰쾅.
콰쾅.
바로 옆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더니, 한쪽 야산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그리고 어떤 때는 지진이 난 듯 바닥이 뒤집어졌다. 정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절대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사부님은 나와 겨룰 때, 본인의 힘의 반의반도 내지 않았었구나.
절대고수 앞에서는 절정 고수의 단계는 의미가 없었고, 나는 오랜만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무공을 익힌 이후로는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우르르.
콰콰콰쾅.
어느새 싸우는 소리가 굉장히 멀어졌다. 방향을 봐서는 천학관 쪽이었다.
으음. 불똥이 엄한 곳으로 튀겠는데.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너무 멀리 날아간 건가? 아니면……. 설마 승부가 난 거야?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한사람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도황 백수련이었다.
그녀는 곧장 나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무림비동에 있어야 할 검노가 왜 밖으로 나왔지? 너는 왜 그와 같이 있었던 거냐? 샅샅이 말해야 한다.”
그녀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 도황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검노와 도황이 싸우면, 둘 중 하나는 죽든지 크게 다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도황의 생각을 읽어보니, 검노는 혈투 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으음. 이러면 곤란한데.
일단 급한 대로 거짓을 지어냈다.
“사실은 무림비동 근처에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면서 검노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별안간 현 무림맹주가 누구고, 어디 있는지 물어봐서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죠. 또 저를 죽일 것 같아서 도황님의 백화전을 이용했습니다.”
검노가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분노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그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이 정도만 말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노가 살아 있다면, 이 거짓말은 언제든지 탄로 날 위험이 있었다.
도황은 내 말을 반쯤 믿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무림비동에는 왜 간 것이냐? 그리고 여자도 같이 있었다고 하던데.”
“빙백아입니다. 근래에 친해졌는데, 경공 대결을 하다가 그곳까지 간 겁니다. 소문으로 듣던 무림비동이 궁금하기도 했고, 구경삼아서……. 죄송합니다.”
사실 천학관의 학생 중에는 무림비동의 소문을 듣고, 근처까지 가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치기 어린 학생들의 장난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운이 없어서 검노와 만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길 원했고, 실제로 도황도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무림비동 안으로 숨어들어서 경지동까지 내려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말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던 검노가 밖으로 나온 건 기정사실이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점이 더 중요했다.
도황은 대응책을 세우기 위해, 일단 무림맹으로 돌아가려 했다.
‘나중에 천학관과 무림비동에도 가 봐야겠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런데 검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싸우는 도중 갑자기 사라졌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해.”
검노는 고집이 세고, 외골수적인 성향을 지녔다. 그런 그가 복수를 포기하고 갑자기 사라졌다? 몹시 이상했다. 이유가 뭘까?
도황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통해 누군가 검노에게 전음을 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황 역시 절대고수기에 전음을 엿들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멀리 있어 ‘뇌신’ , ‘복수’ , ‘무림맹’이란 단어들만 들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누군가 검노에게 전음을 보냈고, 그 말을 듣고 검노가 물러났다는 뜻인데…….
으음. 뭔가 불안하다.
사실 내가 무림맹과 연관 있는 것도 아니고, 검노와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무림비동에 들어갔다는 걸 검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혈교의 준동 때와 비슷했다. 발가락 끝이 간질간질거리는 느낌. 꼭 태풍 전야의 기분이었다.
도황은 곧장 떠났다. 그리고 나는 고민 끝에 천학관으로 돌아갔다.
천학관의 비무대 근처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떠나갔고 하니, 그 근처에 가 볼 생각이었다. 검노가 사라진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아무런 잔념도 찾지 못했다.
그래 됐어. 나도 할 만큼 했고, 사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잖아. 사실 그것보다 급한 건, 내 몸속으로 들어온 이상한 빛 덩어리잖아.
그런데 이 빛 덩어리가 뭔지 알아야 방법을 찾을 것 아냐?
나는 생활관으로 가려다 방향을 돌려 천서관으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에 책이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다.
운이 좋으면, 검은 상자나 빛 덩어리에 대해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운은 없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 찾고 날이 밝았다.
* * *
소주천을 운공하여 기력을 회복했다. 내공은 충만했고, 팔성 이상만 끌어올리지 않으면 괜찮은 것 같았다.
좋아. 새로운 대진표에서 구운룡이나 조의찬을 안 만나길 빌어보자.
그리고 다행히 이쪽으로는 운이 있었다.
어젯밤에 검노와 도황이 싸우는 소란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천학관주를 비롯한 몇 명만 알고 있었고, 천포지전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본선에 오른 이는 스물한 명이었으나, 조사결과 백선회에 관련된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의 자백을 받아내었고, 대회에서 누락시켰다.
그래서 본선에 오른 사람은 열다섯 명, 단 한 명이 부전승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축하해.”
진무강과 경부수가 잠깐 들러서 축하의 말을 전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직 우승한 것도 아닌데. 뭐.”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축하할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다.
이번에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다음 상대도 쉬운 상대였다. 지금 몸 상태로도 이길 수 있었고, 그다음 상대가 조의찬이었다.
그때는 준결승이니, 포기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구운룡은 반대쪽에 있었고, 결승에 가야 만날 수 있었다.
“후후후.”
성공을 눈앞에 두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가 그리 즐겁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구운룡이 내가 있는 대기실로 들어왔다. 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후후후. 왜? 나는 웃지도 못하냐?”
“그 음흉한 미소가 보기 싫어서.”
“보기 싫으면, 안 오면 되지.”
“흥. 정보 공유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온 거야.”
그는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화산파에서 연락이 왔다. 경해민 사제가 이도찬에게 알려준 ‘동선백건’의 구결 말이야. 그중 초반부에 관한 출처를 물어봤고, 오늘 아침에 답변을 받았다.”
그 부분은 나도 궁금했고, 들어야 할 내용이었다. 귀를 기울였다.
“초반부에는 세 권의 책에서 인용한 구결들이 있다. 첫 번째는 오백 년 전에 멸문한 진진교의 청명심법, 두 번째는 이백 년 전에 멸문한 고신문의 을파심법, 세 번째는 마교의 것으로 추정되는 뇌전심법이라고 한다.”
“뇌전심법?”
어젯밤 누군가 검노에게 보낸 전음 속에 ‘뇌전’이란 단어가 있었다. 단순한 우연인가?
구운룡이 계속 말했다.
“마교대전 때 구한 심법인데, 전반부의 일부분만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아, 그리고 마교의 심법이라도 부분적으로 괜찮은 부분은 잘라서 사용하면 마공에 걸릴 일이 없어. 그리고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하니까…….”
그는 화산파가 마교의 심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나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 뇌전심법, 구결을 알고 싶은데……. 일부분도 괜찮아.”
“흠흠. 본래는 안 되지만, 장문인께서 구결의 일부분은 공개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경 사제의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하셨지.”
구운룡은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사실 화산파 장문인은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
사랑 때문에 본문의 구결을 다른 이에게 전했다?
대문파의 입장에서 이번 일만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은 없었다. 다행히 이번 사건 뒤에는 더 큰 음모가 숨어 있다고 하니, 그들을 찾아내고, 경해민의 죄를 그들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이었다.
화산파 장문인께서 잔머리를 쓰시는군.
“잘 들어라. 구결은 한 번만 알려줄 테니.”
구운룡은 뇌전심법의 구결을 하운평에게 전했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쯧쯧. 융통성 없는 놈. 정말로 한 번만 알려 주냐?
그래도 다 외울 수는 있었다. 그리고 잊어버리기 전에 몇 번이나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