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71
너의 초식이 보여 171화
천멸실(1)
천학관주는 나름 배려해서 하운평에게 제안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자네가 이곳에서 나갈 때 구급이었지? 원한다면 구급이나 십급으로 받아주겠네. 이곳에서 몇 달만 시간을 보낸 뒤, 시험을 치고 정식 천포로…….”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만, 천학관주님. 저는 바로 천포가 되고 싶은데요. 조건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저는 작년 특별 천포지전에서 준결승까지 올라갔었고, 특전 중 하나가 ‘바로 천포가 될 수 있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건…… 그랬었지. 그래도 졸업 시험은 쳐야 한다네.”
“외람되지만, 천포지전의 특전을 발표할 때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요. 곧바로 천포 진급이라고 되어 있었지요.”
사실 천학관도 예상했었다. 천포지전이 끝난 후, 많은 학생들이 자파로 돌아갈 거라는 걸. 그래서 여러 가지 특전을 제안했었고, 그중에는 천포가 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물론 천포지전의 상위권에 들 정도면 상당한 실력이어야 가능했고, 하운평도 그때 실력이면 곧바로 천포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이었다.
현재 하운평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소문을 들었고, 그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게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하운평은 교묘하게 그 검증을 피하려 하고 있었다.
“으음. 이것 참…….”
천학관주는 곤란하다는 듯 망설였고, 하운평은 잠깐 기다렸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저도 천학관주님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요. 빨리 천포 복무 기간을 끝내고 무적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천포로 보내주시되, 무공 실력을 보지 않는 곳으로 보내주시면 어떨까요?”
“무슨 말인가?”
“천멸실 말입니다. 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
천학관주는 놀라서 되물었다.
“오늘,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자네. 진심인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어?”
“네. 어차피 저는 천포로서 복무 기간만 채우고, 무적문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천멸실도 상관없습니다.”
“으음. 그런 걸 원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지만……. 자네 같은 경우에는 아깝군. 참으로 아까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요.”
천학관주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의 요구대로 힘을 써보지. 마침 천멸실에서는 증원 요청을 계속 해왔었고, 우리도 보내주지 못해 미안했거든. 그럼 한 달만 기다려 주게. 일단 그쪽에 알리고, 답변을 받은 후, 정리해서…….”
“죄송합니다만. 천학관주님. 제가 사정이 정말 급해서요. 그쪽에서 증원 요청을 했다면, 굳이 기다릴 필요 있습니까? 그냥 보낸다는 말만 하고, 제가 임명서를 들고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자네……. 너무 서두르는군.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네.”
하운평이 천학관주의 말을 계속 끊으면서 자신의 말만 주장했다. 천학관주는 처음과는 다르게 살짝 기분이 나쁜 것 같았고, 하운평은 황급히 대답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학관님. 제가 마음이 급해 실수를 범했군요.”
“이상하군. 예전의 자네는 무척 차분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서두르나 모르겠어.”
하운평은 한숨을 푹 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휴우. 사실은 제 사부님이……. 편찮으십니다.”
“뭐, 권왕님이?”
천학관주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운평은 천역덕스럽게 대답했다.
“네에. 근래에 남만에 가셨는데,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신 것 같습니다. 물론 워낙 무공이 뛰어나신 분이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은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저런……. 그러한 상황이면, 무적문에 있어야지. 천포의 약속은 나중에 지켜도 되지 않나?”
“아닙니다. 혹여 사부님이 잘못되면, 그때는 제가 무적문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때는 더욱 나오기 힘들 겁니다.”
“아아. 그것도 그렇군.”
“그래서 제 마음이 급했던 겁니다. 약속은 지키고 싶고, 그렇다고 저희 무적문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요. 또 사부님의 건강도 염려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관주님께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천학관주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나라도 그런 상황이면, 가만 있지 못할 거야. 아무튼 자네가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몰랐다네. 으음. 오히려 나야말로 고맙군. 사정이 그렇게 심각한데도, 천학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와 주었으니.”
그는 제대로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알았네. 내가 최대한 빠른 방법을 찾아보지. 조금만 기다려 보게. 이삼 일이면 돼.”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학관주님.”
하운평은 꾸벅 인사를 했고, 천학관주는 힘을 내라며 위로했다.
그 후, 칠호와 함께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관의촌으로 가는 길이었다. 칠호가 하운평에게 물었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몇 가지 물어도 될까?”
“얼마든지.”
“천포가 될 수 없다던 천학관주가 천멸실 얘기를 꺼내자 갑자기 될 수 있다고 말한 이유가 뭐지? 무공이 필요 없는 이유는 뭐고?”
칠호도 요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천학관 내부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운평이 대답했다.
“천멸실의 정식명칭은 천유수악이라고 해. 천포들이 잡은 죄수들을 가두는 곳 중 하나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뇌옥 중에서는 제일 오래된 곳이고, 섬서성 북쪽 끝에 있지.”
“맞아. 그리고 천학관을 졸업한 학생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고, 기피하는 곳이지.”
“그 이유는?”
하운평이 뜬금없이 물었다.
“천포들의 가장 큰 목표가 뭘까? 뭐라고 생각해?”
“글쎄, 돈? 진급?”
“맞아. 승급이야. 천포들은 일급에서 오급까지 나뉘어져 있는데, 급수가 올라갈 때마다 대우가 크게 달라지거든.”
“관리들과 비슷하군.”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포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아무튼 승급을 하기 위해서는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건이 필요하지. 사건을 많이 해결할수록 승급에 유리하거든.”
그제야 칠호는 이해가 되었다.
“그렇군. 사건을 맡아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천멸실은 사건이 없다는 거지? 감옥이니까.”
“맞아. 그러니 천학관 수련생은 물론, 천포들도 천멸실을 승급의 무덤으로 부르고 있어. 오직 승급에 상관없거나, 천포 일을 시행하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그쪽으로 가는 거야.”
칠호는 방금 전 하운평과 천학관주의 대화를 다시 생각했고,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일부로 몸이 약한 척하면서 천포 시험을 받지 않은 거군. 그렇게 포석을 놓은 뒤, 천학관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해답도 제시한 거야. 권왕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시간이 없다는 조건을 달고, 어쩔 수 없이 천멸실에 가게 된 것처럼………. 아마 천학관주는 생각도 못 하고 있겠지? 처음부터 너의 목적은 천포가 아니라 천멸실인 걸.”
하운평은 말없이 웃었고, 칠호는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천학관주는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착각할 테고, 천멸실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찾아주겠지. 그런데, 이런 계획은 오기 전부터 다 생각한 거야?”
“전부는 아니고, 몇 가지만.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말했지.”
칠호는 솔직히 감탄했다.
하운평의 계획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여 원하는 답변을 받아내기는 어려웠다.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천학관주가 다르게 판단하면 전혀 다른 말을 꺼낼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끌고 갔을까?
칠호는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다.
“좋아. 예상대로 천멸실로 간다고 쳐. 부선진은 어떻게 만나고, 그를 어떻게 설득할 거야?”
“한 가지 계획이 있긴 한데, 아직 거기 상황을 모르니까……. 가서 살펴봐야지.”
“그럼 그에게 정보를 얻었다고 쳐. 내가 알기론 천포로서 최소 삼 년에서 오 년은 복무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천멸실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올 생각이야? 설마 거기 계속 있을 건 아니잖아.”
“그것 역시 가서 생각해 보자고.”
하운평은 대충 대답했다.
칠호가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미 몇 가지 대안을 세웠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물러섰지만, 이제는 궁금했다. 날이 갈수록 하운평에 대해 호기심이 커져 갔다.
이틀 후, 천학관주가 하운평을 불렀다.
“일이 잘 풀렸네. 천멸실로 신입 천포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관주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것보다 가서도 몸조심하고, 적응 잘하길 바라네. 뭐, 조용한 곳이라 몸조심할 일도 없을 테지만. 아아, 그리고 조금 답답하긴 할 거야.”
그 말에 하운평은 빙그레 웃었다.
아마 그의 계획대로라면, 천멸실은 개설한 이래로 가장 큰 사건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운평도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 * *
그로부터 스무날 후, 하운평과 칠호는 천멸실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칠호는 하운평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 나는 천멸실 아래쪽에 있는 마을에 가 있으라는 거지. 신분을 숨기고, 자연스럽게. 이 돈으로.”
그는 두둔한 돈주머니를 흔들었다.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정상 천포가 자주 마을로 내려갈 수 없다. 대신 면회는 허락되니까. 열흘에 한 번씩 면회를 와 주면 돼. 그리고 매일 인시가 되기 직전, 천멸실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북쪽 담장 너머로 확인해 보고, 만약 북쪽의 나무 꼭대기가 꺾어져 있다면, 긴급상황이야. 그날은 바로 면회를 와야 해.”
칠호는 투덜거렸다.
“제길. 그러니까 뭐야? 매일 똥개 훈련을 시킨다는 거잖아.”
“안쪽의 정보를 밖으로 빼내어 조사를 시키고, 그 정보를 다시 내가 들으려면 어쩔 수 없어.”
“그런데 말이야. 왜 하필이면 나지? 무적문에서 수많은 수하들이 있잖아.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너는 구치웅 순검사를 아는 사람이니까. 그를 잡기 위해서는 네가 필요해. 다른 이유는 없어.”
그 말을 끝으로 하운평은 위쪽으로 올라갔다. 칠호는 그의 등을 보더니 옅은 한숨을 내 쉬며 아랫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어떤 위장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운평은 ‘천유수악’이라고 적힌 간판이 붙어 있는 큰 집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깊은 산속에 있을 뿐, 크고 평범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저곳이 바로 악명 높은 천멸실이었다.
[혹시 무적문의 하운평 공자님이십니까?]그의 귓가로 갑자기 전음이 들렸다. 하운평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저는 무영문 감숙지부에서 일하는 ‘비위’라고 합니다. 외모상으로 하운평 공자님이 맞으나, 정확함을 위해 확인을 하겠습니다. 청강일곡포촌류(淸江一曲抱村流).]시성(詩聖)이라 불리던 두보(杜甫)의 강촌(江村)이란 시였다.
첫 구절로서 다음 문구는 장하강촌사사유(長夏江村事事幽)이었다. 그래서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가 정답이지만, 무영문에서 보내준 암호는 달랐다.
하운평은 오른쪽 위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장산금창사사유(長山金昌事事幽). 반갑습니다. 하운평이라고 합니다.]잠시 후, 나무 위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비위라는 자였고, 그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찌 알았습니까?”
비위는 자신의 은신술에 자신 있는 무인이었다. 그래서 전음을 감지할 수 있는 절대고수가 아니라면,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자신감이 무너진 것이다.
하운평은 빠르게, 그리고 너무나 정확히 찾아냈다.
“운이 좋았나 봅니다.”
하운평은 대충 대답했고, 비위는 하운평의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무적문의 소문주. 소문 이상인가 본데.’
그는 하운평을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고, 자신의 할 일은 똑바로 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앞으로 저에게 연락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부탁하신 것들은 다 진행했습니다.”
“천멸실 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은요? 제가 원하는 곳으로 배치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는데요.”
“물론 준비되었습니다.”
“악명높은 천멸실 치고는 너무 쉬운 일이군요.”
비위는 슬쩍 웃었다.
“너무 오래 고여 있었으니까요. 이십 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의 천멸실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유산이고, 무너지기 직전의 배와 같습니다. 아아, 그래도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내부의 그 사람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겁니다.”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멸실 쪽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