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2
너의 초식이 보여 22화
조건부 합의(2)
이번에는 푸른 빛줄기가 파해천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툭 튀어나가더니, 옆에 있던 책장이나 탁자를 파괴했다.
콰쾅. 쾅. 쾅.
나는 고개를 숙였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깜박 잠이 잘 정도로 오래 지난 것 같다. 푸른빛은 사라졌고, 권왕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평안한 얼굴이어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다시 황금산을 분배했고, 대략 두 시진이 지난 후, 권왕이 눈을 떴다.
* * *
하운평은 분배를 끝내고 벽곡단을 먹고 있었다.
그는 파해천에게 다가갔다.
“권왕님. 괜찮으세요?”
“어어, 어. 괜찮다.”
사실 파해천은 얼떨떨했다.
현경의 벽에 부딪힌 뒤, 반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었다.
어떤 짓을 해도 제자리였고, 여기 있는 최상승 비급을 읽어도 무덤덤했다.
그런데 본인이 삼류무공이라고 무시하던 무공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아직 현경의 벽을 깨지는 못했지만, 한 걸음, 아니 두세 걸음은 다가갔다고 확신했다.
“흐음. 설마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뭐, 본래 고수는 길가의 돌멩이를 보다가도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니까.”
얼렁뚱땅 넘어갈 의도였지만, 하운평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파해천의 마음속을 읽은 후였고, 이걸 충분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맞습니다. 돌멩이를 보고 깨달을 수 있죠. 하지만 만약 그 돌멩이를 못봤다면요. 평생을 가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겠죠?”
“흠흠.”
“그러니까, 그 돌멩이를 제공한 사람한테 최소한의 보답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이 사람의 도리라 생각되는데.”
“으음.”
“아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권왕님은 은원관계가 아주 뚜렷하신 분…….”
“알았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하운평은 빙그레 웃었다.
파해천이 물었다
“무얼 원하느냐? 무공이냐?”
“아니요. 그건 됐고, 권왕님은 사람들한테 보물을 나눠준 뒤에는,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모르겠다. 아마 네놈한테 무공을 가르쳐 줘야겠지. 그리고 오늘 얻은 심득을 계속 고민해 봐야지.”
“그럼 나중에 제 보물 옮기는 걸 도와주세요. 권왕님한테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파해천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 * *
비잔신투의 동굴을 나오니, 벌써 이틀이 지난 뒤였다.
천막으로 돌아갔을 때는 장보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화산파는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이미 돌아간 후였다.
“그럼 화산파부터 보물을 줘야겠네요.”
“왜? 화산파 놈들은 벌써 갔다잖아.”
“그러니까요. 각각 보물을 줘야 하는데, 여기에는 제갈 세가와 팔극진문이 붙어 있잖아요.”
“끄응.”
하운평은 근처 마을에서 큰 천을 여러 장 구했다.
그리고 화산파을 위한 보물들을 보따리 싸듯 묶었고, 세 개 정도 나왔다.
전체 보물의 삼 할이 아니라, 삼 푼도 되지 않는 양이었다.
권왕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것만 준다고?”
“어쨌든 화산파가 만족하면 되는 거잖아요. 권왕님이 분류하신 무공 비급이 생각보다 많아서 보물 양을 줄였어요. 그들도 만족할 겁니다.”
“야.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
“부족하다고 하면 더 줄게요. 아, 대신 권왕님은 처음에만 말하고, 보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마세요. 약속하시는 겁니다.”
파해천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보다가, 결국 그것들을 들고, 화산파로 날아갔다.
그리고 화산파의 선문에 보물들을 떨어뜨렸다.
쿠웅. 쿵. 쿵.
화산파의 장문인을 비롯하여 수백 명의 무인들이 달려 나왔다. 그리고 보물들을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권왕은 하운평의 말대로, 간단히 말했다.
“너희들이 떠난 뒤, 비잔신투의 진짜 보물을 찾았다. 그래서 화산파의 몫을 가져왔다.”
“가, 감사합니다.”
뜬금없지만, 보물을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사했다.
더구나 무공비급 중에는 화산파에서 잃어버린 비급이 십여 권이나 있었고, 그중 세 권은 절진되었던 물건이었다.
그들은 아주 만족했고, 파해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돌아가려는데, 화산파의 장문인, 서진백이 그를 붙잡았다.
“선배님. 잠깐만요. 사백 님께서 한번 뵙고 싶어 하십니다.”
“흐음. 그 녀석, 몸은 괜찮은가?”
“네. 다행히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서진백의 사백은 검성 초화일이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한번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그래요. 권왕님. 검성님 한번 찾아뵙고 가요.”
이제껏 가만히 있던 하운평도 끼어들었다.
‘표정을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파해천은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사실 검성을 좋아하진 않는다. 괜한 자격지심에 피한 것도 있지만 성향 자체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무공이 성장했고, 자신감도 생긴 상태였다.
“그래. 한번 보고 가지. 그놈 거처는 역시 취화봉이지?”
“네. 맞습니다.”
“좋아. 가보지.”
“감사합니다.”
권왕은 하운평을 들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럼 다음에 보세.”
“네. 그리고, 보물을 가져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두 사람은 화산파를 나섰다.
뒤에서 고마워하는 시선이 느껴지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운평이 물었다.
“제 말대로 하길 잘했죠??”
“그래. 잘난 꼬마야. 네 말이 맞다. 그런데 검성은 왜 만나려고?”
“지금 아니면 제가 언제 검성을 만나 보겠습니까?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드릴 말씀도 있어서요.”
“설마 그 보따리 안에 있는 물건과 관련 있는 거냐?”
“그런 셈이죠.”
하운평은 보물창고를 나오면서 몇 가지 물건을 챙겼는데, 작은 보따리로 만들어 등에 메고 있었다.
파해천은 신경 쓰기 싫어서, 자세히 묻지 않았다.
파해천은 하늘을 휙휙 날았고, 곧 높은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꼭대기에 작은 모옥이 보였고, 한 아이가 검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운평에게는 낯익은 얼굴, 구운룡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모옥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가 바로 검성 초화일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올렸고, 하얀 수염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젊었을 때 여인 꽤나 울렸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다, 침착한 분위기나 젊잖게 웃는 모습은 누가 봐도 호감형이었다.
여러모로 권왕과 비교되었다.
파해천이 먼저 물었다.
“늙은이, 몸은 어때?”
“이제 괜찮네. 그러잖아도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와줘서 고맙군.”
“그 정도는 아무나 다 하는 거지.”
초해일은 권왕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축하하네.”
“뭐가?”
“며칠 전에 봤을 때와 많이 달라졌군. 깨달음이 있었나?”
“흠흠. 이거? 뭐 우연찮게…….”
파해천은 말을 아꼈지만,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사실, 예전에는 내가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자네와 싸워도 질 것 같지 않군.”
“허허허. 인정하네. 이제는 나도 이길 것 같지 않아.”
초해일은 흔쾌히 인정했다. 그리고 뒤에 있는 하운평을 바라보았다.
“네가 하운평이구나.”
“네. 검성님. 제가 하운평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운평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번에 너의 도움도 받았다고 들었다.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우리 구운룡과는 동갑이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네. 당연하지요. 구운룡 반갑다.”
구운룡은 속으로는 건방진 놈이라고 욕하지만, 사부님 앞이라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래. 하운평. 친하게 지내자.”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때 하운평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검성님. 궁금한 것 있는데요. 여쭤봐도 될까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태도는 좋지. 무엇이든 물어보거라.”
“이번에 만년한철을 자르기 위해 저희 집안의 보검을 빌려드렸는데요. 그리고 검성님께서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초화일은 물론 파해천까지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전음을 주고받았다. 파해천이 그의 것이 맞다고 하자, 초화일은 어렵게 대답했다.
“으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설마 저희 가보를…….”
“만년한철을 자를 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진천뢰가 터질 때, 네 검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보호했고, 그만 부러지고 말았단다.”
“허억. 이걸 어쩝니까, 우리 집 가보인데…….”
하운평은 크게 놀라는 척했고, 일부러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리고 초화일은 그 모습에 더 미안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파해천이 하운평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놈아. 적당히 좀 해라. 네 보물 중에는 그보다 좋은 검이 열 개나 있잖아.]‘가만히 좀 있어 보세요.’
검성에게 빚을 지우기 좋은 기회였다.
이걸 놓칠 수 없었다.
다행히 초화일이 먼저 말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우리 화산파에도 좋은 검이 몇 자루 있으니…….”
“죄송하지만 집안 가보잖아요. 그리고 부모님 돌아가시고, 유품이나 다름없는데.”
“으음. 미안하구나.”
초화일은 정말 곤란해했고, 하운평은 그제야 원하는 것을 말했다.
“휴우. 할 수 없죠. 이미 부러진 걸 어떡합니다. 대신,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이번에 비잔신투의 일이 잘 풀리면서 저도 보물을 두어 개 받았거든요. 그중에서 굉장히 귀해 보이는 것이 있어서…….”
하운평은 보따리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봉황 모양의 장식품이었다.
평평한 나무판 위에 봉황 한 마리가 깃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 머리만 한 크기에 나무와 칠기, 금속으로 만든 멋진 작품이었다.
“이게 무엇이냐?”
다른 사람들도 이 물건을 왜 꺼내는지 궁금했다.
“사실 저도 이게 뭔지 몰랐는데요.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이런 물건이 나오지 뭡니까?”
하운평은 봉황의 깃털 중 하나를 잡고 비틀었다. 그러자 깃털 모형이 장식품에서 빠져나왔고, 길고 작은 단검이 되었다.
날은 가늘고, 굉장히 날카로웠다.
“그것 외에 바닥 안에 비급도 있더라고요. ‘봉황십이도’ 라고 적혀 있던데요.”
“봉황십이도!!”
초화일은 물론, 듣고 있던 파해천도 깜짝 놀랐다.
삼백 년 전에 비도술로 천하제일이 되었던 여인이 있었고, 그녀가 사용하던 무공이 ‘봉황십이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화산파 출신이었다.
“제가 권황님에게 듣기로는 검성님께서 요즘 비도술에 심취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걸 먼저 보시고, 저에게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혹시 가능할까요?”
하운평은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대부분이 거짓말이다.
하운평은 봉황 장식품에서 사념을 읽었다.
매화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비도를 뿌렸고, 수백 명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비도는 빛살처럼 빨랐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이 움직였다.
굉장한 무공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권왕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검성 초해일을 생각했다.
파해천을 통해 검성이 요즘 현경의 벽을 깨기 위해 비도술을 익히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죄책감과 선물을 주면서 검성에게서 무공과 심득을 배우려는 꼼수였다.
초해일은 하운평의 의도대로 대답했다.
“봉황십이도는, 우리 화산파의 무공이다. 찾아준 건 고맙지만, 이걸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어.”
“그럼 검성님게서 봉황십이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도술을 만들면요. 그걸 가르쳐 주시면 어떨까요?”
“흐음.”
사실 검성의 입장에서도 좋은 제안이었다.
이기어검을 연구하는 중이었고, 연장선으로 비도술까지 배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비도술 중 최고봉이라는 봉황십이도가 눈앞에 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리고 하운평의 가보를 잃어버렸으니, 그를 위해 무공을 주는 것도 맞는 것 같았다.
“좋다. 운평아.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 새로운 비도술을 전수해 주마.”
“감사합니다. 검성님.”
하운평은 환히 웃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봉황십이도’라는 화산파의 무공을 돌려주면서 검성의 심득과 정수를 빼먹을 기회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대화산파와 커다란 인연까지 만들었으니, 크게 남는 장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