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61
너의 초식이 보여 61화
화산파에서(2)
화산파는 엄밀히 도교에서 파생되었다.
원시천존(元始天尊)을 비롯하여 현천상제(玄天上帝)나 문창제군(文昌帝君) 등 수많은 신을 모신다.
때문에 무공을 익히는 무인들도 있지만,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도사들도 있었다.
도사 중에는 명경(明鏡)이나 호부(護符)를 차고 다니며 요괴(妖怪)를 멸하는 이도 있었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하여 단을 만드는 이도 있었다.
혹은 산림을 보호하거나 잡무를 담당하는 하급 도사도 있는데, 오수가 바로 그 일을 했다.
“취화봉에는 어쩐 일이세요?”
“제가 하고 있는 일 중에는 취화봉의 산림을 보호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일도 포함되거든요. 그래서 사흘에 한 번씩은 취화봉 근처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나는 오수 도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오수 도사는 손을 흔들며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권왕 님의 제자 분에게 어떻게…….”
“같은 문파도 아닌데 어때요?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그래도 그건 좀…….”
몇 번 실랑이를 하는 동안, 약초꾼 아이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오수 도사가 물었다.
“으으음.”
“괜찮니? 이름이 뭐야?”
“자, 장칠이오.”
“여기 왜 올라왔어? 더구나 저 위험한 절벽에 어쩌다가…….”
“죄송합니다. 올라오면 안 되는 걸 아는데요. 흑흑.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정말이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아이였다.
할아버지가 약초꾼인데, 며칠 전 크게 허리를 다쳐서 누워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약값이라도 벌려고 아이 혼자 산행을 나섰는데, 아직 미숙하여 이틀 동안 약초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취화봉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평소 약초꾼의 출입을 막았기에 좋은 약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절벽 끝에 있는 구엽초를 따려다가 땅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나는 울고 있는 장칠을 보다가 오수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서 약초를 따면 벌을 받나요?”
“절벽이 워낙 험준해서 죽은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아, 물론 저 같은 화산파 문도들이 약초를 따면 큰일 나지만요.”
“그럼 저는 괜찮겠네요. 화산파 소속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약초바구니를 가리키며 장칠에게 물었다.
“이거 잠깐만 빌려도 될까?”
“네에.”
나는 그길로 다시 절벽으로 갔다. 아래위로 벽을 타면서 귀중해 보이는 풀은 모조리 채취했다.
약 반 시진 후에 돌아왔다.
“휴우.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네. 자아, 이중에서 쓸 만한 거 있니?”
아이는 바구니를 속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많아요? 이건 절벽 도라지고, 이건 송라, 석이버섯도 있네요. 요건 구엽초구요.”
“좋은 거니?”
“완전 귀한 거죠. 우리 할아버지도 이렇게 많이는 못 찾으세요.”
“잘됐네. 이거 다 가져가. 할아버지 치료비에 보태 쓰고.”
“저, 정말요?”
“그래. 하지만 다음에는 못 도와주니까 이쪽으로 오지 마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장칠은 양손으로 바구니를 꼭 쥐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나는 오수 도사에게 물었다.
“저 정도는 괜찮죠?”
오수 도사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원시천존 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아차, 저도 이제 가 봐야겠네요. 너무 오래 나와 있었습니다.”
“혹시…… 취화봉에 또 오시나요?”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구하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혹시 살 수 있을까 싶어서요.”
나는 내가 필요한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그걸 듣더니 오수 도사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마침 이틀 후에 마을로 내려가니까 그때 꼭 구해 오지요.”
“감사합니다. 이걸로 사주시고, 남는 건 가지세요.”
나는 주머니에 있던 은 다섯 냥을 주었다.
오수 도사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이렇게나 많이요? 은 한 냥이면 충분할 텐데요.”
“좋은 걸로 사 주세요. 그리고 나중에 화산파 분들과 한잔하시고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술을 안 마시지만 고맙습니다.”
그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는데, 조금은 복잡해 보였다.
정확히 오 일 후, 오수 도사가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큰 보따리가 들려 있었는데, 내가 부탁한 것들이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말씀하신 대로 잘 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확인해 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죠.”
정확히 반 시진 후, 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리고 모닥불 위에는 토끼고기가 노릇노릇 익고 있었다. 나는 신중을 다해 구우면서 오수 도사가 사 온 소금과 후추 등의 향신료를 골고루 뿌렸다.
“자아. 이제 먹어봅시다.”
무려 한 달하고도 반 만에 먹는 고기였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육즙이 들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크흡. 바로 이 맛이지.”
뜨거운 줄도 모르고 입안이 까져가면서 한 마리를 다 먹었다. 그리고 오수도사가 사 온 소홍주까지 마시면서 행복을 즐겼다.
검성은 육식을 취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벽곡단과 풀과 물만 먹었고, 같이 있는 나 역시 고기 냄새도 못 맡았었다.
오수 도사도 고기를 먹으면서 물었다.
“좋아 보이시군요.”
“행복이 별거 있습니까? 이런 게 행복인 거죠.”
“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행복은 알고 보면 멀리 있는 게 아니죠.”
그렇다. 이게 행복이다.
혈교니, 봉무십비니 해도 한 달 만에 맛보는 토끼고기가 최고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오수 도사의 표정이 더욱 좋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만, 그래도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닙니다. 오랜만에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니, 감성적이게 되네요. 흠흠. 괜찮으시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러고는 정말 일어서서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건 물건을 사고 남은 돈입니다. 안타깝게도 친우들과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어요. 하하.”
그는 한 푼의 돈도 가져가지 않고,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취화봉을 내려갔다.
나는 이미 그의 마음을 읽었고,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도와줄지 모른 척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래도……. 심부름해 준 보답은 해야겠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무튼 그건 내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오롯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나는 남은 토끼고기를 집어 들었다.
이건 왜 이렇게 맛있니?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검성과 새벽 수련을 끝낸 직후였다.
나는 슬며시 준비했던 물건을 꺼냈다. 꽃과 나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책들이었다.
“이건 무엇이냐?”
“뇌물입니다.”
“뇌물?”
“네. 먼저 어젯밤에 고기와 술을 마신 것을 고백합니다. 신성한 새벽 수련 시간에 고기 냄새를 풍겨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솔직하구나.”
사실 검성은 어젯밤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권왕 사부님과 동급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었고, 미리 준비했었다.
검성이 물었다.
“그런데 내가 원예에 관심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오두막 뒤쪽에 있는 화단이 엉망인 걸 봤습니다. 그리고 꽃과 나무를 유심히 보시는 걸 보고, 원예에 관심을 가지신다고 추측했습니다.”
“허허허. 맞아. 이상하게 내가 키우면 빨리 죽더구나.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아야겠어. 고맙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잠깐 취화봉을 내려가고 싶습니다. 멀리는 아니고 화산파에 잠깐 갔다 오려고 합니다.”
“가는 건 상관없다만, 이유가 있느냐?”
“혈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고 또…….”
“으음. 그런 거면 나는 반대한다. 소식을 들으면 가고 싶을 테고, 그럼 집중력이 흩어질 거야.”
그 부분은 검성의 말이 맞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혈교 일은 놔두고, 사람 한 명만 만나고 오겠습니다.”
“누구를?”
“이 책을 사다 준 사람요.”
검성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저녁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만 달았고, 나는 서둘러 취화봉을 내려갔다.
* * *
오수 도사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공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도를 공부하는 도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 과정에 틈틈이 산을 보호하고, 문파의 잡무를 담당했는데, 오수 도사는 그 일도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한 여자를 만나면서 평온한 삶이 깨어졌다.
그녀는 화산파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상단주의 딸, 노화수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화산파에 한 번씩 왔었는데, 최근에는 아버지 대신 그녀가 직접 인솔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수 도사가 대응하면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사실 말이 담당이지, 특별한 건 없었다.
사흘에 한 번씩 식자재를 가져오면 맞게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전부였다. 대화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만났을 때 인사하고, 헤어질 때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녀가 오는 날이면 전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부터 그녀 생각에 긴장했고, 막상 그녀를 만나면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무슨 말을 할지 수백 번이나 고민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뱉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저 사흘에 한 번, 얼굴 보는 걸로 만족했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식자재를 운반하는 직원의 한 마디 때문에 오수 도사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의 혼기가 차서 계속 중매가 들어온다고 자랑했다. 어쩌면 조만간 국수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농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혼인을 한다?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이젠 어쩔 수 없다. 남자답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아니야. 내 주제에 무슨 고백이냐. 그녀가 행복할 수 있게 빌어주자. 예쁘고 똑똑한 여자니까 나보다 나은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래도 그건 너무 싫다. 고백하자.
시시각각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변했다.
오늘도 그녀가 오는 날이었다.
멀리서부터 마차 두 대가 보였다. 식자재를 가득 싣고 있었고, 그녀는 첫 번째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오늘은 꼭 말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저기 보이는 분이신가요?”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돌아보니 하운평이었다. 그는 마차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오오. 예쁜 분이네요. 인부들을 지시하는 걸 보니, 당차신 것 같고.”
“어어, 여,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오수 도사는 너무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하운평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저 여자분을 좋아하시죠? 고백하실 건가요?”
“아, 아니. 그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죠?”
“저분을 바라보는 눈빛이 딱 그렇던데요. 아, 저는 검왕 님 심부름 왔다가 도사님이 보여서 온 겁니다.”
“그러셨군요.”
하운평은 오수를 쳐다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 어떻게요? 아직 어리시잖아요.”
“저런, 그 말은 못 들으셨구나.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연애경험은 많습니다. 지금까지 백 명쯤 사귀어 봤거든요.”
“정말입니까?”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운평은 누굴 사귄 적도 없었고, 연애를 할 생각도 없었다. 너무 바쁘기도 하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어 재미가 없었다.
하운평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더니, 오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어, 그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실 전, 그녀 앞에만 서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하하.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저만 믿으세요.”
하운평은 자신 있게 소리쳤다. 그는 오수 도사의 등을 팡팡 치면서 말했다.
“자아, 일단 고개를 들고, 허리에 힘을 주세요. 내공을 일으키고 일생일대의 적을 눈앞에서 만났다고 생각하세요.”
“내공까지요?”
오수 도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