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86
너의 초식이 보여 86화
귀신 이야기(3)
나를 놀라게 만든 존재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녹색 기운을 가진 혼령이었다. 다만 악령의 기운은 아니었고, 점잖아 보이는 노인의 형상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 정말 제가 보이는 모양이군요. 귀안을 가진 분은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의 말은 귀로 들리긴 했는데, 여느 사람들의 말과는 달랐다. 조금 더 작고 울리는 목소리였다.
“귀안이라면……. 녹색으로 변한 제 눈을 뜻하는 겁니까?”
{그렇죠. 그런데…… 자연적인 귀안이 아니군요. 그렇다고 귀안술도 아니고……. 으음. 혹시 그것, 녹안석입니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녹안석을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귀안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도대체 어떤 귀신인지 궁금했다.
나는 귀신의 마음속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환상기국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귀신의 마음속까지는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허허. 굳이 녹안석을 사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궁금하신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무엇이든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흠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요.}
그는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아마 내게 말을 건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낯설어하는 모습이 이런 부탁을 자주 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긴 나도 공짜로 듣는 것보다 주고받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좋습니다. 대신 그쪽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만 해보고 싶은데요. 녹안석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저 귀신이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도와준다는 말에 그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녹안석은 배화교의 보물이었지요. 각자 다른 힘을 가진 다섯 개의 보석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보석들은 잘 모르지만, 녹안석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저희 모산파와 인연이 있었거든요.}
“저희 모산파요? 혹시 모산파 도사님이십니까?”
{아,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모산파 십칠 대 제자, 손문진인이라고 합니다. 죽은 지 일 년쯤 되었군요.}
나도 손문진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몇 년 전 무영문에서 구매한 문파비록에서 봤다.
모산파가 폐쇄적인 문파인 만큼 무림에 알려진 인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손문진인이 유명한데, 방술과 술법이 뛰어나며 무공 역시 절정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일 년 전에 죽었었나?
생각해 보니, 하남성의 문파는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외 문파들은 육 년 전 얻은 문파비록이 전부였다.
아무튼, 그가 정말 모산파의 손문진인이라면, 오히려 내 쪽에서 거래를 부탁해야 한다.
“좋습니다. 원하는 걸 말씀해 보세요.”
{제 못난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심 대감 집에 들어간 가짜 도사가 그의 제자라고 했다.
“제자라면……. 그도 정말 모산파 도사님인가요?”
{휴우. 안타깝게도 저 아이는 아닙니다. 모산파에서 정식으로 이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운이 없었다.
손문진인은 사 년 전에 세외로 떠나는 길에 제자를 처음 만났다. 본래 언행이 가벼운 소매치기였는데, 우연히 엮이면서 술법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본인도 무척 하고 싶어 했고, 개과천선한 것도 보았기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먼 길을 가는 중이라 모산파에는 알리지 못했다. 모산파의 문칙은 굉장히 까다롭다. 정식제자가 아닌 이에게는 술법전수를 엄격히 금했다. 그래서 손문진인은 새로운 제자에게 기본적인 부적술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일 년으로 예상했던 세외 여행은 삼 년으로 늘어났고, 세외에서 돌아오는 길에 손문진인은 죽고 말았다. 그의 제자 무수환은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중에 사부의 유품을 들고, 모산파로 찾아갔지만 차갑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저의 유품을 들고, 제 복수를 한답시고, 혼자 떠돌고 있는 겁니다.}
“모산파가 정말 폐쇄적인 곳인가 보군요. 사부님의 유품을 들고 가도 모른 척을 하다니.”
{사실 그 정도는 아닌데, 저 아이가 운이 없었습니다. 당시 모산파는 장문사형이 죽은 직후라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쪽에서도 여유가 없었던 거죠.}
듣고 보니 크게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얻는 것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일단 제자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얘기를 나눠보죠.”
{아닙니다. 먼저 지금 저 아이가 하는 짓부터 말려야 합니다.}
“정확히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서 저 집으로 들어갔잖습니까? 보나 마나 부적술을 이용할 텐데, 저 악령은 보기와는 다릅니다. 부적술로 상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으아아악.”
“꺄악.”
그때 집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청아가 소리쳤다.
“악령의 영기가 치솟고 있어!!”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군요. 본래 부적술로 가두어 놓고, 악령을 이끌어 내는데, 저 악령이 너무 강력한 겁니다. 부적술로는 막지 못해서 폭주를…….}
“지금 설명들을 시간은 아닌 것 같군요. 일단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청아도 함께였다.
콰쾅. 쾅.
콰직.
“크하하하. 멍청한 놈 때문에 행운이 찾아왔구나. 내 힘이 완전히 개방되었어.”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집이 워낙 넓어서 달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가까이 갈수록 좀 전과는 비교 못 할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뒤에서 따라오는 손문진인에게 물었다.
“저놈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육체를 얻었지만, 그래도 악령입니다. 여기 계신 고양이 신령께서 나서주시면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아는 곤란한 듯 대답했다.
“난 안 돼. 지금 강시 몸에 붙어 있어서 현신이 힘들어.”
{강시 몸속에 들어갈 때 이환령술을 배우지 않으셨나요?}
“그게 뭔데? 난 모르는데.”
그러자 손문진인은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제가 실수했군요. 당연히 아시는 줄 알고 여유를 부렸는데……. 그럼 혹시 귀안을 가지고 계신 분께는 주술이나 술법을 아시나요?}
“전혀 모릅니다.”
콰앙.
으아악.
우당탕탕.
마침내 악령이 있는 방을 찾았다. 사람들은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나는 손문진인에게 다시 물었다.
“그놈을 제압하기만 하면 되죠?”
{맞습니다만, 쉽지 않을 겁니다. 저놈은 딱 봐도 백 년이 넘도록 악기를 모은 것 같고, 이제 새로운 육체도 얻었으니까요. 술법을 모르신다면, 힘드실 겁니다.}
그는 걱정스럽게 말했고, 난 일단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진한 피비린내가 났다. 바닥에는 벌써 십여 명이 넘게 있었고, 죽은 모양새가 범상치 않았다. 허리가 반으로 접혀 있다든지 피부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바닥에도 붉은 피가 흥건히 덮여 있었다.
그리고 방 가운데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지녔고, 한 손에는 시체를 들고 있었다. 목이 반쯤 잘려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피를 마시면서 웃었다.
“크하하.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 맛을 끊을 수 없다니까.”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가짜 모산파 제자, 손문진인의 제자가 부적을 들고 벌벌 떨고 있었다.
청아가 먼저 달려들었다.
“이 더러운 악령 녀석아.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 신령들도 욕을 먹는 거잖아.”
퍼억.
놀랍게도 악령은 두 팔로 청아의 주먹을 막았다. 물론 천령강시의 힘까지는 막지 못해 뒤로 튕겼지만, 몸은 멀쩡했다.
청아는 그를 계속 몰아붙였고, 결국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콰앙.
그때 손문진인이 소리쳤다.
{고양이 신령님! 그 육체는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니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부적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제자에게 말해 태을부(太乙符)와 재소멸부(災消滅符)를 받아서 옥당혈에 붙인 후, 제 말대로 하시면…….}
“아아악. 이거 왜 이래?”
그때 청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급히 부서진 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몇 번 얻어맞고 전전긍긍하던 악령이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러자 청아가 움직이지 못했다.
“어, 이거 왜 이래? 안 움직이는데.”
그때 손문진인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의외군요. 저 악령이 술법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시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어요.}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이 내가 움직였다. 절정의 경보로 달려가 소천포를 실은 주먹을 뻗었다.
퍼퍼퍽.
악령은 수인을 맺느라 한 손으로만 막았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무공은 아니었다.
“크헛.”
그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그 사이 청아도 주술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움직임이 어색한 모양이다.
{주박술도 걸린 것 같습니다.}
“푸는 방법은요?”
{반대되는 술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모르시니 힘들 것 같고, 역시 악령을 제압하는 방법이 제일 간단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번박투술로 악령을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손문진인에게 다시 물었다.
“이놈의 약점은 없습니까?”
{그러니까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악령의 본체에 충격을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술법이 제일 적당한데, 술법을 사용하실 수 없으니……. 아무래도 가지고 계신 녹안석의 힘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힘은 귀신의 본령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리고 술법은 하단전이나 중단전이 아닌 상단전을 이용한다는 걸 명심하시고요. 미간 사이에 집중을 하고, 눈썹 안쪽의 끝부분인 정명혈을…….}
나는 손문진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녹안석을 쥐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싸우는 와중에 녹안석의 힘을 느끼려 애썼다.
또 정명혈, 청궁혈, 지창혈, 태양혈을 차례로 눌렀다.
스스스슷.
그러자 정말 녹안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상단전에 느껴졌다. 그 기운은 상당히 차가웠다.
{엇. 잘하셨습니다. 이제 그 기운을 주먹에 모은다 생각하시고…….}
손문진인의 말대로 주먹에 녹안석의 기운을 모은다 생각하자, 이번에는 주먹 끝이 차가워졌다.
그 상태로 악령의 몸을 쳤다.
퍼어억.
“크아아악.”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악령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그렇게 때려도 꼼짝 않더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제 악령은 허둥대더니, 도망가려 애썼다.
흥. 어딜 가려고?
경공은 내가 몇 수 위였다. 나는 그를 쫓아다니면서 사정없이 그를 내려쳤고, 결국 악령은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약하게 숨은 쉬고 있어 죽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된 거죠?”
{네. 아주 훌륭하십니다. 지금 악령은 기절한 것 같은데, 바로 제멸술을 시행하시죠. 제자가 할 수 있습니다.}
손문진인의 말을 들은 후, 나는 악령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숨어 있는 손문진인의 제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악령을 던졌다.
털썩.
“어헉.”
“놀라지 말고, 잘 보세요. 악령은 기절했습니다.”
“네에?”
“빨리 제멸술로 그놈을 없애라고요.”
“네네. 네.”
손문진인의 제자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악령의 상태를 보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부적을 이용해 제멸술을 사용했다.
그사이 나는 방 밖으로 나가서 주변에 모인 심 대감댁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보다시피 악령이 깨어나서 난동을 부렸고, 저희가 제압했습니다. 앞으로 악령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 테니, 뒷수습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죽은 사람도 있고, 집 안은 엉망이 되었지만 악령이 사라졌다. 사람들에게는 그 점이 중요했다.
그사이 손문진인의 제자는 주문을 끝냈다.
“……흉예소탕 도기장존 급급여율령.”
스스슥.
악령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에게 말했다.
“저랑 같이 가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 덕에 살았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고, 따를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뭔가 망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