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0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이들은 필요한 것만 가방에 넣고 다시 빌딩 쪽으로 걸어왔다.
안에서는 빈성우와 윤주현이 대기하고 있었고, 설동은 두 사람의 힘을 빌려 안정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한꺽정은….”
설동이 다시 도와주려고 창문으로 가자, 이미 반쯤 올라온 한꺽정이 보였다.
무거운 걸 지고도 저 정도로 날랜 모습에, 설동이 혀를 내둘렀다.
“이거 완전 도둑놈 아니야? 대도의 재능을 타고났네.”
“야야, 밧줄 좀 더 당겨줘. 여기가 한계다.”
한꺽정은 웃으면서 보챘다.
이윽고, 세 사람이 한꺽정을 마저 올렸다.
다 같이 모인 이들은 전리품에 환호했다.
빈성우는 고기를 보고 박수를 쳤다.
“고기라니! 웬일이야!”
윤주현도 마찬가지였다.
“라면하고 냄비도 있어! 꿈이야?”
한꺽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다, 두 사람이 한 번에 많이 가지고 온 덕이지.”
“그래,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어.”
신설동은 이제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그는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취했다.
11. 백중세
이 사태가 벌어지고 처음으로 설동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같이 지켜주는 동료가 있단 걸, 확인한 만큼 푹 잔 설동이 일어난 시각은 무려 9시.
설동이 난로를 보며 일어서자, 다른 이들이 하나둘 움찔거렸다.
한꺽정은 깨어나자마자, 설동을 보고 중얼거렸다.
“밥 먹자.”
“나도 동감이다. 일단 씻고.”
화장실이 멀쩡히 돌아간다는 건, 아주 좋다.
‘만약 진짜 좀비 사태처럼, 아예 전기도 수도도 다 끊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
‘분명 사태가 한 달도 안 됐으니까. 아직은 여력이 있겠지만.’
설동은 화장실로 갔다 와 가볍게 세수를 했다.
그러면서 어젯밤 충천해둔 휴대폰을 들어서 인터넷에 들어갔다.
[감염자 사태, 점점 심각해지나!] [경찰과 소방병력 연락두절, 남은 사람들, 인터넷에서 불안과 고통 호소] [정부 각종 발전소에 우선으로 병력을 보내, 안정적인 수급을 목표로 행동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대한민국은 일단, 끝장난 거 같아 보여도 여력은 남아있는 듯했다.
‘하긴, 사태가 얼마나 지났다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기간이다. 급속도로 망하기에는 사회기반시설들도 멀쩡한 게 대부분.
짧게 보면 3개월, 길게 보면 6개월.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거다.
‘그전에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야지.’
설동은 그리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인아. 아빠, 엄마는?”
“나가셨어.”
상인의 목소리는 어디인지 어두웠다. 죽마고우인 설동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그게 아니라, 그거 아냐? 우리 옆쪽에 그 도하연 알지? 그 사람 왔대.”
상인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설동은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우와. 제주도에서 같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살아갔네. 운이 억수로 좋네?”
“그러니까.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요새 뒤숭숭해.”
“그래. 알았어. 일단 나도 천천히 나마 갈 테니까. 인천 피난민센터에 의탁해서 서울로 어떻게든 가보려고. 부모님한테도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해줘.”
설동은 통화를 마쳤다. 어딘가 찜찜하지만, 직접 보지를 못하니,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물어봐도 상인이 성격상, 걱정을 안 시키려고 입을 다물 테고.’
통화를 마치자, 나머지 3명도 충전된 휴대폰을 하나둘 찾았다.
한꺽정은 휴대폰을 붙들었다.
“진짜. 엄마, 아빠. 살아있죠?”
이들은 각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 한꺽정의 함박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빈성우와 윤주현은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해.”
윤주현이 발을 동동 굴렀다. 연락되지 않는 거다.
빈성우도 마찬가지였다.
설동과 한꺽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현아.”
한꺽정이 다가가려 했지만, 설동이 제지했다.
“두 사람을 놔둬.”
“그래….”
씁쓸한 얼굴로 한꺽정은 사무실에서 나갔다.
사태가 진정된 건, 한 시간 뒤였다. 한꺽정과 신설동이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니, 빈성우가 윤주현을 위로해주며, 일단 진정시킨 모양새였다.
윤주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휴대폰을 못 챙겼을 수도 있어.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힘내자!”
다시 희망을 품어보는 윤주현이었다.
이들은 다시 모여서 계획을 논의했다.
한꺽정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수많은 감염자가 배회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의 목표는 피난민 센터. 거기까지 가려면 차가 필요해. 설동이 네가 차고 온 타는?”
“감염자들 사이에서 모터쇼 중이다.”
“힘들겠군.”
“솔직히 뛰는 감염자들 놈들만 없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너무 도박 수야.”
그렇다. 설동의 봉고는 엎어진데다가 주변에 감염자들이 득실거린다.
가지고 가는 건, 너무 도박 수였다.
빈성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도박 수는 최후에나 하고 일단, 우리 상황은 그나마 낫잖아. 여유를 가져보자. 급할수록 돌아가자는 거야.”
윤주현도 동의했다.
“너무 급하게 가기보다는 조금씩 해보자. 아니면 조금이나마 감염자들을 줄이는 건, 어떨까?”
설동이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설마 화살로? 회수하기가 어렵잖아.”
윤주현이 가지런히 정돈된 화살들을 가리켰다.
“이전에는 회수할 사람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가능하잖아. 거기에 아주 잘 버틸 사람도 있고.”
이제 모두의 시선이 설동에게 향했다.
“내가 총알받이네?”
“아니, 탱커야. 탱커.”
한꺽정이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설동은 그전에 아래를 가리켰다.
“어차피 천천히 갈 거면, 이 빌딩부터 청소하는 게 어때? 6층부터 오피스텔들이 여러 개 있지?”
“기계실도 손보자.”
이들의 목표가 정해졌다. 우선, 기계실을 가고 그다음에 오피스텔이다.
이들은 곧장 무기를 챙겼다.
탱커 신설동이 앞장서서 비상계단의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은 공기가 삭막했다.
“기계실은 관리자 한두 명밖에 없어서 오히려 더 쉬워.”
설동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기계실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이들은 지하 1층의 녹색으로 대강 칠한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눈앞에든 출입금지문.
설동은 앞에 서서 신호를 보내었다. 이들의 포지션은 정해졌다.
설동이 탱커 겸 딜러로 앞장서면, 윤주현이 적을 원거리에서 공격한다. 뒤에서 빈성우가 보조하고 한꺽정이 마무리를 한다.
4인조 파티는 서서히 기계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거대한 기계가 보였다.
이 건물 전체의 냉난방을 책임지는 기계 4대가 꺼진 상태였다.
설동은 그들을 기다리라고 했다.
‘또 한바탕 해야 해야겠어.’
오로지 그만이 가능한 행동. 그는 기계들을 등지고 발을 굴렀다.
“야!”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미끼를 던진, 설동의 행동에 드디어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
설동의 우측에서 두 마리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두 마리나 뛴다고?’
상대하기 꺼려지는 뛰는 감염자다. 설동이 긴장하는 그때였다.
그의 시선에 벼락같이 화살이 날아갔다.
달려오는 감염자 하나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윤주현이 활을 내리며 웃고 있었다.
“한 마리는 가능하지?”
“최고다.”
설동이 자신감이 치솟아 올랐다.
볼 것도 없이 설동이 달려들었다.
‘상대의 간격을 생각하자.’
상대보다 먼저 뛰어든다. 상대가 달려오면서 손을 앞으로 하지 않았다.
‘이때!’
바로 자신은 공격할 수 있는 거리. 설동의 도끼를 들고 타이밍에 맞춰 내렸다.
“기에에엑!”
도끼에 맞은 감염자가 비틀거리고 설동의 도끼가 다시 머리를 날렸다.
이내, 감염자가 침묵했다.
고요해진 기계실. 이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윤주현이 화살을 회수했다.
“됐다. 됐어! 이제 온기가 도는 거야?”
“일단, 기계만 다시 작동하면 되는데.”
설동은 이 거대한 냉난방 장치 말고도 또 다른 문이 있다는 걸 파악했다.
“아마, 구조상 전기를 관리하는 쪽일 테니. 저기까지 처리해보자.”
설동은 전기 공급 장치들이 있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감염자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우악!”
설동이 놀라서 같이 업어지고 있었다.
이 감염자는 매섭게 설동의 팔뚝을 물었다.
“기엑! 쿠엑!”
빈성우가 누구보다도 먼저 상대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야! 가만있어!”
설동의 앞에서 한꺽정의 방망이가 시원하게 날아갔다.
뻑. 감염자의 머리통이 그대로 뽑혔다.
“후.”
설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린 자국과 피가 흐른다.
그리고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빈성우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신기하네. 무슨 구조야?”
“나도 궁금해.”
설동은 전기 공급 장치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갔다.
대학교 캐비닛처럼 좌우로 늘어져 있다. 설동은 이런 기계들에 아주 약간의 지식 정도는 있다.
설동이 만지려 하자, 한꺽정이 다가왔다.
“야, 근데 이거 우리가 만져도 돼? 자칫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걱정하지 마. 이런 기계들은 기본적으로 이전 관리자들이 세팅해놓은 상태야. 즉, 우리는 온·오프만 해놓으면 돼. 이 이상 만지지만 않으면 돼.”
그렇다. 구태여 알지도 못한 채 만지다가 망치는 것보다는 온·오프만 해놓는 게 낫다.
기계들이 시끄럽게 돌기 시작했다.
아침의 첫 퀘스트는 완료된 셈이다. 설동은 시간을 보았다. 11시 30분.
이들이 올라가자, 이전에 추웠던 기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꺽정은 박수를 쳤다.
“그래, 이거지! 아, 좀 따뜻하네!”
오전의 일과를 마친 이들에게 주어진 포상은 바로 고기다.
탕비실로 이동한 이들은 가지고 온 냄비에 김치와 해동한 고기들을 넣었다.
돼지고기 김치찜.
이 사태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록 요리사나 엄마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뜨끈한 국물이 있다는 거 자체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포상이었다.
한꺽정은 라면을 꺼냈다.
“야, 가자.”
라면사리를 그대로 넣어 그야말로 배부르게 입을 채웠다.
따끈한 음식. 설동이야 오기 전에 경험했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진짜 얼마만이냐!”
“따끈한 국물! 진짜이게…….”
모두가 감격해 하면서 입안에 라면과 김치를 밀어 넣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광경에 설동도 웃음이 조금씩 나왔다.
‘그전까지는 이상한 놈들만 만났는데.’
서로 적대적이고, 가진 걸 뺏으려는 자들. 그런 이들이 아닌 자들이랑은 오랜만에 만난 상황이었다.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겨울이 햇살을 잠시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