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36
136
분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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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의 전 귀족 회의 소집령이 떨어진 날 밤, 체들턴 후작가의 수뇌부들은 저택 지하의 비밀 회의장을 찾았다.
“도대체 폐하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전 귀족 회의라니요.”
릭 체들턴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찌 보면 릭의 의문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전 귀족 회의는 말 그대로 프로드 왕국의 모든 귀족이 참가하는 회의다.
그 말은 국무회의의 과정을 모든 귀족이 지켜보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알베르토는 줄곧 왕권강화정책을 펼쳐 왔다.
그것은 그가 회의장에서 항상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도 잘 나타났다.
그러나 귀족들의 수가 많아진다면 그 태도에 대한 반발심을 키울 뿐이었다.
“굳이 전 귀족 회의까지 소집한 걸 보면 필시 그 이득이 있을 것인데.”
올란도도 국왕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답답할 따름이었다.
“모든 귀족 앞에서 공포할 만한 거리가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터뜨려야 할 사건이면 그 대상은 우리 가문일 가능성이 크다.”
루이스의 말에 그들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의 프로드는 태평성대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시기를 가지고 온 왕이 못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유례없는 프로드의 번영.
원래 사람은 자신의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드에서도 많은 귀족과 백성이 이런 번영 속에서 국왕을 지지했다. 그에 따라 왕의 권한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지금의 그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대상. 그러면서 국왕이 견제해야 하는 대상. 그 모든 조건이 우리 가문이 그의 목적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탑주의 굳은 표정에 다른 이들도 역시 불안해졌다.
“하지만 저희는 전혀 뒤를 잡힐 만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탑주님께서도 잘 알지 않으십니까?”
“그럼 저들이 무엇을 믿고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전 귀족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이냐? 말해 보아라.”
릭은 탑주의 호통을 듣고는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올란도도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까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하나 같이 완벽하게 정리한 것뿐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똑똑하잖아?”
그때, 회의장 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마법사 가문인 체들턴 후작가의 비밀 회의실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침입자를 막기 위한 복잡한 마법들이 이중 삼중으로 설치된 곳이었다.
그들은 이 대륙에서 이곳을 돌파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확신했다.
하물며 지금 이곳에는 마법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탑의 탑주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감각까지도 피해서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어떤 놈이냐?”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릭이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이들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으나 그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면 너희들이 어떻게 하려고. 날 잡기라도 하게?”
그자는 건방진 어투로 대답하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불빛이 닿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침입자치고는 당당하군.”
척.
체들턴들은 각자의 스태프를 세웠다. 여차하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려는 준비였다.
“아아, 농담이니까 너무 심각하게들 받아들이지 말라고.”
스윽.
그자는 혼자 킥킥거리더니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너는?”
그런 얼빠진 소리를 낸 것은 릭이 아니라 탑주였다.
릭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벙긋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오직 탑주만이 간신히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메론?”
신의 재능이라 불리던 하메론.
케니프라 사건 이후로 홀연히 자취를 감춰 버린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가워, 탑주님.”
그는 마치 어젯밤까지 그들을 만났던 사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인사했다.
“네놈, 어디로 사라졌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 그리고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올란도는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그에게 호통을 쳤다.
하메론이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그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는 높지만, 탑주보다는 못한 정도였다.
그는 탑주와 자신이 있는 한 충분히 하메론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생각은 보란 듯이 쳐부숴 졌다.
“봉쇄하라, 패럴라이즈.”
기잉.
“큭.”
“으헉.”
“히익!”
세 명의 체들턴은 자신의 몸을 움직일 권리를 박탈당해 버렸다.
탑주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사용한 것은 평범한 4서클의 마비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만큼은 4서클이 아니었다.
세상의 어떤 4서클 마법이 7서클인 자신의 몸을 묶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은 이것이 4서클의 마법이 아니라거나 또는 술자의 실력이 자신을 압도한다는 말이었다.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인제 와서 그런 후회를 하는 것은 늦었다.
그는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가히 마탑의 실세라고 부를 수 있는 세 명의 생명권이 한순간에 그의 손에 달린 것이다.
탑주에게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죽음의 위험이었다. 그의 목구멍은 가뭄이 찾아온 땅처럼 메말라 갔다.
휘릭.
다행히, 하메론은 그들의 목숨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메론이 손을 이리저리 흔들자 패럴라이즈 마법이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자유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셋 중 그 누구도 몸을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그래, 이렇게 해 줘야 꼭 말을 알아듣더라고. 그냥 한 번 말할 때, 그때 알아주면 안 되는 건가?”
하메론은 그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까지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던 그의 표정이 변했다.
“너희들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더군.”
올란도는 그가 자신들의 대화를 처음부터 모두 듣고 있음을 알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탑주님만 국왕의 의중을 조금이나마 눈치챘고, 나머지는…….”
“너는 뭔가 알고 있는가 보군.”
“역병에 남아 있던 체들턴 가문의 술식,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약하게나마 검출되는 마탑주 루이스 체들턴의 흔적. 그 모든 게 다 국왕의 손에 들어갔다.”
으득.
루이스의 이빨이 큰 소리를 냈다.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었지만, 마법으로 관리한 그의 신체는 중년 남성의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다. 역병에 담긴 술식이나 마나의 흔적은 분명 전부 흩어져 버렸을 텐데.”
그간 몇 번이나 실험했던가.
탑주가 되고 나서부터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만든 생물학병기였다. 루이스는 그런 자신의 마법에 흠결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놈들에게 돌연변이에 대해 말해 줘 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그냥 세상이 탑주님 마음대로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고만 알아 둬. 내가 예상한 대로도 안 흘러가는 세상이니까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만 하메론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래서 너희들 얼른 해결책을 내놓아 보라고. 나도 그놈들이 성공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자 릭이 탑주를 향해 몸을 돌렸다.
“탑주님, 하메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 귀족 회의 때 우리는 빼도 박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닙니까? 그전에 우리가 지지 세력들을 모아 먼저 저들을 쳐야 합니다.”
릭의 말에 올란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현실성이 없다. 현 국왕은 태평성대의 문을 열고 있는 자다. 우리의 지지 세력은 괜찮겠지만, 중립을 자처하는 자들을 어떻게 이쪽으로 끌어들일 것이냐?”
할 말이 없어진 릭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올란도도 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엘런이 오지로 가 버린 틈을 타 무력으로 왕위를 노리는 것은? 아니 그것은 우리 세력의 지지조차 얻을 명분도 없을뿐더러 아카드가 있는 한 우리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그의 머리는 해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우리가 계획한 마탑의 왕국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탑주님은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있는 거지?’
어느 누구보다 마탑의 왕국에 공을 들인 그는 이 위기 속에서 홀로 고고한 나무처럼 서 있었다.
올란도는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 모습이 안심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탑주님, 무슨 방도라도 있습니까? 이건 한시가 급한 순간입니다.”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던 탑주는 올란도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하메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메론, 자네는 무슨 방도를 가지고 왔지?”
“그게 무슨 소리지?”
하메론은 흥미롭다는 듯 대답했다.
“자네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자네 같은 실력자가 이곳까지 찾아와 굳이 정보를 말해 주는 걸 보면 우리의 편에 서기로 한 것 같네만. 어서 생각한 것을 말해 주게. 자네가 이번 전투에 참가할 텐가?”
올란도와 릭의 시선도 하메론에게로 쏠렸다.
“그것이 사실이냐?”
“하메론이 합류한다면 국왕 쪽에 아카드가 있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릭은 위기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방방 뛰었다.
“항상 생각했지만 탑주님 당신, 눈치만큼은 정말 빠른 영감이야.”
“그 덕분에 이렇게 탑주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 아니겠나?”
하메론은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해결이 가능했으면 귀찮게 여기까지 너희들을 찾으러 왔을까? 아쉽게도 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전투에 직접 참가할 수는 없어.”
그 말에 모여 있던 이들은 실망감이 들려 했으나, 그때 이어진 그의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탑주님 생각대로 다른 방법은 있어. 그 방법을 주도록 하지.”
“그것이 무엇인가?”
올란도의 말에 하메론은 대답 대신 종이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 종이에는 날짜 하나가 쓰여 있었다.
“그냥 당신들이 원하는 명분을 주려고. 자세한 사항은 그쪽에서 사람을 보낼 거야. 당신들은 그 날짜를 거사일로만 잡아 두고 움직여.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세력을 싹 다 끌어 모으도록 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하메론은 나타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체들턴의 비밀 회의장에는 다시 세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 말을 믿고 진행하실 겁니까?”
“그럼 그것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그건…….”
자신들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미 증거를 확보한 국왕이 자신들을 끌어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선수를 치는 것이 당연하기까지 했다.
“수상한 것은 맞지만, 어쨌거나 그는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탑주의 표정은 하메론을 대할 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앞에서는 담담한 척 있었지만, 사실 걱정이 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가 우리에게 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우리의 목숨을 쥐었다. 그런데도 죽이지 않은 것은 분명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거래는 성립할 수 있다. 일단은 당장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하메론……. 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그는 다가올 일을 훤히 내다보는 것 같았지. 그가 우리를 선택했다는 말은 우리의 승리를 보았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들끓던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지금부터 바로 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마탑의 왕국이 빨리 다가올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