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5
25
상회 (2)
보르돈은 엘런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엘런, 네가 아티팩트를 감정해 주었다고 하더구나. 명색이 상인인데 거래 관계는 철저해야지.”
“괜찮습니다. 친구끼리 이 정도는 당연하죠.”
“친구끼리도 돈 관계는 확실해야 해. 이건 받아 두어라.”
엘런의 사양에도 보르단은 굳이 돈을 쥐어 주려 하였다.
사실 엘런에게 이 정도 돈은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돈이라면 하메론 던전에서 얻은 보수도 있었고 유진이 준 것도 있었다.
곤란해하고 있던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 본 상회의 물건들이 떠올랐다.
“정 그러시다면 마법 용품 몇 개만 볼 수 있을까요?”
“마법 아카데미 학생이라 이건가? 좋아. 창고에는 흥미가 생길 만한 물건들이 많이 있지. 그럼 거기서 적당한 것을 보수로 주도록 하마.”
보르단은 엘런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그를 상회의 창고로 데려갔다.
상인의 촉이 이 소년과 연을 맺으면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볼 때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도 있었나 보지?”
“신기해 보이는 물건이 있어서요. 책에서만 보고 실제로는 못 봤던 물건이거든요.”
엘런은 가린의 노래를 감정했던 곳으로 갔다.
보르단도 과연 엘런이 어떤 물건을 고를지 궁금해했다.
“저기 있네요.”
엘런은 커다란 천으로 만들어진 로브와 옆에 걸려 있는 가면을 집어 들었다.
“그건 오물을 처리하는 일꾼들이 사용하는 청결의 로브일 텐데?”
이곳엔 마법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고를 만한 물건들이 얼마든지 많았다.
보르단은 엘런의 그런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독한 냄새와 더러운 오물로부터 몸을 청결하게 유지해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클린 마법만 새겨진 것 같은데 그 정도 효과를 내는 원리가 궁금해서요.”
“허허, 내 아들 녀석이 저런 태도를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말이야. 물건을 선택하는 목적마저도 수재는 다르구나. 어쨌든 그것이 마음에 든다니 가지고 가거라.”
천 옷과 가면은 1서클의 마법이 새겨진 것이기 때문에 그리 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균적인 감정 비용에는 한참 못 미치는 정도였다.
‘좋은 거래가 됐군. 인연도 만들면서 감정까지 했으니까 말이야.’
보르단도 어쩔 수 없는 상인이었다. 매사에 이익을 따지는 것이 버릇되어 있었다.
‘청결의 로브를 구하려면 꽤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잘됐어.’
수도의 오물처리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왕실이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은 모두 왕실이 지급했다.
개인이 따로 청결의 로브를 구하려면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것을 우연히 여기서 구했으니 엘런에게도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 * *
“엘런, 이제 왔냐? 그 이상한 로브는 뭐야?”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있던 던스가 벌떡 일어나며 엘런에게 다가왔다.
“그냥 연구해 보고 싶은 물건이었는데, 킨버의 아버지가 주셨어.”
그 말에 킨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런이 들고 있는 로브를 바라보았다.
“그거 별거 아니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이 양반이 내 친구한테까지 장난을 친 건가?”
“아니야. 원래 돈으로 주겠다고 하시는 걸 내가 이걸로 달라고 한 거야. 더 연구해 보고 싶은 물건들이 몇 개 있어서 내일부터 구하러 다니려고.”
킨버는 질린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너는 정학을 받은 기간에도 공부를 하는 거냐?”
“그러니까 천재 소리를 듣는 거 아니겠어?”
로크도 킨버와 마찬가지의 눈빛으로 엘런을 보았다.
“아카데미 안에서는 자율적으로 연구 같은 건 못 하니까 지금이 좋은 기회지.”
“나가면 정학 기간 끝날 때까지 안 돌아올 거야?”
“원래 나는 따로 지내려고 했잖아. 혹시 기간 전에 하고 싶은 연구를 끝내면 돌아올게.”
“우리끼리 파티라도 할 줄 알고 좋아했더니 아쉽네.”
던스는 아쉬운 마음에 투덜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놀자고.”
엘런의 말에 킨버도 활짝 웃으며 숨겨 놓았던 술병을 꺼내 들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이었다.
“야, 이건 아버지에게 걸리면 나 죽은 목숨이야.”
“오오, 이렇게 귀한 걸?”
“킨버, 이 녀석!”
고작 술병 하나에 호들갑을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며 엘런은 피식하고 웃었다.
몸은 소년이었지만 내면은 중년이었다.
그들의 행동이 귀여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다 죽는 거야.”
하지만 엘런도 그 분위기에 맞췄다.
이렇게 순수하게 놀아 본 적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은 자신을 내려놓기로 하였다.
* * *
그렇게 흥청망청 놀았다.
“내가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던스가 말을 하다 말고 쓰러져 버렸다.
로크도 이미 잠들어 있었다.
“이 자식들, 일어나지 못해?”
킨버의 상태도 그리 다를 것은 없어 보였다.
“너도 많이 취한 것 같다.”
“나 괜찮은데? 괜찮다고!”
킨버는 혀가 꼬여서 돌아가는 상태로 말하고 있었다.
엘런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나도 내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엘런은 킨버를 향해 슬립 마법을 사용했다.
그제야 킨버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혼자서 일찍 일어난 엘런은 짐을 챙겨 상회를 나섰다.
보르단과 세나가 그를 배웅하기 위해 대문까지 따라 나왔다.
“다음에도 또 놀러 와요. 우리 킨버랑도 친하게 지내고.”
세나는 방긋 웃으며 엘런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건 살 때 돈이 부족하면 내 이름을 대어라. 해리포드에서 내 이름이면 다 외상이 가능하니까.”
보르단은 엘런을 보며 아쉬운 듯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문이긴 한데 체들턴 가문과 거래할 때 조심하세요. 그 가문, 계약서에 장난질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보르단은 엘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엘런도 딱히 알아듣길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아니에요. 아카데미에서 누가 하는 소리를 주워들었던 걸 말씀드린 거예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래. 조심히 가거라.”
보르단도 그저 아카데미 학생이 자신이 들은 걸 뽐내기 위해 말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엘런에게 인사를 했다.
엘런은 사실 보르단 상회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마탑 쪽 사업을 장악하기 위해 체들턴 가문에서 보르단 상회와 합병하게 된다.
이때 체들턴 가문에서 계약서 조항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보르단 상회는 거의 공짜로 체들턴에게 합병당하는 것이다.
‘상관없지.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살짝 말해 주려고 한 거니까. 이제 내 할 일을 할 차례군.’
상단에서 나온 엘런은 해리포드의 서쪽 성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주위에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성벽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달칵.
성벽을 계속 더듬던 엘런은 무엇인가 눌러지는 것을 느꼈다.
쿠르르릉.
그러자 성벽 바로 앞에 있는 바닥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하메론의 두 번째 던전.’
발견과 동시에 프로드 왕국을 발칵 뒤집었던 던전이 엘런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도인 해리포드의 성벽 안쪽에 있는 던전이었다.
그마저도 하메론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완수하는 게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