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56
제157화
울릉도 게이트에 진입했다.
들어오자마자 강력한 마나가 느껴졌다.
“흐음….”
A+등급 게이트의 마나가 몸을 짓누른다.
그냥 걷는 것만큼은 상관없겠으나 힘껏 뛰거나 내달릴 수는 없을 듯하다.
주변을 돌아봤다.
부끄럽게도 10명의 헌터들 중에서 마나 압박을 느끼는 건 나뿐이었다.
S급 헌터들과 한진환은 당연하고.
도희, 태천이, 조주현, 리우이호도 멀쩡하다.
내 뒤에 있던 카메라가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앞으로 나아가 S급 헌터들을 촬영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혼자 게이트 마나에 압박을 느끼는 창피한 모습이 전 세계에 송출될 뻔했다.
옆에 서 있던 도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레 묻는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응, 괜찮아. 버틸만해.”
태천이도 묻진 않았지만, 도희처럼 얼굴에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두 사람이 안심할 수 있게 일부러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
“…….”
그런다고 날 보는 두 사람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실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격렬한 움직임만 취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을 터였다.
S급 헌터들이 네 명이나 있는 이곳에서 내가 세차게 움직일 일도 없을 테고.
더군다나, 스미로노프와 태천이가 다툴 때 느꼈던 마나 압박에 비한다면 더욱 버틸 만했다.
그땐 뛰는 게 아니라 걸을 수조차 없었다.
“…어라?”
갑자기 게이트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몸이 편해졌다.
몸을 짓누르던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뛸 수도 마음껏 내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하며 주변을 돌아보다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짠.”
태천이었다.
그의 왼손에 커다란 방패가 들려 있었다.
멘닥스 테스투토.
그게 A+등급 게이트의 마나를 밀어낸 것이었다.
스미르노프의 마나를 밀어냈었던 것처럼.
정말….
유재이와 홍수정이 좋은 걸 만들어줬다.
그녀들의 말처럼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로 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테지만.
“고맙다.”
“고맙긴. 애초에 네가 준 건데, 뭘.”
“아. 그렇네. 인사할 놈이 잘못됐네.”
“뭐?”
듣고 보니, 태천이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멘테는 내가 선물해준 방패였으니까.
재료도 내가 구했고, 제작한 대장장이도 내가 찾아냈다.
꽈악….
그러므로 내 몸을 꽉 끌어안는다.
“잘했어, 과거의 나.”
“…….”
그러는 나를 보며 태천이가 눈을 찌푸린다.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 같은 모습이다.
표정 살벌한 거 보소.
도희를 봐라, 좀.
너처럼 눈을 찌푸리긴 해도 오빠라고 참아주려고 하잖아.
저 모습이 얼마나 예쁘니?
“제발…. 부탁이니까, 이상한 짓은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해라, 좀.”
“이상한 짓? 내가 언제?”
“방금 했잖아, 방금.”
“……?”
“후우….”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천이 한숨을 푹 내쉰다.
옆에 서 있던 도희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도희의 도리질에선 선이 느껴졌다.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선.
하하, 좋은걸.
둘 다 날 한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아까처럼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
10분쯤 걸었을까?
중간쯤에서 걷고 있던 밀러가 멈춰 섰다.
“멈춰요.”
그러고는 팔을 뻗어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자연히 모든 이들이 멈춰 섰다.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가장 앞에서 걷던 리롄제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나?”
“오고 있어요.”
“오고 있다…?”
“네.”
그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울릉도 게이트에서 사는 몬스터는 딱 한 마리다.
이무기.
그것이 날아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리롄제가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허어, 한 마리뿐이라지만 보스 몬스터이거늘….”
“이상한 일이네요. 보스 몬스터는 자기 영역을 잘 벗어나지 않는 법인데….”
두 사람이 이무기의 돌발 행동에 대해 생각할 때,
퍼억!
스미르노프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흥. 귀찮았는데 마침 잘됐군.”
“…….”
“…….”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놈을 바라봤다.
이무기의 행동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스미르노프는 그 이유를 파악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놈은 평생 상대를 파악하지 않고서도 늘 이겨왔을 거다.
그동안 어떤 상대든 거인화 해서 패버리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파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게 설령 A+등급의 몬스터라고 할지라도.
태천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리롄제, 밀러.”
“음?”
“왜 그래요?”
“이곳은 저번에 들어왔을 때보다 마나 농도가 짙어졌습니다.”
“아, 그래. 자네는 이곳이 두 번째지?”
“네.”
“짙어졌다…? 혹시, 게이트 브레이크를 염두에 둔 건가요?”
“맞습니다.”
“흐음…. 좋지 않네요.”
밀러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게이트 브레이크.
그것은 마나가 게이트의 허용치를 넘어설 만큼 차서 곧 폭발한다는 뜻이었다.
전부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보스 몬스터가 진화하게 될 수도 있었다.
홍유릉 게이트의 스켈레톤 로드처럼.
A+등급으로 책정됐던 이무기가 진화한다면….
분명 S등급 몬스터가 되리라.
말 그대로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걸까?
리롄제가 헐헐 웃으며 말했다.
“한번 보고 싶구나.”
“스승님….”
“농담이다, 이놈아. 아무렴 내가 일부러 내버려 두겠느냐?”
“…….”
글쎄?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리롄제는 이무기가 진화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리우이호도 나처럼 생각한 듯 의심의 눈초리로 제 스승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롄제는 전방을 바라봤다.
저 용덕후 영감탱이….
“자, 어찌할꼬?”
“스스로 오고 있다지 않소.”
“음?”
응…?
조용히 있던 그위친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투가 조금 이상했다.
나를 대할 때하고는 전혀 달랐다.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게 원래 그위친인 걸까.
내게서 그리움을 느꼈기에 나를 특별하게 대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면 될 일이오. 어차피 이무기를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니.”
“흠…. 좋소. 그럼 기다리도록 하지.”
리롄제가 그위친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바로 밀러에게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이 정도 속도라면…. 5분? 그 정도쯤 걸릴 것 같네요.”
“딱 좋군. 그럼 다들 준비하게.”
준비하라고 해도 말이지….
딱히 할 게 없는걸?
이번 이벤트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S급 헌터들이었으니까.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면 그만….
아, 그렇군.
구경할 준비를 해야 했었다.
주전부리나 좀 가져올걸….
내가 멍청했네.
[세계수 어린나무가 먼 곳에서부터 강력한 번개의 마나를 느꼈습니다.]강력한 번개의 마나….
이무기다.
그것이 새싹이의 탐지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게 분명했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이무기한테서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 [이무기를 확인할 때마다 묘한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고 털어놓습니다.]기시감이라니…?
우린 울릉도 게이트에 오늘 처음 진입했다.
이무기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새싹이가 이무기에게서 기시감을 느낄 리 없었다.
하지만.
새싹이는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헤어날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대체 왜?
“…….”
굳이 설명하려고 한다면….
딱 한 가지뿐이다.
새싹이와 이무기가 위그드라실에서 만났던 적이 있었다, 는 것.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을 부정합니다.] [위그드라실에서도 이무기를 만난 적이 없음을 밝힙니다.]만난 적이 없어?
정말로?
[어린나무는 확실히 만난 적이 없다고 전합니다.]흐으음….
그럼 정말로 왜 기시감을 느끼는 거니?
[어린나무도 그걸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우르르… 꽈앙…!
“엇….”
멀리서부터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무기가 뿜어대는 번개가 틀림없다.
귀에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으니,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눈에 보일 터였다.
꽈앙, 꽈앙…!
천둥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잦아졌다.
또 두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커졌다.
“오….”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것은, 마치 푸른 뇌운(雷雲)처럼 보였다.
무수한 번개를 뿜어내 대지를 내리쳤다.
지그재그로 뻗어 내려오는 번개들은 마치 허공을 찢어내는 듯하다.
분노를 형상화한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 아닐까.
“절경(絕景)이로구나…!”
리롄제가 감탄을 터뜨렸다.
그럴 만도 했다.
이무기는 그동안 그가 보고 싶어 한 ‘동양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입이나 앞발에 여의주를 물거나 쥐고 있었다면, 동양화에서 보던 완벽한 ‘용’의 모습이다.
그런데….
“……?”
이무기는 좀 이상했다.
자리를 박차고 여기까지 날아와 놓고서는 바로 공격해오지 않았다.
허공에 가만히 떠 있기만 했다.
번개를 뿜어내긴 했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 같은 것이었다.
또 한 가지.
그것은 S급 헌터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 다른 곳만을 바라봤다.
다른 이들도 시선의 방향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듯 고개를 돌린다.
시선의 끝이 어디로 다다르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한 마리의 몬스터.
아홉 명의 인간.
“…….”
그 시선을 모두 받은 남자는 평소와 같았다.
얼굴은 평온했고,
“으엉?”
목소리도 느긋했다.
이무기가 분노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모습이라면.
남자는 태평함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다면 딱 저렇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이태천.
녀석이 목을 긁적이며 물었다.
“도운아, 도희야. 저거 나 보고 있는 거지?”
“어, 너 보고 있네.”
“그렇네요.”
나와 도희는 바로 대답해주었다.
이어 우리 세 사람의 질문과 답변이 빠르게 이어졌다.
“왜 날 보는 걸까?”
“글쎄다.”
“내가 오라버니한테 묻고 싶은걸요.”
“나도 모른단 말이야.”
태천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무기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확실히….
그 태도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친구에게서 진실함을 느꼈습니다.] [저번과 같이 심정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새싹이도 진심을 느꼈다.
이번엔 순순히 믿어줘야겠다.
태천이 또다시 질문을 던진다.
“물어보면 대답해주려나?”
“대답이라….”
“안 해주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겠지?”
“도희가 그렇다면 그런 거 아니겠어?”
“맞지. 그렇지.”
“껄, 껄껄껄…!”
사담을 나누는 가운데,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리롄제가 고개까지 뒤로 넘기며 웃어젖혔다.
그는 이무기에게 무시를 당했음에도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답지 않게….
용 같은 외형 때문인가?
역시 외형이 중요한 건가?
“상황이 썩 재미있게 흘러가는군.”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이들도 리롄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천의 실력을 인정했던 리우이호와 조주현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밀러와 그위친도 흥미로운 듯 우리를 바라봤다.
유일하게 딱 한 사람.
스미르노프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야 그렇겠지.
우리에게 자신과의 격차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무기가 무시하고 있으니….
그때, 리롄제가 제안을 해왔다.
“자네, 저걸 한 번 상대해보지 않겠나?”
“예?”
“잠깐만요.”
도희가 끼어들었다.
이 이벤트의 주인공은 태천이가 아니다.
여기에서 나선다면 전 세계적으로 ‘저 새끼 뭔데 나대?’라고 듣지 않아도 될 욕을 듣게 될 터였다.
설령 이무기가 태천이만 쳐다보고 있다고 해도.
리롄제가 먼저 제안했다고 해도.
“저희가 이곳에 들어온 건-”
“이벤트를 위해서지.”
리롄제가 도희의 말을 끊었다.
“화합의 장이지 않은가. 한국 최고의 탱커라는 실력. 부디 꼭 한번 보고 싶군.”
“…….”
부디, 꼭.
리롄제는 저자세로 부탁을 해왔다.
S급 헌터인 동시에 세계에서 헌터 생활을 가장 오래 한 그가.
여기에서 거절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저 새끼 뭔데 리롄제의 부탁을 무시해?’라고 욕을 먹을 터였다.
그렇다.
나서도, 나서지 않아도, 욕을 먹는 상황이 된 거다.
그걸 알기에 도희는 입을 다물고 태천이를 바라봤다.
태천이는 그러나 아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무 걱정도 없이 편안한 얼굴이다.
“혼자가 싫다면….”
리롄제가 고개를 돌린다.
노인은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봤다.
[경고!]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경고를-]“자네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 듯하군.”
이 능구렁이 영감탱이….
진짜 노림수는 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