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57
제158화
“하…?”
TV를 보던 유재이가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에 반쯤 씹힌 오징어 다리가 대롱거리다가,
톡….
떨어졌다.
떨어지는 오징어 다리를 홍수정이 손바닥으로 받아낸다.
받아낸 것을 도로 유재이의 입에 넣는다.
질겅질겅….
유재이는 오징어 다리를 천천히 씹었다.
물론, 씹고 싶은 건 입속에 있는 오징어 다리가 아니었다.
“…저 영감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이무기를 상대해보지 않겠냐고 했어. 친구랑 함께해도 좋을 것 같댔고.”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혼잣말이나 다름없었으나 홍수정이 대답했다.
구운 오징어 몸통을 죽 찢으면서.
TV 화면에 이태천과 그의 옆에 서 있는 백 씨 남매가 잡혔다.
“친구…는 도운 씨랑 도희 님을 얘기하는 거겠지?”
“웃겨. 갑자기 왜 백도운한테 시켜?”
“재이야, 리롄제가 시킨 건 태천 님.”
“이태천이나 백도운이나! 친구랑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잖아.”
“응, 응. 그렇게 말했지.”
“사람들 보고 싶은 건 자기들이 싸우는 건데 말이야. 이무기도 왔겠다, 싸움이나 할 것이지. 왜 백도운한테 시키고 난리야?”
“그러게에.”
“나만 그래?”
“응?”
“왠지 마음에 안 들어, 저 노친네!”
유재이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홍수정은 흐뭇한 얼굴로 보면서 찢어놓은 오징어 몸통 조각을 건넨다.
“고마워.”
“응.”
유재이는 오징어 몸통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녀는 화면에 리롄제가 나올 때마다 눈을 부라렸다.
반면, 리롄제는 웃고 있었다.
마치 옛 무협 영화에서 나올 법한 신선과 같은 얼굴로 이태천을 바라봤다.
화면 속에서 이태천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어….]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김지연은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받아들이면 안 될 텐데….”
“에이, 받아들이겠어요?”
심윤진이 땅콩 한 알을 입에 던져 넣는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지금 받아들이면 세계적인 눈새 되는 건데.”
“그래서 하는 말이야. 이태천이잖아.”
“아, 맞다. 미터기….”
“미터기?”
“몰라요?”
홍수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재이도 모르는 눈치로 설명해주길 기다렸다.
오징어 몸통을 질겅질겅 씹으며 심윤진을 바라봤다는 소리다.
“이태천 별명이에요.”
“별명…? 천공의 기사잖아?”
“그건 이태천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요.”
“으응…?”
천공의 기사.
심윤진의 말대로 그 별명은 그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붙인 말이다.
정직하고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순수하게 칭찬하기 위해서.
그러나.
좋게 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는 법.
올곧고 정직한 모습은 누군가에겐 어리석고 고지식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미터기는 이태천을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에요.”
“미터기…. 왜 미터기야?”
“택시 미터기에서 따온 거예요. 융통성 없는 모습이 꼭 탑승자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올라가는 미터기 같다나?”
“헤에, 전혀 몰랐어.”
“그럴 거예요. 이태천 싫어하는 사람들보단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웬만해선 미터기라고 안 부르죠.”
“그렇구나….”
설명을 듣고 난 홍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유재이가 외마디 감탄을 흘렸다.
“앗….”
TV 화면에 도운이 잡혔기 때문이다.
도운은 태천의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나섰다.
대신 대답하려는 듯했다.
“백도운….”
그녀가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화면 속 도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자네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 듯하군.”
리롄제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신선처럼 보일 얼굴이었지만….
후우….
내게는 전혀 그리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만 그런 걸까.
어쩐지 이 영감 보면 볼수록 재수 없어지는 것 같은데.
아니, 이무기 잡는 건 S급 헌터들이 할 일인데 왜 우리한테 상대해보라고 하고 지랄이야?
“어….”
태천이는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는 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듯했다.
당연했다.
받아들이면 눈치 없이 뭐 하는 거냐고 욕을 먹을 거고.
거절하면 감히 리롄제의 제안을 무시하는 거냐고 욕을 먹을 거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욕을 듣게 될 상황이었다.
그의 고민은 그러나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을 터였다.
예전부터 내가 누누이 말했으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고민하지 말고 우선 행동해.
태천이는 고민해봐야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한다.
괜히 학창 시절 뒤에서 전교 1등을 독차지한 게 아니다.
뭐, 뒤에서 전교 2등을 독차지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실망합니다.] [관리인 친구에게도 실망합니다.]어허, 실망하지 마.
우린 관심사가 성적에 없었을 뿐이야.
그때 다른 노력을 했다고.
…….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갸웃합니다.]있어.
실버를 넘어,
골드를 지나,
플레로 가는 거.
[어린나무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학교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그곳에서 듀오로 챌린저 갔으면 된 거지.
암. 그렇고말고.
“음….”
태천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고민하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다.
아마 리롄제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할 거다.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모였는데 제안을 거부하면 보기 안 좋을 테니까.
“전 아무래도 상….”
역시.
손을 뻗어 태천의 어깨를 짚는다.
태천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응?”
“…….”
“…알았어.”
태천이는 순순히 발언권을 넘겨주었다.
내가 나서는 게 재미있었던 걸까?
리롄제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재수 없긴.
공손한 태도로 노인을 불렀다.
“리롄제 님.”
“듣고 있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헐헐….”
리롄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는다.
뒤에서 도희와 태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내 이름을 중얼거렸는데,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각각 달랐다.
태천이 목소리에는 의문이, 도희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거절하겠다고?”
“네.”
“나. 리롄제의 부탁인데도?”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라….”
노인은 같은 말을 되뇌며 날 빤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젊은 헌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졌을까.
아니면 반대로 재미있어하고 있을까….
그의 생각을 읽어내길 포기했다.
고개를 돌려 이무기를 바라본다.
이무기.
「…….」
그것은 가만히 태천이를 보고 있었다.
아무 미동도 없이 허공에 떠 있기만 했다.
퍽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오자마자 바로 번개 속성의 공격을 퍼부어댈 줄 알았는데….
이무기는 왜 그냥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는 걸까.
생각해봐야 그것의 의중은 알아낼 수 없으리라.
아.
그위친은 드루이드니까 알지도 모르겠다.
“나섰다가….”
“음?”
“저걸 우리가 잡아버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리롄제의 눈이 커진다.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피어오른다.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이번 이벤트의 목적은 S급 헌터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저걸 우리가 잡아버리면, 여러분이 함께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허….”
“아. 함께 구경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겠네요.”
“…….”
리롄제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이들도 입을 열지 않았고, 완전한 침묵이 깔렸다.
우르르…!
들리는 것이라고는 이무기의 몸에서 튀어대는 천둥소리뿐이었다.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
[나섰다가, 저걸 우리가 잡아버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뭐…라는 거야!”
유재이는 입을 쩍 벌렸다.
오징어 몸통 조각이 입에서 대롱거리다가,
톡 떨어졌다.
오징어 다리를 받아냈었던 홍수정은 이번엔 몸통 조각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녀 또한 유재이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지연과 심윤진도 다르지 않았다.
우뚝 멈춘 채 TV를 바라봤다.
손에 들고 있던 땅콩과 오징어를 툭툭 떨어뜨리면서.
이 순간, 당황의 늪에 빠진 건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 […….]헌터 협회의 직원이라던 남자와.
부산에서 활동하는 헌터라던 여자.
작게 분할된 화면 속의 두 사람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방송 진행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멀거니 앉아 있기만 했다.
“이, 멍청이…!”
유재이는 도운을 욕했다.
옆에 있었다면 등짝을 세게 때렸으리라.
그러나 몹시 안타깝게도 도운은 TV 속에 있었다.
[…우리가 잡아버리면, 여러분이 함께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아. 함께 구경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겠네요.]마음이 편안한 얼굴을 한 채로.
그의 얼굴이 유재이는 처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으면 어떡해!”
***
“껄….”
껄?
리롄제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밀러의 통역 마법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을 때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껄껄!”
리롄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저히 못 참을 듯이 시원스럽게 웃어댔다.
그위친과 밀러도 그처럼 우렁차진 않지만 웃었다.
S급 헌터 중에선 유일하게 스미르노프만 표정이 곱지 못했다.
놈은 나를 죽이고 싶은 듯이 노려보았다.
아, 저 표정을 보니 내가 참 잘한 듯싶다.
“그래, 그래. 네놈 말이 옳구나.”
어찌나 웃어젖혔는지 리롄제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슥.
검지로 눈물을 닦아낸다.
“암. 네놈들이 잡아버리면 안 되고말고.”
그러더니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무기를 향해서다.
허공에 떠 있는 그것은 여전히 태천이를 보고 있다.
다른 인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
이내 이무기가 리롄제를 바라봤다.
리롄제가 온몸에서 마나를 발산했기 때문이다.
호탕하게 웃던 노인은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의 이무기를 사냥하려는 사냥꾼.
헌터만이 있었다.
“이놈. 감히 어딜 보고 있는 게냐.”
[어린나무가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느꼈습니다.] [눈앞의 인간에게 경탄을 보냅니다.]새싹이가 마나를 느낀 것처럼 나도 느꼈다.
다만, 새싹이처럼 놀라거나 경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리롄제의 마나가 내 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마치 멘테의 바깥으로 나온 것만 같다.
태천의 왼손에는 여전히 멘테가 들려 있었는데도.
즉, 리롄제의 마나가 멘테의 방어를 뚫었다는 뜻이다.
스미르노프는 뚫지 못했었는데….
물론, 놈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
이무기가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도망… 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리롄제의 공격이 닿지 않을 곳까지 올라가려는 거다.
안전한 곳에서 자신만 공격할 수 있도록.
“벗어날 수 있을 성-”
“잠깐만요!”
밀러가 무릎을 살짝 굽히는 리롄제는 말렸다.
점프하려던 그는 밀러를 돌아봤다.
“내가 이무기의 공격을 받아낼게요.”
“으음?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아.”
“그래도 괜찮죠, 리롄제?”
“그럼, 그럼. 되고말고. 흥에 겨워 깜빡했군.”
리롄제는 무릎을 폈다.
동시에 몸이 다시 편해졌다.
이어 그는 밀러에게 맨 앞의 자리를 내줬다.
평범하게 이무기를 사냥하러 온 상황이라면, 리롄제는 밀러의 말을 듣지 않았을 거다.
S급 헌터 전원이 울릉도 게이트에 들어온 건 그들이 힘을 합쳐 이무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그 시작을 위해, 밀러가 마법 주문을 외웠다.
다른 세 명도 각자 준비를 시작했다.
“…오라버니, 왜 그랬어요?”
도희가 작게 속삭였다.
날 보는 도희의 눈썹은 처져 있다.
아까 내가 한 행동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였어도 거절했어도, 태천인 욕을 먹었을 거야.”
“어, 그랬어? 왜?”
“…알아요. 그러니까.”
도희와 나는 태천이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정말로 모를 줄이야.
“최대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잘 넘겼어야-”
“에이. 억울하잖아.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네?”
“어차피 받을 욕이면, 그냥 염장 지르고 먹는 게 낫지. 적어도 억울하진 않을 테니까.”
“…….”
[어린나무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관리인에게 돌멩이를 전송하고 싶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의 동생도 그러고 싶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하하.
아마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