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12
제213화
무기는 난간에서 내게로 날아와 감겼다.
시원한 감촉이 몸을 휘감는다.
꼭 여름용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 여름은 정말 에어컨이 필요 없겠는걸.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유재이와 홍수정을 데려다주고 금방 올라올 줄 알았다.
서지혁과 대화를 다 끝낼 때까지 올라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기는 피식 웃는다.
「난리가 났거든.」
“난리?”
「그래. 둘 다 씻기는커녕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냥 잠들려고 해서 말이야.」
“아, 둘 다 해롱거렸으니….”
「씻겨준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오느라 좀 늦었다.」
“…….”
「왜 그러지?」
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당황하는지 모르겠는 눈치다.
반면, 당황한 이유를 아는 태천이와 도희는 각각 히죽 웃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새싹이는,
이상한 착각을 했다.
갑자기 음흉함이 왜 나오는 걸까.
내가 뭘 어쨌다고.
나는 그냥 상상을 좀 했을 뿐이다.
A+급 몬스터인 무기가 술 취해서 해롱해롱하는 두 여자를 보살피는 모습을.
그 탓에 우리 무기가 참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어린나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관리인을 바라봅니다.]의심하지 말아 주라.
정말이니까.
[어린나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관리인을 바라봅니다.]정말, 일걸…?
아마도.
음, 음.
「그래도 얘기는 대충 들었다.」
“들었다고?”
「올라오는데 들리더군. 폭식이라는 놈이 관리인을 노린다지?」
“맞아.”
「불쌍한 놈이로군. 동정심밖에 들지 않을 정도야.」
“동정?”
「그렇잖나. 관리인.」
“뭐가?”
「관리인 동생, 문지기.」
“아.”
무기는 날 부른 게 아니었다.
도희와 태천이까지 합쳐 우릴 부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나.」
자기 자신까지 불렀다.
「무지하면 용감한 법이니.」
무기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폭식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새끼손톱만큼도 하지 않은 듯하다.
하긴, 나도 무기와 같았다.
우리 넷이 함께하면 질 것 같지 않았으니까.
상대하는 게 설령 S급 헌터라고 할지라도.
[어린나무는 토라집니다.]갑자기?
[우리 넷.] [그 말을 ‘우리 다섯’으로 정정하길 요구합니다.] [어린나무는 자신도 있다고 전합니다.]앗, 그렇지….
새싹이 네 말이 맞아.
미안, 미안.
“새싹이가 자기도 있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셋은 화면 속의 조금 더 자란 어린나무 상태인 새싹이를 바라봤다.
이어 그들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새싹이도 있었지.”
톡, 톡톡.
태천이 살살 화면을 두드렸다.
화면 속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살짝 떨어댔다.
다행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우리가 먼저 쳐요.”
“응? 아. 폭식 말하는 거구나.”
“네. 아까 서지혁이 폭식은 거미처럼 준비해놓고 기다릴 거라고 했잖아요.”
“응. 그랬어.”
“우리가 굳이 그 준비가 끝날 기다려줄 필요는 없죠.”
옳은 말이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닌데.
도희 말마따나 기다려줄 필요는 없다.
정보도 받았겠다, 먼저 치는 게 맞다.
태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재임이한테 부탁해볼게. 유럽에 있다고 했으니….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야.”
“아마도요.”
“협회…는 알고 있댔지.”
“응. 애초에 최희석이 가르쳐준 정보니까.”
“좋아. 그럼 자고 일어나서 시작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태천이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무기는 녀석이 그럴 수 있도록 살짝 몸을 늘어뜨려 공간을 내주었다.
이어 태천이는 도희의 어깨에도 팔을 둘렀다.
오랜만인걸.
“내려가서 술이나 더 마실까?”
“네? 더 마시자고요?”
“더, 라고 말할 만큼 많이 마시지도 않았잖아?”
“너야 그렇겠지. 곧 해 뜬다.”
“곧이지. 아직 뜬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다만….”
“자, 자. 또 마시러 가볼, 응?”
태천이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어 도희를 돌아봤다.
그 순간,
“……!”
도희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동그랗게 모이더니 허공으로 옮겨졌다.
허공에는 곧 아는 얼굴이 떠올랐다.
도희가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정수연…?”
정수연.
이제는 수녀로서 정 세실리아라고 불리는 그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옆에는 대왕 개미들이 포위하고 있었고, 대왕 개미들 뒤로는 검은 로브를 두른 자가 서 있다.
가슴께엔 개미 모양 브로치가 달렸다.
그래, 그래.
답지 않게 잠잠하다 싶더라.
“크라우드….”
아무튼, 남 편한 꼴을 못 보지.
썩을 놈들.
***
개미는 눈앞의 수녀를 노려봤다.
정 세실리아는 겁에 질린 얼굴로 주변의 대왕 개미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갉, 갉갉!
개미들은 그녀를 먹어치우겠다고 외치듯 연신 주둥이를 벌렸다 닫았다.
하지만….
“제길. 하얀 성녀…. 설마 대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개미들의 집게 모양 주둥이는 정 세실리아에게 닿지 못했다.
백도희의 실드 마법이 그녀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미들이 아무리 집게 주둥이로 공격해도 실드는 멀쩡했다.
“…….”
개미는 정 세실리아의 가슴께에 있는 십자가를 노려보았다.
십자가에서는 너무나도 순수해서 다가가고 싶지도 않은 마나가 느껴졌다.
백도희의 실드 마법을 구성하는 매개체일 터였다.
“인질로 삼으려고 했는데….”
실드로 보호받고 있다면 인질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매개체가 사용됐으니 백도희는 현재 이 상황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수녀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을 터.
그러므로 개미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전력을 다해 실드를 없애버릴 것인지.
무엇이 그에게 있어 합리적인 선택일지 고민하는 순간.
콰앙…!
개미굴이 요동쳤다.
무너질 것처럼 거센 흔들림이었다.
개미는 자신의 소굴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바로 마법을 썼다.
발밑으로 개미굴 전체로 마나가 흘러 들어갔고, 곧 그의 소굴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했다.
문제는 개미굴 바깥에서부터 생긴 것이었다.
“백도운…!”
도운이 개미굴 앞에 서 있었다.
개미는 아연실색하여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빠득…!
개미는 중얼거리다 말고 이를 악물었다.
도운이 일찍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뒤에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몬스터.
이무기가 도운의 뒤에서 구불거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콰앙…!
개미굴이 또다시 요동쳤다.
그 세찬 흔들림은 도운에 의한 것이었다.
도운이 개미굴의 결계를 두드리고 있었던 거다.
“돌멩이…?”
웬 주먹만 한 돌멩이로.
개미는 그 현상을 쉬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로 결계를 두드리는데 개미굴이 요동치는 것일까.
마치 결계가 돌멩이에 산산조각이 나기라도 할 것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개미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도운의 손에 들린 돌멩이는 세계수의 마나가 깃든 돌멩이일 테니까.
콰앙!
흔들림이 더욱 거칠고 세차졌다.
이대로라면 개미굴의 결계는 10분도 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얼마 없는 시간.
그것이 개미의 선택을 강요했다.
도망칠 것인가.
실드를 없앨 것인가.
“저, 저기요….”
“…뭐냐?”
“방금, 백도운이라고 했나요?”
“그런데.”
“그! 그러니까, 지금 도운 오빠가 절 구하러 왔다는 거죠?”
“…그렇다만.”
“……!”
개미의 긍정에 정 세실리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밝은 얼굴이 개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기는군. 벌써 안전해지기라도 한 것 같나?”
“네, 네?”
“놈이 널 구해줄 수 있을 것 같냔 말이다!”
“히익…!”
개미의 얼굴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 분노 때문일까.
개미의 얼굴은 더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개미의 것을 하고 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온몸이 개미와 인간을 반반씩 섞은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말 그대로 개미 인간의 모습이었다.
“괴, 괴물…!”
“기대해라, 수녀! 하얀 성녀의 실드 따위 지금 바로 깨부숴줄 테니!”
개미는 도망치지 않고 실드를 없애버리기로 선택했다.
눈앞에 있는 수녀의 얼굴에 절망을 깃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투둑!
개미는 로브에 달려 있던 황금 브로치를 떼어냈다.
이어 두 손으로 짓뭉개듯 맞잡고는 새카만 마나를 불어넣는다.
두 손에서부터 흘러나온 마나가 바로 황금 브로치에 주입됐다.
브로치 색깔이 개미의 마나처럼 새카맣게 변색됐다.
황금 브로치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매직 아이템이었다.
“심연을 주관하시는 나의 주(主)여!”
“……!”
“당신께서 절망 속에 살아계심을 제가 진실로 믿나이다!”
“잠깐. 그거, 설마…!”
“미천한 제가 위선을 행하는 이의 미소를 진심으로 짓밟기 원하나니….”
“말도 안 돼…!”
“나의 주여! 미천한 종이 이렇게 응답을 기다리나이다.”
“웃기지 마!”
정 세실리아는 소리를 질렀다.
개미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개미를 향해 분노를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분노를 본 개미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왜 그러지?”
“감히…! 지금, 감히-”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군. 기도가 너희의 전매특허인 것도 아닌데.”
“너어…!”
정 세실리아는 개미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이제 포위한 대왕 개미들 따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얀 성녀의 실드 덕분에 안전함이 보장됐기 때문이 아니다.
화가 턱 끝까지 차올랐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새가 없어서였다.
마음 같아선 쌍욕을 뱉어내고 싶을 정도였다.
“후! 후우….”
그녀는 간신히 분노를 억눌러 욕설을 참아냈다.
욕설은 남을 저주하는 말이다.
수녀로서 가장 자제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짜악!
정 세실리아 수녀는 양손으로 제 뺨을 때렸다.
그 모습을 개미는 재미있다는 듯 쳐다봤다.
그녀도 개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괴물’이라며 무서워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뭐?”
“나 정수연이야.”
“……?”
“우리 보육원에서 백도희 그거랑 유일하게 투덕거린 사람이라고, 내가!”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개미는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투덕거렸다고 해봐야 친구끼리 싸운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얀 성녀라 불리는 백도희와 전력을 다해 치고받고 싸운 것은 아닐 테니까.
그녀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개미를 무시했다.
“흥…!”
탁, 탁.
개미굴로 끌려들어 올 때 더러워진 수녀복을 털어낸다.
주름을 빳빳하게 펴고, 두 손으로 흰 베일을 정리한다.
정리한 베일은 마치 머리카락처럼 어깨에 다시 내려앉았다.
이어 정 세실리아 수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온 마음을 다해,
“전능하신 나의 주 하느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그분께.
“눈앞에 절망에 빠진 나약한 이가 있나이다.”
“이, 이년이…!”
“저자를 긍휼(矜恤)히 여겨 주시옵고, 지금껏 누려본 일이 없는 즐거움을 그려볼 작은 용기를 주시옵소서.”
“감히, 나를 위한 기도를 해?”
개미는 정 세실리아를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노려본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백도희의 실드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몇 시간이고 유지될 터였다.
콰앙!
더군다나 지금 개미굴 앞에서 도운이 돌멩이로 결계를 깨부수려 하고 있었다.
개미에게 가만히 있을 여유는 없었다.
“…살아계신 심연의 주님.”
개미가 지금 할 것은 하나.
제 주인의 힘을 빌리기 위한 기도뿐이었다.
“위선자에게 진실한 폭력을 주도하여 주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리하여 괴물과 성직자는 각자의 주인에게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