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3
제234화
“후아암….”
송별회는 대단했다.
시작하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나 슬슬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쯤, 술에 취했던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걸 몇 번이고 반복했더니, 꼬박 하루가 지나있었다.
그들이 열정적이라기보다는 아마 그동안 놀고먹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기회로 삼은 듯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밤낮이 되돌아왔다.
알람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5시 50분….”
딱 알맞은 시간대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고 싶었으니까.
화면을 두드리며 세면실로 들어가 조용히 씻고, 나와서 바로 이성훈을 깨웠다.
녀석은 오랜만에 느끼는 숙취로 힘들어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술에서 깨지 못했는지 세면실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걸어가는 동안 녀석은 한풀이를 했다.
“팀장님.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팀장님도 만만치 않게 마셨잖아요?”
“그 정돈 마신 축에도 못 들지. 더 마실 수 있어.”
“우욱…. 더 마신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꽃이 자라나 있는 새싹이가 보였다.
새싹이를 자라게 한 이후로 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몸이 되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 날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아도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거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알코올 중독자들이 부러워할 몸이다.
곧 이성훈이 세면실에서 씻고 나왔다.
씻고 나온 덕분에 얼굴이 멀끔하게 보였지만, 비틀거리는 걸음은 여전했다.
안 되겠군.
자리에서 일어나 검지를 까딱였다.
“야, 이리 와봐.”
“네? 왜요?”
-라고 물으면서도, 이성훈은 내 앞으로 걸어왔다.
따악!
내 앞에 선 녀석의 이마에 곧바로 딱밤을 때렸다.
검지와 이마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막사에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듣기 참 좋은 소리로군.
“악…!”
이성훈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별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엄살떨기는.
“아프잖아요! 뭐 하는 짓이에요!”
“어허. 고마워하기나 하시지.”
“미쳤어요? 때린 사람한테 고마워하라니. 대체…. 응?”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어 제 몸을 내려다본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목을 꺾기도 한다.
오른손으로 관자놀이 쪽을 짚고는 살살 문지르기도 했다.
“말도 안 돼…. 몸 상태가 좋아졌어요…!”
“이제 인사할 마음이 들어?”
“네, 뭐….”
“그럼 해야지?”
“…고맙습니다.”
“오냐.”
“어떻게 하신 거예요?”
“네 몸의 독소를 정화한 거야.”
“정화…요?”
물론, 내가 직접 정화한 건 아니다.
녀석 몸에 세계수의 마나를 주입했을 뿐이니까.
그 세계수 마나가 알아서 해로운 요소를 정화한 거다.
마족의 에너지도 정화하는데, 숙취쯤을 없애는 건 일도 아니다.
“팀장님.”
“응?”
“영업부 앞에서 아르바이트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기껏 생각한다는 게 그런 거야?”
“무시하지 마요. 모든 영업부 직원들이 꿈에 그리는-.”
“그런 거 안 해도 충분히 벌어.”
“그러니까 제게 가르쳐주세요. 유용하게 쓸게요.”
“아마 필요 없을걸.”
“네?”
“그런 게 있어.”
“……?”
“그보다. 어서 갈 준비나 하셔.”
“갈 준비요? 우리 어디 가요?”
“화산.”
“아, 맞네….”
이성훈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녹지화 사업을 끝내고 리롄제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 떠오른 모양이다.
녀석이 짐을 꾸리는 동안 난 살그머니 무기를 들어 올렸다.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고 목도리처럼 친친 둘렀다.
목걸이 선풍기를 두른 것처럼 금세 시원해졌다.
곧 이성훈이 모든 짐을 꾸리고 짊어졌고, 우린 밖으로 나갔다.
곧 사라질 새벽 어스름이 우릴 반겼다.
“…….”
“…….”
진 씨 남매와 함께.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진호우와 둘둘 말린 이불에 기댄 진지우.
평소와 같은 두 사람이었다.
“좋은 꿈들은 꾸셨나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몰랐어요, 저는.”
“네?”
“오빠가 준비하라고 하더라고요.”
진호우가 제 오빠를 가리켰다.
그녀를 따라 진지우를 바라보자, 그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진지우 씨가요?”
“네. 도운 씨라면 ‘그럴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오빠는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요.”
“헤에….”
사람의 행동을 예상할 정도다.
그저 ‘사람 보는 눈이 좋다’라고 말할 일은 아닌 거 같다.
“…하아품.”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하품이 나왔다.
옆의 이성훈에게까지 퍼져 녀석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 우리를 본 진호우는 피식 웃었다.
“준비는 다 해뒀습니다. 바로 출발할까요?”
“아, 네.”
대답하자 그녀는 손을 뻗어 제 오빠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질질 끌고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두 사람이 그런 해괴한 방식으로 걸은 시간이 얼마나 오래됐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랬으리라.
아마 진호우가 힘으로 진지우를 끌고 다닐 수 있게 됐을 때부터 시작됐을 테지.
불쌍하구만.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동생이 떠오른다고 전합니다.]…솔직하게 말해도 돼?
사실 나도 조금 그래.
“저, 진호우 님.”
“네. 이성훈 씨.”
“뭘 타고 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한 달 전 리롄제는 그에게로 가는 수단을 준비하겠다고 했었다.
일단 풀숲이 무릎 높이까지 자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니 지프 차로 이동한 후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우린 워프 게이트를 타고 갈 겁니다.”
-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렸다.
설마 워프 게이트를 준비해뒀을 줄이야….
덕분에 편하게 가겠는걸.
“어라…?”
그런데 워프 게이트의 외형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아는 하얗기만 한 밋밋한 디자인이 아니다.
바닥에는 검고 하얗게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고, 네 기둥은 동양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중국 워프 게이트는 원래 이렇게 멋지게 만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워프 게이트의 외형이 색다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용의 형태로 조각된 기둥들 덕분이다.
이 물건은 중국 당국의 것이 아니었다.
리롄제 개인의 것이다.
워프 게이트는 제작하는데 비싼 재료가 들기도 하지만, 악용 우려가 있어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우리 백운천도 정부와 협회에서 허락을 맡아 대여하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과연 리롄제 님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성훈이 나와 같은 생각에 다다랐는지 감탄을 흘렸다.
나도 순수하게 인정했다.
중국 당국은 워프 게이트를 내줄 만큼 리롄제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 사막큰방울뱀 때처럼 억지를 부려 어쩔 수 없이 내준 것일 수도 있겠다.
[어린나무는 후자의 경우일 것 같다고 전합니다.]나도 그래.
“팀장님…. 잠깐만요.”
“왜?”
“그러면, 우리 오늘 리롄제 님을 만나 뵙는 거예요?”
“그렇겠지? 저걸 타면 화산까지 순식간이니까.”
“꿀꺽….”
녀석에게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했는지 표정도 좋지 못하다.
하긴, 갑자기 S급 헌터인 리롄제를 만날지도 모르게 됐다.
일의 진행에 따라서는 직접 대면할 수도 있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도 이해는 간다.
곧 우리는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진호우가 워프 게이트 위에 오빠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여러 버튼이 달린 곳으로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본다.
“참. 다른 사람들과 인사 안 하고 헤어져도 괜찮겠습니까? 장첸 소장이 많이 서운해할 것 같은데요.”
“네. 괜찮습니다.”
“그런가요?”
“송별회를 하루 동안 했는데요. 따로 인사까지 할 필요는 없죠.”
그리 말하며 걸어온 곳을 돌아봤다.
인기척이 전혀 없어 고요한 베이스캠프가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을 테니 당연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일할 수 있었다.
“알겠다. 쑥스러운 거죠?”
“아니거든요.”
흠, 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워프 게이트로 걸어갔다.
진호우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 안다는 얼굴을 하기는….
나와 이성훈이 올라서자, 그녀가 기기의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가 자동으로 촬영하는 것처럼 예약을 맞추는 듯했다.
버튼을 누르던 그녀가 빠르게 워프 게이트로 올라왔다.
그녀는 나와 진지우 사이로 끼어들었다.
“도운 님, 좀 비켜 줄래요?”
“네? 저쪽에 서면 될걸….”
“뭐라고요?”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쳐다봤다.
아아….
저 얼굴을 안다.
도희가 저런 눈을 자주 떴었다.
여기에서 한마디라도 더 하면 귀찮아지게 되겠지.
“아뇨, 별말 안 했습니다.”
“흠….”
이내 날 쳐다보던 그녀의 치켜뜬 눈이 내려간다.
눈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눈은 내 목에 둘린 무기를 바라봤다.
몇 초 후 입가에 서글서글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굳이 사이에 끼어든 이유가 무기 때문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발아래에서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흰빛에 눈을 감았다 사그라들 때쯤 다시 눈을 떴다.
“오.”
“우와….”
나와 이성훈은 순식간에 변한 풍경을 보고 감탄을 흘렸다.
우리의 눈에는 높이 2437m의 험준한 바위산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우뚝 솟은 네댓 개의 봉우리들이 보이고, 험준한 산길과 가파른 계단 길도 보였다.
별생각 없이 걸으면 떨어지거나 굴러서 죽기 딱 좋겠는걸.
혹시 진호우가 하늘을 걸을 수 있는 것도 살아남기 위해서 터득한 게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수한 마나를 ‘여럿’ 느꼈다고?
과연….
리롄제와 제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건가.
한국에선 흔하게 느낄 수 없었던 순수한 마나를 여럿이나 보게 될 줄이야.
잇따라 감탄을 하는데,
“오랜만, 이다.”
어눌한 발음의 한국말이 들려왔다.
리우이호였다.
그가 그와 같은 복장을 한 남녀 열댓 명과 함께 서 있었다.
날 마중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새벽 일찍 왔는데도 많이들 깨어 있는걸.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
아니면 그들의 생활 방식이 원래 이런 걸까.
전자라면 미안하고, 후자라면 안타깝다.
그리 중얼거리며 워프 게이트에서 내려갔다.
리우이호도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서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화산에 온 것, 환영한다.”
여전히 어설픈 한국어네.
뭐, 중국어를 아예 못하는 나보다는 나은가.
말로 대답하는 대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
갑자기 리우이호가 눈을 부릅떴다.
뭐야?
얘 무섭게 갑자기 왜 이래?
가만 바라보자, 리우이호는 부릅뜬 눈을 천천히 풀었다.
“놀랐다.”
“……?”
“대단한 기(氣)다. 사과한다.”
“사과?”
“예전에 말했던 것. 방금까지 내가 한 생각. 모두 사과한다.”
예전에 말했던 거라면….
나 같은 게 어떻게 이태천의 친구냐는 말을 뜻하는 거겠지, 아마?
방금까지도 그런 생각으로 날 얕보고 있었을 거고.
아마 리우이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내가 A+급이 된 건 모두 무기 덕분일 것이라고.
하긴,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
무기와 친구가 되어 힘을 얻지 못했으면 새싹이가 어린나무 상태가 되지 못했을 거고 나도 A+급이 못 됐을 테니.
슥….
리우이호는 맞잡은 오른손을 거두고는 뒤편을 가리켰다.
거기엔 험준한 산 위에 있는 것이라곤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건물이 서 있었다.
그 건물을 바라보자,
[어린나무가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느꼈습니다.]새싹이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
리롄제다.
“따라와라. 스승님께서 기다리신다.”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리우이호를 따라갔다.
그때,
“…딸꾹!”
뒤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성훈이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한 채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이 녀석 설마….
[어린나무는 경외가 담긴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합니다.]“…쫄았냐?”
이성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쫄았네, 쫄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