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75
제276화
무기와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날아갔다.
그곳에 폭식이 있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깜깜무소식이었던 놈이 하필 오늘 설쳐대다니.
아니꼬워도 이렇게 아니꼬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도희가 이유를 추측해내서 다행인가.
“까득….”
막대사탕을 살살 깨물며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본다.
화면에는 [세계수 키우기] 대신 한 남자의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비공식 A+급 중 한 명인 폭식(暴食)의 사진이었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걸….”
「뭐가 말인가?」
“이게 그 폭식(暴食)이라는 것 말이야.”
「아아….」
사진 속 남자의 외모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마른 장작처럼 빼빼 말라 있어 폭식은커녕 사과 하나 먹는 것도 고생스러울 것만 같았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땐 최희석이 잘못 보내온 줄 알았을 정도였다.
“이 남자가 폭식이라고요?”
사진을 보자마자 최희석에게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
테이블 한가운데에 한 사진이 떠 있다.
최희석이 보내온 폭식의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고,
“이 남자가 폭식이라고요?”
믿을 수가 없어 바로 물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진 속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폭식이라는 단어와 먼 외모의 소유자였다.
급해서 잘못 보낸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도희와 태천이 그리고 무기를 비롯해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든 이가 눈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홀로그램 영상으로 떠오른 최희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나의 반응이 어떨지 예상했던 것 같다.
– 나도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반응했었지.
“진짜라고요?”
– 100% 확실하네. 알려진 것은 ‘에리크’라는 이름과 그리스인이라는 사실뿐이지만. 생긴 거로 봐서는 30대 중반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허….”
톡톡….
새싹이를 어루만지며 사진을 바라봤다.
다시 봐도 영 별명과 어울리지 않았다.
저걸 어떻게 봐서 폭식이야?
내버려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을 것 같은데.
사인은 아사(餓死)가 될 테고.
– 현재 저놈이 강원도 고성에 나타났네.
“강원도…”
고성은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최북단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북한 영토도 있긴 했지만, 그곳은 어딜 가든 레드 드래곤인 데이모스 모노스의 레어와 맞닿아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감히 그곳을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간 큰 멍청이는 없었다.
– 그곳에서 자네를 찾고 있지.
“왜 이제 와서….”
– 자네를 이기기 위한 준비가 끝난 것이지. 그리고….
“그리고, 뭡니까…?”
“결계를 쳤겠죠. 강원도를 인질로 삼기 위한….”
– …하얀 성녀의 말대로네.
도희의 말에 최희석이 긍정했다.
놈은 나를 먹어 치우기 위해 분명 사전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럼 인질 한두 명 정도로는 내게 통하지 않는 걸 알아냈을 테지.
그래서 선택한 게 ‘도민(道民)들’인 거다.
강원도 전체가 인질이라….
하는 짓거리가 7대 죄악 중 하나라고 불릴 만하네.
– 부탁하네, 도운. 지금 바로 강원도로 가주지 않겠나?
“한 선배는요?”
– 연락이 닿지 않네….
“그 말씀은….”
– 지금으로선 그 친구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야.
“…….”
예상했던 대로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한진환이 가장 친한 사람의 연락도 받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일까.
음욕(淫慾)이라는 녀석과 다시 싸우게 된 것도 아닐 텐데….
…아니.
아니다.
고개를 휘젓는다.
지금 생각하고 걱정할 건 한진환이 아니다.
이 순간, 내가 골라야 할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크라우드를 잡으러 제주도로 가느냐.
폭식을 잡으러 강원도로 가느냐.
물론 내가 고를 선택지는 뻔하다.
놈들이 말했었기 때문이다.
의식이란 것이 진행되면 ‘세계수 관리인이 죽고’, ‘세계수가 시들게 된다’고.
그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었지만, 놈들이 어떤 엿 같은 짓을 하려는 건 확실하다.
또 정말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놈들의 주인인 마족은 전대 세계수와 관리인을 죽인 전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고를 선택지는 당연히 제주도로-
“오라버니는 강원도로 가세요.”
“뭐?”
도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제주도는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오라버니는 강원도로 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크라우드랑 싸우는데 내가 빠질 수 있을 리가-”
“그러니까 가라는 거예요.”
“뭐?”
“모르겠어요?”
“뭐를…?”
“크라우드랑 폭식이랑 동맹을 맺은 거예요.”
“……!”
“크라우드는 오늘 밤 제주도에서 의식을 치러요. 그런 상황에, 폭식이 제주도에서 가장 먼 곳인 강원도에서 일을 벌인다? 이게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같은 날 일을 벌인다는 걸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공교롭다.
도희의 말대로 크라우드와 폭식이 동맹을 맺었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하다.
그 추측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즉.
놈들은 내가 폭식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제주도에서 의식을 치를 속셈인 거다.
이놈들 봐라?
나쁜 놈들끼리 사이좋은 것 보소.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강원도로 가서 폭식을 처리해요.”
“잠깐만.”
태천이가 끼어들었다.
도희가 그를 돌아보자, 태천이는 목을 긁적이며 제안했다.
“그냥 우리 다 같이 강원도로 가서 폭식 먼저 처리하면 안 돼? 어차피 크라우드는 밤에 시작할 것 같은데.”
“그건 안 돼요.”
– 안 되네.
도희와 최희석이 바로 태천이의 제안을 거부했다.
태천이는 시무룩해져선 왜 안 되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마치 사전에 말해두기라도 한 듯 사이좋게 이유를 설명했다.
“폭식은 도운 오라버니를 찾았잖아요.”
– 정확히 말하자면, 오로지 도운만을 요구했지.
“즉. 폭식은 도운 오라버니 외에 다른 누군가가 오면 도민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생각인 거예요.”
– 그 말대로 놈은 다른 이들은 안 된다고 못 박았네. 뇌제도, 천공의 기사도, 하얀 성녀도, 그리고 무기 자네도.
「…….」
“그렇구나….”
태천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무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겁이 많은 놈이로군.」
– 음? 겁이 많다?
「놈이 왜 관리인만 요구했겠나? 다른 누군가가 함께 오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
–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확실히, 폭식은 진환을 상대로는 이렇게 나온 적이 없었지.
이런 적이 없었다?
즉, 한진환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놈이 나와는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거다.
하하.
사람 기분 더럽게 하는 재주가 있는 놈일세?
[세계수 어린나무가 자신도 기분이 나쁘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이 무시당한 건 자신이 무시당한 것과 같다고 전합니다.]새싹이한테도 미안해졌다.
내가 얕보여서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니….
관리인으로서 부끄럽군.
「그런 놈이라면 관리인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무기 씨.”
「왜 그러나, 관리인 동생?」
“방금 말, 확신할 수 있나요? 오라버니 혼자서 충분할 거라는 말.”
「물론이지.」
“어떻게요? 본 적도 없잖아요.”
「겁쟁이인 건 차치해두더라도. 한진환을 이길 자신이 없는 놈이지 않나. 그럼 관리인에겐 상대가 되지 못하지.」
“…….”
도희는 입을 다문다.
그러고는 엄지로 아랫입술을 못살게 굴었다.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저래?
“…오라버니.”
“응.”
“지금 바로 무기 씨와 강원도로 출발하세요.”
“무기랑 같이 가라고?”
“그래야 일찍 도착하죠.”
“하지만 내가 빠지는데 무기까지 빠지면-”
“안 그럴 거예요.”
“어?”
「관리인. 난 도로 돌아올 거다.」
“…아!”
폭식은 나만을 요구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누구도 강원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무기는 날 데려다준 다음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인 거다.
무기의 속도라면 능히 그럴 수 있었다.
“…도희야.”
“괜찮아요,”
도희를 부르자 그녀는 바로 말했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대답한 듯했다.
이번 계획에 나는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빠져 버리면 계획을 크게 수정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도 도희는 싱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린 백운천이니까.”
“그럼, 그럼.”
그 말에 태천이 긍정했다.
태천이뿐만이 아니다.
한재임과 최희주를 비롯한 녀석들도 자신만만한 얼굴을 해 보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날 보는 녀석들의 얼굴을 마주 보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다니.
오히려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
내가 변한 걸까.
녀석들이 변한 걸까.
아니, 나와 녀석들 전부 변한 것일지도….
나와 녀석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움직인 것은 거의 동시다.
녀석들이 빨리 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문고리를 붙잡았다.
달칵….
어라?
어쩐지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
“협의한 대로 폭식이 움직였다.”
원이 말했다.
원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해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혹시, 방금 내게 뭐라고 했나?”
“협의한 대로 폭식이 움직였다고 말했다만. 자네 설마 졸았나?”
“끌끌, 아무리 나라도 오늘 같은 날 꾸벅꾸벅 졸 리가 없지. 구경하고 있었네.”
“무엇을?”
“우리의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말이네.”
“아아….”
“대단하군. 늑대가 한진환을 상대로 저 정도로 잘 싸울 줄은 몰랐거늘.”
“무얼…. 풍뎅이가 함께 해준 덕분이지.”
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골은 보았다.
원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가 사라졌음을.
부하들은 손쉽게 갈아치우는 주제에 제자는 아끼는 건가.
역시 우스운 친구란 말이야.
해골은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원에게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백도운은?”
“방금 이무기를 타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호오? 그거 놀랍군. 인질 따위에 움직일 놈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협회 퀘스트 같은 걸 하는 놈이지 않나. 정부와 협회에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겠지.”
“아, 아, 아, 아. 그렇지. 그런 멍청한 놈이었었지….”
새삼 기억났다는 듯 해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골이 그럴 때 원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주름진 손이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러자마자 원을 그린 허공에 무기를 탄 도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S등급 스킬 ‘천리안(千里眼)’.
시전자를 중심으로 400km 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원이 천리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과연 이무기. 엄청난 속도로군.”
“돼지 목에 진주가 따로 없구만. 전대 세계수…. 저따위 놈에게 이무기를 주다니….”
“내게 저것이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을진저….”
“암. 분명히 그랬겠지.”
“…….”
해골이 원을 긍정했다.
그러나 긍정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원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허공에 떠오른 영상을 보지 않고 해골만을 응시했다.
“으응? 왜 그러나?”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런가?”
해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허공의 영상을 바라봤다.
도운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강원도 초입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무기와 대화를 나누더니 혼자 강원도로 들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도운을 보던 무기는 몸을 돌려 날아갔다.
“음? 백도운 혼자 들어가는데?”
“그게 폭식의 계획이었으니 당연하지.”
“아니, 그걸 뜻하는 게 아니네.”
“……?”
“혼자 남은 이무기가 왜 돌아가느냔 말이야.”
“으응?”
원이 오른손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허공에 도운이 아니라 무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기는 자신이 날아왔던 하늘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출발했던 백운천의 빌딩을 향하는 것이 분명했다.
“백도운 혼자 오라고 했다 해도, 되돌아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이기든 지든 주인의 싸움을 지켜보고 싶을 터.”
“내 말이 그 말이네. 그런데 어찌하여 이무기가 돌아가는 거지?”
“…….”
해골의 질문에 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빠르게 하늘을 날아가는 무기를 바라볼 뿐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질문의 답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걸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