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98
제299화
퇴원한 후 가장 먼저 백운천의 훈련실로 향했다.
내가 깨어났다는 걸 유재이에게 전해 들은 도희가 그곳으로 오라고 해서다.
이유는 크라우드를 배신한 나비 때문이었는데,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훈련실로 들어간 후 펼쳐진 광경을 보고 중얼거리듯 물었다.
“꼴이 그게 뭐냐?”
전해 들은 대로, 나비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땐 그녀가 하얀 침낭에 들어간 채로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얼굴만 내놓은 그녀는 침낭이 아니라 번데기에 들어가 있는 거였다.
나비는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가 먼저 아니냐? 스마트폰도 좀 내려놓고.”
“어, 그래. 처음 보네. 반가워.”
톡, 톡톡. 톡톡 톡톡. 톡톡톡!
“…….”
“하하…. 도운이랑은 그런 식으로 대화하지 않는 게 좋을걸.”
“그래…. 나도 방금 느꼈어.”
나비가 박건영의 말에 힘없이 대답했다.
훈련실엔 도희와 나비 말고도 박건영과 수아가 함께 있었다.
저 두 사람은 왜 같이 있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배신을 설득한 게 저 둘이었던가?
“금방 왔네요?”
“바로 와달라며.”
도희가 다가왔다.
대답하자 내 뒤를 확인한다.
“…재이 언니는요?”
“수정 공방에. 대장간보다 거기가 낫겠다 싶대.”
“공방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닐 텐데….”
“자기 가게가 아니니 신경이 덜 쓰일 거라나 뭐라나.”
“그렇군요.”
“그보다.”
턱짓으로 나비를 가리켰다.
그녀의 얼굴을 어딘가 핼쑥했다.
“어떻게 된 거야?”
“건영 오빠가 심장을 적출했대요.”
“뭐?”
설득이 말로 한 게 아니라 폭력으로 한 거였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박건영은 오른손을 마구 휘둘렀다.
“아냐, 아냐, 아냐.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아는데. 절대 그럴 생각으로 뽑은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내가 빼달라고 했어.”
“얼씨구?”
본인 스스로 자기 심장을 빼달라고 부탁했다고?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말이었다.
그걸 보고는 나비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대충 설명해주자면, 내 심장이 ‘헤미스파이리움(hēmisphaerium)’의 잠금장치를 푸는 열쇠였더라고. 갑자기 마기가 끌어 올라서 온몸이 잠식당할 뻔했지.”
“헤미스파이…?”
“리움. 왜 있잖아. 사람을 마족님의 권속으로 바꾸는 기계.”
“아, 그거. 이름도 있었어?”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무슨 뜻이냐면… 아니! 지금 중요한 게 이름 뜻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
나비가 눈동자를 굴렸다.
박건영과 수아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아는 손을 뻗어 하얀 번데기를 토닥이기까지 했다.
얼씨구.
본지 뭐 얼마나 됐다고 저렇게 행동해?
엄청 친해졌네.
[어린나무는 관리인보다도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전합니다.] [세계수 관리인의 동료가 관리인보다 마족의 권속과 사이가 더 좋아 보이다니.]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관리인을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대체 어떤 과거를 살아온 것인지 묻고 싶지만 어른스럽게 참겠다고 전합니다.]어디가 어른스러운 건데.
이미 물어본 거나 마찬가지구만.
그러고 보니, 서인철이 변명하듯 말했었다.
죽였던 검과 닭이 되살아나더니 검은 에너지 덩어리가 돼서 발사장치에 부딪혔다고.
착각이겠거니 했는데.
정말로 되살아난 거였나.
“해골….”
감에 불과하지만, 왠지 그놈이 한 짓일 것 같다.
나비의 동그랗게 뜬 눈을 보니 더더욱.
“그분을 알아?”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내가 할 말인 것 같은데.”
“뭐?”
“박건영…이 형이 심장을 적출했다면서.”
“그래서 이런 신세잖아.”
그녀는 얼굴을 아래로 내렸다.
흰 번데기를 가리킨 것이다.
저 상태가 돼서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나비는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운이 겹치고 겹쳤어. 원래는 나처럼 생긴 시체를 만들어내려고 번데기 마법을 썼던 건데…. 그 덕분에 심장을 뽑아낸 이후 이곳으로 들어와 버틸 수 있었지.”
“그게 가능해?”
“원래 번데기는 몸이 녹은 후 액체 단백질을 바탕으로 재조립되는 거니까.”
“그럼 나 필요 없는 거 아니냐? 나 없어도 재조립되겠네.”
“무리야.”
“무리라고?”
“번데기 상태에서도 기본적인 생명 유지 기관들은 유지되거든. 심장도 마찬가지고.”
“즉. 지금의 너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거지.”
“…….”
그제야 새싹이 말이 이해가 갔다.
혐오스러운 기운이 약해지고 있다더니.
천천히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구만.
“살려줘.”
“살려 달라고 해도 말이지….”
긁적긁적….
당황스러워서 머리만 긁어댔다.
심장이 적출당한 녀석을 어떻게 살린단 말인가?
아무리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해도 심장 자체가 없으면 무리다.
같은 이유로 엘릭서를 먹인다고 해도 무리겠지.
메스트가 엘릭서만으로도 괜찮았던 건 심장이 있어서였다.
내가 주저하는 이유를 알아차린 걸까?
“나비 씨는 운이 좋다고 했잖아.”
박건영이 씩 웃으며 말하더니 마법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어 주머니에서 웬 얼음 덩어리를 꺼냈는데,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강력한 혐오스러운 기운에 진저리를 칩니다.]그 속에 탁하디탁한 것이 박동하며 담겨 있었다.
박동하는 그것은 나비에게서 뽑아낸 심장이 분명했다.
그게 얼음에 뒤덮여 있다는 건….
“한재임?”
“응. 웬 검은 덩어리가 날아오기에 폭식이 공격하는 건 줄 알고 막았었대.”
“그게 나비 씨 심장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고.”
“헤에….”
한재임, 이놈 봐라?
서인철 일행이 막지 못한 걸 혼자서 막았다는 건데….
설지초 먹인 값을 하는구만.
처음으로 잘 먹였다는 생각이 드는걸.
도희가 물었다.
“살릴 수 있겠어요?”
“응. 가능할 것 같아.”
나비 본인이 말한 것처럼 운이 겹치고 겹친 덕분이다.
뽑아냈는데도 여전히 박동하는 심장.
몸을 재조립하는 효과가 있는 번데기 마법.
마족 에너지를 정화할 수 있는 세계수 관리인인 나.
셋 중에 하나만 없었더라도 나비는 살아날 방법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괜찮겠어?”
“네?”
“크라우드잖아. 쟤.”
“…….”
도희는 내 말에 함축된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크라우드의 간부였던 나비는 멀쩡한 녀석이 아니다.
그러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나도 메스트에게 엘릭서를 먹이긴 했지만, 그건 그녀의 행동을 보고 결정한 일이었다.
에리크를 진정으로 배신하려고 했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후회했다.
또 자신이 죽음으로서 복수하려는 마음가짐도 마음에 들었었고.
“뭐…. 거래했으니까요.”
“거래?”
“네. 크라우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거든요. 저대로 죽어버리면 우린 거래를 지키지 못한 게 돼요.”
“그건 그런데….”
무슨 문제인가 싶다.
거래 대상이 죽어버리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거래를 지키고자 대상을 살려주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
“…….”
하긴….
그러니까 도희인 거지.
다른 녀석들이 나이도 어린데 믿고 따르는 거고.
이럴 때 보면 정말 내 동생이 맞나 싶다니까.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알았어.”
새싹이가 보낸 메시지를 일축하며 대답했다.
도희는 고맙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물론, 가장 크게 미소를 지은 건 나비였다.
아마 내가 치료하길 거부하는 것도 생각했을 테지.
“…내가 살다 살다 크라우드를 치료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설마 세계수 관리인에게 목숨을 구제받을 줄 몰랐어.”
“…….”
“…….”
곧 나와 나비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고 있는 거다.
목숨을 구한 이후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상황이 상황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협상 테이블 위에 목숨을 구한 이후의 일은 꺼내지도 않았을 테지.
물론, 유리한 건 우리고 불리한 건 나비였다.
장소가 장소였으니까.
“…시작한다.”
“그래, 부탁한다….”
나비의 부탁을 들으며 왼손을 내밀어 세계수의 뿌리를 썼다.
먼저 박건영의 손에 들린 얼음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얼음 속에 담긴 심장이 도망치고 싶은 듯 더욱 세차게 뛰었다.
세계수의 마나를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뿜어내는 마족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흡수할 때마다 새카맣던 심장의 색깔이 천천히 변했다.
서서히 붉은 기가 감돌았다.
붉은 피가 흐르는 심장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심장의 박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경고를 보냅니다.] [혐오스러운 기운이 사라지며 심장이 힘을 잃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앗….
그렇구나.
지금까지 심장이 박동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마족 에너지 때문이었다.
그게 정화되어 사라져버렸으니 심장이 멈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오라버니, 그거 괜찮은 거예요…?”
“응?”
“착각인지, 어쩐지 심장 박동이-”
“제대로 본 거 맞아. 더뎌지고 있어.”
“오라버니…?”
“이렇게 가다간 죽지 않을까?”
“…네?”
도희는 당황스러운 듯 되물었다.
도희뿐만이 아니다.
박건영과 수아도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얼굴을 했다.
물론, 그중 가장 심각한 얼굴을 지은 건 심장의 주인인 나비였다.
그녀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멀거니 응시했다.
와, 얼굴 장난 아닌데?
***
원탁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딱 두 자리만 주인이 앉아 있다.
해골이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원.”
“음?”
“방금 나비가 죽었다.”
“죽었다고?”
“그래. 백도운에게 그분의 힘을 모두 흡수당했다.”
“저런, 저런….”
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하의 부고를 들었으나 목소리엔 슬픔이나 애처로움이 담기지 않았다.
조롱 섞인 비웃음만이 담겼다.
“우릴 배신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 했는데… 결국 죽어버린 것인가?”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지 않나.”
“끌끌…. 이것으로 우리의 애초 목적을 달성했군.”
“쓸모없는 톱니바퀴들 따위 애초부터 버렸어야 했다, 원.”
“그래. 동의한다.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애썼던 내가 너무 바보였어.”
“자넨 정이 너무 많은 게 문제야. 옛날 버릇 때문이겠지만….”
“그만. 옛날 일은-”
“아, 아. 그래. 미안하네. 실언을 해버렸군.”
“…….”
원은 입을 꾹 닫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해골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해골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어쩐지 패자를 바라보는 승자의 미소 같아 보였다.
***
[어린나무는 혐오스러운 기운을 모두 정화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걸 읽은 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얼굴을 한 나비에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지금 내 심장이 멈춰 가는데!”
“다시 뛰게 하면 되지, 뭘.”
“야! 그게 쉬웠으면 내가 이 꼴로 너한테 부탁을 하지도…-”
나비가 말끝을 흐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다시 박동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아까처럼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다른 점이라곤 절망 대신 희망이 담겨 있다는 점일까.
“쉬운데?”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떡하긴…. 그냥 내 마나를 주입한 것뿐인데?”
“뭐? 웃기지 마!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잖아.”
“물론, 내 마나가 세계수의 마나라서 가능한 거긴 하지.”
“아….”
“괜히 네 윗대가리들이 날 죽이려고 애쓰는 거겠냐?”
“…….”
나비는 입을 다물었다.
심장도 되찾았겠다, 재생성만 하면 될 텐데 어쩐지 그녀의 얼굴에서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근심과 걱정을 느끼는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도망갈 수 없을지도….] [어린나무는 나비가 그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고 설명합니다.]아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걸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
“도희 말은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뭐?”
“그래야 앞으로의 네 삶이 편해질 테니까.”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날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도희를 바라보았다.
“…….”
이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알아차린 거다.
나비를 바라보는 도희의 두 눈이 광채로 맑게 빛나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