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97
제298화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과 메시지 창이 보였다.
예전에도 입원했던 그 VIP 병실이 분명했다.
별로 익숙해지고 싶진 않았는데….
“이것들이 돈이 썩어 나나. 왜 자꾸 VIP 병실을 빌리는 거지?”
중얼거리면서 손을 요리조리 움직여 스마트폰을 찾는다.
스마트폰은 역시 베개 옆에 놓여 있었다.
앞선 두 번도 이 자리에 놓여 있어 혹시나 했는데….
바로 [세계수 키우기]가 실행했다.
톡톡 톡톡톡….
“…당신도 참 대단해.”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를 파묻듯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서는 나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두 번째 한재임이 있을 땐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다.
하긴, 한재임이 그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면 소름이 돋아나는 피부병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지.
“유재이…?”
옆을 돌아보니, 그녀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깨자마자 하는 게 스마트폰 게임이야?”
“세 번 입원하고 볼 일인걸.”
“뭐?”
“이태천, 한재임…에 이어, 드디어 일어났을 때 네 얼굴을 보게 됐잖아.”
“…….”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날 향한 애정이 살짝 식은 듯한 얼굴이다.
큰일 났는걸.
저런 얼굴도 귀여워 보이네.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물었다.
“나 얼마나 잤어?”
“이틀.”
“오. 지금까지 중 가장 금방 깼네.”
처음 입원했을 때가 사흘이었고.
바로 전에 입원했을 때가 일주일 가까이였다.
이틀이면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거나 마찬가지다.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딜 가고 네가 여기 있어?”
“우선, 당신 동생이랑 친구들은 바빠서 못 왔어.”
“바쁘다고?”
“백운천이 크라우드 간부와 전면전을 한데다가 에이스인 당신은 비공식 A+급이란 놈이랑 1대1로 싸웠잖아. 그걸 수습하는데 하루 이틀로 되겠어?”
“아. 하긴….”
“그리고 내가 있는 이유는… 이걸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톡톡 톡톡톡.
내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그녀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화면에는 익숙하다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얼굴이 떠 있었다.
“나잖아?”
하늘을 날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대왕 독수리를 타고 있는 걸 보니, 이틀 전 모습이 분명했다.
이걸 누가 촬영했대?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새싹이가 느꼈던 ‘날 관찰하는 시선’ 중 하난가?
톡.
화면을 누르자, 영상 속의 내가 아르카를 꺼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아르카는 모양이 변해 이름 그대로 거대한 칼자루가 되었다.
이어 마나 칼날을 뿜어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푸른 칼날을.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어?”
“뭔 짓을 했기에 마나 칼날이 수백 미터짜리가 튀어나오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물어?”
“……?”
“……?”
뭐지, 이 대화가 안 되는 느낌은?
아르카를 개조한 건 유재이다.
그녀가 개조한 대로 사용했을 뿐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대체 뭔 짓을 한 거야?”라는 질문을 듣게 될 줄이야….
나야말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개조한 거야?’하고 묻고 싶었는데 말이지.
“네가 이렇게 쓰라고 개조한 거 아니야?”
“…마나 칼날의 효율을 높이려고 했던 건 맞아.”
“그럼-”
“그래도 몇백 미터짜리 칼날을 튀어나오게 할 생각은 없었어.”
“아, 그래?”
“내가 생각한 건 7m 정도였는데….”
보통 7m짜리 칼날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될 텐데.
수백 미터짜리를 사용해서 그런가?
그 정도면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분석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던데. 이거 만드는 데 마나를 2000만 정도 소모했을 거라고.”
“어, 그랬던 것 같긴 하네.”
“같긴 하다니…. 몰랐어?”
“몰랐는데. 들어가는 대로 다 넣었던 것뿐이라서.”
“…하!”
그녀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렸다.
스마트폰을 도로 가져가며 말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뻐 죽을 말이네.”
“응?”
“어제오늘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어. 당신이 우리나라 최초의 S급 헌터가 되는 거 아니냐고.”
“내가?”
S급 헌터라….
새싹이와 함께라면 못할 것도 없긴 하지.
그렇지, 새싹아?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관리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아무튼. 이게 내가 여기 있던 이유야. 대장간이 소란스러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거든.”
“있을 수가 없었다니?”
“그거 만든 게 나잖아. 자기들한테도 아르카 같은 무기 만들어 달라고 난리야. 어차피 재료 없어서 만들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아아….”
“심지어 미국에서도 주문서를 보내왔어. 사용자는 알레딩 밀러래.”
“오? 밀러가?”
“필요해서 아니라 도전하고 싶어서겠지만.”
도전이라….
하긴.
마법사라고 해도 마나 2000만은 엄청난 수치다.
우리 길드 최고의 마법사 영지도 그 정도 마나는 갖고 있지 않다.
마나만 많으면 S등급에 해당하는 위력의 검을 휘두를 수 있으니….
아르카를 양산할 수 있게 되는 순간 헌터 세계의 판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배수현도 그런 생각 때문에 눈을 빛내고 아르카를 바라봤었고.
아.
도희가 여기 없는 이유도 이거겠구나.
아르카 문제에 대해 배수현이랑 논의하고 있을….
어라?
“…잠깐만. 그럼 나 걱정돼서 온 건 아닌 거야?”
“이것도 봐.”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을 건넸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하다.
너무하네, 정말….
입술을 살짝 비틀며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화면엔 우리 백운천의 건물이 떠올라 있었다.
영상을 재생하자 바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안녕하십니까, ‘견차tv’ 구독자 여러분. 저는 지금 국내 최초로 엘릭서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수정 공방에 찾아왔습니다. 네? 이건 백운천 건물 아니냐고요? 아, 아니. 구독자님 아직도 모르셨어요? 수정 공방이 있는 곳이 백운천이잖아요! 자. 이제 제가 저길 한 번 들어가, 앗! 미친년, 최희주다!
– 누구보고 미친년이래! 이 쓰레기 새끼야!
퍼억!
백운천 건물에서 최희주가 튀어나오더니 카메라를 후려쳤다.
이후 영상은 카메라 렌즈가 깨져버린 탓인지 온통 새카맸다.
대신 목소리는 들려왔는데, 최희주가 욕지거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 제발 그만 좀 찾아와, 쓰레기 새끼야. 너희 때문에 다들 괴로워하잖아!
– 쿨럭, 쿨럭…! 지금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 네가 먼저 우리 권리를 무시했잖아, 이 개새끼야!
퍼억,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희주가 견차라는 놈을 마구 패는 것이 분명했다.
이 멍청이가….
촬영하고 있는데 패면 어떡해?
하여간 옛날부터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로는 태천이 못지않다니까.
“수정이가 이거 때문에 골치야.”
“그래 보이네.”
“어떡하냐고 묻던데.”
“응?”
“자기가 만들었다고 인터뷰해야 하냐더라. 예전에 중급 포션도 그렇게 했었다며. 그, 맥X맛 나는 거.”
“아….”
엘프들이 콜라를 마시고 따라 만들었던 포션이다.
엘프들이 만들었다고 할 수가 없어서 홍수정에게 부탁했었다.
음….
이번에도 그래 주면 고맙긴 할 텐데.
속아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부탁은 해 보자.
“그렇게 해달라고 해줘.”
“대신, 조건이 있대.”
“조건?”
“엘릭서 만든 사람 만나게 해달래. 가르침을 받고 싶나 봐.”
“아….”
“역시 안 돼?”
“안 된다기보다는…. 불가능한 문제라서.”
“불가능하다구?”
“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
“…어?”
유재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 듯하다.
그럴 만도 하지.
뜬금없이 그리 말하면 나 같아도 뭔 소리 하나 싶을 거다.
“내게 엘릭서를 만들어 준 건 사람이 아니라 엘프야.”
“엘…, 어? 뭐라고?”
“엘프라고.”
“…….”
“안 들려? 엘, 프, 라니까?”
“잠깐. 들었어. 들었는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아마 하려던 말은 ‘정리가 안 돼서 그래.’이지 않을까 싶다.
톡톡 톡톡톡.
화면을 두드리는 동안 그녀가 천천히 정리를 시작했다.
“그래…. 당신은 세계수를 발견했으니까….”
“발견했다기보단 키워냈지.”
“키워냈다고? 발견한 게 아니야?”
“어라. 내가 말 안 했었나?”
“안 했어.”
“이런. 왜 그랬대?”
“…….”
“나 세계수 관리인이야.”
[어린나무가 기뻐합니다.] [드디어 관리인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을 밝혔다고 즐거워합니다.]“당신이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응.”
“사실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신이 그런 거라면 엘프와 아는 사이인 것도 이상하지는 않네….”
유재이는 정리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본 결과 빈약한 정리긴 했지만, 스스로 납득했다면 된 거겠지.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수정이한테 말해도 돼?”
“돼. 슬슬 말할 때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엘프라…. 수정이가 만나고 싶다고 팔짝 뛸 것 같은걸.”
“팔짝 뛰더라도 만날 수는 없겠지만.”
“왜? 한 번쯤 만나게 해주지.”
“이 세상 사람, 아니. 이 세상 엘프가 아니라니까?”
“……?”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 세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엘프들 다른 차원에 있어. 나만 넘나들 수 있는 성역이란 곳인데-”
“…좋아. 거기까지.”
“응?”
“그만 말해도 돼. 이제 이해 안 할 거니까.”
“어, 그래….”
어찌 보면 올바른 판단일지도.
이해하기 버거운 걸 이해하려고 해봤자 고생만 하는 법이니.
톡톡 톡톡톡….
화면을 두드리며 유재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어색했는지 딴소리를 했다.
“…아, 참. 혹시 깨어나면 도희 씨가 연락해달라고 했었어.”
“도희가?”
“응. 아마 당신이 직접 수습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아아….”
의식을 잃기 전 도희에게 권리를 일임했었지만, 구두로 얘기한 것에 불과했다.
본인이 아니라면서 승인하지 못한 일들도 여럿 있겠지.
메스트나 에리크에 관련된 일들이 그럴 것들이리라.
상황도 대충 파악했겠다.
도희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세계수 키우기]를 내리고자 홈버튼을 누르려는데,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온 사람은 한진환이었다.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내가 일어나있던 걸 아는 듯한 태도다.
“안녕.”
“안녕…합니까?”
“못할 건 뭔데?”
“오기로 해놓고 왜 안 왔어요? 연락은 왜 안 됐고.”
“그건 진짜 미안하다. 나도 크라우드가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
“크라우드? 놈들이 한 선배 집을 찾아갔다고요?”
“그렇다니까. 갑자기 습격해오는 걸 방어하다가 스마트폰이 다 타버렸지 뭐냐.”
“과연….”
연락이 안 된 건 그래서였나.
합당한 이유가 있기는 했네.
우리나라 랭킹 1위가 무책임한 인간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인걸.
한진환은 병상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맞은편의 유재이와는 서로 “안녕하세요.”라며 아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나와 싸운 놈들은 각각 가슴에 늑대와 풍뎅이를 달았었어.”
“늑대, 와 풍뎅이…?”
“처음 들어보냐?”
“네.”
“…강하더라.”
한진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를 얼마 동안이나 붙잡고 있던 놈들이다.
당연히 강할 테지.
그리 생각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그는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놈들 목적은 내가 널 도우러 가지 못하게 막는 거였어.”
“그랬겠죠?”
“당연히 난 놈들 목적 개무시하고 제주도로 가려고 했지.”
“그랬겠….”
“…….”
그는 그러나 제주도에 오지 못했다.
뒤늦게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광합성 모드의 부작용으로 쓰러질 때까지 그는 도착하지 못했었다.
즉.
놈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거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 한진환이.
“…내가 뭘 말하려는 건지 알겠냐?”
“놈들이 A+급 수준이다…?”
“더 심각한 건.”
“더?”
“그 두 놈이 따르는 ‘놈들’이 있었다는 거.”
놈들.
그중 하나는 알 것 같다.
개미 인간에 의해서 마주쳤던 해골.
새싹이가 그놈을 보고 S급 헌터 수준이라고 말했었다.
“크라우드의 핵심 멤버는 4명. 나머지 8명은 그 4명의 수족일 뿐….”
새삼 버섯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인즉슨.
현재 크라우드에는 S급 2명과 A+급 2명이 있는 거다.
어라?
그럼 그놈들만 잡으면 지구상에 권속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