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32
제433화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푸른빛을 흩뿌리는 나무는 햇빛이 닿지 않는 이곳을 은은하게 밝혔다.
밝기는 그리 세지 않았으나 무기가 만들어냈던 번개구는 없애도 될 정도였다.
투욱….
나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밀러가 둥근 이마를 기둥에 갖다 댔다.
“그위친…. 이런 거였군요…. 새로 태어났다는 말이….”
그녀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마치 이마를 갖다 댄 그 나무가 그위친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그것은 옳았다.
우리 눈앞에 있는 나무는 그위친이 변한 것으로, 마족의 혐오스러운 기운을 먹어치우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관리인.」
“응?”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고 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인 그 누군가는 앨릭스 협회장과 이자벨 성녀였다.
마침 잘 됐군.
그위친이 나무가 돼버렸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었는데.
실물을 보여주면 설득하기도 쉬울 거다.
“도운! 밀러!”
빠르게 내려온 앨릭스 협회장이 나와 밀러를 불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렸는데,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몸짓이었다.
설마….
“그위친 그 친구는 어디 있나?”
“아….”
밀러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탄식했다.
이런….
앨릭스 협회장은 아무래도 그위친이 무사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방금까지 그위친의 마나가 숲을 뒤덮었던 혐오스러운 기운을 이곳으로 모았으니,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했다.
그가 의문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들 그렇게 쳐다보는 건가? 그위친은 어디 있냐니까?”
“…….”
“밀러!”
앨릭스 협회장이 언성을 높였다.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니 불안함을 느낀 거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밀러가 쓰게 웃었다.
툭….
둥근 이마를 갖다 댔던 기둥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대답한다.
“그위친은 여기 있어요.”
“뭐…?”
앨릭스 협회장이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소릴 한다는 듯한 눈을 한 채로 심드렁하게 따져댔다.
“그 나무가 그위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
“밀러! 좀, 이해할 수 있게-”
“당신이라면 느낄 수 있을 텐데요, 앨릭스.”
밀러가 또다시 언성을 높이는 그의 말을 끊어냈다.
나무 기둥을 어루만지며 덧붙였다.
“그에게서 느끼곤 했던, 이 따뜻한 마나를….”
“…….”
이내 앨릭스 협회장이 입을 다물었다.
찡그린 채로 나무를 쳐다보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밀러의 말대로 나무에서 그위친의 마나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그위친?”
익숙한 마나를 느낀 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밀러가 어루만지고 있는 나무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밀러는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전부 들은 앨릭스 협회장이 손을 뻗어 나무를 짚었다.
“그위친….”
앨릭스 협회장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것이라곤 동료를 향한 그리움뿐이었다.
밀러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순간,
퍼억!
앨릭스 협회장이 커다란 주먹으로 기둥을 후려갈겼다.
우린 깜짝 놀란 나머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바라봤다.
밀러는 비명까지 지르며 따졌다.
“앨릭스! 미쳤….”
하지만 끝까지 말하지는 못했다.
앨릭스 협회장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슬쩍 들어 올립니다.]딱 한 녀석.
새싹이만 빼고.
왜 그래?
[세계수는 나뭇가지로 기둥을 긁적입니다.] [지금 이 장소에 흐르는 장엄하고 정숙한 분위기에 당황합니다.] [이게 다 관리인 탓이라고 나무랍니다.]응? 내가 뭘?
웬만한 사건 사고가 나로 인해 일어나기는 해도, 이건 좀 억울한데.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세계수는 이번엔 그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응?
[세계수는 자신이 세계수라고 전합니다.] [하나의 차원을 가꿔나가는 나무라고 설명합니다.]그래서?
알고 있는 사실을 왜 말하니.
그 불만스러운 기색은 또 뭐고.
할 말이 있으면 정확히 하렴.
[세계수는 답답한 마음에 관리인을 흘겨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서, 관리인에게 그위친의 나무에 검지를 올려보길 요구합니다.]갑자기 검지를?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서두르라고 전합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간 지금 이 엄숙한 분위기가 관리인을 향한 칼날이 되어 날아들게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칼날?
대체 뭔 소린지….
일단, 하라는 대로 해야겠다.
우리 새싹이가 내게 좋지 못한 일을 시킬 리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왜 그러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 백…?”
“밀러, 잠시 비켜줄래요?”
“네?”
“잠깐이면 돼요.”
“…네. 알겠어요.”
그리 대답하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에야 비켜섰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듯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내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한 모양인데, 난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수 없었다.
나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톡.
그위친의 나무에 검지를 갖다 댔다.
그런데 이러면 뽑혀 나오는 거 아닌가?
뿅!
-하고, 튀어나올까 봐 괜히 불안한데.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또 그런 해괴한 생각을 하는 거냐고 한숨을 내쉽니다.]해괴하다니?
타당한 거지.
내가 이런 식으로 뽑아낸 나무가 몇 그루인데.
[세계수는 보면 알 거라고 전합니다.]새싹이의 메시지와 함께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따스한 손길이 에디탓 그위친의 나무에 닿았습니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 ‘S등급 에디탓 그위친의 나무’의 채집을 시작합니다.] [에디탓 그위친의 나무는 세계수의 하위 생물에 속하며, 타이틀 세계수의 동반자 보유 효과로 채집 확률을….] [관리인 손길을 통해 세계수의 의사가 확인됐습니다.] [채집을 취소하고 에디탓 그위친의 나무에 세계수의 마나를 전달합니다.] [마나를 전달하는 중.] [마나를 전달하는 중.] [마나를….] [정상적으로 세계수의 마나가 전달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위친의 나무가 격(格)을 얻어 성장합니다.] [그위친의 나무의 상태가…?!]쏴아!
그위친의 나무에 자란 나뭇잎이 거세게 나부꼈다.
거센 바람이라도 불어닥친 듯했으나, 이 구덩이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나무의 요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그런데….
“……?”
그위친의 나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손을 얹기 전의 모습과 달라진 구석이 전혀 없었다.
나뭇잎이 풍성해진 것도, 나뭇가지가 새로 자라난 것도, 기둥이 더 높이 길어진 것도 아니다.
흠, 성공적으로 전달돼서 성장했다더니?
[세계수는 성장했다고 꼭 몸이 커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합니다.]그야 그렇긴 한데….
난 또 격이란 것까지 얻었다기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
그래서?
이제 나 엄숙한 분위기의 칼날에 당할 일은 없어진 거야, 새싹아?
뒤?
궁금한 마음에 바로 몸을 돌렸다.
등 뒤에는,
“…….”
“…….”
그위친이 서 있었다.
머쓱한 얼굴을 한 채로.
『…도운.』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은 것이리라.
어쩌면 좋나.
나도 모르는데 말이지….
『왜 옆구리에 금고를 끼고 있는 겁니까?』
그걸 물을 줄은 몰랐는데.
『도운?』
“…도희가 시켰습니다. 오늘 내내 갖고 다니래요.”
『오.』
그위친이 탄성을 흘렸다.
그 뒤에서 무기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보였다.
마치 ‘역시 관리인’이라며 인정하는 모습이지만, 기분이 나빴다.
좋은 뜻으로 인정해주는 게 아닐 테니까.
그건 그렇고….
그위친은 지금 어떻게 눈앞에 있는 거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뽐내듯 치켜듭니다.] [현재 그위친은…!]그위친은?
***
– 그위친…. 그 친구가 ‘정령’이 되었다고…?
앨릭스의 설명을 들은 화상 통화 속 리롄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앨릭스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롄제가 허허 웃었다.
– 정령이라…. 마치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것 같지 않은가….
기분 탓인가?
어쩐지 리롄제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부러움이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리롄제는 신선이 되고 싶은 영감이었다.
정령과 신선.
어찌 보면 결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 부러워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그는 우화등선할 수 없겠지만.
– 정령이라…. 그래서 없었던 거였군….
화상 통화 속 유일한 A+급 헌터인 한진환이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하는 게 좀 이상했다.
그래서 없었다, 니?
저게 무슨 소리지?
– 앨릭스 협회장.
“말씀하십시오, 리롄제.”
– 그위친이 정령이 되었다고 해서 묻는 것인데, 그럼 그는 흑룡과 싸울 수 없는 것 아니오?
“…예상한 대로입니다.”
앨릭스 협회장이 속이 쓰린 사람처럼 인상을 구기고 말했다.
태천이와 리우이호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로 설명을 덧붙인다.
“정령이 된 그위친은 숲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네.”
– ……!
“빠져나올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네만, 그마저도 금방 숲으로 돌아가야만 했지. 그래서 블랙 드래곤과 싸울 때 그를 배제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네.”
– 이런…. 그럼 우린 그위친 없이 싸워야 한다는 거군요.
태천이가 곤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니터에 떠오른 다른 이들의 얼굴도 그랬다.
그위친은 S급 헌터 중 1, 2위를 다툴 강자였으니….
내가 블랙 드래곤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도 그위친이 함께 싸운다는 걸 상정해둔 것이었다.
그런 그위친이 빠진다면….
– 전력의 손실이 뼈아프군….
리롄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밀러와 앨릭스 협회장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들의 얼굴도 비슷했다.
앞서 리롄제가 말하고 또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위친이라는 전력의 손실은 뼈아픈 일이었다.
– 괜찮아.
분위기 가라앉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걸까.
한진환이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저런 성격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은 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그위친이 정령이 됐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호들갑을 안 떨었네.
흠….
– 눈알 빠지겠어, 영감.
한진혼이 피식 웃고 말했다.
리롄제가 ‘괜찮기는 뭐가 괜찮냐?’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노려본 탓이다.
– 네놈이 헛소리를 해대니까 그런 게 아니냐?
– 헛소리? 그럼 영감은 그위친이 없으면 우리가 블랙 드래곤한테 질 거로 생각하는 거요?
– 허튼소리! 그위친이 없다 한들 문제 될 것은…!
리롄제는 말을 하다 멈췄다.
한진환이 노리는 바를 알아차린 거다.
쯧!
그가 거칠게 혀를 찼다.
– …건방진 놈.
그리 중얼거리고는 다시 눈알 빠지도록 한진환을 노려본다.
살벌한 시선에도 한진환은 키들키들 웃기만 했다.
앨릭스 협회장이 헛기침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프랑스 헌터 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베르동 협곡 게이트는 26일 후 폭발할 예정입니다. 오차 범위는 이틀 정도고요.”
즉,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진입하는 날짜는 20일에서 25일 사이인 거다.
정확한 날짜는 서로의 일정을 조율한 후 금방 결정되겠지.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교황청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앨릭스 협회장의 말과 동시에 이자벨 성녀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인사를 전하자 다들 화답했다.
딱 한 명, 스미르노프만 빼고.
놈은 평소와 같이 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자벨 성녀님은 다른 사제분들과 함께 후방에서 우릴 도와주실 겁니다.”
“미약한 실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미약한 실력이라니. 교황청의 버프 마법엔 나도 기대하는 바가 크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싸운다면 분명 흑룡을 토벌할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리롄제 님.”
그위친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교황청 사제들이 추가되어 한시름 놓았다.
리롄제의 말대로 교황청의 버프 마법은 훌륭한 데다가, 우리 도희랑도 굉장히 잘 맞을 테니까.
큰 도움이 되겠지.
– 아니.
갑자기 스미르노프가 부정했다.
왠지 내 생각을 부정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워졌다.
저 새끼는 조용히 있다가 대뜸 뭐가 아니란 거야?
앨릭스 협회장이 놈을 쳐다봤다.
“스미르노프?”
–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만, 나는 블랙 드래곤 토벌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뭐 이 미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