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33
제434화
“뭐 이 미친 새끼야?”
스미르노프의 말에 욕이 튀어나왔다.
처음엔 머릿속으로 한 줄 알았는데, 앨릭스 협회장을 포함해 모든 이들이 날 보고 있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흠, 흠….
– …미쳤다? 아니지. 인간이 정령이 됐다는 걸 믿는다는 게 더 미친 소리지.
“하. 못 믿겠으면 직접 숲으로 가서 확인해 보면 되잖냐.”
– 글쎄….
스미르노프는 피식 비웃었다.
그위친이 정령이 됐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는 태도였다.
미친 소리로 일관하며 사실 여부를 확인할 생각조차 없는 거다.
그때, 이자벨 성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스미르노프 님. 그위친 님이 정령이 됐다는 사실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 흥.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 뭘 보증할 수 있다는 거냐?
“뭐, 뭐라고요?”
이자벨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면서 사기꾼이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역시 스미르노프.
개같이 말해서 적을 만드는 건 세계 최고인 놈다웠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흘깁니다.] [그런 쪽으로 세계 최고인 건 관리인이 아니냐고 질문합니다.]다르거든.
나는 일부러 그러는 거, 쟤는 무의식적으로 저러는 거.
[…….]“…뭐, 좋아. 못 믿는 건 그렇다고 쳐.”
어차피 그위친이 정령이 됐다는 말이 사실이란 건 곧 알게 될 일이었다.
앨릭스 협회장이 이 사실을 널리 퍼뜨릴 계획이었으니까.
죽었다면 숨겼을지도 모르지만, 정령이 됐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드루이드인 그위친이 정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신화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오히려 열광할 거고, 궁금한 마음에 그위친의 숲을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날 거다.
“그래도 블랙 드래곤은 토벌해야지.”
– 왜 그래야 하지?
“왜냐니. 놈은 인류를 멸망시킬 계획이라니까?”
– 그것조차, 네놈들 말뿐이지 않나?
“뭐?”
– 나는, 그리고 러시아는,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학살할 계획이라는 정보 따위 확인하지 못했다. 네놈들이 해댄 말을 들었을 뿐.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것 같냐?”
– …….
스미르노프는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너희는 그럴 것 같다’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인생에 도움 안 되는 놈….
“스미르노프.”
앨릭스 협회장이 다급하게 부르자 놈이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하네. 그러니 천천히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나.”
– 확인이라고? 지금 나더러 블랙 드래곤을 만나러 가보라는 건가.
“그야 당연히….”
확인하려면 그래야겠지.
그리 말하려던 앨릭스 협회장의 입이 도중에 멈췄다.
블랙 드래곤의 계획을 파악하고자 S등급 게이트에 들어갔다 와라.
그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인지를 깨달은 거다.
설령 스미르노프가 진입하겠다고 해도 러시아 정부와 협회가 반대하겠지.
미국의 함정쯤으로 여기고.
“…내 기억을 공유할게요.”
밀러가 제안했다.
그 제안에 앨릭스 협회장이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을 한다.
마법으로 기억을 공유한다면 스미르노프도 진실을 알게 될 터였다.
하지만 스미르노프는 그녀의 제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
– 마찬가지다.
“네?”
– 기억이랍시고 보여준다고 해도,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네가 조작하면 그만인데.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아요! 내 명예를 걸고!”
– …….
스미르노프는 밀러를 빤히 바라봤다.
놈의 얼굴은 밀러의 명예를 중히 여기지 않는 게 훤히 드러났다.
저놈은 뭐 속고만 살았나….
놈이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 다시 말하지, 나는 블랙 드래곤 토벌에 참여하지 않겠다. 그러니, 토벌하든 말든 너희 알아서 해라.
“잠, 잠깐!”
앨릭스 협회장이 다급하게 스미르노프를 불렀으나 이미 늦었다.
놈은 제 할 말만 하고선 들을 생각이 없는지 통화를 끊고 나가 버렸다.
“하, 이런….”
앨릭스 협회장이 당황스러운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스미르노프도 같이 들여보냈어야 했군….”
–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소. 일이 이리될 줄 몰랐을뿐더러 설령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어도 거절했을 놈이니.
“…그건 그렇군요.”
리롄제가 앨릭스 협회장을 격려하는 동시에 방향성을 제시했다.
– 아직 시간이 있으니, 설득할 수밖에. 시도해봐도 안 된다면… 그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꼭 설득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앨릭스 협회장의 얼굴에서는 어떻게든 설득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위친이 싸울 수 없게 된 마당에 스미르노프까지 토벌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성격이 저 모양 저 꼴이라고 해도 S급 헌터는 S급 헌터.
놈이 함께한다면 블랙 드래곤의 토벌 성공률은 조금이라도 올라갈 터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
앨릭스 협회장이 나와 리롄제를 보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중간에 말을 조금 흐린 건 알루키노르와 데이모스를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 고민한 것 같다.
그들이라고 부를지 그분들이라고 부를지 아니면 그 드래곤들이라고 부를지 말이다.
– 잘 안 됐소.
“아아….”
앨릭스 협회장이 탄식을 짧게 흘리면서 날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이미 결과를 확정 지은 상태로 기대감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예상대로 알루키노르에겐 제작해줬던 발광석을 돌려받았을 뿐이었기에 쓴웃음을 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우…. 상황이 정말로 좋지 않군….”
결국, 앨릭스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마음을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화상 통화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늘 태평한 태천이조차 분위기를 파악한 듯 조용했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분위기가 우울하지 않았으면 손이라도 흔들어댔겠지.
그런데,
– 괜찮아, 괜찮아.
태천이조차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는 지금, 한진환이 여유작작한 태도로 사람들을 격려했다.
대수로워하지 않는 그 모습을 리롄제와 리우이호가 눈썹을 찌푸리며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사제 관계 아니랄까 봐 둘이 하는 짓이 똑같다.
한진환 때문이었으니 탓할 수만은 없었지만.
– 그위친… 그리고 스미르노프가 없다고 해도, 블랙 드래곤 토벌할 수 있어.
한진환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차 있었다.
그 태도가 거슬렸는지 리롄제가 혀를 쯧쯧 차댔다.
– 영감. 왜 혀를 차고 그래?
– 그러지 않고 배길까? 자신하는 건 좋으나 근거 없는 확신은 극독(劇毒)인 법이거늘.
– 근거 없는 확신이라고?
– 그럼 있느냐? 흑룡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 말하고서 리롄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롄제의 모습은 자못 한진환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드래곤을 마주했다면 그런 말은 감히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다.
깔보는 태도가 기저에 깔린 걸 느꼈을 텐데도 한진환은 씩 웃었다.
– 미안한데, 근거 있거든.
– …….
리롄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한 눈초리였다.
– 근거가 있다….
– 그렇대도.
– 하. 그럼 말해 보아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그 근거.
– 말해 보라고?
– 못하겠느냐? 그럼….
조용히 입 다물고 있거라.
한진환을 쳐다보는 리롄제의 얼굴은 그리 말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진환의 입이 더 빨랐다.
– 쟤.
딱 한 글자만 말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었던 거다.
화면 속 한진환이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문제는 여러 명이 연결된 화상 통화인 탓에 그의 손가락이 누굴 향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
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밀러, 이자벨 성녀, 앨릭스 협회장을 포함해 모니터 속의 태천이, 리롄제, 리우이호까지 전부.
모니터에 분할된 시선의 방향은 중구난방이었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쳤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뭔데.
–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내가 눈을 찌푸렸을 때 한진환이 말을 이었다.
날 향했던 시선들이 옮겨졌다.
시선들은 아까와 같이 중구난방이지만 그를 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처럼 그들과 시선을 마주했을 그가 웃었기 때문이다.
– 도운이 쟤랑 같이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설령 그게 블랙 드래곤 토벌이라고 해도.
– 아.
「오.」
태천이와 무기가 감탄을 흘렸다.
두 녀석의 짧은 탄성에선 한진환을 향한 공감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음….”
“확실히….”
“…….”
앨릭스 협회장과 밀러, 그리고 이자벨 성녀조차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한진환의 말에 동감하듯이 말이다.
그 탓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화면 속 리롄제와 똑같이 말이다.
– 그딴 걸 근거라고 말한 게냐?
– 영감님. 그딴 거로 치부하기엔,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 …….
리롄제가 입을 다물고는 눈을 부라렸다.
그의 눈이 닿을 때마다 다들 머쓱하게 웃었지만, 한진환의 말에 공감한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긍정할 뿐.
– …쯧.
리롄제는 다시 한번 혀를 차고는 말했다.
– 앨릭스 협회장. 이번 토벌엔 내 제자 놈들도 함께할 거요.
“제자분들을요?”
– 물론 앞에 세워두진 않을 거요.
“아, 혹시 후방에서 지원할 이자벨 성녀를 보호하시려는 겁니까?”
– 못난 놈들이긴 하나 지켜내는 것만은 할 수 있을 거요. 그것도….
리롄제는 말을 끊고 나를 쳐다봤다.
그가 끊어낸 말이 어떤 내용일지는 짐작이 갔다.
“백도운 저놈이 세계수를 소환했을 때에 한해서겠지만”일 테지.
어쨌든 전력이 늘어난 셈이니 앨릭스 협회장은 감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리롄제.”
– 됐소. 흑룡은 마법을 봉인할 줄 아니, 밀러의 학생들보다 제격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오.
“음….”
앨릭스 협회장이 밀러의 눈치를 살폈다.
리롄제의 말이 밀러와 그녀의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러는 리롄제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실을 말한 것이란 걸 알기에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마법 봉인, 이라….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합니다.] [드래곤의 마법 봉인은 관리인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세계수의 마나로 이뤄진 관리인의 마법은 감히 드래곤이 봉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당당하게 덧붙입니다.]그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걱정이 불식되지는 않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밀러가 제대로 싸울 수 없잖아.
그녀는 그위친이 없는 지금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기 위한 화력의 한 축을 담당해줘야 하거든.
그건 탱커인 태천이는 말할 것도 없고 리롄제와 리우이호도 무리인 일이었다.
한진환은 무기와 임페일과 함께 다른 한 축을 담당할 거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자벨 성녀가 밀러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물론, 키 차이가 엄청 나서 그녀는 손의 방향을 어깨가 아니라 등허리 쪽으로 바꿨다.
톡….
이자벨 성녀는 밀러의 등허리를 짚은 채로 말했다.
“봉인 마법은 저희 교황청이 전문이니까요!”
“성녀님….”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봤다.
서로를 향한 경의 때문일까?
훈훈함이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그리고 그걸,
「어려울 텐데.」
우리 무기가 단호하게 초를 쳤다.
아, 왜?
“어째서죠…?”
이자벨 성녀가 바로 질문했다.
교황청의 일원으로서 가진 자부심을 내비치면서.
“저희 교황청은 봉인 마법에 관해 심도 있는 연구를-”
「그래 봐야 인간 마법이지 않나. 그대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드래곤의 마법이다.」
“앗….”
「그리고 드래곤의 마법은 세계수의 명제 마법과 비슷한 면이 있지.」
그리 말하면서 무기는 나를 쳐다봤다.
명제 마법은 ‘세계수를 죽이기 위해서는 먼저 관리인을 죽여야 한다’와 같이 조건을 거는 것이었다.
즉, 블랙 드래곤의 마법 봉인을 해결하기 위해선 놈이 내건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건이 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우리 새싹이가 관찰했다면…?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관리인과 관리인의 친구가 허무맹랑한 일을 연달아 벌인 바람에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습니다.]…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밀러가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굳이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두 가지 정도 있지.」
“그게 뭐죠?”
「첫 번째는 싸울 때 마법을 쓰지 않는 것이다.」
“…….”
밀러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무기가 말한 건 방법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마법사인 밀러가 마법을 쓰지 않고 지팡이만 휘둘러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럴 거면 굳이 밀러가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요?”
「뻔하지.」
그러더니 무기는 나를 쳐다봤다.
덕분에 또다시 모니터에 분할된 시선들이 중구난방 내게 모였다.
「두 번째 방법은….」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