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55
제456화
“도망쳐. 꽁지 빠진 새처럼.”
그리 말했을 때였다.
해골이 오른손을 쳐들어 들끓는 어둠을 끌어당겼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지만 갑자기 크라우드의 본질이 변할 리 없었기 때문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해골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도망친다’라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골이 어떤 짓을 할지 기대에 찬 얼굴로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해골이 나를 노려본다.
새카만 뼈만 남았으면서 표정이 훤히 드러나는 게 퍽 웃기다.
그 사나운 시선을 웃으며 마주 보고, 일부러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꽈악!
해골이 뼈만 남은 손마디를 움켜쥐었다.
하늘에서부터 모은 어둠이 해골의 손에 횃불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놈은 그것을,
“얼씨구?”
그놈과 원을 보호하려는 요량인 듯 살짝 앞으로 나와 있던 풍뎅이에게 쏘았다.
맞은편에 선 나나 무기가 아니라.
우리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태천이나 한진환이 아니라.
들끓는 어둠은 마족 에너지다.
그렇다면 해골은 풍뎅이에게 힘을 건네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게 지금 상황에 알맞은 행동이 아니어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 있는 크라우드 중에서 풍뎅이는 가장 약했다.
셋 중에서 비슷하게 강한 자신이나 원에게 힘을 모으는 게, 도주든 생존이든 확률을 더 높일 터였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역시 마족의 권속이라며 몸서리칩니다.]왜?
새싹이 너는 해골이 뭐 하고 있는 건지 알겠어?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이어 관리인에게 제주도 때를 떠올려 보라고 전합니다.] [흐레이스가 어떤 꼴이 됐었는지 기억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제주도 때의 흐레이스?
지금은 배신해서 세계수 권속이 된 그녀는 원래 크라우드의 일원으로서 제주도에 헤미스파이리움을 작동시키려고 숨어들어 왔었다.
박건영과 수아의 설득으로 배신하려고 했지만, 꿍꿍이를 의심하고 있던 저놈들에게 당했다.
헤미스파이리움을 작동시키기 위한 에너지원 따위로 전락한 것….
“아.”
해골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겠다.
새싹이가 놈의 저의를 알아차리고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도 알겠고.
해골은 제주도 때처럼 자기 부하의 몸에 음험한 짓을 저지른 거다.
그것도,
“어, 어째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말이다.
풍뎅이가 경악에 찬 얼굴로 해골을 쳐다봤다.
얼굴이 풍뎅이 모양으로 변했는데 배신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쩜 저렇게 멍청할까.
해골과 원이 누구인가?
수족처럼 부리던 부하들을 한낱 기계장치를 가동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써먹었던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어떻게 믿고 따른단 말인가?
흐레이스처럼 배신할 작정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일이었다.
또 자신은 그들처럼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것도 문제다.
자기 목숨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놈들이 할 짓은 뻔할 뻔 자였으니까.
“세계수 관리인이여.”
해골이 나를 불렀다.
놈은 풍뎅이가 애타게 저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1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톡.
새카만 뼈만 드러난 검지로 가리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현재 저놈의 몸속엔 헤미스파이리움 13대 분량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13대….
한진환이 목숨을 걸고 없애서 그 정도만 남게 된 것이리라.
끈질기기도 하지.
“당연히 저놈 따위가 버텨낼 만한 에너지가 아니지.”
“…곧 터져버릴 거라는 소리냐?”
“이해가 빠르구나. 바로 그렇다. 그리고 폭발의 위력은… 최소 백만 단위의 사상자를 내겠지.”
깡!
해골이 손뼉을 쳤다.
검은 뼈만 남은 두 손을 맞부딪친 탓인지 쨍하고 둔탁한 소리였다.
역시 평범한 뼈의 경도(硬度)는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협회에서 조사한 내 뼈도 그랬었으니….
우리 도희는 그걸 어떡했으려나?
설마 고이 모셔뒀을 리는 없고.
“자, 선택해라.”
툭.
해골이 오른손으로 제 가슴을 짚었다.
왼손으로는 제 몸을 부여잡은 채로 부들부들 떨어대는 풍뎅이를 가리켰다.
풍뎅이는 폭발하지 않고자 노력 중이었다.
물론, 언제고 폭발은 일어날 거다.
해골의 말마따나 풍뎅이 따위가 버텨낼 만한 에너지가 아니므로.
“우릴 잡을 것이냐, 저것을 없애 백만 명을 지킬 것이냐?”
“푸하!”
배려심 넘치는 신사라도 된 듯한 태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 부하를 저런 상태로 만든 주제에 의기양양한 꼴이라니,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난 애초에 열심히 뒤쫓을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다.
흐흐, 이 사실을 가르쳐주면 좋아 죽겠지?
“멍청하긴. 난 원래-”
“해골.”
원이 말을 끊듯 해골을 불렀다.
그러고는 제 용건을 바로 말했다.
“먼저 가겠다.”
그 말을 끝으로 원은 하늘로 올라갔다.
륜 위에 가부좌를 튼 모습이어서 그런지 여유로워 보였는데, 속도를 보면 느긋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짐작건대 원은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흥.”
해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친 원을 보고 흥이 식은 듯했다.
웃기고 있네.
지금 정말 흥이 식은 게 누군데?
좋아 죽게 할 생각에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내 기대감은 어쩌라고?
다급하게 왼손바닥을 내밀었다.
“잠깐 기다려.”
“……?”
“나 아직 대답 안 했어. 내 대답 듣고 가!”
“…쯧! 혼자 지껄이도록 해라.”
해골이 혀를 차고는 퉁명스럽게 말을 남기고는 떠나 버렸다.
내가 말했던 대로 꽁지 빠진 새 같은 모습이었으나 같잖은 마음보다는 열불이 났다.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도망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무기야. 쟤네 쫓아가자.”
「쫓아가자고?」
“나 아직 대답 못 했단 말이야!”
「…….」
“얼른!”
「저놈들은 문지기에게 맡겨라, 관리인.」
무기는 꼬리로 태천이를 가리켰다.
태천이는 지금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는 해골의 뒤를 쫓고 있었다.
함께 있던 한진환과 중년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원이 도망치자마자 뒤쫓아간 모양이었다.
이 하늘엔 나와 무기 그리고 폭발하지 않고자 열심히 용쓰는 풍뎅이뿐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대답해줘야 하는데…. 그래야 해골이 좋아 죽었을 텐데….”
「…후우. 알겠으니, 저것부터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나.」
휙!
이어 무기의 꼬리 끝이 풍뎅이를 향했다.
풍뎅이는 덜덜 떨며 몸에 가득 찬 마족 에너지를 제어하고 있었다.
해골의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사상자가 백만 단위라고 했던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혐오스러운 마족 권속의 말이었으나 진실이긴 했다고 전합니다.] [버림받은 마족 권속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분석한 결과, 적게 어림잡아도 백만 단위의 사상자가 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아, 그래?
별로 시간을 들여 준비한 마법도 아닌데 그 정도 위력을 내다니….
마족의 에너지란 것도 대단하긴 하군.
그러니까 의지력이 약한 놈들을 유혹할 수 있었겠지만.
「관리인.」
“그래, 알았어.”
「잘 생각했다.」
무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풍뎅이에게로 나아갔다.
그동안 난 무기에게 세계수의 나무껍질을 써주었다.
무기의 비늘은 아주 단단했지만, 혹시 또 모르니 대비한 것이다.
내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무기가 피식 웃었다.
다행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했다면 쑥스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졌으리라.
“크윽….”
풍뎅이는 웅크린 채로 신음을 흘리며 덜덜 떨어댔다.
쌀쌀한 겨울 추위에 떠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온몸에서 뻘뻘 흐르는 식은땀이 추위 때문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야.”
세계수의 뿌리를 쓰면서 풍뎅이를 불렀다.
다섯 개의 나무뿌리는 크기를 키워나가며 감겨 큰 구체가 됐다.
이렇게 가두면 폭발한다고 해도 아래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겠지.
빠직!
곧이어 푸른 번개가 튀며 번개구가 떠올랐다.
무기의 센스 덕분에 뿌리로 만든 구체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이 잘 보였다.
“야.”
“…….”
다시 불러도 풍뎅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잃으면 폭발하게 될 것을 직감하고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톡!
-하고 치면 풍뎅이는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폭발하지 않을까.
사실,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그거 아냐? 나 원래 너희랑 싸울 생각 없었다?”
“뭐…?”
질문하는 풍뎅이의 목소리는 허무했다.
목소리만큼 날 보는 눈빛도 텅 비어 있었는데,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착하고 친절한,
[……?]-내가 더 설명해줘야겠다.
“너도 들었다시피 500만 명이 죽는다잖아. 그런데 굳이 뭐 하러 싸워?”
“뭐? 너,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고-”
“미쳤니? 당연히 신경은 쓰지.”
“……!”
“그리고 난 사실 너희가 도망치면 뒤쫓을 생각이 없었어.”
“지, 지금 뭐라고…?”
풍뎅이가 힘없이 물었다.
덜덜 떨리는 몸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가까스로 제어되고 있던 마족 에너지는 용솟음쳤다.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이쯤에서 화룡점정을 찍어볼까.
“쫓는 시늉은 했겠지. 근데 그걸로 끝.”
파르르….
풍뎅이의 눈꺼풀이 떨렸다.
깨달은 거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것을.
그래서 난 굳이 그 사실을 한 번 더 짚어주었다.
톡, 하고 치기 위해서.
“해골이 지레짐작만 안 했어도 너 살았을 거라고.”
“이, 개…!”
콰앙!
욕설을 잇지 못한 채 풍뎅이가 폭발했다.
끓어오르는 울분 때문에 집중력을 잃고 마족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거다.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들끓는 어둠은 위력이 상당했다.
둥근 구체가 된 세계수의 뿌리를 뚫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들끓는 어둠은 뿌리 구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만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수의 뿌리가 흡수했다.
「…죽었군.」
무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기폭제 역할이었으니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야. 폭발도 생각보다 강했고.”
「확실히 강력한 폭발이었다. 관리인이 나무껍질을 써주지 않았다면 비늘이 상했을지도 모르겠어.」
비늘이라….
나무껍질이 없었어도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을 거란 뜻이었다.
하지만 우리 무기는 A+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수월하게 용이 될 수 있도록 여의주를 준비한 걸 보면 전대 세계수도 어느 정도 인정했던 것 같고.
그런 무기의 비늘이 상했을 정도라면….
세계수의 뿌리로 구체를 만들어 덮어버리지 않았을 경우 서울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위력을 죽이려 노력은 했겠지만, 서울의 안전을 장담하진 못했겠다.
「그런데 관리인.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질문? 뭐?”
「어찌하여 풍뎅이를 도발했지?」
“응?”
「폭발하기 전에 세계수의 뿌리로 들끓는 어둠을 흡수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러면서 무기는 구체 안을 두리번거렸다.
세계수의 뿌리는 들끓는 어둠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무기가 짐작한 대로 그럴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어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음….」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무기가 고개를 저었다.
뭐, 무기의 불만이 무엇일지 대충은 안다.
풍뎅이를 살려뒀으면 놈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뿐인가?
크라우드의 아지트를 찾아냈을 수 있었고, 다른 계획 따위를 미리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선행돼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바로 흐레이스처럼 심장의 성질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풍뎅이를 세계수의 권속으로 만들어야 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부르르 떱니다.] [마족의 권속을 권속으로 바꾸는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전합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굳이 살려주지 않고 죽인 거고.
정확히는 더 빨리 자폭하게 재촉했을 뿐이지만.
그런 연유로 풍뎅이에게서 얻어낼 것은 마족 에너지로 충분했다.
폭발의 위력이 대단했던 만큼, 이번에 얻어 낼 마나의 양이 생각보다 많을 테고.
예상컨대 두 번째 결실에 필요한 에너지는 채우고도 남겠지.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새싹이의 성장을 이뤄낼 만큼의 비료를 제작할 수 있을지도….
바로 그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가 세계수의 뿌리로 얻게 된 혐오스러운 마나를 정화합니다.] [이번에 얻게 된 마나의 양은 대략….]대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