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58
제459화
3년 전.
우리 세 사람은 진화한 보스 몬스터인 미노타우로스와 마주했었다.
미래를 본 원장 아줌마가 나를 말렸다면, 내가 두 사람을 살리고자 하트 브레이크를 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줌마가 남 말 더럽게 안 듣기로 정점을 찍었던 그 당시의 나를 설득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도희도 그걸 알고 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말렸어. 아니. 말렸었어.”
“……?”
그 말에 도희가 나를 쳐다봤다.
아줌마가 따로 연락해 말린 적이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그런 적은 없었으므로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줌마와 연락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날 말렸다면 내 좋지 못한 머리도 분명 기억했을 터였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미심쩍게 바라봅니다.] [이어 관리인의 기억력을 의심합니다.]으으음….
그렇게 의심하면 결단코 그런 적 없다고 장담할 수 없기는 한데….
새싹이와 내가 내 기억력을 의심하는 순간, 아줌마가 말을 이었다.
“몇 번을 말렸는지 몰라.”
몇 번…?
횟수가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기억할 만하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란 뜻이다.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이어 아직 확신하기엔 이르다고 의심을 거두지 않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온 동시에 아줌마가 말했다.
말하는 속도가 느린 것이, 거북한 것을 말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게이트에 못 들어가게 붙잡은 적도 있고, 사정한 적도 있었어….”
“……?”
“심지어, 태천이한테 말려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지.”
붙잡고 사정?
태천이한테 부탁까지 해가며?
아무리 떠올려봐도, 내 기억 속엔 그런 기억이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태천이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린다.
태천이까지 저런 반응이니, 이젠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이며 동의합니다.]새싹이까지 긍정하지 않나.
그렇다면,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바로….
“고정 시간대….”
도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여 도희의 깨달음에 확신을 주었다.
즉, 그녀는 시간을 수없이 반복한 거다.
어떻게든 날 구하고자, 고정된 시간을 풀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
그런데도 아줌마는 미안하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날 구하고자 한 번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여러 번 한 사람이 지을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안다.
회귀는 멈췄고 고정된 시간은 결국 일어났으니까.
난 괜찮다고 말하듯 미소를 지으며 아줌마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지지 않았다.
하여간….
저렇게 여리고 착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칠죄종 같은 게 됐나 몰라.
“…누군가가 오라버니의 심장이 고장 나길 바랐다는 거네요. 시간까지 고정해서.”
뚝.
도희가 나와 아줌마가 서로 바라보는 시선을 끊어내듯 말했다.
아줌마는 도희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생각엔, 아마 도운이 심장이 고장 나길 원했던 건 아닌 듯해.”
“……?”
도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나 또한 그랬다.
방금 아줌마가 한 말은 마치 시간을 고정한 존재의 목적을 예상하는 듯했다.
즉….
“어떤 새끼가 그랬는지 아시는 것 같은 말투네요?”
나와 같은 것을 알아차린 도희가 싸늘하게 물었다.
솔직히 털어놓으라는 압박감이 절로 느껴졌다.
꼴깍….
잠자코 지켜보던 몇 명이 침까지 삼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도희는 누군지 알게 되면 당장 붙잡아 손가락부터 시작해 온몸을 마디마디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
역시 우리 도희한테 어울리는 별명은 하얀 성녀가 아니라 백발 마녀인 것 같다.
맞춤옷을 제작해 입은 듯 아주 잘 어울린다.
“알게 됐다고 해야 하나, 저절로 이해됐다고 해야 하나….”
“누군데요?”
“알아도 소용없을 텐데 꼭 알아야겠니?”
“네.”
“후우….”
도희의 즉답에 아줌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알아도 소용없다면 그냥 말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 세상에서 시간을 고정할 수 있는 인간은, 칠죄종에서 음욕…의 마녀라고 불리던 나뿐이야.”
아줌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엔 그녀가 자식처럼 키운 녀석들이 잔뜩이었다.
자식 같은 놈들 앞에서 음욕(淫慾)이 어쩌고 말하는 것은 저 스스로 흑역사를 밝히는 것보다 낯부끄러울 터였다.
“인간은, 이라고요?”
도희가 되짚어보듯 중얼거렸다.
인간이 아닌 존재 중에서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존재는 드래곤들이다.
데이모스도 그렇고 알루키노르도 그렇고, 드래곤들은 말을 아주 조심스럽고 두루뭉술하게 했다.
참 쓸데없는 어법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말해주면 안 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알루키노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미래를 논하는 건 조심해야 하는 법이오. 정확하지 않게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자칫하다간 미래가 고정돼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니.』
-라고.
즉, 드래곤들은 아줌마처럼 시간을 고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시간을 고정할 수 없었다.
세 드래곤은 나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었기 때문이다.
데이모스는 이 세상에서 세계수 관리인을 보게 될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고, 알루키노르는 새로운 세계수가 자라난 사실에 감탄했었다.
블랙 드래곤도 어떻게 세계수 관리인이 존재하는 거냐고 놀랐었고.
그들 중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를 알고 시간을 고정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
아줌마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살짝 아래로 내려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을 향했다.
정확히,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최 클라우디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고 전합니다.]우리 새싹이를 향해서였다.
마치 새싹이가 범인이라는 듯이.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세차게 휘젓습니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걱정하지 마, 새싹아.
당연히 네가 범인일 리 없잖아.
그럴 능력도 없는데.
[세계수는 관리인이 믿어줘 다행이라고 전합니다.] [왠지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은 살짝 나쁘지만, 이라고 덧붙입니다.]아마 아줌마가 말하고자 했던 건 새싹이가 아니라,
“전대 세계수 짓이라고요?”
-였을 것이다.
도희의 추정에 아줌마가 덧붙였다.
“혹은 전대 관리인이라거나.”
“흐음….”
도희가 콧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 검지가 놓인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기분 탓이려나….
도희의 차분한 눈빛에서 스마트폰 한가운데에 못을 박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데.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덜덜 떱니다.] [도희에게서 정말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충동이 느껴지고 있다고 다급하게 설명합니다.]어, 음….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스리슬쩍, 스마트폰을 도희의 시선에서 치웠다.
“……”
“…….”
도희의 시선이 올라온다.
스마트폰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건넬 생각이 없었으므로 도희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톡톡 톡톡톡….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생각이 없었건만 왜인지 검지가 자꾸만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무의식이 눈치 없이 발현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곧 깨달았다.
내 손가락은 새싹이처럼 도희가 무서워 덜덜 떠는 거였다.
“…새싹이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흥….”
도희는 코웃음을 한 번 쳤다.
그러고는 자신이 추측한 것을 말했다.
“전대 세계수 혹은 전대 관리인이 오라버니가 다치는 시간을 고정한 건 저 [세계수 키우기]를 다운받게 하기 위해서였겠죠.”
“아마도.”
“하! 세계수 관리인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다치게 했다는 거잖아요. 제정신 아닌 족속들이네요.”
그리 말하면서 도희는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테이블 아래로 내린 스마트폰 속 새싹이를 노려보기 위해서였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 어쩜 정확히 스마트폰이 있는 곳을 쳐다보는 걸까.
놀랍기도 하지.
“도희야. 아까도 말했지만, 오로지 도운이의 심장이 고장 나길 원해서 그 시간을 고정한 건 아닐 거야.”
“근거는요?”
“내 경험이 근거란다.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듣고 난 후, 꼭 과거로 회귀했거든.”
“무슨 일들이 있었습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도희도 묻고 싶었던 건지 따지지 않고 아줌마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날 포함해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궁금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는 탓에 결국 천천히 말해줬다.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회귀했어. 전멸했을 땐 당연하고, 도희나 태천이가 다쳤을 때도 회귀했지.”
“…….”
“유일하게… 도운이가 하트 브레이크를 써서 두 사람을 구했을 때 고정 시간대가 풀렸어.”
즉, 아줌마의 예상대로였다.
전대 세계수 페어는 내 심장을 고장 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목적인 족속이었다면, 너희 둘이 다치든 죽든 신경 쓰지 않았을 거로 생각해.”
아줌마의 말을 듣고 나서 도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해했으면서, 순순히 인정하기 싫은 눈치였다.
아직 애라니까.
그 점이 귀여운 거긴 하지만.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가만 보면 관리인은 도희를 엄청 어화둥둥 한다고 전합니다.]엥?
새싹아, 그건 네가 잘못 본 거야.
난 우리 도희를 대놓고 어화둥둥 해주고 있거든.
도희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면 내가 켕기는 게 있다고 손가락을 덜덜 떨 것 같아?
더 비꼬지 못한 마음에 안타깝고 아쉬워서 손이 덜덜 떨리는 거면 모를까.
[세계수가 관리인을 못마땅하게 흘겨봅니다.]그때, 서인철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음. 도희야.”
“…왜요?”
“아무튼, 3년 전에 있었던 일은 납득이 된 거지?”
“……네. 뭐.”
도희가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마음 같아선 납득되지 않았다고 따지고 싶은 듯했다.
뭐, 전대 세계수나 전대 관리인이 눈앞에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도희의 대답에 서인철이 빙긋 웃었다.
“그럼, 아까 하던 얘기로 되돌아가도 되겠네.”
“하던 얘기요?”
“원장님이 봤다던 미래 말이야. 나 내가 원래 뭐였는지 엄청 궁금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길 하고 있었지….
3년 전 일에 대해 생각하느라 완전히 깜빡 잊고 있었다.
서인철이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아줌마를 바라봤다.
이마에 가르쳐달라는 말을 써 붙인 듯한 모습이어서일까?
아줌마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인철이 너는 지금처럼 A급 헌터가 돼.”
“오.”
“근데 엄청난 카사노바라서 하루가 멀다고 살해 위협받아. 별호도 ‘카사노바’였지.”
“앗.”
“어렸을 적 인철이 생각하면 아주 그럴듯하네요.”
충격받은 서인철 옆에 앉은 이현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이현욱을 아줌마는 가엾고 딱하게 바라봤다.
“그런 서인철의 파트너인 현욱이 너도 함께 살해 위협을 받았고.”
“…데리고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별호는 ‘먹을 가까이 한 백로’란 뜻에서 ‘근묵백로(近墨白鷺)’.”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회의실에 짧은 웃음이 지나갔다.
이어 한재임이 손을 들었다.
“아. 재임이 너는-”
“아니요. 저 말고 태천이 가르쳐주십시오.”
“…….”
진짜 질린다, 너.
아줌마는 딱 그리 말하는 듯한 얼굴로 한재임을 바라봤다.
그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회의실에 있는 대다수가 그런 얼굴을 했다.
이 와중에 자기 미래가 아니라 태천이 미래를 물어보는 게 굉장히 한재임스러웠다.
오죽하면 태천이조차 시선을 깔고 이마를 긁적일까.
“태천이는….”
아줌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재임의 행동이 질리긴 했지만, 나도 녀석보다는 태천이 미래가 더 궁금했다.
태천이는 뭐였으려나?
“늘 똑같았어.”
“똑같았다고요?”
“어떤 미래에서든지 우리나라의 유일한 S급 헌터가 됐지.”
오, 역시 태천이….
나처럼 생각하는 녀석들이 잔뜩 모인 회의실엔 자랑스러움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한재임은 입꼬리가 쭉 찢어져 두 귀에 닿을 정도였다.
누가 보면 태천이가 아니라 지가 S급 헌터가 된 줄 알겠다.
그때,
“잠깐만요.”
도희가 눈을 찌푸린 채로 끼어들었다.
“태천 오라버니가 언제나 유일한 S급 헌터가 됐다고요?”
“…응.”
“그럼 오라버니는요?”
도희가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태천이가 유일한 S급 헌터가 됐다면, 난 못 됐다는 거다.
그럼, 그 시간선에서 난 뭘 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