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7
제469화
“안녕하세요!”
10분 전, 자신을 정하설이라고 소개한 A급 헌터가 밝게 인사했다.
그 인사는 내가 아니라 정면을 향했는데, 그곳엔 나와 그녀를 촬영하는 네다섯 대의 카메라가 서 있었다.
그렇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 마음과 달리 인터뷰를 하게 됐다.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떠나려던 내 생각이 도희의 강압과 강요에 패배하고 만 것이다.
“나, 나는… 세상 사람들이 오빠를 오해하고 있는 게 슬프고 싫단 말이야…!”
-라고, 도희는 가증스럽게 눈물을 글썽이며 날 위협했다.
결국, 세상 착한 오빠인 나로서는 도리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는 건 반칙 아니냐고.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도희의 애원이 어떻게 위협으로 왜곡되는 건지 당황합니다.] [또한, ‘세상 착한 오빠’라는 표현을 비난합니다.] [‘세상 착한 동생’이라는 표현이라면 인정할 수 있겠다고 전합니다.]흥….
“올해에도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이 자리에 있게 된, A급 헌터 정하설입니다!”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오는 동시에 정하설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따스한 손길이 잘 통한 것 같아 다행이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긴장감에 짓눌려서 헛구역질할 정도로 괴로워했었다.
뭐, 그럴 만했다.
그녀가 아무리 방송에 익숙한 헌터라고 해도 현재 방송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컸으니까.
긴장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정하설이 두 팔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지금 제 옆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핫하게 된 분이시죠! 한국의 S급 헌터, 백도운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대충 인사를 건넸다.
정하설에 비해 텐션이 너무 낮았던 탓일까?
그러자마자 카메라 옆에 서 있던 도희와 배수현 국장이 눈을 부라렸다.
배수현이야 그러든 말든 제 눈만 아플 테니 별생각 없었지만….
[이왕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세계수는 방금 도희가 속삭이듯 중얼거린 경고를 관리인에게 전달합니다.]도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런 텐션으로 계속 방송에 임하면, 엄청나게 잔소리를 해댈 게 분명했다.
할 수 없지….
잔소리를 듣기 싫은 거지, 절대 도희가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을 집어넣지 않고 [세계수 키우기]를 계속하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미안합니다. 이런 방송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긴장이 되네요.”
“네? 아… 그, 그렇군요! 네. 이런 방송은 처음이시니까…!”
정하설의 입가가 떫은 것을 마신 사람처럼 떨렸다.
긴장했다는 사람이 인터뷰하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냐?
그렇게 따져 묻고 싶은 얼굴이다.
생방송 중이기에 제 할 말만 이어나갔지만 말이다.
“오늘 이렇게 직접 나오신 게… 뭔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라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겸사겸사 어젯밤부터 나온 별의별 말에 관해서도 말하고요.”
대답하면서 도희를 쳐다봤다.
도희는 흡족한 듯 미소를 살포시 지어 보였다.
짝!
정하설이 손뼉을 쳐 시선을 모았다.
“그럼,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시죠.”
“어젯밤, 영국의 한 신문사 ‘라르바오스(larvaōs)’에서 세계 헌터 협회가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세계 헌터 협회가 인정해 세상이 깜짝 놀랐는데요.”
“네.”
“그 이유가 블랙 드래곤이 인류에게 공격적인 활동을 보일 거라는 추측 때문이라던데. 그에 대해 백도운 헌터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측이 아니라 사실인데요?”
“…….”
정하설의 눈과 입이 확장됐다.
100m 떨어진 곳에서 봐도 아연실색한 얼굴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뭐, 그럴 만하긴 했다.
원래 그녀의 질문에 내가 하기로 예정됐던 대답은 “그 추측대로일 가능성이 큽니다.”였으니까.
그런데 난 그러겠다고 동의한 적 없거든.
물론, 별생각 없이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크라우드라는 놈들 탓이에요.”
“네, 네…?”
“그놈들이 블랙 드래곤의 심기를 건드렸거든요.”
그 순간, 정하설의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멍하니 동공이 풀려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빛났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내 속뜻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사실, 오늘 인터뷰에서 블랙 드래곤이 위협적인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예정이었다.
아예 말하지 않거나 아쉽게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식으로.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족, 아바돈.
그놈이 블랙 드래곤의 뒤통수를 쳐서 우리 세상에 던져버린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놈의 권속이 모인 크라우드가 감당해야 옳지 않겠는가?
“즉, 백도운 헌터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저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던데, 아닙니다.”
“그런가요?”
“네. 앞서 말씀드렸듯이, 크라우드 그놈들이 블랙 드래곤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벌어진 일이에요.”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아! 그럼, 백도운 헌터가 블랙 드래곤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소문도 헛소문이겠네요?”
“아뇨. 그건 사실인데요.”
“…네?”
정하설의 얼굴이 또다시 아까처럼 변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똑같았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도희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는 거다.
그 사실을 뭐 하러 솔직하게 털어놓냐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이라고요…?”
정하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노로 인해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대체 그게 왜 사실이냐고 따지고 싶은 듯했다.
왜냐고?
그야….
“생각해 봐요.”
“생각이요?”
“드래곤씩이나 돼서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데,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
“그래, 안 그래?”
“그, 그래요….”
대답을 종용하자 정하설이 힘겹게 답했다.
긍정의 뜻이 담긴 대답이었지만, 45도 아래로 내리깐 눈에서는 부정이 느껴졌다.
드래곤씩이나 되니까 꾹 참고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서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블랙 드래곤은 이미 인류를 학살하기로 한 상태였으니까.
아바돈의 권속인 크라우드를 갖다 줘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비 좀 걸었어요. 잘했죠?”
“…….”
정하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못 들었나 왜 대답이 없어?
“나 잘-”
“그럼 다음 질문하겠습니다!”
정하설이 내 말을 끊어냈다.
인터뷰자가 목소리를 키워서 말을 뭉개버려도 되는 건가?
황당함을 느끼는 내게,
[웃어요.] [세계수가 도희의 말을 관리인에게 전달합니다.]새싹이가 도희의 말을 전해왔다.
어이가 없네….
무슨 메신저도 아니고, 아까부터 왜 자꾸 말을 전달하는 거람.
그때,
“블랙 드래곤 토벌대는 어떤 분들로 구성됐나요?”
정하설이 말했던 대로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빠로서 동생의 부탁을 들어준 거다.
절대로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백운천 길드, 리롄제 영감님과 제자들, 밀러와 그녀의 학파가 포함됐습니다. 아. 교황청에서 이자벨 성녀님과 고위급 사제들을 보내주기로 했고요.”
“와…! 정말 대단한 분들이 모였네요!”
얼씨구?
이 어색한 감탄은 뭐람.
잘하다가 갑자기 왜 연기 톤이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그런데… 왜 막심 스미르노프 헌터는 없는 거죠?”
“오….”
깜짝 놀라 탄성이 나왔다.
이 질문은 대본에 없었다.
즉, 세계 헌터 협회와 입을 맞춘 질문이 아니란 뜻이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아슬아슬한 질문을 끼워 넣을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배수현이다.
“…….”
나와 눈이 마주친 배수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블랙 드래곤의 위협.
그것을 대비하고자 모두가 힘을 합치는 가운데, 한 발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러시아와 스미르노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웬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판을 깔았는걸?
그렇다면 놀아줘야겠지.
“블랙 드래곤이 무서웠나 보죠.”
꼴깍….
정하설이 침을 삼켰다.
방금 내 발언이 자기 생각보다 훨씬 셌나 보다.
아마 “어쩔 수 없이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라고 대충 둘러댈 줄 알았나?
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배수현도 그런 대답을 바라고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닐 테고.
“이해는 해요.”
“네?”
“자신을 황제라고 지칭하며 자기보다 약한 놈들하고만 싸운 우물 안 개구리가… 감히 어떻게 블랙 드래곤과 싸울 생각을 하겠어요?”
“…….”
정하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백도운 헌터의 발언은 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 본심을 억누르며 인터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렇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목소리가 덜덜 떨리긴 했지만 말이다.
나와 배수현 때문에 고생이 많군.
“그런데…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네요.”
“……?”
“얼마 전, 에디탓 그위친이 정령이 됐잖아요.”
“아.”
“신화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가 함께 싸울 수 없다는 현실이 아쉽고 걱정이 되네요….”
그러고는 정하설이 고개를 살짝 숙인다.
스미르노프 때와 달리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절대 그위친을 비난하려고 한 발언이 아니었으니 조심하는 건 당연했다.
아마 지금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그녀의 말처럼 걱정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테지.
그리고 아마 한진환의 부재(不在)에도.
“괜찮아요.”
덤덤하게,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절망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에디탓 그위친과 한진환 없이는 토벌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성공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끔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사실을 밝히면 된다.
“블랙 드래곤 토벌은 성공합니다.”
성공할 겁니다.
성공하겠습니다.
추측도 아니고, 다짐도 아니다.
담담한 사실이다.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가요?”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거든요.”
또다시 사실을 담담히 말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세계수 관리인.
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시선이다.
그럴 만했다.
이 세상에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와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마족에 관련된 놈들만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다면, 짐작건대 한 명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황하는 것도,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그러니 지금부터 그 증거를 보여드리죠.”
“증거라면, 혹시…?”
“네. 짐작하신 대로, 세계수를 보여드리겠다는 뜻이에요.”
그리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새싹이는 현재 잠실 타워만 한 크기였으니,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데서 소환할 수는 없었다.
“흠….”
물러날 만큼 물러났다고 생각한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사람들의 모습이 내 손가락처럼 작다.
이 정도면 소환해도 괜찮을 것 같네.
“새싹아.”
[세계수가 나뭇잎을 쫑긋합니다.]“드디어 내가 관리인이란 걸 밝히네. 기분이 어때?”
[세계수는 기쁜 마음으로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이어 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하니 무척 설렌다고 전합니다!]“그러게. 나도 설레는걸.”
그러면서 푸른빛의 마나를 뿜어냈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온몸의 마나가 한꺼번에 소실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계수 소환.”
나는 세계수를 소환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런데 왜일까.
높디높은 곳을 우러러보는 시선들이 아니다.
뭐랄까….
내 머리 위를 보는 느낌?
저 시선들을 분명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
“아.”
설마….
새싹이 너 지금 내 머리 위에 소환된 거니?
[세계수가 초록의 나뭇잎을 세차게 흔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