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8
제500화
리롄제의 온몸이 불타올랐다.
난데없이 웬 화형을 당하나 싶어 쳐다보니, 다행히 데미지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붉은 화염이 검강처럼 몸에 둘린 듯한 모양새였다.
“끌끌…. 이건 또 무엇인고?”
리롄제가 웃으며 중얼거린다.
화염이 제 몸에 둘려 있는데 지가 모르면 어떡해?
누가 보면 딴사람 불타오르고 있는 줄 알겠네….
그런 속마음을 중얼거린 순간,
“음?”
화르륵!
리롄제의 몸을 뒤덮고 있던 화염이 위로 솟구쳤다.
그렇게 솟구쳐서는 붉고 커다란 날개가 되어 해골의 창들을 전부 막아냈다.
아니, 막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으려나?
저 창들은 실드 마법 같은 거로는 막을 수 없었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거대한 날개 모양의 화염이 저 창들을 전부 붙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그리고… 난 저 날개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데이모스…?”
리롄제가 중얼거린 이름의 주인.
레드 드래곤, ‘데이모스 모노스’가 바로 저런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영웅(英雄)들의 개선(凱旋)이다.』
화염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이 동시에 말하는 듯하면서도 귀에 또박또박 박히는 느낌….
데이모스의 목소리였다.
『감히, 누가 그것을 방해하는가!』
화르륵!
세상을 뒤흔들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울린다.
붉은 화염의 날개가 펄럭이고는 붙들고 있던 창들을 전부 해골에게 도로 날려 보낸다.
“허억…!”
분명 해골의 의지로 조종당하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새카만 창들은 제 주인을 죽일 듯이 쇄도해갔다.
결국, 해골은 창들을 꺼냈던 아공간을 다시 펼쳐 집어넣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예상컨대 해골의 몸은 자기가 벼린 창들에 꽂혀버렸으리라.
저 검은 뼈다귀 몸에 얼마나 박혔겠느냐마는.
“이건, 이건 레드 드래곤의…?”
“어째서! 어째서 그놈이 끼어든단 말이냐!”
원이 허망한 목소리로 의문을 중얼거리고, 해골이 거칠게 분통을 터뜨렸다.
레드 드래곤의 마법이 우릴 보호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도 저놈들과 다를 게 없었다.
리롄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끌끌끌. 도와주지 않겠다더니….”
그러게나 말이다.
레드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은 우리가 찾아갔을 때 돕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화르륵…!
검은 창들이 아공간 속으로 사라진 탓일까?
허공에서 우리를 감싸듯 펼쳐져 있던 화염의 날개가 다시 리롄제에게로 돌아왔다.
정확하게는 리롄제의 목에 걸린 마법 주머니를 향해서였다.
마법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화염을 보면서 리롄제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답지 않게 가져가라고 강요하더니만….”
얼씨구, 강요했다고?
“방금, 데이모스님이 강요했다고 말했습니까?”
“그리 말했네. 괜찮다는 데도 기앙(企仰)을 담았다면서 꼭 가져가라고 억지로 쥐여줬었거든.”
“하, 이 드래곤들이 정말….”
아무래도 데이모스도 알루키노르처럼 억지를 부렸나 보다.
드래곤들이라서 그런가?
어떻게 된 게 둘이 하는 짓이 똑같은 것….
아니. 아니지.
이렇게 유사하게 행동한 것을 보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는 것은 이상하다.
자기들끼리 모르는 척 우리를 도와주자고 협의했다고 보는 게 훨씬 더 가능성이 컸다.
정말이지, 엉큼하기가 이를 데 없는 드래곤들이다.
“…으음?”
리롄제가 도로 목에 걸린 마법 주머니를 바라봤다.
이제 보니, 데이모스의 화염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르륵….
붉은 화염이 마법 주머니에서 도로 뿜어지더니 리롄제의 심장을 타고 오른팔로 향했다.
“허!”
리롄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리롄제의 오른팔은 화염으로 이뤄진 팔로 바뀌어 있었다.
한진환의 오른팔이 번개로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현상을 보고선,
“으음…!”
“말도 안 되는…!”
우리보다 크라우드 놈들이 더 당혹스러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와 달리, 저놈들은 저런 모습을 했던 한진환과 직접 싸웠었으니까.
저놈들의 수족인 늑대와 풍뎅이가 죽은 것도 그날이었고.
좋지 못한 기억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고 있을 테지.
그런데….
솔직히 저거 오래 유지될 것 같지는 않은데?
10분이라….
정말 얼마 유지 못 하네.
아쉽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는 저놈들을 죽일 수 없었다.
혐오스러운 어둠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데다가 해골과 원은 아직 변태 능력을 쓰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변태 능력을 쓰기 전에 죽이기도 쉬워 보이지 않았고….
뭐,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저놈들은 그 사실을 몰랐으니까.
“광합성 각성 모드.”
바로 광합성 각성 모드를 쓴다.
두 팔이 순식간에 나뭇가지가 얽힌 듯한 형태로 바뀌었다.
“백도운 저놈까지…?”
“저따위 놈이 어떻게 저걸 쓴단 말인가!”
내 팔을 본 해골과 원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팔 하나만 바꿨던 한진환을 상대했을 때도 힘들어했던 놈들이니 당연했다.
변태 능력을 쓰지 않았건 전력을 다하지 않았건….
놈들이 수족을 잃고 패퇴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양팔 전부가 변해 있었다.
그날의 한진환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다.
당연히 저놈들이 보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리라.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너희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리 말하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랬을 뿐인데, 새싹이가 걱정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리면서 관리인에게 싸울 생각이냐고 질문합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현재 관리인은 목에 둘린 무기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며, 리롄제의 오른팔은 앞으로 9분 17초 후면 원래대로 되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또 들끓는 어둠이 이곳에 있는 인간들의 정신력을 갉아먹으려고 해서 전투를 이어나가기 좋은 편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새싹아.
그렇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현재 상황은 나도 잘 아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
[…….]그 줄임표 뭔데.
형 못 믿어?
[세계수가 마지못해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이어 관리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감시….] [잘 지켜보겠다고 전합니다.]감시?
정말 너무하네.
그 말을 끝으로, 크라우드에게 집중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죽으러 제 발로 찾아와줘서 고맙다.”
“웃기는 소리!”
푸학!
해골의 몸에서 검은 마나가 뿜어지며 아공간에서 새카만 창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왔다.
또 저거야?
하여간 멍청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이라니까.
방금 데이모스가 화염의 날개로 보호해준 것을 잊어버린 건가?
그 덕분에 이곳에 있는 모두는 이제 저 창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저걸로는 우리를 위협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원이 끼어들면 상황은 또 달라지리라.
“‘화륜(火輪)’….”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원이 륜을 소환하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달달….
이름 그대로 불꽃을 뿜어내는 륜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래도 되나?
저러면 위에 정좌하고 있는 원도 따라서 돌아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건만….
“어라?”
원의 몸은 올라탄 륜을 따라서 돌지 않았다.
내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다니.
“…왜 안 돌고 지랄이야?”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네 몸 말이야. 돌아가는 륜 위에 올라탄 주제에 왜 안 돌아가는 건데?”
“…….”
원이 입을 다문다.
말문이 막힌 듯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남의 기대심을 제멋대로 무너뜨렸으면 응당 그래야 하는 법이다.
“지금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할 때예요?”
도희가 툭 던지듯 잔소리를 했다.
시답잖은 소리라니…,
달달 돌아가는 륜 위에 올라탔으면 몸도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지 않나?
“나 엄청 기대-”
“집중해요, 제발.”
도희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내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이자벨 성녀와 함께 빛의 성역을 발동했다.
전용 버프 포션의 효과가 끝났다는 게 조금 아쉽군.
남아 있었다면 지금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밀러.”
“네.”
“그를 소환해요.”
“알았어요.”
밀러는 싱긋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로 소환 마법을 썼다.
그런데,
–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텔레파시 마법으로 전달한 말에선 미소에서 본 자신감을 찾을 수 없었다.
문제가 있다고?
지그시 바라보자 그녀는 바로 그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 소환을 오래 유지하진 못해요. 세계수 덕분에 마나는 차고 넘치지만, 제 정신력이 문제라서요….
아, 난 또 뭐라고.
어차피 소환을 오래 유지할 필요 없었다.
금방 끝이 날 테니까.
어깨를 으쓱이자, 밀러는 내 의중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으응? 밀러. 왜 또 소환을… 호오?”
에디탓 그위친이 소환됐다.
그는 상황을 바로 파악한 듯 고개를 들어 크라우드를 바라봤다.
리롄제의 오른팔을 봤을 때처럼.
내 두 팔을 봤을 때처럼, 원과 해골이 경악을 내비쳤다.
설마 그위친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지.
“어찌하여 네놈이 여기 나타난 것이냐! 네놈은…! 네놈은 네놈의 숲에서만 활동할 수 있지 않으냐!”
해골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던 크라우드가 왜 한국에까지 와서 활동했겠는가?
또 그 많은 헤미스파이리움을 가지고 어째서 가장 먼저 그위친을 노렸겠는가?
답은 뻔하다.
저놈들은 그위친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극도로.
“…너희는 여전히 멍청하구나.”
“뭐라고?”
“진정으로, 내가 그 이유를 친절하게 가르쳐줄 것으로 생각했나?”
“…….”
빠드득.
해골이 이를 악문다.
살살 더 긁으면 분노에 이성을 잃어 공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더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대신에 아까 못다 한 말을 하기로 했다.
“야. 해골.”
“뭐냐.”
“아까 내가 말했던 거 기억나냐? 정말로 너희가 올 걸 예상 못 했겠냐고 했었는데.”
“…….”
해골이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데이모스의 화염이 솟구치기 직전 했던 내 말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듯했다.
내가 준비했던 것.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할 해골을 위해 소리쳐 불렀다.
“막심 스미르노프!”
러시아의 폭군.
블랙 드래곤 토벌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S급 헌터의 이름을.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백도운!”
시답잖은 외침과 함께, 협곡 너머에서 거인이 나타났다.
태천이보다 조금 덜 잘생긴 거인은 바로 크라우드를 향해 체중을 실은 주먹을 내뻗었다.
쾅!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파열음이 들린 후,
“……!”
해골과 원이 다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거인이라고 해도, 스미르노프의 주먹은 놈들이 있는 곳까지 닿지 못했다.
그런데도 놈들이 자리를 피한 것은 스미르노프의 주먹 대신 주먹이 내지른 풍압(風壓)이 닿아서다.
복싱이라도 배운 모양이다.
답지 않게 반성이라도 했나?
정말로 그랬다면, 복싱만 훈련하지는 않았겠군.
“네게 이름을 불리니 기분이 몹시 나쁘구나.”
스미르노프가 투덜거렸다.
어이가 없네.
이름 불렸다고 기분이 나쁘면 자기 탓 아닌가?
“어쩌라고?”
“다음부턴 정중하게 ‘госуда́рь’라고 부르도록.”
폐하?
저놈은 여전히 개소리를 밥 먹듯이 하네.
확 반성하게 만들어줄까 보다.
[세계수가 시간이 7분 남았다며, 관리인을 재촉합니다.]…뭐.
일단 해야 할 일부터 해야겠지.
크라우드를 올려다본다.
내 머리 위의 새싹이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짜잔!”
자랑스럽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