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27
제529화
이성훈 대리는 옥상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오른발도 왼발도 앞으로 내딛으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블랙 드래곤이 썼다는 그림자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두 발이 그림자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기이한 현상 때문이었을까?
“…….”
그는 마치 게이트에 진입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 번도 진입한 적이 없건만, S등급 게이트에 진입하면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 옥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백도운이었다.
세계수 관리인.
드래곤 슬레이어.
광운.
여러 별호로 불리는 도운은 아스트라페 앞에 눈을 감고 정좌하고 있었다.
“꼴깍….”
평소였다면, 이성훈 대리는 도운의 모습을 보고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정좌하고 있다고 해서 명상하고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도운은 깊이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옥상 문을 열기 전의 이성훈이라면 믿지 못했을 광경이기에, 그는 조용히 도운을 바라봤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름을 부른다거나 해서 도운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이성훈 대리는 옥상으로 올라온 이유까지도 잊어버린 채 도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우웅…!
진동 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이성훈 대리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스마트폰이 울린 것이다.
그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내고 수신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
진동 소리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인지, 도운은 두 눈을 뜨고 이성훈 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운의 눈은 고요했다.
방해를 받은 데 따른 불만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성훈 대리를 향한 어떠한 감정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 치이는 돌멩이를 봐도, 지금보단 감정이 많이 담겨 있으리라.
파르르….
그런 생각을 하자 이성훈 대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 것이다.
또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내가 아는 그 인간이 맞는지 의심도 피어올랐다.
이성훈 대리가 조심스럽게 도운을 불렀다.
“백, 팀장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끔뻑끔뻑.
두 눈꺼풀이 닫혔다 열리기만 반복했다.
“백-”
덥석.
이성훈 대리가 다시 도운을 부르려고 했을 때, 누군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너무 놀란 이성훈 대리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의 뒤에는 어느새 올라왔는지 알 수 없는 이태천이 서 있었다.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 채로.
“쉿…. 괜찮으니까 조용히 해요.”
“괜찮다고요? 저게요?”
“네.”
싱긋.
간단히 대답하면서 이태천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생긴 미남의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 힘으로 인해서 이성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의문을 묻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지나쳐 도운에게 다가가는 이태천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태천은 이성훈 대리가 두 발이 바닥에 달라붙어서 내딛지 못했던 옥상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옥상으로 발을 내디뎠기 때문일까.
“도운아.”
아니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일까.
이성훈을 향해서 끔뻑이기만 했던 두 눈이 이태천에게로 천천히 옮겨갔다.
“다들 기다려.”
“…….”
이성훈 대리가 불렀을 때와 같다.
도운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천은 도운 앞으로 걸어갔다.
계속해서 말을 걸면서.
“대체 언제 내려오는 거냐고 불평불만이 가득해.”
“…….”
“이건 내 생각이긴 한데, 이대로 조금만 더 늦으면 도희 머리에 뿔이 자라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
“뭐, 그래도 도희는 귀엽겠지만. 그치?”
우뚝.
태천이 도운 앞에 섰다.
한낮의 태양처럼 따사로운 미소를 지은 채로 도운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 같이 가자. 나랑.”
“…….”
움찔.
무릎 위에 놓인 도운의 집게손가락이 쭉 펴졌다.
톡, 톡….
이어 길게 뻗은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아주 천천히,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그와 동시에 태천을 올려다보는 도운의 눈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도 그랬다.
“…방금 도희 머리에 화가 나서 뿔이 자라났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것도 나 때문에. 맞아?”
그 질문을 듣고, 태천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
태천이 나를 내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한낮의 태양이 후광처럼 떠 있어서 그런가?
마치 미형의 신이 강림해 내게 웃고 있는 듯했다.
덥석.
그가 내게 내민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음. 얼추 맞아.”
“얼추 맞는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건 스마트폰을 보면 알 수 있을걸.”
“……?”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평소처럼 [세계수 키우기]가 떠올라 있었다.
잠시 백그라운드로 옮기고 내게 온 연락들을 확인했다.
도희에게 전화가 와 있었는데, 놀랍게도 가장 처음에 온 연락이….
“30분 전? 30분 동안 이렇게 연락을 했었다고?”
“그래. 너랑 하도 연락이 안 돼서 내가 올라온 거야.”
“하지만, 난 전화 온 거 전혀 못 느꼈는데?”
“그야 그랬겠죠! 길마님이 올라오기 전까지 팀장님 엄청 이상했었다고요!”
멀리서 이성훈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녀석은 옥상 문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었다’라는 말을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날 쳐다보는 표정이 퍽 괴상했다.
생소하고 낯선 것을 본 사람이 꼭 저런 얼굴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 이상했어?”
“아니? 원래의 너였어.”
얼씨구.
두 사람 말이 완전히 다르네.
내가 의아함을 느껴 고개를 갸웃거릴 때,
“하…!”
이성훈이 기가 찬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뭔가 따지고 싶은 얼굴을 했는데, 녀석은 결국 한숨만 푹 내쉬었다.
답답한 마음을 해갈하고자 제 가슴을 퍽퍽 치긴 했다.
나도 모르게 뭔 일이 있긴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이성훈 넌 왜 여기 있냐?”
“한 부장님이 팀장님 데려오라고 시켜서요. 혜택 리스트를 살펴보느라 바쁘디바쁜 저한테!”
“혜택 리스트? 너 그걸 아직도 읽고 있었어?”
일리스가 찾아와 리스트를 건네주고 떠난 지도 벌써 3주일이 지났다.
월까지 바뀌어서, 이젠 겨울이 아니라 봄이 다 됐다.
그런데 그걸 여태 읽고 있었을 줄이야….
“…….”
이성훈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 같아선 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읽어도 읽어도… 다음 페이지가 계속 나온다고요….”
“그야 그렇겠지.”
혜택 리스트의 두께는 손바닥을 활짝 펼친 것보다도 두꺼웠다.
아직도 읽고 읽냐고 말했었지만, 사실 나였다면 아마 1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거다.
요령을 피워 대충대충 넘겼겠지.
이성훈이 계속 말을 이었다.
“심지어 요약 정리된 거잖아요?”
“음, 그렇지.”
“상세히 파고들면 말이에요? 한 페이지가 다섯 페이지나 열 페이지가 되기 일쑤라고요!”
“오….”
확실히 그건 좀 끔찍한걸.
그렇게나 늘어나다니, 도희나 한재임이 읽었어도 금방 읽지는 못했겠다.
아마 태천이라면 평생이 다 걸려도 못 읽겠지.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음…. 뭐, 힘내라.”
“그 대수롭지 않게 건네는 응원이 더 얄미워요.”
“그럼 힘내지 말던가?”
“…….”
부르르…!
이성훈의 주먹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도 결과는 아까와 비슷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어깨를 축 늘어뜨린 거다.
올바른 결정이었다.
나와 말다툼을 해봐야 읽어야 할 혜택 리스트의 분량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조금만 힘내요.”
태천이 끼어들었다.
내가 한 응원과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사실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태천의 응원엔 내 것과 달리 진심이 담겨 있었으니까.
“인원 더 붙여줄게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길마님!”
“정말이고 말고요. 혼자서 그렇게 고생하는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역시, 기사님이세요! 저런 구름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네요!”
구름 따위라니.
저거 지금 날 향해서 하는 말인가?
그 구름이 뭘 할 수 있는지 좀 보여줘야 하나….
태천이 활달한 목소리로 한 가지를 요구했다.
“대신, 한 가지 부탁 좀 들어줄래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오늘 옥상에서 본 건 우리만의 비밀로 해줘요.”
“아….”
“그렇게 해 줄 수 있죠?”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혹시 왜 그래야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하.”
이성훈의 질문에 태천은 짧게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는 명백한 거절 의사가 담겨 있었다.
이내 이성훈이 나를 돌아봤다.
질문했던 일 자체를 없애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참. 팀장님.”
“왜?”
“오늘 이곳저곳 어수선하더라고요.”
“어수선하다고?”
“네. 그리고 그건 아마 팀장님 때문일 거예요.”
“……?”
뭔 소리래.
그동안 난 아무것도 안 했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이후로 봄이 찾아올 때까지, 내가 한 것이라곤 오로지 수행뿐이었다.
도희나 한재임은 일을 다 떠넘긴다며 내게 불평을 해대긴 했지만….
어쨌거나 난 이곳저곳에서 어수선해질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성훈이 눈을 찌푸렸다.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 참 얄밉네요. 팀장님.”
“난 어이가 없거든? 뭘 했어야 짐작이라도 하든가 말든가 하지.”
“네, 네. 그러시겠죠.”
이성훈이 손을 휙휙 휘젓는다.
더 말하기 귀찮다는 그 모습이 참 괘씸했다.
확 그냥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줄까 보다.
“아무튼, 저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성훈이 힘차게 인사를 하고선 옥상을 내려갔다.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는….
“도운아.”
이성훈이 내려가고 둘이 남게 되자, 태천이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완성한 거지?”
“완성?”
“각성 말이야. 방금 전신 각성을 할 수 있게 됐잖아, 너.”
“…….”
태천이의 말대로였다.
난 방금 전신을 각성할 수 있게 됐다.
그걸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어떻게 알았냐? 그럴 수 있게 됐다는 거.”
“너 분위기가 달라졌었거든.”
“분위기?”
“응. 분위기. 마치… 세계수나 드래곤 앞에 선 느낌이랄까?”
“허어…?”
“아마 이성훈 대리가 옥상에 발을 디디지 못한 것도, 그걸 본능적으로 느껴서였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이성훈은 옥상 문 앞에 서 있었다.
태천이보다 먼저 올라왔다던 놈이 옥상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게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였나 보다.
그렇다면,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다른 애들은 괜찮으려나?”
“응?”
“조금 전의 이성훈처럼 굴면 어쩌나 싶어서.”
“아아. 그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달라졌었다고 말했잖아. 너 지금은 평소랑 똑같아.”
“어라. 그래?”
“그러니까 이성훈 대리가 평소처럼 말했지.”
“아아.”
영문을 모르겠는걸.
전신 각성을 할 수 없게 된 것도 아닌데….
왜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온 거지?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태천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안 돌아왔어도 별로 문제는 안 됐을걸?”
“응? 왜?”
“어차피 애들은 너 별로 안 좋아하니까.”
“…….”
“오늘따라 유독 더 불편하다고만 여기고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을 거야.”
“…….”
이것 참….
굉장히 불쾌한데,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녀석들이 날 싫어하는 건 명백한 진실이었으니까.
“아. 도희 전화다. 이러다 진짜 머리에 뿔 자라나겠어. 빨리 내려가자!”
그리 말하고는 태천이는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도희의 머리에 뿔이 자라난다면, 분명히 귀여울 거다.
하지만 그 뿔로 나를 공격한다면 얘긴 달라지는 법.
나도 서둘러 태천이를 뒤쫓아갔다.
자,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어수선한 건지 알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