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44
제546화
“후우…!”
가지치기가 끝났다.
내 키보다도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난 것이 보인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이 숲은 현재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뒤덮었다.
세계수의 마나를 뿜어내면서 말이다.
[세계수가 아프리카 대륙을 살핍니다.] [대륙에서 느껴지던 ‘아바돈의 권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혐오스러운 기운을 지닌 존재는 딱 둘뿐이라고 덧붙입니다.]새싹이의 설명에 고개를 든다.
하늘에는 해골과 원이 함께 있었다.
가지치기를 통해 새로 우거진 숲에서 세계수의 마나를 느끼고 부랴부랴 하늘로 도망친 것이다.
마음 같아선 더 높이 날아오르고 싶었겠지만, 놈들은 아스트라페의 결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갔다간 결계가 뿜어내는 번개에 튀겨질 테니까.
전기 모기 채에 걸린 날벌레 같은 꼴이 되는 거다.
“어때?”
“…….”
“내가 말한 대로 됐지?”
“…….”
해골과 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했다.
그러나 새카만 해골과 불상 같은 얼굴에서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해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
숭배하던 마족의 기운이 5분도 안 돼서 정화돼버린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리라.
하지만 부정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현실이 아주 잔인하게 놈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제 심상 세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도 없겠네.”
“……!”
까딱.
그리 말하며 검지를 한 번 가볍게 움직였다.
그 단순한 동작에 해골과 원이 몸을 움찔거렸다.
마치 딱밤을 쥐어박힌 사람처럼 말이다.
뭐, 곧 그리되긴 할 거다.
내가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줄 생각이었으니까.
“…….”
“…….”
해골과 원이 서로를 쳐다봤다.
아마 놈들은 지금 속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논하고 있겠지.
물론 헛수고였다.
놈들에게 지금 상황을 극복해낼 방법은 전무했다.
그리 생각했을 때, 놈들이 동시에 행동에 나섰다.
“얼씨구.”
왼쪽을 바라보고, 이어 오른쪽을 바라봤다.
해골과 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한 탓이다.
둘 중 한 놈이라도 내게서 벗어나자는 생각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간 거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놈들이 도망간다는 선택지는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도 구석으로 몰리게 되면 도망갈 것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곳에서조차 도망을 간다면 후일을 어떻게 도모하려고?
뚜벅….
앞으로 발을 내디딘다.
그러자마자 시야가 변했다.
내게서 도망치기 위해 전속력으로 날고 있는 해골의 앞으로 이동해온 거다.
즉,
“어디 가?”
놈의 쇄골을 붙잡고 있는 동안 씨앗을 심어놓았다는 뜻이다.
“……!”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 해골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어 곧바로 방향을 바꿨는데, 내 오른손이 훨씬 더 빨랐다.
꽉!
놈의 새카만 목을 덥석 붙잡았다.
“안 되지. 나 하늘 못 난단 말이야.”
“크헉…!”
해골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려댔다.
그럴 만했다.
세계수의 마나가 가득한 내 손에 붙들린 데다가, 놈의 쇄골에서 푸른 꽃이 자라나기까지 했으니….
마족의 권속인 놈이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그때, 해골이 황당하게도 웃음을 실실 흘렸다.
“크흐흐….”
“웃어?”
“역시 나를 선택했구나, 백도운…!”
“뭐?”
“고맙다. 나를 선택해줘서…!”
“……?”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였다.
선택해줘서 고맙다?
해골 이놈이 동료인 원을 살리고자 희생정신으로 미끼를 자청한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왜 웃어대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세계수의 마나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가?
그때였다.
꽉! 꽈악!
해골이 두 팔을 뻗더니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게 진짜 미쳤나.
갑자기 왜 끌어안고 지랄이야?
“야. 너 지금 뭐 하냐?”
“멀리 가자. 백도운!”
“뭐?”
“아주 먼 곳으로…. 네놈이 원을 방해할 수 없도록 말이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
“크흐흐…!”
내 질문에 해골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상태로 날 꽉 끌어안고 빠르게 하늘을 날기만 했다.
실실 웃어대는 꼴을 보아하니, 뭔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있긴 한 모양인데….
대답할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든 짓밟아버리기로 했다.
마음을 정한 후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잡아당겨 해골의 목을 부러뜨리려고 하는데,
[세계수가 혐오스러운 기운이 맹렬하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쩐지 다급함이 느껴졌다.
[세계수는 원이 ‘하트 브레이크’를 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하트 브레이크를?
아니. 맞서 싸우는 상황도 아니고, 도망치고 있는 주제에 그걸 왜 써?
새싹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새싹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허…?”
원의 혐오스러운 기운이 강력해진 것이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미 변태한 원이 한순간에 이 정도로 기운을 증폭시키려면, 하트 브레이크를 쓰는 수밖엔 없었다.
이해가 안 가네.
“정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거야? 왜 도망가면서 하트 브레이크를 쓰는 건데?”
“큭큭…! 다 이유가 있느니라!”
해골이 웃음을 실실 흘리며 대꾸했다.
하트 브레이크를 쓴 이유를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놈 대신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가 또다시 ‘아바돈의 권능’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현재 원에게서 느껴진다고 설명합니다!]아프리카 대륙을 정화해서 없앤 아바돈의 권능이 원한테서 느껴진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바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원의 격(格)으로는 마족인 아바돈의 권능을 발현해낼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의문을 새싹이가 해결해주었다.
[경고!] [경고!] [세계수가 마족 ‘아바돈’의 현현(顯現)을 확인했습니다!] [관리인에게 마족과의 전투를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아바돈의 현현.
그 메시지를 읽고 나서, 불현듯 에디탓 그위친의 모습이 떠올랐다.
3개월 전 끝이 없을 것 같던 깊은 구렁텅이 속에 홀로 있었던 그위친이 말이다.
또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붉은숲 던전’에서 봤던 ‘드라이어드’도 떠올랐다.
머리에 검은 뿔이 무수하게 자라나 살의(殺意)만 가득 찬 채로 움직였던 요정이….
“…….”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드라이어드의 몸에 현현했던 아바돈이지 않은가.
그위친의 몸에 아바돈을 현현하려고 했던 놈들이지 않은가.
마족 권속인 놈들의 몸에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는데… 어라?
근데 왜 지금까지 안 그런 거지?
“오오…. 느껴진다. 느껴져…! 그분의 권능이! 압도적인 힘이…!”
꽈악!
해골이 나를 붙든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아바돈이 현현한 것 때문일까?
놈의 힘은 아까보다 훨씬 더 세졌다.
힘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치도 전부 상승한 듯했다.
“…야.”
숭배하던 존재의 현현에 정신이 팔린 놈을 불렀다.
그러고는 질문은 던졌다.
“하나만 묻자.”
“뭐냐?”
“너 아까 나한테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한 거. 그거 네가 현현하지 않아도 돼서 그런 거냐?”
“…….”
해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는 미소를 지을 뿐….
“하….”
한숨 같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자기가 숭배하는 존재이지 않나.
그런 존재의 영혼을 현현하는 일인데도, 해골은 제 몸을 바치지 않았다.
아마 원도 마찬가지였겠지.
나로 인해서 정말로 막다른 길에 다다랐기에, 원은 목숨을 걸고 제 몸에 ‘아바돈을 현현한다’라는 선택을 고른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위친을 덮친 것도 그래서였겠군? 너희 몸을 바치지 않아도 되니까.”
“…….”
“아마, ‘이 세상엔 자신들보다 더 격에 걸맞은 존재가 있다’라는 소리를 늘어놓았겠지.”
“…….”
해골은 이번에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러나 내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놈이 조금 전에 지었던 미소를 지어 보였기 때문이다.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는 끔찍한 미소를.
“…이제 됐다.”
“되었다고? 뭐가 말이냐?”
“이렇게 너한테 맞춰 주는 거.”
“그게 무슨…!”
콰직! 투두둑!
해골이 끝까지 말을 잇기 전에,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붙들고 있던 놈의 목이 아주 간단히 부러졌다.
“……!”
해골의 눈과 입이 확장된다.
아주 간단하게 목이 부러진 것에 놀란 것이다.
아무래도 아바돈의 현현으로 인해서 강해졌으니 나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자신들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마족을 현현했던 주제에 말이다.
우둑, 우두둑!
손에 쥔 목을 위아래로 거칠게 흔든다.
뼈 소리를 내며 해골의 머리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몸통에서 뜯긴 꼴이 됐으나, 이놈이 겨우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었다.
“어디서 죽은 척을 하고 지랄이야? 진짜 죽여줘?”
“…아니. 죽고 싶지 않다.”
해골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놈은 아마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죽은 척을 유지해야 할지, 대답해야 할지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대답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놈답지 않게 잘한 선택이었다.
계속 대답하지 않고 죽은 척하고 있었으면, 난 그대로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줄 생각이었으니까.
“하나만 묻자.”
“아까 하나만 묻겠다고 하지 않았나?”
“죽여 달라고?”
“…….”
놈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왜 입을 함부로 놀려.
이제 그것밖에 안 남은 주제에.
“원은 지금 살아있는 거냐?”
“살아있다. 그분의 안에서.”
“내가 아바돈을 죽이면? 원도 같이 죽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런….”
바라지 않던 대답이 나왔다.
원이 같이 죽으면 안 되는데.
놈한테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제바달다가 기뻐할 그런 일이….
[세계수가 관리인을 재촉합니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나무랍니다.] [방금 이태천이 아바돈과 만났다고 전합니다.]태천이가 아바돈과 맞닥뜨렸다고?
혼자?
도희와 다른 녀석들은 어쩌고?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태천은 현재 무기와 함께 있다고 전합니다.]무기랑?
아. 아아…!
태천이는 무기와 함께 해골과 원을 추적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 둘이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이곳에 도착한 거구나.
이런.
이거 큰일 난 것 같은데?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아무리 태천과 무기라고 해도, 마족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관리인에게 어서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조언합니다.]아니, 아니.
그 점을 걱정해서 큰일이라고 말한 게 아니야.
네 말마따나 상대하기 쉽진 않겠지만, 그 둘이라면 최소한 내가 갈 때까지는 버텨낼 거야.
[세계수가 그럼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질문합니다.]태천이가 벌일 짓.
그 녀석이 과연 날 기다리면서 평범하게 버텨내기만 할까?
난 그게 무지하게 걱정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태천이 관리인도 아닌데 뭘 그런 것을 걱정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그래. 그렇지.
태천이는 내가 아니지.
나하고는 분명하게 달라.
성격도, 가치관도, 사고방식도, 그리고 외모도….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달라도 태천이는 내 친구라고?
[……!] [세계수가 관리인의 말에서 강한 설득력을 느낍니다!] [이어 관리인처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