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74
제576화
『…….』
아바돈이 내뻗었던 손을 내렸다.
이어 거리를 벌릴 생각인지 뒤로 물러났다.
쫓아가서 거리를 유지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간이 요동쳤다.
정확히는 주변에 복사됐던 공간들 전부가 울려대고 있었다.
마치 공간과 공간이 서로 공명(共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바돈이 또 일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뭘 하려는 속셈일까.
“…….”
의문을 느끼면서 아바돈을 주의했다.
그러는 동안,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간들이 울리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세계수가 공간들을 관찰했습니다.] [복사된 공간들은 현재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힘을 잃게 된 공간들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 과연….
아바돈이 뭘 하려는 건지 알겠다.
놈은 복사된 공간들을 더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거다.
무저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느라 저 공간들엔 마나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내가 새싹이를 떨어뜨려서 헤미스파이리움이 파괴되기도 했으니 더더욱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겠지.
물론, 놈은 나처럼 무한한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저 무수한 마나 저장고들을 쓸모 있게 이용할 수는 있다는 뜻이다.
단.
이 게이트에서 우리와 계속 싸움을 이어나갈 거라는 전제하에서.
[세계수가 관리인의 추측이 옳다며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현재 아바돈이 복사된 공간들을 삭제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내 생각에 긍정을 보내왔다.
역시 아바돈이 공간들을 없애는 것은 이 게이트에서 나가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우리를 쉽게 죽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럴 수 없는 놈으로서는 이곳에서 우리와 계속 싸우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었다.
“얼레.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음, 오라버니?”
도희가 나를 부른다.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관해서 설명해달라는 뜻이었다.
새싹이에게 전해 들은 나는 그 이유를 알 테니까.
바로 설명해주었다.
“아바돈은 이 게이트를 소멸시켜서 나갈 생각이야.”
“……!”
“게이트를 소멸시킨다고?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해. 전대 세계수도 했었잖아.”
“전대 세계수가? 언제?”
“울릉도 게이트 때요.”
태천이의 질문에 나보다 먼저 도희가 대답했다.
울릉도 게이트는 무기가 ‘세계수 관리인’인 나와 친구가 된 이후로 자연적으로 소멸한 곳이었다.
소멸한 이유는 전대 세계수가 그렇게 되도록 안배한 것이었다.
그 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바로 우리 세상에 게이트를 무수히 발생시킨 주범인 아바돈도 능히 그럴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나간 아바돈이 할 짓은 뻔했다.
놈을 구성하고 있고 또 뿜어지고 있는 저 들끓는 어둠을 세상에 가득 채워나가겠지.
태천이 아바돈을 바라봤다.
놈은 두 팔을 뻗은 채로 여전히 공간들을 소멸시켰다.
여유로운 낯짝과 태도였다.
“그럼 게이트가 사라지기 전에 놈을 죽여야겠네.”
“네. 그게 가장 베스트일 거예요. 오라버니.”
도희가 태천이의 말에 동의하며 나를 불렀다.
정확히는 새싹이를 부른 거다.
아바돈을 관찰한 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안타깝게도,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립니다.] [아바돈의 신체 어디에도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습니다.]새싹이는 결국 약점을 찾지 못했다.
아바돈에게 약점이 없다는 뜻이었고, 놈이 여유롭게 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약점이 없다네?”
“없다고요?”
“응.”
“그러니까, 아직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는 소리예요?”
“어. 그 소리 맞아.”
“…….”
내 대답이 달라지지 않자 도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주 조금 의욕을 상실한 얼굴이었다.
이해한다.
아바돈의 강함은 블랙 드래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런 놈인데 약점이 아예 없다고 하니….
의욕이 절로 사라질 만도 했다.
“헤, 약점이 없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 않나.
이런 순간에도 의욕을 전혀 잃지 않는 올곧은 멍청이가 함께 있다는 것은.
태천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약점을 만들면 되겠네.”
“뭐라고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약점 만들자고 했는데? 왜?”
“…….”
도희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예상컨대, 태천이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 도중에 그만둔 것은 태천이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방금 태천이가 한 말에는 딱히 틀린 부분이 없었다.
약점이 없다면 약점을 만들면 된다는 말은 이치에 맞았으니까.
전대 세계수 관리인인 디싱 나 토르가 블랙 드래곤에게 약점을 만들어 놓았던 것처럼 말이다.
곧 도희가 동의했다.
“좋아요. 약점부터 만들기로 해요. 그런데, 어떻게 만들어요?”
“음, 최선을 다해서.”
“…….”
“열심히…!”
“후우, 기대한 내가 바보지….”
도희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어떻게 약점을 만드는가.
그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라는 대답이 돌아왔으니 답답함을 느낄 만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도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물어볼 놈한테 물어봤어야지.
방금 질문에 타당한 근거를 늘어놓으면서 방법을 제안한다?
그건 태천이 아니라 이태천을 가장한 누군가다.
절대로 태천이일 리 없으니 곧바로 아르카를 휘둘렀을 거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 [관리인도 똑같이 대답할 것 같다고 투덜거립니다.]아하하.
새싹이의 지적에 웃음이 나왔다.
절대로 정곡을 찔려 헛웃음을 흘린 게 아니다.
절대로.
“우선, 공격을 퍼부어보죠.”
도희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럴 만했다.
방금 한 말은 태천이가 한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 테고.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도희는 덧붙여 말했다.
태천이가 했던 말 그대로.
***
“…….”
도운의 아바돈 사냥이 시작됐을 때였다.
공간과 공간들이 무너지는 곳에서 안지민은 홀로 부유하고 있었다.
도운 일행에게 게이트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쳐주러 왔던 그였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어 멈춰 섰다.
아바돈 때문이었다.
더 나아갔다간 마족의 들끓는 어둠에 잠식되고 말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안타깝게도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게 분명한 상황.
그렇기에 그는 나아가지 않기로 했다.
“후우….”
안지민은 숨을 차분하게 내쉬었다.
자꾸만 끌어 오르려고 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겨우 어둠을 바라봤을 뿐인데도 감정이 격해지는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이렇건만 도운 일행은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것인지 유감스러웠다.
유감스러운 심정은 눈 깜빡할 사이에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웬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토해라.
표출해라.
마음껏 해소해라.
주문과도 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채워나간다.
두 눈에 새카만 눈물이 맺힌다.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려는 순간,
우르르, 퍽…!
안지민은 번개를 두른 주먹으로 제 볼을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날 정도였다.
“거리를 더 벌려야겠군….”
그는 피를 대충 훔치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 안지민은 이 상황을 벌써 몇 번째 반복 중이었다.
게이트에서 나갈까.
그런 생각도 물론 했었다.
발걸음을 돌리지 않은 것은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마족과 싸우고 있는 도운 일행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이 자리에 남게 한 것이었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방금처럼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것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때였다.
“어푸푸, 퉷…!”
침을 뱉는 소리가 안지민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곳 게이트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연거푸 울린다.
이 생뚱맞기까지 한 소리가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안지민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대체 세계수 관리인이란 인간이 세계수를 왜 떨어뜨리는 거야?”
크라우드의 버섯이 있었다.
땅을 파고 나온 두더지 같은 모양새로.
“저런 짓을 하니까 광운이라고 불리지이아악…!”
곧 안지민을 발견한 버섯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 뜬 눈은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
“…….”
안지민과 버섯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당황의 늪에 빠진 버섯과 달리 그는 지금까지 버섯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애초에 도운 일행이 게이트에 진입하게 된 이유가 바로 저 버섯을 사로잡기 위해서이지 않았던가.
아바돈과 싸우고 있는 도운 일행과 달리 그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가 자책하는 동안, 버섯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맞춰 볼까요. 계속 거기 있었죠?”
“…네. 그렇습니다.”
“이런 젠장…. 싸움이 제대로 시작된 것 같아서 살금살금 기어 나온 거였는데. 오히려 저 싸움의 여파로 인해 제대로 감지할 수가 없었나 보네요….”
버섯이 중얼거렸다.
안지민은 그 분석에 동감했다.
먼 곳에서부터 벌어지는 싸움은 그야말로 자연재해(自然災害)와도 같았고, 도운과 아바돈의 무한한 마나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주변의 마나를 제대로 감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지민 씨와 딱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응? 나를 압니까?”
“네?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부동벽 최희석과 뇌제 한진환의 후계자이신데.”
“……?”
버섯의 대답에 안지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최희석의 후계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한진환의 후계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한진환은 친하게 지낸 사이도 아니었다.
최희석 때문에 몇 번 마주쳐서 인사를 나눈 것이 다였을 정도다.
그런 안지민의 반응에 버섯이 당황했다.
“뭘 모르겠다는 반응이죠? 선택을 받아서 ‘뇌제의 정수’까지 복용한 사람이.”
“아.”
“정말 부러워 죽겠다니까. 난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누군 정수 하나 먹고 강해지고 말이야.”
“지금,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렇잖아요. 뇌제의 정수는 아무리 못해도 A+등급 영약…. 그걸 먹은 당신은 머지않아 A+급 헌터가 되겠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흠….”
안지민이 불만스러운 콧숨을 내쉰다.
먼 곳에서 아바돈이 뿜어내는 들끓는 어둠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버섯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것뿐이었다.
여러 선배의 하해(河海)와 같은 배려로 그가 한진환의 정수를 복용하게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군요.”
“납득할 수 없다고요?”
“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그런가요…?”
버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기에, 안지민은 눈을 찌푸렸다.
“…그런데, 조금 우습군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제가 뭐 어때서요?”
“아무리 봐도 누워서 침 뱉기 같지 않습니까?”
“……?”
“당신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 마족의 권속이 된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하. 아뇨. 그건 지민 씨의 오해예요. 저는 아바돈 님의 권속이 아니랍니다. 그저 서로의 목적을 위해 거래를 했을 뿐이죠.”
“흥. 그렇습니까?”
안지민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네 말 따위 믿지 않는다는 티가 역력한 모습이었다.
버섯은 아까 안지민이 그랬던 것처럼 눈을 찌푸렸다.
“안지민 씨.”
“네.”
“방금 든 생각인데, 어쩐지 우린 좋은 사이가 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것참 다행이군요. 어차피 당신이랑 좋은 사이가 되고 싶지도 않았는데.”
“…….”
“…….”
버섯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에 감응하듯 안지민도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르르…!
그렇게, 사라져가는 공간들 속에서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